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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길 조각전
기타 마감

2006-09-08 ~ 2006-11-05


♣ 2006 <오늘의 작가>전 이상길
♣ Contact_무한한 사랑
♣ 기간 : 2006년 9월 8일(금) - 11월 5일(일)
♣ 오프닝 : 2006년 9월 8일(금) 오후 5시
♣ 주최 : 김종영미술관
♣ 문의 : 3217-6484
♣ 주소 : 서울시 종로구 평창동 453-2
♣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김영사
♣ 홈페이지 :
http://www.kimchongyung.org

김종영미술관의 <오늘의 작가>전

<오늘의 작가>전은 후학양성에 남다른 관심을 지니셨던 우성 김종영 선생의 뜻을 기려 김종영미술관이 2004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조각 기획전이다. 이 전시는 조각전문미술관을 표방하는 미술관으로서 조각 분야에서 작업성과가 뚜렷하고 오늘의 시점에서 미술의 향방을 가늠해볼 수 있는 중견 전업작가 중 매년 2명을 선정하여 개인전을 지원하고 있다. 김종영미술관은 2004년 정현과 이기칠, 2005년 김주현과 박선기를 선정한 데 이어 2006년의 전반기 작가로 최태훈을, 후반기 작가로 이상길을 선정하였다. 2007년의 <오늘의 작가>전에서는 박소영, 민균홍의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마음의 우주선에서 보내는 신호


김종영미술관이 ‘2006 오늘의 작가’로 선정한 이상길은 ‘Contact: 무한한 사랑’을 주제로 신작을 선보인다. 이 전시에서 주목할 작품으로 거대한 깔때기 형의 입체물을 먼저 거론해 보자. 무수하게 많은 스테인리스 스틸 봉을 조밀하게 용접하여 만든 원추형의 내부는 마치 모든 물체와 빛을 흡수하는 블랙홀처럼 보인다. 스티븐 호킹(Stephen W. Hawking)은 일반인들을 위해 집필한 과학 교양서인『시간의 역사 A Brief History of Time』에서 주어진 사건을 지나가는 광선의 가능한 모든 방향이 만드는 시공간의 곡면을 마치 깔때기처럼 생긴 두 개의 광추면(light cone)이 서로 꼭지점을 맞대고 있는 형태로 설명한 바 있다. 종이가 평면인 까닭에 단순하게 도식화한 형태에 불과하지만 이 그림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시각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사실 공간을 원추형으로 지각한 사람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주의자이자 예술가였던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였다. 그는 원근법을 설명하면서 ‘회화는 원추체의 절단면’이라고 했다. 미지의 세계, 절대적인 영역에 접근하기 위해 인간은 탑을 쌓아올렸는데 브뤼겔(Peter Breugel)은 창세기에서 표현하고 있는 바벨탑을 위로 올라갈수록 지름이 좁아지는 원추형으로 그렸다. 중력, 역학, 건축기법 등을 고려하면 브뤼겔이 상상한 바벨탑의 형태는 실제로 고대의 유대인들이 보았을 지구라트와 유사할지 모른다. 이집트인들도 처음에는 그들의 주거공간인 ‘마스타바’로부터 출발한 피라미드를 나중에는 첨형으로 쌓지 않았던가. 바벨탑이든 피라미드든 끝부분이 첨형이란 것은 그 부분에서 절대적인 존재와의 접속이 가능하리란 믿음의 결과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꼭지점이야말로 절대자의 계시를 지상으로 연결하는 안테나이자 그 에너지를 접지하는 피뢰침이라고 할 수 있다. 원뿔모양이 자극하는 상상력은 자못 흥미진진한 부분이 있다. 그것은 비단 종교뿐만 아니라 과학적 상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나아가 속이 빈 원뿔의 내부를 들여다본다는 것은 구심점의 미궁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흥분을 동반한다.

이상길의 은 그런 점에서 어딘지 과학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매력이 있다. 게다가 이 입체물의 외부는 투명하게 마광한 스테인리스 스틸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언뜻 보기에 우주로 쏘아올린 비행물체이거나 혹은 미지의 세계로부터 발사된 신호나 정보를 수집하는 기계처럼 보인다. 곡면인 표면이 거울처럼 주변의 풍경을 흡수하여 작품과 주변공간이 서로 조응하는 ‘만남’을 연출한다면 내부의 꼭지점을 향해 수렴되는 스테인리스 스틸 봉들의 질서정연한 배열은 우리 뇌 속의 뉴런(neuron)을 연상시킨다. 외계세계로부터 접수한 무수하게 많은 정보들을 집적하고 있는 기관. 그것은 또한 우리를 빨아들이는 강력한 에너지를 지닌 흡입구이기도 하다. 그 마지막 지점에 작가는 유리로 만든 입체물을 박아놓았다.

작가는 그동안 미지의 세계인 우주와의 접속을 주제로 작업해 왔다. 그는 이러한 접속을 통한 우주와의 소통을 위해 자신의 상상력을 펼치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곧 출간예정인 작가의 사진에세이 『작업실을 보는 6가지 방법 -문수목장, 내 삶의 아지트』의 한 장인 ‘작업실은 놀이터이다’에서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말기! 그건, 상상과 다를지도 모를 실체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혹은, 상상과 다른 실체 앞에 서게 되었을 때의 나를 위한 최선의 예방 주사”라고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제는 보는 것이 곧 아는 것이다가 아니라 보이는 것 너머에 대해 상상할 수 있을 때 예술은 더욱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점이다. 바닥에 뉘어놓은 원뿔모양의 구조물을 우주세계와의 소통을 위한 장치라고 말하는 것이 과도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상상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작가 자신이 밝히고 있듯이 이 작품들은 과학자들이 외계생명체가 보내는 신호를 탐지하기 위해 미국의 팰로앨토 지역에 세운 커다란 하얀색 전파망원경을 나름대로 해석하여 만든 것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지평은 그만큼 넓어질 수 있다. 작가는 눈에 보이는 세계를 재현한 것이 아니라 경험을 넘어선 세계로의 여행을 위해 이러한 구조물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나에게 이 원뿔모양의 입체가 우주로부터 발사된 전파를 채집하는 전파망원경일 뿐만 아니라 작가가 타고 우주공간을 유영할 우주선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니면 흔히 말하는 사차원의 세계로 진입하기 위해 우주의 어떤 부분을 잘라낼 때 생기는 구멍일 수도 있다. 그것은 한번 빨려 들어가면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는 블랙홀이라기보다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통로이자 또한 다른 세계로부터 나오는 출구일 수도 있다. 이 우주선을 타고 다른 세계로 진입한다는 것은 ‘만남’을 전제로 한다. 그것이 외계인이든, 아득한 무한공간 속으로 흐르는 별이든 아니면 대혼란이거나 신이든 만남을 위해 그는 끊임없이 외계로 향해 신호를 보낼 수밖에 없다. 이 신호는 바로 내가 여기서 당신과 대화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달아놓은 부제들을 보면 한결같이 정서적임을 알 수 있는데 그것에서 작가 스스로 발신자가 되어 신호를 보내고 있음을 드러낸다. 가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원뿔모양의 입방체가 견고한 형태를 유지한 채 바닥에 뉘어진 상태라면 이 작품은 무수하게 많은 가지들을 서로 엮어 만든 비정형의 다소 어지러운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이 가지들 사이에 매단 유리구슬 역시 비정형의 형태를 지니고 있는데 바닥에 놓은 하트모양의 입체물만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를 띠고 있을 뿐이다. 부제의 다소 낭만적이고 감성적인 부제만큼이나 이 하트 역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직선적으로 드러내는 일종의 시각적 서비스에 충실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추정컨대 거대한 우주도 실제로는 내 마음에 있다는 것이 아닐까. 작가는 이 작품에 대해 말하면서 미지로 향한 메시지의 실체를 ‘무한한 사랑’이라고 규정한다. 신비로운 우주의 파노라마에 비하면 인간이란 존재는 왜소하기 그지없지만 측량하기 힘든 것 또한 인간의 마음이기도 하다. 이 마음이 우주를 끌어안기 위해 필요한 무한한 사랑, 그것은 작가가 마음속에 그리고 있는 존재의 이유이자 가치이다. 우주공간으로 나간 우주비행사가 중얼거리듯 내뱉은 ‘우리뿐인가?’는 실상 인류의 종말에 대한 불안한 예감이라기보다 소통할 수 있는 대상의 부재에서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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