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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월드리포트

꿈꾸는 몽상가들의 축제, '오타콘 2018'

2018-08-28

영화 〈신과 함께(Along With the Gods, 2017)〉, 〈올드 보이(Old boy, 2003)〉를 기억하는가? 우리에겐 흥행 대박난 한국 영화로 인식돼있지만 두 작품 모두 원작 만화를 영화로 리메이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신과 함께〉는 주호민 작가가 2010년부터 연재한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올드보이〉 역시 미네기시 노부아키 작가의 스릴러 만화를 한국 영화로 각색해 원작을 초월한 리메이크 영화로 평가받는다. 만화 특유의 자유로운 세계관과 시공을 넘나드는 입체적인 이야기 구조가 영화 시장에서 시너지 효과를 낸 셈이다.     

 

소싯적 만화 좀 봤다 하는 사람이라면 공부 안 하고 만화나 본다고 등짝을 얻어맞았던 경험, 한번쯤 있을 것이다. 불과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만화는 '사회악'으로 규정될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30년 사이에 만화의 지위는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높아졌다. 주요 흥행 대작 영화들의 훌륭한 기본 줄거리가 됨은 물론이요, 문화 콘텐츠를 움직이는 중심 축으로 우뚝 섰다. 

 Dragon Ball display (사진출처: www.otakon.com)

 


만화 덕후들 모여라!
만화 시장이 커지면서 일부 마니아들의 은밀한 취미생활로 여겨졌던 오타쿠(Otaku) 행위, 이른바 덕후질이 점차 음지에서 양지로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열기를 반영하듯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동아시아 만화 축제 '오타콘(Otakon)'은 1994년 개최 이래 올해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오타콘의 최대 볼거리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모니터에서 현실판으로 끌어낸 덕후들의 코스프레(cosplay: costume-play) 감상이다. 특히 작년부터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s)〉 같은 온라인 게임도 코스프레 콘테스트에 포함돼 보다 다양한 코스프레 캐릭터들이 출연했다.

 

(좌)Allen Walker of the Japanese manga series ‘D.Gray-man’ portrayed by Sleights of Hand cosplay. Photo by Jeff Malet
(우)Piccolo as Riko from KH3 and Majela as Queen Beryl from Sailor Moon. Photo by Jeff Malet

 

(좌)Ootmel as Shiny Chariot, a character from the anime Little Witch Academia. Photo by Jeff Malet

(우)An attendee in costume as Tokyo Ghoul Kaneki Ken (사진출처: www.otakon.com)

 

(좌)An attendee in costume as Pokemon Umbreon, (우)An attendee in costume as Pokemon Glaceon (사진출처: www.otakon.com)

 
An attendee in costume as The Seven Deadly Sins Diane (사진출처: www.otakon.com)

 

 

K-Game '수상한 메신저' 열풍
일본 콘텐츠가 70%를 차지하는 게임·애니메이션 시장에서 서서히 한국 웹툰이나 게임이 미국에 소개되고 있다.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이 케이팝(k-pop)에 이어 케이게임(k-game)으로 번지는 가운데, 올해 오타콘에는 국내 애플리케이션 게임 〈수상한 메신저(Mystic Messenger)〉 개발업체 체리츠(Chertiz)가 참여했다. 

 

이 게임은 휴대전화 앱을 통해 'Unknown'이라는 대화명의 사람과 대화를 하게 되고, 그 사람의 요청에 어느 오피스텔로 발을 들이면 곧바로 꽃미남들이 가득한 단체 메신저방으로 연결이 된다는 설정이다. 모든 대화는 실시간으로 진행된다. 채팅방은 약속한 시간대가 되면 열리는데, 이 시간에 접속하면 문자, 전화, 채팅이 가능하다. 대화 과정에서 선택지를 골라 호감도를 쌓아가는 방식이다. 

 

미국에는 이런 장르의 게임이 없는 데다 기존의 연애 시뮬레이션 앱과 확연히 달라 젊은 미국 여성들 사이에 인기가 높다. 게다가 게임은 한국어로만 지원되는데도 캐릭터 연기를 맡은 한국 성우들에 대한 팬들의 관심이 높아 이번 오타콘에 김영선, 심규혁, 강수진, 이호산 성우가 게스트로 참여했다. 

 

미국, 동아시아 문화콘텐츠에 빠지다
오타콘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 중국, 대만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문화 콘텐츠만을 다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타콘 행사장은 나이, 국적, 인종을 초월한 만화 덕후들로 붐빈다. 스타워즈와 마블 히어로들에 심취한 미국 마니아들을 끌어당긴 매력은 무엇일까? 

 

오타콘은 철저히 팬들이 팬을 위해 운영하는 이벤트이다. 일반적인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홍보와 수출, 수익창출을 목적으로 하는데 반해 오타콘은 순수하게 팬 서비스의 성격이 짙다. 예를 들어 팬들이 〈드레곤볼〉 작가와 감독을 만나고 싶다고 요청하면, 드레곤볼 제작 기업 측에서 행사장을 찾아 감사 인사를 전하는 팬미팅 형식이다.

 

한국 애플리케이션 게임 개발업체 '체리츠'가 오타콘 무대에 오른 이유도 비슷하다. 지난해 오타콘 행사가 종료된 후 실시된 '내년에 만나고 싶은 게스트' 설문 조사에서 〈수상한 메신저〉 성우들을 만나고 싶다는 미국 팬들의 요청이 많았기 때문이다.     

 


(좌)Kihara Hirokatsu, (우)Kawamori Shoji (사진출처: www.otakon.com

 

 

팬들의 요청에 의해 올해는 키하라 히로카츠 감독도 오타콘을 찾았다. 덕분에 스튜디오 지브리 제작국 국장으로서 〈천공의 성 라퓨타(Laputa: Castle In The Sky, 1986)〉, 〈이웃집 토토로(My Neighbor Totoro, 1988)〉, 〈마녀 배달부 키키(Kiki's Delivery Service, 1989)〉 제작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을 수 있었다. 또 〈공각기동대(Ghost In The Shell, 1995)〉 감독이자 메카닉 디자이너인 카와모리 쇼지 감독이 참석해 자신이 개발한 애니메이션 〈마크로스〉 시리즈가 변신로봇 '트랜스포머' 캐릭터의 원형이 된 일화를 털어놓기도 했다.

 

이렇게 패널이 참여해 팬들과 소통하는 형식은 오타콘 고유의 프로그램이다. 이 패널은 오타콘이 초청한 인사들뿐만 아니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즉석에서 캐릭터 따라 그리기, 방탄소년단 안무 따라하기 같은 소그룹 수업이 진행되기도 한다. 참가자들은 현장에서 좋아하는 분야나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새로운 영감을 얻기도 한다. 

 

무한 잠재력을 지닌 팬덤 시장
동아시아 팝 콘텐츠로 어떻게 북미 최대 규모의 만화 축제를 만들 수 있었을까? 오타콘은 1994년 아시아 지역에서 탄생한 만화를 비롯한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장르를 즐기기 위해 대학생들이 모여 만든 작은 축제로 시작됐다. 그리고 현재까지 비영리 교육단체가 운영하고 있다. 때문에 오타콘 행사 운영진은 무보수로 자원봉사한다. 

 

모든 행사는 기부와 입장권 수입으로만 운영된다. 24년 동안 축제가 꾸준히 발전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입장객 규모이다. 올해 행사에서 하루 평균 3만 명가량이 행사장을 찾았다.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 강당에서 출발한 행사는 지난 2016년까지 메릴랜드 볼티모어에서 열리다 작년부터는 더 넓은 컨벤션 센터가 있는 워싱턴 D.C.로 행사 장소를 옮겼다. 

 

아직까지는 일본 만화와 게임의 비중이 절대적인 상황. 전통적인 애니메이션 강국인데다 오랜 시간 콘텐츠 수출에 주력해온 결과다. 미국 시장에서 한국 애니메이션이나 웹툰, 게임에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영문 번역판으로 출시되는 콘텐츠는 극히 드물다. 

 

당장 오타콘을 찾는 팬들이 100달러에 달하는 입장료를 아끼지 않고 지불한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문화 콘텐츠 시장은 하나의 원석으로 확대·재생산이 무한하고, 소비하는 마니아들은 얼마든지 지갑을 열 준비가 돼있다. 그들이 차려입는 코스프레 의상만 해도 적게는 400달러에서 기천 달러를 호가한다. 

 

오타콘 축제는 단순한 재미를 넘어 그 자체로 거대한 마켓이 되었다. 부디 내년 오타콘 축제에는 보다 많은 국내 문화 콘텐츠들이 진출하기를 기대해본다. 더불어 한국산 캐릭터를 현실로 소환한 덕후들의 코스프레 패션 또한 기대해보자. 

 

글_ 이소영 워싱턴 통신원(evesy02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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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영 통신원
워싱턴 D.C.에 거주하며 여러 매체에 인문, 문화, 예술 칼럼을 쓰고 있다. 실재하는 모든 것이 디자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보다 쉽고 재미있는 소식으로 디자인의 대중화에 앞장서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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