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전체보기

분야별
유형별
매체별
매체전체
무신사
월간사진
월간 POPSIGN
bob

아트 | 리뷰

‘러시아의 꿈’을 이야기하다

2014-02-25


올림픽은 세계 스포츠 이벤트 역사상 가장 오래되고 의미 있는 전통 중 하나다. 그리고 이와 함께 열리는 개회식과 폐회식, 시상식 역시 아주 중요한 의식처럼 여겨졌다.

지난 2월 7일 약 90개국 6천여 명이 참가한 제22회 동계 올림픽이 러시아 소치 피시트 올림픽 스타디움(Fisht Olympic Stadium)에서 막을 열었다. 러시아에서 처음 열리는 동계올림픽을 기념하듯 총 만 2천 명 이상의 인원이 참여한 대규모 행사로서, 오락적 요소, 문화적 콘텐츠, 독창적인 장면 및 혁신적 테크놀로지 활용 등으로 올림픽의 시작을 더욱 화려하게 장식했다. 2014년 개최를 상징하는 20시 14분에 시작해 총 약 3시간 동안 진행된 개회식에서 러시아 문화 공연 챕터를 만나보자.

글, 사진│ 구선아 객원기자( dewriting@naver.com)

개회식 주제는 ‘러시아의 꿈(Dreams of Russia)’으로 ‘루보프(Lyubov, 사랑)’라는 작은 소녀가 전체적인 극을 이끌었다. 루보프는 러시아의 정신을 상징하는데, 이 소녀는 개회식에서 관중들에게 그녀의 꿈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녀의 꿈은 곧 러시아의 꿈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시공간을 넘나들며 수 세기에 이르는 러시아의 역사와 1,700만 제곱미터의 광활한 국가 영토와 9개의 표준 시간대, 180개의 민족으로 이뤄진 인구 등 러시아의 광대함도 보여줬다. 한편, 이번 개회식의 예술감독(Chief Creative Director) 겸 극작가는 러시아의 국민 PD라 할 수 있는 콘스탄틴 에른스트(Konstantin Ernst)가, 총감독은 안드레이 나소노브스키(Nasonovskiy)가 각각 맡았다.

개회식은 공식 의식 행사와 문화 공연으로, 총 18개의 챕터로 구성됐다. 이 중 문화 공연은 13개의 챕터로 나뉘어, 16세기부터 20세기 그리고 현재까지 역사적 흐름에 따라 러시아 문화 콘텐츠와 예술, 공연을 이야기했다. 차이콥스키와 알렉산더 보로딘 등 러시아의 영향력 있는 작곡가들의 음악과 함께 볼쇼이, 마린스키 발레단 수석무용수들이 출연했으며 스타디움 천정 와이어 레일을 통해 50여개의 대형 구조물을 선 보였다. 대형 구조물과 영상 시스템 운영을 위해 총 길이 2.5km가 넘는 현가장치 포인트와 트러스가 380여 개와 310톤에 이르는 조명, 음향, 프로젝션 장비들이 스타디움 천정에 설치되었다. 또한 그라운드 바닥 전체는 약 지하 3m, 지상 1m의 무대로 구성해 25개의 리프트와 18개의 트랩 도어를 만들었다. 이 모든 장비와 장치를 통해 경기장 전체가 하나의 공연장이 되었다.

#1. 러시안 알파벳 (Russian Alphabet)
문화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인트로 영상으로 루보프가 등장해, 러시아의 자연과 문화, 음악, 과학 등을 러시안 알파벳으로 소개한다. 여기에는 푸쉬킨, 칸딘스키, 체홉, 차이콥스키와 같은 예술가들과 최초의 우주인 유리 가가린 등을 볼 수 있었다.

#2. 러시아의 목소리 (Voices of Russia)
1, 700만 제곱미터의 광활한 지역을 상징하는 각 지역의 랜드마크적 자연물인 바이칼호, 우랄의 은빛 자작나무, 캄카차, 중앙 러시아, 레나강, 북부 러시아, 추코트카가 대형 와이어 구조물에 구현됐고, 180개의 민족을 상징하는 퍼포머들의 퍼포먼스가 그라운드에서 이뤄졌다. 그리고 인공 눈이 날리며 눈꽃 와이어 구조물이 등장하고 눈꽃은 다시 오륜기로 변한다.

#3. 러시아기 (Flag of Russian Federation)
러시아 국기가 입장하고 게양되며 러시아 국가가 울려 퍼진다. 이때 그라운드에서는 3색의 LED 의상을 입은 240명의 퍼포머가 매스 퍼포먼스를 하며 러시아 국기를 만들고 마지막에는 러시아 국기가 바람에 펄럭이는 모습을 연출했다. 딱딱한 공식 세레머니 프로그램을 문화공연 형태로 바꿔 놓은 것이다.

#4. 러시안 오딧세이 (Russian Odyssey)
러시아가 형성되는 과정부터 피시트 올림픽 스타디움이 완공되는 과정까지의 모습을 CG와 실사촬영으로 제작했다. 루보프와 효드르가 영상에 등장하여 스토리를 전개해 나갔다. 스타디움 현장에서는 그라운드에 프로젝트를 투사해 바닥 영상 2곳과 전광판 4곳에서 상영됐다.

#5. 봄의 의례 (Rites of Spring)
그라운드는 바닷물로 채워지고 스타디움 상공에서는 대형 트로이카가 태양을 이끌고 등장한다. (러시아는 트로이카 즉, 3이라는 숫자에 신성한 의미를 부여한다.) 바닷물이 얼어붙고, 얼어붙은 빙하가 태양에 녹아 내리는 것이 그라운드 위로 연출되며 ‘고래’를 상징하는 퍼포머들이 등장해 매스 퍼포먼스를 진행한다.

#6. 축제 (Festivity)
매스 퍼포먼스가 끝나고 거인이 깨어나며 축제가 시작된다. 러시아 정교를 상징하는 바실리 성당 모습을 한 풍선 오브제들과 함께 바닥의 패턴 영상이 화려한 볼거리를 더했다. 지난해 러시아 카잔에서 열렸던 유니버시아드대회 개회식에서 선보였던 대형 컨베이어 벨트 효과를 회전하는 영상으로 구현해냈다. 무대의 움직임 없이도 무대가 움직이는 듯 한 효과를 이제는 영상으로 표현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7. 표트르 대제 (Peter The Great)
17세기 후반 러시아 제국의 번성과 ‘표트르 대제’의 도시건국을 나타낸 퍼포먼스다. 모노톤의 거친 파도와 거대한 범선의 영상을 통해 당시의 강력한 해군을 표현했고, 러시아 지도와 제복을 입은 퍼포머의 행진에 따라 도시의 성장 모습을 지도로 보여줬다. 또한 표트르 대제가 건국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문화유산 곳곳을 영상으로 소개했다. 영상과 퍼포머의 움직임이 가장 절묘했다.

#8. 나타샤의 첫 무도회 (Natasha Rostova’s First Ball)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명작 <전쟁과 평화> 속 장면을 러시아 고전 클래식 음악과 군무, 발레로 재해석했다. 제복을 입은 행진단이 어느새 볼쇼이 발레단과 함께 무도회를 즐긴다. 그리고 패브릭 대형 기둥 12개가 무대 바닥에서 솟아올라 무도회장을 연출했다.

#9. 미래를 향해 (Time Forward!)
스타디움 상공을 가로지르며 등장한 증기 기차와 기계 조각은 러시아 혁명과 산업 혁명을 상징한다. 기계 조각은 러시아의 아방가르드 예술 작품, 즉 칸딘스키와 말레비치의 그림 속 요소들을 모티브로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300여 명의 퍼포머들은 산업화가 진행되며 기계적인 삶을 살아야 했던 러시아인을 그라운드에 등장한 톱니바퀴들과 함께 표현했다.

#10. 모스크바의 외침 (Moskva)
20세기 중반 소비에트 도시경관이 재건되고 희망과 진보의 기운을 보여줬다. 실제 클래식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무대를 가로질러 주행하며 바닥 영상과 함께 근대 도시의 분위기를 자아냈다. 러시아 대표 건물들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와이어 샤막으로, 가족이 탄생하는 모습을 유모차와 남녀 퍼포머의 군무로 구현해냈다.

#11. 꿈 (The Dream)
와이어에 몸을 의지하고 퍼포먼스를 펼치는 루보프의 연기는 땅에서 발을 딛듯 자연스럽다. 루보프의 자연스런 걸음과 함께 원대한 희망을 담은 시대의 꿈을 표현하며 러시아의 탄생부터 과거, 현재, 미래까지를 보여주며, 주제 문화 공연을 마무리했다.

#12. 평화의 비둘기 (Dove of Peace)
40여 명의 퍼포머만으로 큰 그라운드를 꽉 채웠다. 많은 사람들이 있어야만 공간을 채울 수 있다는 그라운드 행사의 공연 모습을 탈피해 LED 의상 소품을 통해 연출력을 발휘한 것이다.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 음악에 맞춰 펄럭이는 날갯짓을 통해 꿈과 평화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그러나 음악이 너무 익숙하다 보니 비둘기보다는 백조의 모습으로 인지된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13. 올림포스의 신들 (Olympic Gods)
200여 명의 LED 롤러 스케이터가 우주의 빛과 행성을 표현했으며 스키, 아이스하키, 피겨선수의 형상을 한 대형 와이어 구조물이 은하계의 행성 마냥 그라운드 상공을 수놓았다. 그리고 마지막 아이스하키 선수 형상이 상공을 가로질러 다음 공식 세러머니 프로그램인 성화 봉송으로 자연스레 연결시키는 역할을 했다.

소치 동계올림픽 개회식은 ‘러시아의 꿈’이라는 주제에서 드러나듯 러시아의, 러시아에 의한, 러시아를 위한 개회식이었다. 지난 런던 하계올림픽에 이어 이번 소치 동계올림픽도 개회식 행사에서 너무 자국의 문화만을 내세워 올림픽의 의미가 퇴색되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멋진 문화공연이었다 말할 수 있는 건 그 나라의 총체적 문화예술을 볼 수 있었음은 물론이거니와 스포츠 이벤트 연출 트렌드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다.

우리도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있다. 역시 우리도 한류 콘텐츠로 대두되고 있는 K-pop이나 K-drama 외에 보유하고 있는 훌륭한 문화와 인적 재원을 총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여기에 새로운 시각으로 본 아이디어와 올림픽의 개최 의미기도 한 스포츠에 의한 인간의 완성과 국제평화의 증진을 보여준다면 경쟁보다는 더없이 멋진 개회식 행사가 되지 않을까.

facebook twitter

당신을 위한 정글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