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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GE REALITY
미술

문의요망

마감

2010-02-19 ~ 2010-03-20


전시행사 홈페이지
www.artcompanyh.com/









STAGE REALITY

고정된 창밖의 풍경이 낯설고, 자동차 차창 밖에 빠르게 뒤로 흘러가는 풍경이 익숙하다. 10개나 열어놓은 윈도우 창을 통해 뉴스, 페이스북, 음악채널, 사전, 유투브를 동시에 즐긴다.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 사람들은 더 이상 고정된 하나의 창에 의존하지 않는다. 움직이며 다양한 공간과 장르의 문화를 소비한다. 동적인 환경과 멀티 미디어의 실시간 커뮤니케이션은 삼각대 위의 고정된 관점을 해체하고 움직임을 강요한다. 그 속에서 고정된 자기만의 아이덴티티를 만들어 간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노력일지 모른다. 실제로 나의 공간, 나만의 상상력이 머무르는 공간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변화의 속도, 변화의 방향을 예측하기가 쉽지 않아 어디에 나의 두 발을 담궈야 할지 불안한 현실이다. 세상이 변화하는 속도가 빨라진 것이 결코 축복이 아닌 이유다. 자기 정체성을 찾기 위한 아티스트들의 고민이 더 치열해지고 있다. 현실은 달라야 한다는 강박증을 생존을 위한 룰로 만들어 버렸다. 전시 “스테이지 리얼리티 STAGE Reality“는 말그대로 현실에 울타리를 치고, 색을 입히고, 옷을 갈아 입히고, 꿈을 그리고, 프레임을 조작하고, 시점을 조작하고, 문맥을 바꿔 만든 연극무대 공간을 연상시킨다. 세상의 흐름을 따라 잡기 위해 바둥거리는 대신, 내가 중심이 되어 나만의 공간을 만들고 세상의 시선에 당당한 박천욱, 배찬효, 유현미, 장파, 천성명 등 5인의 작품을 살펴본다.

사진 프레임 밖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박천욱의 입체와 사진작업은 일상을 날카롭게 잘라내어 생경한 문맥 속에 재배치해 관객을 당황시킨다. 열대 지방에서나 살 수 있는 얼룩말을 추운 알래스카와 매칭 시키며 “알래스카 얼룩말“이라고 명명하고 이를 극장, 냉동고, 지하도에 배치하거나, 반대로 잘라낸 프레임 안으로 바깥 배경 속 요소를 위치시키기도 한다. 현실 세계에서라면 결코 어울릴 수 없는 이질성 속에서 조화를 이끌어 낸다. 작가의 이런 시도는 너무 익숙한 것이 낯설게 느껴지질 때, 진실이라고 믿고 있던 것을 다른 각도에서 입체적으로, 기존의 문맥에서 떼어내어 좀더 객관적으로 보게 만든다. 이를 통해 박천욱이 과감하게 절단해낸 환영이 낯선 배경 속에서 단단하게 고체화된다.

영국이라는 이질적인 문화 속에 들어가기란 토종 한국 남자가 영국 귀부인이 되는 것 만큼이나 우스꽝스럽고 불가능한 시도일까? 배찬효의 귀부인되기는 그런 발칙한 상상에서 출발한다. 영국 유학생으로서, 한국 남자로서 영국 문화계에 진입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몸소 체험한 배찬효는 예견된 편견과 맞서야 했다. 첫째 동양 남자는 서양여자에게 섹스어필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동양은 여성적이라는 선입견이었다. 이러한 장벽은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가져왔고 작가로 하여금 영국 여자, 영국 귀부인되기를 시도하는 동기가 된다. 동양과 서양의 문화적 장벽과 편견을 조롱하기 위해 기꺼이 립스틱를 바르는 배찬효. 씩씩하게 노출한 굵은 목젖과 뻣뻣이 들어 올린 고개만큼이나 당당하다.

“저건 그림이야 사진이야? 합성일거야! 아니야! 실제 물건에 그림을 그리고 그걸 사진으로 찍은거래“ 여기저기서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유현미의 작품은 조각, 회화, 사진을 프레스로 납짝하게 눌러 놓은 듯 하다. 납짝해진 만큼 함축적이고 상징적이다. 실제 공간과 오브제를 회화적 기법으로 평면화하고, 때론 평면에 그림자를 그려 넣어 입체적인 환영을 만든 뒤 그걸 사진으로 담아냈다. 회화와 조각, 사진이 하나의 화면에서 공존하고 있는 셈이다. 다시말해 유현미는 캔버스가 아닌 일상의 공간, 일상의 상황에 상상을 그려 넣음으로써 현실에서 볼 수 없는 이미지를 완성한다. 가장 가까이에 있던 작가의 일상이 가장 멀리 떨어진 생경함으로 탈바꿈되기까지 지루한 아날로그 작업이 한 달간 이어진다.

장파의 그림은 소설을 닮았다. 사건의 인과관계, 등장인물의 갈등, 화자와 관찰자 사이의 거리, 희극과 비극, 아름다움과 추함, 배신과 기만을 어떻게 보여줄까에 대한 고민이 소설가의 그것을 닮았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 긴장상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불확실한 대치상태 등 장파는 액션이 비등점에 이르기 전 상황에 관심을 갖는다. 이는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가해자일지, 누가 주동자이고 누가 관찰자일지 알 수 없는 순간을 포착해야만 이야기가 관객 스스로의 시점에 따라 다각도로 펼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서 장파는 보다 적극적으로 관객의 시점을 컨트롤한다. 자동차 백미러에 비친 인물의 표정과 인물의 뒷모습 그리고 인물이 바라보고 있는 자동차 차창 밖의 풍경 등 세 개의 서로 다른 프레임이 작동한다. 왜곡을 야기하는 프레임. 이야기에 접근하기 위해서 관객은 적어도 이들 세 개의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천정에 매달린 여자아이, 삶을 포기한 듯 무표정한 토끼 소년과 그의 팔목에서 흘러나오는 푸른 피, 재봉틀질을 하고 있는 멍한 눈동자의 소년, 달 그림자가 드리워진 검은 물, 추락해 상처 입은 여자아이 등 2005년 천성명의 개인전 < 달빛 아래 서성이다> 의 섬뜩하고,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나 진짜 섬뜩한 건 줄무늬 죄수복을 입고 있는 다섯 살배기 아이가 30대 중반의 어른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의지 박약아처럼 무표정하게 세상과의 소통을 거부하는 이 '애늙은이'는 전시장 구석으로 숨어 버린다. 현실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성장을 멈추고 싶어하는 무의식에 갇혀 점차 폐쇄적으로 변하고 있는 현대인의 기형적 자아가 연상된다. 이번 전시에 출품되는 쓰러져 있는 소년을 중심으로 서 있는 아홉 마리의 들개는 소년의 무의식과 꿈이 만들어 낸 환영이다. 그런데 그 들개들이 소년을 위협스럽게 내려다 보고 있다. 인간 스스로 창조해낸 괴물이 인간의 본성마저 집어 삼켜버릴지도 모른다.

상상력은 현실이라는 단단한 구체에 구멍 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작가들은 이 구멍을 통해 현실세계의 논리력이 미치지 않는 새로운 차원으로 한 걸음 전진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 낸 새로운 풍경에 사람들이 열광했다. 그만큼 구멍도 커지고 판타지도 커진 결과다. 꿈과 현실, 무의식과 의식의 경계를 덮고 있는 두꺼운 껍질 사이에서 어느덧 그 열광과 상상력이 지루한 현실로 고체화되어 일상 속에 흡수되기 시작한다. 말랑말랑한 상상력을 지켜내는 방법, 열광이 식지 않는 방법은 없을까? 상상력이 퇴화되지 않고 번식할 수 있는 공간을 현실 공간에서 지켜내기 위해 작가들이 벽을 치고, 문을 만들고, 옷을 바꿔입고, 프레임을 교체했다. 바깥 바람에 흔들리지 않을 연극무대를 만들기 위해 또 다른 상상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 이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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