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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삶의 순간들을 복원하다

2014-05-07


2011년 3월 11일에 일어난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는 당시 많은 사람들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잃어버렸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하기도 했다. 오는 6월 1일까지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에서 개최되는 아오노 후미아키의 국내 첫 개인전 ‘환생, 쓰나미의 기억’은 이러한 아픈 기억의 순간을 현실로 불러 모은다. 단순히 기억을 수집하고 현상을 복원하는데 그치지 않고, 파괴된 물건들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음으로써 과거의 기억과 현실이 공존할 수 있도록 만들고 있다.

에디터 | 정은주(ejjung@jungle.co.kr)
자료제공 |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

한눈에 봐도 기형적으로 비틀어진 간판이나 형체가 부서져 나간 테이블의 모습은 더 이상의 쓸모를 가늠할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라면 쓸모를 다한 이 물건들을 모두 버리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 물건들 속에서 사람들의 삶이 머물렀던 흔적과 기억을 발견해냈다. 누구도 눈여겨 보지 않은 물건들을 통해, 그 속에 묻어 있는 사람들의 기억을 재생하는 한편 현재와 호흡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동일본 대지진 때 이재민 집에서 수집된 바닥재와 좌식테이블’은 작품 제목 그대로, 쓰나미와 지진으로 모든 것이 휩쓸려간 집 안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바닥재를 좌식테이블 위에 옮겨 놓은 작업이다.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좌식 테이블 위에 흔적을 남김으로써, 과거와 현재의 기억을 이어 놓으려는 시도가 엿보인다. 이것은 전과 같은 좌식 테이블의 형태로 보일지 몰라도 그 의미는 완전히 달라진다.

어떻게 보면 아오노 후미아키가 작업하는 방식은 굉장히 작고 사소한 일이라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물건을 복원하고, 그곳에 형태를 덧입히거나 새로운 형상을 만들어내는 작업들을 보고 있으면, 작품을 대하는 정공법에 가까운 진심을 느낄 수가 있다. 이 사소하고 작은 행위는 삶과 예술을 대하는 그만의 방식이자, 그가 잊지 않아야 할 삶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 피해 지역에서 나온 물건들을 작업의 소재로 활용하기 이전부터 찢어진 천이나 신문 조각, 깨진 간판 조각 등을 모아 유실된 부분을 복원하는 작업을 지속해왔다. 그러나 그에게 동일본 대지진은 예술가로서, 폐허로 엉망이 돼버린 삶의 현장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 중 하나로서 책임감과 작가 정신을 일깨우는 일이 되었을 것이다.

아무리 많은 시간이 지난다고 해도, 어떤 기억들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아오노 후미아키는 기억을 복원하는 동시에 그 속의 상처를 치유해나감으로써 현재와 미래의 기억과 만나고 있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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