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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반전’의 ‘몸’

2018-08-24

 

동시대 미술에서 몸은 어떻게 변주되고 있을까. 이상화된 아름다운 몸에서 탈피한 풍만하고 
개성적인 몸들, 심지어 그로테스크한 몸까지. 저마다 다른 메시지를 품고 있는 다채로운 시도들을 만나본다. 

 

살집이 접히고 흘러내리는 자신의 몸을 자연과 함께 촬영한 로라 아귈라의 자화상. Laura Aguilar, Grounded, 2006

 

‘아름답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인간의 몸은 어떤 모습일까. 각자 기준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아마도 군살 없는 라인, 매끈하고 탄력적인 피부, 8등신의 비율을 갖춘 비슷한 이미지가 아닐까. 오래 전부터 아름다운 몸은 대개 고정적인 이미지로 각인되어 왔다. 특히 대중매체는 특정 외모와 체형을 이상적인 몸으로 제시하며, 여전히 그런 경향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미술의 역사에서도 ‘아름다운 몸’에 관한 가치 판단은 꾸준히 이어져왔다. 예술의 본질이 곧 미의 추구이기 때문이다. 그 옛날 서구 미술을 보면 비너스상과 다비드상처럼 신격화되고 이상화된 육체를 가진 비현실적인 사람의 형상이 자주 등장했다. 모델 같은 비율을 지닌 젊고 건강한 몸. 아름다운 육체에 대한 이러한 이미지는 고대 그리스의 신적인 인간의 형상에서 영향을 받았다. 당시 그리스인들은 신처럼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몸이 가장 완벽하다고 믿었다. 이러한 생각은 르네상스 이래로 서구 미술의 흐름 속에서도 계속 이어진다. 


하지만 늘 주류에 반기를 드는 소수가 있기 마련이다. 몸을 다루는 동시대 작가들 중 <월간사진>이 주목하는 것은 바로 ‘몸의 반전’을 이야기하는 소수의 예술가들이다. 

 

미의 조건
페르난도 보테로(Fernando Botero)의 <12세 모나리자>(1978)를 보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황금비로 알려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빵빵하게 부풀린 보테로의 모나리자는 귀엽고 유머러스하다. 그는 고전 명화 속 인물들에 특유의 풍만하고 육감적인 양감을 부여해 자신만의 언어로 재탄생시킨다. 당시 일부 비평가들은 그의 그림을 ‘키치’로 폄하하기도 했다.

 

특유의 풍만한 몸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재해석한 페르난도 보테로의 모나리자. Fernando Botero, Mona Lisa, 1978

 

아마 그들의 눈에 비친 뚱뚱한 인체는 현대 서구 사회의 미적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촌스러운 이미지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보테로가 그린 살집 있고 거대한 인물은 사이즈 제로를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이 시대에 다른 미의 기준을 제시한다. 보테로의 작업을 단순히 사회를 풍자하는 그림으로만 볼 수는 없겠지만, 그가 인체를 이처럼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바탕에는 작가만의 철학이 담겨 있을 것이다. 


조금 더 직접적으로 미에 관한 규격화된 이데올로기를 비판적으로 바라본 아티스트로는 데비 한(Debbie Han)을 꼽을 수 있다. 그녀의 <미의 조건(Terms of Beauty)> 작품 속 비너스상의 얼굴을 찬찬히 보면 뭔가 이상하다. 매부리코, 작은 눈, 넓은 코볼, 두껍고 큰 입술, 우리가 알고 있는 비너스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데비 한은 서양미의 표본으로 삼는 비너스상의 얼굴을 다양한 국적의 개성 있는 이목구비로 바꿔놓았다.


그녀가 만든 비너스는 생김새 하나하나가 저마다 달라서 보는 재미가 있다. 그렇지만 획일화된 아름다움을 좇는 외모지상주의 사회, 그리고 과도한 성형수술과 다이어트가 일상이 된 이 시대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다. 데비 한의 다른 여신 시리즈 <Seated three graces>를 보면 이번엔 서구적인 비너스상 얼굴에 친근한 옆집 아줌마의 몸을 결합시켰다. 현실과 이상이 공존하는 이 작품 역시 같은 맥락이다. 타자화된 미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그녀는 서구문화가 구축해놓은 비너스에 대한 환상에서 탈피하고자 한다. 그녀의 조각들은 ‘지금 모습 이대로 모두가 비너스입니다.’라고 말하는 듯하다. 

 

서구적인 얼굴에 전형적인 아줌마 몸매를 한 여성상을 통해 진정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묻고 있다. Debbie Han, Seated Three Graces, 2009

 

데비 한처럼 여신의 이미지를 새롭게 재해석한 또 다른 작품이 있다. 바로 니키 드 생팔(Niki de Saint Phalle)의 <나나> 연작이다. 이 여인상은 마치 꿈속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알록달록하고 지나치게 풍만하다.

‘나나’는 작가가 투영된 자화상이자 자유롭고 당당한 여신이다. 또한 생명력 넘치는 여성의 원형이다. 조신하거나 우아하지는 않지만, 당당하고 생기발랄한 <나나>를 통해 니키 드 생팔은 그리스의 고전미를 거부하고 전통적인 여성상에 의문을 제기한다. 

 

거대한 살덩이가 의미하는 것 
제니 사빌(Jenny Saville)의 캔버스에서 마주하게 되는 여성의 모습은 보는 이에게 적잖은 충격을 준다. 거대한 살덩어리가 화면 가득 들어차 있기 때문이다. 육중한 비만 여성의 그것도 적나라한 누드를 그리는 제니 사빌의 의도는 과연 무엇일까. 진 로버트슨, 크레이그 맥다니엘의 <테마 현대미술 노트>를 보면 ‘아름다움에 대한 규범적 시각에 저항하는 미술은 크기와 모양이 갖가지인 여러 유형의 몸을 보여준다.

 

그리고 완전함이나 아름다움, 건강미 같은 용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누가 그것을 규정하는지에 대해 질문한다.’고 언급한다. 제니 사빌이 그린 비만 여성의 누드 역시 이와 같은 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전적인 미를 지닌 여성, 전형적인 서양 누드화를 거부하고 그 규범적 시각에 도전한다. 그녀의 화폭에 앉아 있는 여성의 나른한 눈빛이 도발적인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의 몸을 당당히 카메라 앞에 드러낸 여성 사진가 로라 아귈라(Laura Aguilar)의 사진 역시 파격적이다. 두텁고 늘어진 살집만 보면 제니 사빌이 그린 여성의 이미지와 오버랩된다. 그녀의 몸은 끝없이 펼쳐진 사막, 울창한 숲 등 자연 속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마치 ‘인간의 몸은 아름답든 그렇지 않든 자연의 일부다.’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 같다. 로라 아귈라의 사진은 전형적인 미의 개념에 도전하는 의미도 있지만, 한편으론 자전적인 색채가 짙다. 성적소수자이자 청각장애와 우울증을 앓고 있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 속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그녀를 가만히 보다 보면, 마치 지금까지 나를 둘러싼 모든 개념이 일시에 정지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로테스크한 몸의 의도
어떤 작가들은 몸의 미적인 환상을 깨뜨릴 뿐만 아니라, 그로테스크한 몸을 시각적으로 재현해서 당혹감이나 불쾌함을 안겨주기도 한다. 돌연변이와 같은 괴물적인 형상, 조각조각 분리된 신체, 흘러내리는 피나 체액, 그리고 인체 내부가 들여다보이는 자극적인 이미지까지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해석의 여지는 많겠지만, 이러한 시도에는 명확한 의도가 들어있음이 분명하다. <몸의 정치학> 전시를 기획했던 헬레인 포스너(Helaine Posner)는 “20세기 후반 미술에서 몸의 절단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폭력과 억압, 사회적 불의, 신체적 심리적 스트레스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사는 결과물이다. 어쩌면 우리 역시 과거 세대가 지녔던 미의 완전함 같은 확고한 이상을 갈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의 경험은 우리에게 이런 세계관이 이미 끝났다는 것을 말해준다.”라고 이야기했다. 결국 그로테스크한 몸은 불안으로 가득한 시대에 대한 저항이자 사회와 개인이 느끼는 불안함의 표식인지도 모른다.


‘그로테스크한 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가가 있다. 바로 어린 소녀들의 몸을 기형적으로 녹여서 붙여놓은 영국의 듀오 아티스트 채프만 형제(Jake and Dinos Chapman)다. 자세히 보면 소녀들의 코는 남성의 성기 모양이다. 순간 불쾌한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 해괴한 오브제를 만든 작가는 ‘예술이 꼭 억지스럽게 아름다워야 하는가.’라는 도전적인 질문을 던지며 현대미술계의 악동으로 떠올랐다.

 

그로테스크한 작품으로 크게 이슈가 된 채프만 형제의 작품. 소녀들의 몸이 기괴하게 붙어있다. Jake and Dinos Chapman, Zygotic Acceleration, biogenetic, de-sublimated libidinal model(enlarged x 1000), 1995

 

절단된 신체와 기이하게 변형된 인체 형상으로 전쟁, 학살, 섹스, 죽음 등을 표현한 채프만 형제의 작품들은 상당히 파격적이다. 실제로 이 작품은 나치의 인간 살상을 주제로 제작한 것이라고 한다. 끔찍한 면을 다루는 것이 세상의 진실한 투영이라고 생각하는 그들은 이 불완전한 인체를 통해 소외된 개인의 삶과 욕망, 사회에 대한 냉소와 무관심, 세상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말하고 있다.


벽에서 툭 튀어나온 다리 한 쪽. 평범한 남성의 것처럼 보이지만 맥락없이 잘린 이 오브제는 낯설고 섬뜩하다. 전체로 부터 이탈한 신체 일부분은 불완전한 몸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로버트 고버(Robert Gober)는 성소수자로서 사회로부터 분리되고 소외된 스스로를 파편화된 몸으로 분출시킨다. 너무 사실적이어서 오히려 더욱 부자연스럽고 그로테스크한 그의 작품은 부분을 잘라내고 찢어냄으로써 권력, 차별, 사회의 고착으로부터 자신의 정체성을 분리시키는 과정인 셈이다.

 

자신의 동성애적 정체성을 거부하는 사회로부터 탈피하고자 몸을 파편화시키는 로버트 고버의 작품. Robert Gober, Untitled, 1989

 

예술적 변주 
<몸과 미술: 새로운 미술사의 시각>에서 이브 미쇼는 “아름다움이라고 할 만한 것은 순수한 것이 아니라 조작된 것이다. … 예술은 이제 조화나 아름다움만이 아닌, 충격과 공격이기도 하다.”라고 언급한다. 이 말은, 현대미술이 과거의 순수한 미로 복귀하는 것은 역시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떠나 사실적이고 그로테스크하기까지 한 몸의 이미지를 창조하는 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 지금의 예술은 확실히 아름다움에 대한 규범과 규칙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보다는 작가 개인의 생각과 의도에 방점이 찍혀있는 듯 보인다. 현대미술의 흐름과 함께 정형화된 아름다움을 놓아버리고, 작가의 의도에 따라 다채롭게 변주되고 있는 몸의 새로운 역사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참고 | 한림미술관, 이대 기호학연구소(1999), <몸과 미술 - 새로운 미술사의 시각>,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진 로버트슨, 크레이그 맥다니엘(2010), <테마 현대미술 노트>, 두성북스. 박성현·진달예(2010), ‘현대 미술에서 매체로서의 신체-오브제 연구’

 

에디터_ 박윤채
디자인_ 전종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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