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균
1966년 전남 함평 출신으로 경희대학교 미술대학교에서 수학하였으며, 현재 동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중이다. 1980년대 대학시절을 보내며 직접적인 정치적 발언으로 시작되었던 그의 작품들은 사회의 변화를 보여주는 바로미터의 역할을 하고 있다. < 대한민국> 비디오 작품에는 서울광장에 모여 민주화를 외치며 빨간 머리띠를 두른 젊은이들 위로 빨간 티셔츠를 입고 축구를 응원하는 붉은 악마들이 오버랩되며,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젊은이들의 열망을 드러내고 있다. 작가 자신이 대학생이던시절 억압과 분노를 표출하기 위한 반체제적인 열기로 감행하였던 벽화는 오늘날 교수의 입장이 되어 시의 지원을 받아 학생들과 함께 추진하는 하나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변화하였다. 벽화속의 투사로부터 노래방에서 ‘솔아솔아’를 부르는 비장하면서도 유머러스한 김대리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시대의 변화를 담아내는 그의 작품에는 개인은 그가 속한 사회와 시대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라는 관점이 자리하고 있다.
사회 속의 개인이라는 생각은 사회공동체나 사회환경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 최근의 작업에 반영되고 있다. 한 화면속에 어우러진 마론 인형, 동물, 레고 장난감 등은 서로 다른 종이지만 한 화면안에 공존하는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 상호영향을 주고받고 있다. 사람이 아닌 인형으로 대체된 캐릭터들은 다양한 사회구성원의 알레고리적 페르소나에 다름아니다. 번들번들 화려한 색채는 활동 초기부터 그의 작품을 다른 작가들의 그것과 구분지었던 요소로, 사회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드러내는 또다른 은유이다. 빨강, 노랑, 초록의 과도한 원색은 각 개체의 이질성을 극대화시키지만 화면에 전면적으로 고르게 분포됨으로써 통일성을 부여하는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또한 화려한 색채는 작가의 고백대로 어린시절 세면대 옆에 놓여있었던 플라스틱 비누각 혹은 생활용품점의 소쿠리 색채와 같은, 싸구려 물품들로부터 솟아나는 원천적인 아름다움의 표상이다.
분홍밤, 캔버스에 유화, 112 x120 cm
이번 전시회는 2008년 부산아트센터에서 열린 작가의 제 8회 개인전에 선보였던 작품들이 보다 진화된 형태로, 바비인형, 레고 등 은유적인 표현들이 더욱 강조되었다. 무지개빛 미래를 꿈꾸며 초록 땅 위에 한 줄로 늘어선 레고 인형들의 모습은 한 팔을 들어 흔들고 있다. 길 건너에 마치 반가운 친구라도 서 있는 양 바라보는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는 맑은 모습은 그 앞에 선 관람객들마저도 미소짓게 만드는 ‘거울 효과’를 자아낸다. 주먹쥔 한팔을 높이 올려 투쟁과 전진을 외치던 벽화속의 인물들에 비하면, 한 손을 흔드는 듯 부드럽게 변화한 레고인형 그림은 형태의 큰 변화를 보여주고 있지만, 오늘을 살고있는 다양한 다양한 시민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는 같은 출발점이다. 거리로 나서던 투사들이 한정된 젊은이 혹은 노동자 계층이었던 사회로부터, 발언을 하고자 하는 이는 누구나 자유롭게 거리로 나서게 된 사회의 변화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작품의 형태적 진화는 사회의 현실을 담고자 하는 작가의 일관성을 반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유를 이끄는 카우보이 II, 캔버스에 유화, 90 x 227 cm
들라크루와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그동안 제작해왔던 일련의 연작시리즈의 최근작이라 할 수 있는 < 자유를 이끄는 카우보이 II> 에서는 경찰, 로보트, 군인, 우주인 등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 분홈밤> 의 무지개빛 배경과 바찬가지로, 인물들은 숲속의 노란 길을 건너고 있다. 숲길과 인형 등 낯선 상황속에 선 인물들은 급변하는 사회에 빠른 속도로 적응하며, 가상 리얼리티가 현실의 세계속으로 침범하는 한편, 유기농과 웰빙을 이야기하며 느림의 미학을 칭송하는 무리가 공존하고 있는 오늘에 대한 은유이다.
비너스의 탄생, 캔버스에 유화, 117x 91cm
축구공이 보이는 풍경, 캔버스에 유화, 112x 162cm
이번 신작 시리즈에 유난히 많이 등장하는 바비인형은 어린시절 작가의 머리속에 각인되었던 ‘신제품’의 기억으로부터 출발한다. 나무나 흙으로 만든 물건들과 확연하게 차별화된, 반짝거리는 표면, 적당하게 딱딱한 맨들거리는 질감, 현실을 떠난 화려한 색채는 그동안 보아왔던 사물들과는 다른 존재였다. 감히 만져보기도 쑥스러웠다는 표현처럼, 그것들은 작가의 판타지를 대변하는 소재이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작품을 패러디한 작품들에서 정작 여신의 모습은 사라진 반면, 바비인형 시리즈에는 그 자유의 여신이 환생한 듯 < 비너스의 탄생> 에서도, < 축구공이 보이는 풍경 > 에서도 화면의 중심을 차지하며 자리하고 있다. 이들은 영웅에 대한 관점의 변화를 은유한다. 신화속의 주인공, 역사적 인물이 영웅이 아니라 미디어속의 예쁘고 멋진 연예인이나 스타들이 영웅이 되고 우상이 되는 사회의 모습이다. 그것들은 선망의 대상이며, 캐릭터 인형으로라도 소유하고 픈 욕망의 대상이고, 친구처럼 가깝게 지내고 싶은 친근한 존재이지만, 팔 다리를 올리고 내리는 등 조정가 통제가 가능하고, 유행이 변하면 버려지기도 하는 존재에 다름아니다.
지난 20여년동안 꾸준한 작품활동을 펼치며 자기성찰적인 고백을 사회에 대한 관심과 연결시키되, 미술의 아름다움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변화시켰다는 점에 한국미술사에서 그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그의 작품들은 부산시립미술관, 일본 후쿠오카 아시아 미술관을 비롯하여 국내외 유수의 미술관에서 소개된 바 있으며, 국립현대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한국수자원공사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론 잉글리쉬 (Ron English)
1959년 미국 일리노이주 출신으로, 고등학교 시절 텍사스로 이주했고 노스 스테이트 주립대학(University of North Texas State)에서 현대미술석사를 마친 후, 달라스에 있는 메시나(Messina)스튜디오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의 재능을 일찍 알아보았던 상사 존 메시나(John Messina)의 배려덕분으로 일이 끝난 후 스튜디오에서 여러가지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의 소재를 얻고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았다. 재기넘치는 여러 활동을 벌이던 그는 1986년 뉴욕으로 이주하여 현재까지 뉴욕에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반체제 문화의 선구자로 손꼽히는 아비호프만(Abbie Hoffman)의 만화와 바트 심슨(Bart Simpson) 만화시리즈와 함께 성장했다는 작가의 고백처럼, 1960-70년대 범람하기 시작한 미국의 대중문화는 작가의 작품을 구성하는 토대가 된다. 맥도날드, 심슨, 마릴린 먼로 등 대중문화의 주역을 작품의 주제로 과감히 채택하는 그의 작품들은 익숙한 인물들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친근감을 자아내지만, 전혀 다른 맥락의 메세지를 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초현실주의 미술과 같은 낯설음을 불러 일으킨다. 맥도날드의 캐릭터 인형은 밝고 경쾌한 모습이 아니라, 음울하게 화면 뒤로 숨어있는 어두운 악의 존재처럼 그려지는데, 30일간 햄버거만을 먹는 실험을 펼친 영화 < Supersize Me> 의 회화판 버젼이라 할 만 하다.
슈퍼사이즈 맥 (Mc Supersized) 아크릴, 실크스크린에 캔버스, 61x51 cm
토끼현관, 캔버스에 아크릴, 유화, 61x 91.5 cm
엘비스 프레슬리 같이 잘 알려진 스타를 그리되 눈이 세 개 달린 이중 이미지로 처리하거나, 평범한 미국 소시민들의 일상풍경 혹은 미술사의 주요 명작들 속에 외계인처럼 보이는 독특한 인형 캐릭터가 등장하는 장면들은 소재 자체만으로도 기이함을 불러 일으키지만, 오렌지색과 파란색의 배치와 같은 보색대비를 적극 활용한 극사실적인 묘사 또한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반사광을 강조한 정교한 이미지들은 마치 천둥번개가 쳤을때 혹은 카메라 플래쉬가 터질때의 한 순간처럼 늘 익숙했던 평범한 일상의 모습을 조명의 변화 하나만으로도 전혀 다른 각도로 바라볼 수 있는 가능성을 일깨우고 있다.
이처럼 대중적 캐릭터를 이용하여 풍자적인 내용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들은‘팝파겐다(popaganda)’라고 불리운다.‘팝파겐다’라는 용어가 무색하지 않게, 그의 작품활동은 단지 스튜디오안의 그림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직접 사회로 나아가는 참여적인 미술로도 발현되었다. 작가로서의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 것도 실은 1992년부터 시작된 대형광고판 시리즈 덕분이었다. 1987년 카멜 담배회사의 캐릭터로 탄생된 조 카멜(Joe Camel)을 등장시켜 흡연이 건강에 주는 폐해에 대해 경고한 광고판을 비롯하여, Supersize me 라는 작품시리즈를 통해 미국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상징물인 Ronald Mcdonald 캐릭터를 공포스럽거나 혹은 폭력적인 성향이 느껴지는 부정적 캐릭터로 변화시켜 자신의 작품속에 등장시켜 “McDonald’s, better living through chemistry (맥도날드, 화학물질을 통해 더 나은 삶으로)”라는 슬로건과 함께 제작, 미국 대중문화 특히 정크푸드로 대변되는 미국의 식문화를 꼬집었다. 암스테르담 대형 광고판에는 빈라덴과 비슷한 모습의 아랍인의 얼굴과 반 고흐의 얼굴이 겹쳐진 이미지와 함께 “Jihad is over(If you want it)”라는 문구가 담긴 작품을 그려 무슬림들에게 위협까지 감수하며 자신만의 생각을 담아 대형 광고판이라는 매체를 통해 작품을 그려갔으며, 점차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 그래피티 작가들과 함께 참여해 큰 위험을 걸고 베를린 장벽에 직접 2주에 걸쳐 벽화를 그리는 등, 벽화는 그에게 있어 미술을 통해 세계에 개입하는 적절한 통로였던 것이다.
최근 가장 주목을 받은 벽화는 LA 거리에 설치되었던 ‘레인보우 오바마’ 시리즈로,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전 대통령으로 손꼽히는 아브라함 링컨(Abraham Lincon)의 얼굴형에 당시 대선후보였던 바락 오바마(Barack Obama)의 이목구비를 결합한 작품이었다. 오바마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잉글리쉬는 이를 벽화와 동영상으로도 제작하는 등,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작품을 통해 거리낌없이 드러내는 액티비스트의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잉글리쉬는 미술 뿐만 아니라 음악, 동영상, 사진 등을 제작하기도 하며, 이를 상영하는 상영회나 파티를 개최하기도 하고, 작품속의 캐릭터를 이용하여 캐릭터 인형을 제작하기도 하는 등 매우 적극적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예술과 삶을 결합시키고 있다. 이러한 그의 다양한 예술적 활동은 앤디 워홀(Andy Warhol)과 종종 비교된다. 론 잉글리쉬는 한 인터뷰에서 워홀을 ‘화가란 언제나 대단한 그 무언가로부터 고통받고 그것을 통해 창작활동만 전념하는 사람’이라는 정의로부터 ‘파티를 열고, 사회와 문화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 이라는 인식의 전환을 만들어준 대단한 인물이라고 평가하며, 작가들이 조금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현재 그의 작품은 뉴욕에 있는 휘트니(Whitney)미술관, 파리 현대예술 박물관, 메사(Mesa)시 예술 센터의 대안미술관, 파터슨(Paterson)미술관, 펜실베니아의 에버하트(Everhart)미술관, 휴스턴에 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으며, 구겐하임(Guggenheim)어린이 단체의 기금을 받은 할렘(harlem) 광고물, 스페인과 카자흐스탄의 도시의 정부를 위한 게시판 등으로도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