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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스칸디나비아 디자인 이야기] 전방위적 디자인을 이야기하다

2018-10-12

[디자이너 토크 Designer’s talk] 

 

다양한 것에 도전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여러 가지 일들을 동시에, 그것도 잘 해낸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저것 시도하다가 이도 저도 안될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한 우물을 파라’는 이야기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필자 스스로도 멀티태스킹에 상당히 약하다고 자책할 때가 많다. 개인적으로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갖고 있지만, 동시에 사진을 찍는 포토그래퍼로, 이렇게 글을 쓰는 작가로도 불리고 싶은 바램이 있다. 나를 말할 수 있는 직업이 꼭 하나여야만 하는 법은 없으니까. 그래서 나름대로 여기저기 글도 연재해보고, 사진 에세이도 기고하며 애쓰고는 있지만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조만간에는 북유럽의 일상을 담은 일러스트 작업도 진행해볼 요량이다.

 

하지만 벌려 놓은 여러 일들을 따라가느라 그 깊이를 놓치기 일쑤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많은 일들을 동시에 완벽하게 해내는 사람들을 보면 그저 신기하고 부럽다.

 

이번 디자이너 토크 세션에서는 바로 이 전방위적인 분야에서 독보적인 역량을 발휘하고 있는 디자이너와 함께 했다. 현재 북유럽에서 가장 핫한 여성 디자이너이자, 2018 프랑스 메종 오브제 (Maison & Objet Paris)에서 올해의 디자이너로 선정된 세실리에 만즈(Cecilie Manz)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북유럽의 전방위적 디자인을 이끌고 있는 선두주자인 동시에,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디자인 영향력을 펼치고 있는 그녀와의 토크 세션은 필자에게도 훌륭한 자극이 되는 시간이었다. 부디 독자 여러분들에게도 그 시간들이 고스란히 전달되기를 바란다.

 

세실리에 만즈는 1972년 덴마크 오즈 헤아즈 출신으로 예술가이자 디자이너이다. 예술가인 부모의 영향으로 디자인을 시작하게 되었다. 1997년 덴마크 디자인 학교(Royal Danish Academy of Fine Arts)에서 수학하였고, 이후 헬싱키 예술대학(University of Art and Design in Helsinki)으로 건너가 공부했다. 1998년 덴마크 코펜하겐에 세실리에 만즈 스튜디오(Cecilie manz studio, www.ceciliemanz.com)를 설립한 이래로 지금까지 프리츠 한센(Fritz Hansen), 헤이(HAY), 무토(MUUTO), 뱅 앤 울프슨(Bang & olufsen, B&O) 등 다양한 기업들과 활발히 프로젝트들을 진행해오고 있다. 다음은 그의 디자인 스튜디오를 방문해 진행한 토크 세션을 정리한 내용이다.

 

디자이너 토크 세션을 함께 진행한 세실리에 만즈와 필자

 

 

이렇게 직접 스튜디오에 초대해주어 고맙다. 오랫동안 당신의 스튜디오가 진행하는 프로젝트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왔고,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행보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더 개인적으로 반갑다. 세실리에 만즈 스튜디오에 대해 소개 부탁한다.

 

디자이너 토크 세션에 초대해 주어 고맙다. 그리고 스튜디오의 방문을 환영한다. 세실리에 만즈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는 세실리에 만즈라 한다. 1998년에 시작하여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으며, 다양한 글로벌 파트너 기업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스튜디오 인력은 최대한 소규모로 운영하려 한다. 이는 모든 프로젝트의 A부터 Z까지 서로 섬세하게 관여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팀의 규모가 커지면 진행되는 모든 프로젝트를 컨트롤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너무 많은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최소한의 프로젝트에만 오롯이 집중하여 최대치의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가구부터 조명, 스피커, 욕조 등 지금까지 당신이 보여준 프로젝트는 상당히 광범위하다. 어떠한 방식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관리하는지 궁금하다(폭넓은 다양함은 각각의 깊이를 놓치기 쉬운 단점도 있을 것 같다).

 

맞다. 상당히 어려운 도전이다. 그렇기에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해 오고 있지만, 여러 과제를 동시에 진행하는 것은 피하려 한다. 최대한 세밀하게 관여하려면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로젝트의 범위, 즉 제품군은 최대한 늘리려 한다. 욕조, 스피커, 의자, 조명 등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프로젝트들을 동시에 진행하기도 하는데, 이 과정에서 서로 간의 흥미로운 영감이 오가기 때문이다. 

 

이 순간들에서 나오는 영감(inspiration)이 프로젝트 전체에 굉장한 에너지가 된다. 폭넓은 다양성을 유지하며 진행되는 각 과제의 깊이 있는 연구는 디자이너로서 반드시 끌고 가야 하는 핵심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과정을 훌륭하게 소화해내는 우리 스튜디오 디자이너들의 탁월함에 늘 감탄할 때가 많다.

 

스튜디오 운영방식 중 흥미로운 점은 프로젝트가 두 가지 레이어(layer)로 운영된다는 것이다. 바로 산업 디자인 분야와 프리휠(free wheels) 프로젝트이다. 재미있는 것은 프리휠 프로젝트이다. 이는 클라이언트의 요청 없이 스튜디오 자체적으로 진행되는 일종의 파일럿 프로젝트(Pilot project) 라 할 수 있다. 이름 그대로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내고 그 흐름이 그냥 나아가도록 둔다. 어떠한 제약도, 제한도 없다. 이 과제를 통해 우리는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영감을 얻는다. 그렇게 나온 콘셉트들은 주로 스튜디오의 워크숍 공간에서 직접 제작하고 테스트를 진행한다. 스튜디오가 자체적으로 투자하여 진행되는 것이다.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일련의 과정들은 놀라울 정도로 수많은 영감을 준다. 실험적인 소재와 컬러들 그리고 형태까지 자율적으로 진행된다. 이 프로젝트 자체적으로는 실질적으로 어떤 수익을 창출하지는 않지만 매우 크리에이티브 한 작업이기에 중요하다. 그리고 이 프리휠 프로젝트를 실제 제품화하려는 기업들의 연락을 종종 받기도 한다. 이는 마치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바퀴의 움직임과도 같기에 ‘프리휠’이라 부른다. 어디에 다다를지 모르지만 그 과정은 상상 이상으로 흥미롭다.

 

역시 당신은 멀티에 대한 능력이 탁월한 것 같다. 다양한 제품군을 다룬다는 것은 디자이너로서 물론 흥미로운 일이지만 동시에 상당히 많은 도전이 필요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모바일 디자인 분야에 오래 종사해 와서인지 다양한 분야에 대한 갈증이 크다. 여러 프로젝트들을 효과적으로 컨트롤하는 프로세스가 있다면 소개 부탁한다.

 

앞서 언급한 다양한 제품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지만 핵심 프로세스(core process)는 동일하다. 아이디어 콘셉트 단계를 거쳐 스케치로 시각화하고, 이를 목업(mock up)으로 샘플링 과정을 거쳐 리뷰한 뒤, 디지털 작업(digitalization)으로 가져온다. 각각의 프로젝트는 다른 사이즈와 기능들을 가지고 있지만 그 원형이 되는 이 과정은 동일하기에 큰 어려움은 없다. 

 

단순한 과정 같지만 그 안에는 상당한 깊이의 디자인 연구와 사용자 경험 테스트가 동반된다. 이 과정의 중심에는 바로 ‘디자인은 기능성(Design is functionality)에 기반을 둔다’는 철학이 있다. 보기에만 좋은 디자인은 아무 의미가 없다. 가령 아름다운 의자이지만 앉았을 때 불편하다면 그 의미를 상실하는 것처럼. 단순히 테이블에 올려놓고 듣는 스피커인지, 피크닉 갈 때 가볍게 손에 들고 갈 수 있는지에 대한 사용자 경험은 이 충실한 기능성에 많은 영향을 주고받는다. 기능은 디자인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디자인에 어울리는 의미 부여를 할 수 없을 경우 아예 빼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 기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혁신적인 변화보다는 한두 단계 정도의 개선된 콘셉트를 유도한다. 우리가 보내는 일상의 순간들, 예컨대 사람들과 어울려 커피를 마시고, 학교 가는 아이들을 위해 샌드위치를 만들고, 마트에 줄을 서서 계산을 하고… 이런 평범한 순간들의 작은 아이디어와 개선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개인적으로 정원을 가꾸는 가드닝(gardening)을 좋아하는데 작업 중에 사용하는 가위나 삽, 톱 등이 상당히 불편할 때가 많아 개선해 보고 싶다(웃음). 아무리 단순하고 작은 부분이지만 사용자들은 느끼고 경험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줌 엔 아웃(Zoom & out) 과정이다. 프로젝트 자체를 때로는 한 발자국 멀리 떨어져서 넓은 의미의 스펙트럼으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이 과정을 통해 프로젝트 ‘전체(overview)’의 흐름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

 

 

세실리에 만즈 스튜디오가 지금까지 진행해온 다양한 디자인 프로젝트들 (www.ceciliemanz.com) © cecilie manz

 

 

개인적으로 당신의 작업을 보면서 스튜디오 고유의 디자인 철학이 담겨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에 대한 부연 설명과 지금까지 진행해온 디자인 작업 중 인상적이었던 프로젝트가 있다면 소개 부탁한다.

 

작업하는 프로젝트들이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의 범주 안에 있기를 바란다. 그들의 생각을 최대한 배려하고 존중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나의 디자인이 어떤 특별한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제품 자체의 고유 기능에 충실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것으로부터 사용자에 대한 배려가 시작된다고 믿는다. 사용자가 가진 일반적인 상식들을 혁신적인 무언가로 뒤엎기보다는, 작은 디테일로 그들의 일상을 편하게 만들어 주고, 복잡했던 어떤 것들을 조금 편하게 정리해주길 바란다.

 

뱅 앤 울프슨의 포터블 스피커, Beolit 12가 좋은 예시이다. 당시의 스피커들은 휴대폰이나 MP3 플레이어를 스피커의 커넥터 핀에 도킹(docking) 시키는 스타일이 유행이었다. 나는 그러한 방식이 상당히 불편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클라이언트 역시 처음에는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도킹 시스템을 원했기에 개발 초기 단계에 많은 마찰이 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아이디어 회의를 거쳐 탄생한 것이 바로 트레이(tray) 방식이었다. 

 

움푹하게 파인 곳, 마치 쟁반 같은 곳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무언가를 넣기 마련이다. 의자에 옷을 걸쳐 놓듯이 말이다. 거실의 커다란 테이블 위에 이 샘플 목업을 놓아두었는데, 가족 모두가 열쇠, 휴대폰, 시계, 안경 등을 하나씩 이 트레이 부분에 올려놓기 시작하더라. 또 하나의 전자제품이 아닌 인테리어의 한 부분이 되는 홈 오브젝트(Home object)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탄생한 Beolit 12 스피커는 대중적으로도 좋은 반응을 얻어냈으며 성공적으로 시장에 론칭했고, 당시 유행했던 도킹 방식의 스피커는 어느 순간 자취를 감추었다. 결과적으로 우리의 접근 방식이 맞았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사례였다. 사람들마다 개인적으로 저마다의 크리에이티브 한 영역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덴마크 오디오 브랜드 뱅 앤 울프슨의 휴대용 스피커 시리즈 - Beolit 시리즈 © cecilie manz

 

 

프리츠 한센, 뱅 앤 울프슨, 무토 등 전 세계 수많은 기업들과 활발하게 협업하고 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스튜디오를 처음 시작할 무렵에는 내가 먼저 프로젝트를 기업 등에 보여주며 협업을 요청했었지만, 어느 순간 정반대로 바뀌게 되었다. 기업들이 우리 스튜디오의 작업을 보고 먼저 찾아온다. 그리고 디자인에 대한 많은 권한을 부여받게 되어 조금 더 크리에이티브한 영역을 어필할 수 있게 되었다. 

 

프리츠 한센과의 협업이 첫 프로젝트였는데 지금까지도 좋은 파트너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북유럽의 대표적인 디자인 회사 무토 역시 10년 이상 지속적인 파트너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덴마크의 디자인 스튜디오 개념은 한국과는 조금 다른 개념으로 운영되는 곳이 많다. 스튜디오 저마다의 독창성 있는 디자인 랭귀지가 확립되어 있고, 기업들은 그 아이코닉 한 디자인 결과를 기대하며 찾아오는 것이다. 그만큼 디자인 스튜디오가 전체 개발 과정에 깊이 관여하게 되고, 전체 디자인의 총괄을 하게 된다.

 

오랫동안 파트너 관계를 유지해온 덴마크 오디오 회사 뱅 앤 울프슨은 알려져 있다시피 인 하우스에서 디자인을 진행하지 않고 외부 디자이너와 협업 위주로 진행한다. 뱅 앤 울프슨의 디자인 언어는 명확하고 그 속에 중후함이 있다. 대부분 상당히 고가의 라인업 위주의 제품이었는데, 앞서 언급한 스피커 제품 이후로 서브 브랜드인 B&O play 라인업이 만들어졌다. 

 

좀 더 젊고 캐주얼한 콘셉트와 접근하기 쉬운 가격대이면서도, 특유의 사운드 품질과 디테일을 고스란히 간직한 제품군이 세상에 나온 것이다. 이 라인업은 큰 성공을 거두며 시장에서 인정받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 디자이너로 참여하며 함께하는 것은 굉장히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지금까지 전방위적으로 다양한 경계를 허물며 디자이너로서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진행했던 작업 중에 지금의 당신을 있게 한 특별한 프로젝트가 있는지 궁금하다.

 

1991년에 작업한 사다리 프로젝트를 빼고 나를 이야기할 수 없다. 디자이너로서 거의 최초로 선보인 결과물이었다. 심플하고 단순한 언어로 디자인된 이 작품이 독일 디자인 매거진에 소개되면서 더 많은 기회가 열리게 되었다. 독일의 가구회사에서 직접 양산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게 되었고 나의 첫 양산 제품이 되었다. 이 사다리 제품은 20년이 지금까지도 생산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의미 있는(meanigful)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스스로에게 의미 있는 것들을 활용해 창작에 임하려 한다.

 

세실리에 만즈의 최초 디자인 프로젝트 Ladder Hochacht. Nils Holger Moormann, Germany. 1999 © cecilie manz

 

 

2018년 프랑스 메종 오브제에서 올해의 디자이너로 선정된 것을 축하한다. 개인적으로 메종 오브제는 미래 융합의 트렌드를 이끄는 중요한 기점이라고 생각하기에 당신의 수상 소식이 인상적이었다. 소감을 부탁한다.

 

커다란 영광으로 생각한다. 직접 참여한 적이 없는 전시임에도 불구하고 올해의 디자이너로 선정된 것은 개인적으로도 놀라운 소식이었다. 파리의 메종 오브제 전시장 특별 부스에서 지금까지의 작업물, 현재 진행 중인 그리고 앞서 이야기한 프리휠 과제를 함께 전시하기도 했다. 항상 이러한 전시에 참가하는 것은 디자이너에게 굉장한 에너지를 준다. 이 전시에서 만난 핀란드 기업과 새로운 제품 양산을 기획 중이다.

 

2018 프랑스 메종 오브제 올해의 디자이너로 선정되어 진행한 특별 부스 전시와 스케치 © cecilie manz

 

 

작업들을 보면 상당히 다양한 소재와 컬러, 풍부한 텍스처의 적용이 인상적이다. 개인적인 실무 경험에서도 콘셉트 단계의 CMF 디자인*을 양산까지 이끌어 가는 과정에서 수많은 한계와 제약에 부딪히는 것을 본다. 이러한 상황들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궁금하다.
*CMF 디자인: 컬러, 소재, 마감(Color, Material and Finishing)의 디자인 분야를 일컫는 용어.

 

전적으로 동의한다. 항상 그리고 반드시 제한적인 상황이 존재한다. 양산 단계에서의 문제일수도 있고, 신뢰성 부분이 될 수도 있고, 애초에 재료 선정에서부터 일 수도 있다. 그래서 유연한(flexible) 대처가 상당히 중요하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문제를 들여다봐야 하며 최대한 세심하려 한다. 모든 이슈에 대해서. 발견된 어떤 문제로부터 한발 물러서는 것이 아닌, 상황에 맞는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하는 것도 디자이너로서의 중요한 역할이라 본다. 

 

또한 최초의 스케치와 양산 제품 사이의 갭(gap)을 찾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다. 그 중간 과정은 상당히 어수선하고 시끄러울 수 있지만 그 과정을 통해 신선한 디자인 방향이 나오기도 한다. 이렇듯 유연함은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시작되는 새로운 디자인 프로젝트에 대한 영감은 어떻게 얻는가?


클라이언트와의 회의 시에 즉시 생각을 정리하는 편이다. 그들이 제안하는 서류에 이미 중요한 힌트가 들어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들과 이야기하는 회의 중에 이미 아이디어를 완성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바로 스케치와 목업 작업에 들어간다. 

 

디자인적 영감을 얻기 위한 특별한 과정이 있다기보다는 주로 일상생활 속에서 아이디어를 얻는다. 가령 예를 들어, 퇴근 후 부엌에서 저녁 준비를 한다고 치자. 키친 스푼을 꺼내 무언가를 담으려 하는데 손목이 계속 불편하다면 바로 메모를 해본다. 손잡이가 조금만 더 크다면, 가벼운 소재를 써보면 어떨까 하는 식이다. 이렇게 평상시에 영감이 되는 것들을 잘 정리해 프로젝트에 적용하는 경우도 많다.

 

덴마크 오디오 회사 뱅 앤 울프슨과 진행한 B&O play M3 시리즈 목업과 스케치 과정 © cecilie manz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은 한국에서 상당히 관심받고 있는 트렌드다. 북유럽 관련 서적들, 카페, 레스토랑, 인테리어 등의 다양한 채널을 통해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북유럽 출신의 디자이너로서 당신도 이 부분에 영향을 받는지 궁금하다.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는 않지만 북유럽의 역사와 전통의 중요함을 알기에 끊임없이 공부하려 한다. 뮤지엄에 들러 다양한 분야로부터 인사이트를 얻고 관련 분야의 책들을 찾아본다. 휘게, 라곰, 피카, 슬로우라이프 등 북유럽을 표현하는 다양한 키워드들이 있지만 그것들에 집중하기보다는 다양한 사물의 관계에 포커스를 맞추려 한다. 이 일련의 과정들은 집중된 디테일(attention detail)을 통해 나타나게 된다. 결국 주변 모든 것에 얼마나 주의를 기울이느냐(Attentive)가 중요한 핵심이며, 이 관심은 만족스러운 결과물로 나타나게 된다.

 

일본 21세기 현대 미술관에서 진행된 ‘Everyday Life - Signs of Awareness’전 / Kanazawa, Japan 2017 © cecilie manz

 

 

지금까지 많은 기업들과 작업을 해오며 다양한 문제나 의견 충돌이 있었으리라 예상해본다. 디자이너로서 가장 도전이 되는 부분은?

 

모든 프로젝트는 복잡한 구성을 가지고 있기에 ‘이 상황들과 어떻게 마주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모든 프로젝트를 대하는 ’디자이너로서의 에너지’를 항상 최고치로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믿는다. 현실적으로 앞에 놓이게 되는 문제들은 항상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양산 과정의 어려움, 타이트한 마감시간 등… 이러한 상황에 부딪혀 스스로 지치기 시작하면 프로젝트에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가급적이면 최소한의 프로젝트만 운영하며 그것에 집중하는 것을 선호하는 이유이다. 소규모 인원으로 이를 끌고 가기에 상당히 효율적이며 그 결과도 만족스럽다.

 

최근 들어 한국도 다양한 분야의 디자인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한국 디자인 문화에 대해 견해가 있다면 부탁한다.

 

아시아의 여러 나라 중에서도 한국에서는 특히 디자인 분야에서 긍정적인 에너지가 느껴진다. 트렌드 세터들이 모여들고 스피디한 속도로 모든 것이 흘러간다. 동시에 스타일은 앞서 나간다. 디자이너로서 경험하고 싶은 흥미로운 문화라 생각한다. 꼭 방문해보고 싶다.

 

신입 디자이너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후배들에게, 그리고 졸업을 앞둔 학생들에게 선배로서 조언을 부탁한다.

 

무엇이든 헌신(dedication) 하는 자세와 그것을 인내(patience)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 세상에 완벽한 라이프란 없다. 모든 것은 그리 쉽지 않기에 그만큼의 열정이 필요하다. 오히려 디자인에 대한 감각이나 실력보다 이러한 기본적인 것들을 먼저 갖추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디자이너로서의 다음 비전은 무엇인가?

 

‘지속(Continue)’이라는 단어가 항상 머릿속에 있다. 지금 내가 아끼고 좋아하는 스튜디오 멤버들, 그리고 현재 하고 있는 일들이 계속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나의 비전이다.

 

디자이너 세실리에 만즈 © cecilie manz

 

 

깊이를 놓치지 않는다는 것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다양한 것을 시도한다는 것 자체는 긍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그 각각의 시도들을 어떻게 끝맺음 할지는 한 번 더 생각해 볼 문제이다. 이번 세션에서 함께 이야기 나눈 세실리에는 ‘디자이너’이다. 그의 다양한, 그리고 광범위한 작업들은 물론 ‘디자인’이라는 커다란 범주 안에서 이루어진다. 

 

하지만 그는 그 어느 것 하나 놓치고 있지 않았다. 그의 아이코닉한 디자인 언어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로부터 인정받고 있으며, 많은 기업들이 앞다투어 그의 스튜디오를 찾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토크 세션 내내 필자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 것은 이 전방위적인 디자인 완성도보다 그의 일에 대한 태도와 열정이었다. 그 의미 있는 에너지들이 프로젝트의 성공적인 결과를 이끌어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전방위적’이라는 것은 늘 어렵다. ‘이것도 저것도 난 다 잘합니다’라는 공허한 메시지로 끝날지, 하나하나를 완벽한 결과물들로 이끌어 낼지는 오롯이 상황을 마주하는 스스로의 자세와 태도에 달렸음을 본다. 한 우물만을 파는 깊이를 여러 우물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히 열려있기 때문이다. 우리 앞에 놓인 삶의 시간들은 생각보다 길다. 그 어떤 것도 너무 늦은 순간은 없다.

 

늘 새로운 것, 그리고 다양한 것에 대한 시도를 게을리하지 않으며, 그 하나하나의 의미 있는 깊이를 이뤄가는 내가, 그리고 독자 여러분이 되기를 바라본다.

 

글_ 조상우 스웨덴 Sigma Connectivity 사 디자인랩 수석 디자이너(sangwoo.cho.0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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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우 디자이너
현재 북유럽 스웨덴에서 산업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삼성전자 모바일 디자인 그룹 책임 디자이너, 소니 모바일(Sony mobile) 노르딕 디자인 센터를 거쳐, 현재 스웨덴 컨설팅 그룹 시그마 커넥티비티(Sigma connectivity), IoT 부문 수석 디자이너로 근무하고 있다.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근원지에서 살아가며 느끼는 경험들을 바탕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한다.www.sangwooch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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