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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흑백필름을 오마주하다

2018-11-15

세계적인 사진작품의 근원인 네거티브 필름의 예술성에 주목한 이색 전시가 열리고 있다.  
숨겨져 있던 필름들을 꺼내 빛에 비춰본 순간, 신비롭고 아름다운 반전의 이미지가 드러난다.  

 

John Loengard, Andre Kertesz, Satiric Dancer, 1926. Hands: Noel Bourcier, 1993
앙드레 케르테츠가 댄서 마그다 푀르슈트너를 소형 유리 원판 카메라로 촬영했다. 케르테츠가 파리로 이주한 다음 해인 1926년, 31세 때 탄생한 사진이다.

 

John Loengard, Man Ray, Woman with Long Hair, circa 1929. Hands: Lucien Treillard, 1994
만 레이는 “나의 작품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지만 기술적으로 완벽함을 칭찬 받기 위한 것은 아니다.”라며 자신을 장인이 아닌 현실적 몽상가라고 언급했다.

 

John Loengard, Richard Avedon, Ronald Fischer, Beekeeper, 1981. Hands: Richard Avedon, 1994
리처드 아베돈은 1979년 양봉가인 로널드 피셔와 함께 벌로 뒤덮인 남자 사진을 촬영했다. 여왕벌의 페로몬을 온몸에 바른 피셔와 함께 아베돈 모두 결국 벌에 쏘였다.

 

오리지널 네거티브가 보여주는 것  
얼마 전 레바논 출신 아티스트 아크람 자타리의 전시에서 네거티브 필름을 만났다. 그 전시는 사진을 하나의 오브제로 보는 시각을 제시했는데, 그런 점이 상당히 인상 깊었다. 특히 세월을 머금고 있는 네거티브 필름에 생긴 주름과 마모 상태를 보여주며 필름 그 자체에도 예술성이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필름을 인화를 위한 도구만으로 생각했던 인식을 반전시킨 전시였다. 

 

네거티브 필름이 지닌 시각적 아름다움과 예술성에 주목한 또 다른 전시가 열리고 있다. 바로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리는 존 로엔가드(John Loengard)의 <Celebrating the Negative> 사진전이다. 다소 낯선 이름의 존 로엔가드는 1900년대 포토저널리즘을 이끌었던 <라이프>지의 사진 편집자이자 기자였다. 그는 네거티브 필름의 고유한 가치를 알아본 사람이었다. 아크람 자타리가 역사성이 담긴 필름을 수집해 당시의 상황과 그 이면을 드러냈다면, 존 로엔가드는 19, 20세기 전설적인 사진가들이 촬영한 사진 이미지의 오리지널 네거티브 필름을 추적해 이를 카메라에 담았다.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예술작품의 실제 네거티브 필름을 만나고 그 순간의 감동을 포착한, 20년간의 기념비적인 프로젝트다. 그는 “나는 이 필름들이 처음으로 봉투에서 꺼내져서 빛 앞에 놓이는 순간, 그 위용을 사진에 담고 싶었다.”라고 고백했다. 

 

만 레이, 에드워드 웨스턴, 앙드레 케르테츠, 워커 에반스,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로버트 카파, 이모젠 커닝햄, 리처드 아베돈 등 전시장에서 만난 40여 점의 네거티브 필름은 19, 20세기를 대표하는 사진가들의 오리지널 네거티브다. 비록 실물은 아니지만 라이트 박스, 햇볕이 잘 드는 흰 벽, 창문 등 ‘빛’을 배경으로 명확하게 드러나는 이미지들에 시선이 꽂힐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문득 사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손의 존재에 의문이 생겼다. 로엔가드는 의도적으로 필름과 그것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의 손을 프레임에 함께 담았다. 사진가의 유족 또는 소장처, 기관 관계자의 손을 통해 제각각 필름을 다루는 방식과 생각에도 접근하려 한 것이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한미사진미술관 김지현 큐레이터는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하고 유명한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을 프린트가 아닌, 그 사진의 근원인 네거티브 필름을 통해 접근했다는 사실 자체가 흥미로웠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각 필름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와 로엔가드가 필름을 처음 만났을 때의 상황을 친절하게 책자를 통해 공개했다는 점이다. 사진가가 셔터를 누른 순간의 이야기까지 더해져 필름에 더욱 생생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했다. 

 

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 책자에 네거티브 필름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가 담겨있다.

 

로엔가드가 촬영한 네거티브와 프린트된 작품 이미지를 함께 볼 수 있도록 도판이 나란히 구성되어 있다.

 

사라지고 있는 사진의 근원을 기억하며
전시 공간에서 특별히 눈에 띈 점이 있다면, 네거티브 필름을 촬영한 사진과 그 필름이 프린트된 작품을 나란히 배치한 디스플레이 방식이었다. 단 세 점,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앙리 카르티에-브레송과 아널드 뉴먼, 유섭 카쉬의 완성된 프린트가 함께 전시되었다. 네거티브 필름과 그것을 통해 얻어진 결과물을 한눈에 비교함으로써 우리가 알고 있는 사진의 이면을 들춰보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필름이 없었다면 세계적인 작품도 없었을 것.”이라는 기획자의 말은, 불과 한 세기 전 사진가 안셀 아담스가 “네거티브 필름은 악보요, 인화 과정은 연주다”라고 말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또한 해리 캘러한의 “누군가 네거티브를 사갈 때 난 죽을 것 같이 괴로웠다. 네거티브 필름은 나의 전부였기 때문이다.”라는 고백을 떠올리게 한다. 작품으로서 공개되지 않고 서재 어딘가에 깊숙이 들어 있던 필름은 사진가들에게 작업 부산물 그 이상의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비록 디지털 시대에 네거티브 필름의 존재감이 미미해졌을지 모르지만, 사라지고 있는 사진의 근원을 알리기 위한 로엔가드의 <Celebrating the Negative> 프로젝트는 분명 큰 의미가 있다. 이번 전시는 순회전 형태로 열리며, 한국에서는 유일하게 한미사진미술관에서 10월 20일까지 진행된다. 문의 02-418-1315

 

에디터_ 박윤채
디자인_ 김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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