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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묻다, 김영윤 개인전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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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

2007-06-12 ~ 2007-07-02


전시행사 홈페이지
www.saii.or.kr/exhibition/read.php?idx=2


김영윤은 글과 그림, 조각 등을 상자box에 담아 특정한 장소(땅)에 묻는 행위를 벌여왔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기억의 장치로서 스스로 마련한 것이지만, 그러한 기억의 장치 역시 현재의 주관적인 해석이 개입되면서, 작가는 끝없는 모순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러한 갈등의 과정에서 작가가 만들어온 수많은 흔적들은 매우 파편적이고 사사로운 듯 보이지만, 묘한 궤도를 그리며 한 개인의 존재방식과 미술에 관한 어법을 슬며시 드러냅니다.
<문지문화원 사이> 에서는 상자를 묻는 행위를 중심으로 펼쳐진 작가의 주관적인 지도 그리기, 설치, 그리고 수많은 노트와 그림들이 만들어내는 궤적의 의미를 드러내려 합니다.


기억을 묻다

가끔 필요한 일로 책장에서 오래 전에 읽었던 책을 꺼낼 때가 있다. 필요한 페이지를 찾아 넘기다 보면, 전에 읽다가 귀퉁이를 접어놓은 흔적이나 깨알 같은 글씨로 남겨 둔 메모, 공들여 친 밑줄들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워낙 부족한 기억력을 돕기 위해 표시까지 해 둔 것이겠지만, 솔직히 밑줄을 긋고 메모를 남겨 귀퉁이를 접어놓은 이유를 떠올리지 못할 때도 있다. 밑줄과 메모라면 적어도 정확한 지점이 있으니, 다시 읽어보면 그 이유를 대충은 짐작할 수도 있겠지만, 무턱대고 귀퉁이를 접어놓은 페이지를 보면 이것이 책을 읽다 잠시 멈춘 흔적인지, 다시 보기위해 남긴 표시인지, 내가 직접 접어놓기나 한 것인지 모호할 때가 없지 않다. 책을 읽고 밑줄을 긋고 접어두는 행위는 책이라는 외부의 객관적인 세계에 끼어드는 개인의 주관적인 체험의 흔적이다. 책을 다 읽고 난 독자는 책에 그어진 밑줄과 접혀진 장으로 자신의 앎의 공간을 구성하고 다른 책읽기로 경험을 옮겨가며 공간을 넓혀간다. 독서를 통해 앎의 세계가 확대되는 동시에 ‘자기의’ 앎의 세계가 형성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작가 김영윤은 십 여 년 전부터 수년간 자신의 기억을 새기고 그린 상자를 땅에 묻는 작업을 반복해왔다. 그리곤 시간이 지나 다시 상자를 캐내어 이전의 기억을 들추고, 시간의 단절을 극복하지 못해 어긋나는 기억을 발견한다. 그리고 다시 다른 장소에 새로운 기억을 묻는다. 마치 책에 줄을 치고 귀퉁이를 접으면서 한 권씩 읽은 후에 책장에 꽂아두었다가 어느 시점에 이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꺼내들어 펼쳤다가 또 다른 책으로 옮겨가듯이.

김영윤의 작업은 작가의 주관적인 세계관의 기록이다. 작가는 주관적인 시간과 공간의 좌표를 만들어서 개인적인 경험을 기록하고 객관적인 시간과 장소에 묻어두었다가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에 꺼내서 기억을 다시 주관적인 현실로 경험하는 작업을 반복한다.

어찌 보면 무모할 정도로 시간 속에 기억을 묻고, 파내면서 반복되는 기억의 불일치를 확인하는 작가의 작업은 바로 그 반복되는 행위를 통해서만 존재를 설명할 수 있다. 작가는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주관의 경험을 인식하고, 주관의 경험을 통해 객관적 세계를 이해하는 통로를 확보한다. 반복되는 행위가 작가의 몸에 남긴 반복과 불일치의 경험은 시간과 기억에 대한 작가 고유의 세계를 형성한다. 또한 작가는 자기만 아는 장소에 상자를 묻고 다시 캐내는 행위를 반복하면서 과거와 현재의 다른 자아가 만나는 장소를 알게 된다. 과거에 묻었던 상자는 이들의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물질적 증거이자 대화의 장소이다. 이미 존재하는 장소에 개인의 기억을 묻어둠으로써 장소에 개인을 각인시키고, 기억을 묻는 시점을 시간의 시작점으로 표시하면서 작가는 개인이 가능한 시공간의 좌표를 확보한다. 좌표의 영점과 점들을 잇는 그래프는 작가의 기억과 행위가 그리는 궤적이며 작가를 가능하게 하는 실천적 영역이 된다.

전시장에 놓여있는 김영윤의 작품들은 작가가 유예시킨 기억들이다. 작가는 땅에 자신의 기억을 묻음으로써 기억을 유예시킨다. 작업을 통해 작가는 유예된 기억이 ‘묻혀있다’는 사실만 기억한다. 언제라도 다시 꺼내면 유예된 기억이 복원되어 현실의 일부가 될 것으로 믿지만, 다시 기억을 꺼내어 들었을 때 이전의 기억은 과거의 잔상일 뿐이다. 기억은 땅에 묻혔다가 다시 꺼내어 상자의 뚜껑을 여는 순간, 공기와 함께 휘발되어 날아가 버린다. 남겨진 기억이란 없다. 기억의 흔적으로 기억이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을 뿐. 기억하기를 멈추고 잠시 감추어 두었다가 다시 꺼내어 기억을 이어가기란 시간을 거스르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하다. 그래서 전시장에 놓인 상자와 조각들은 더 이상 작가의 기억일 수 없는 단절의 잔상들이다. 아직 꺼내지 않고 유예된 채 봉인되어 땅에 묻혀 있는 상자만이 작가의 반복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아직 확인되지 않은 생의 날들이 인생을 가능하게 하듯이.

‘묻혀있던’ 상자들을 바라보는 경험은 가상의 시간과 기억의 장소가 그려진 새로운 지도를 건네받는 경험이다. 이 지도가 가리키는 곳은 미지의 신세계가 아니다. 그곳은 우리가 이미 경험했거나 망각해 버린 기억들이 아직 사라지지 않고 남겨진 자리들이다. 기억이 놓인 자리, 아직 꺼내지 않은 과거의 기억들이 박제처럼 놓인 그곳은, 작가가 기억을 묻고 파헤친 흔적이자 우리가 이미 유예한 채 돌아보지 않은 기억의 자리이기도 하다. 

김경성(문지문화원 사이 학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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