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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한강에 사람이 산다

2018-11-27

랑랑은 사진을 주매체로 활용하는 안성석과 범주화 및 아카이빙에 관심을 두고 작업하는 정혜정이 만나 결성된 듀오다.

직접 만든 배를 타고 한강 구석구석을 탐사하는 이들이 주목한 것은 우리네 일상과 거리가 있는 한강의 풍경이다. 

 

틈새 _ Drawing

 

한강해킹, Digital c-print, 75x50cm, 2014

 

서울 시민에게 한강은 어떤 의미일까. 강북과 강남을 경제·문화·사회적으로 갈라놓는 경계선일까, 아니면 붉은 노을을 바라보며 치맥을 즐기기 좋은 휴식 장소일까.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강수욕’과 ‘한강의 기적’ 같은 과거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매개체일지도 모르겠다. 한강은 서울 근현대사의 중심축이자 시민의 젖줄, 고도성장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져왔다. 그런데 여기서 문득 드는 의문이 있다.

 

한강은 정말 우리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일까. 윗세대들은 자유로이 한강을 드나들었다는데, 오늘날 우리는 왜 한강 주변만 서성거리다 마는 것일까. 이러한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안성석과 정혜정은 직접 만든 배를 타고 한강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탐사를 진행했다.

 

한강에 띄울 배를 만들다 
랑랑은 우연과 우연이 겹쳐 인연이 된 아티스트 듀오다. “내년에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고민을 하던 어느 날, 안성석과 정혜정은 공통 관심사였던 ‘한강’을 주제로 ‘같이’ 작업하기로 결정했다. 안성석은 ‘한강이 누구 소유이기에 강 중심에 이토록 사람이 없을까?’, ‘한강에 들어가기 위해선 허락을 받아야 할까?’ 등에 관심이 있었고, 정혜정은 한강에 퇴적된 ‘개인과 사회의 역사’를 파헤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직접 배를 만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한다. 


배 제작은 우연찮게 이뤄졌다. 레지던시에 함께 입주했던, 카약 만들기가 취미인 한 작가가 “배를 만들어보자.”라고 제안했고, 여기에 자신감을 얻어 두 팔을 걷어붙였다. 프로젝트에 필요한 배의 조건은 단순했다. 길이 4m, 무게 80kg 미만에 안정적이면서 운치가 있을 것. 랑랑은 이런 조건에 맞는 도면을 해외 웹사이트에서 구입했고, 이를 토대로 배를 제작했다.

 

티테이블과 풍경 비춰주는 역할을 겸하는 거울과 360도 회전하는 의자가 인상적인 ‘작업 친화적’인 나무배였다. 그렇게 완성된 배의 이름은 ‘호락질호’. 남의 힘을 빌리지 않고 농사를 짓는다는 호락질의 뜻처럼, 스스로의 힘으로 한강을 건너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2014년 그렇게 ‘한강 유랑’을 위한 닻이 올랐다. 우려와 달리, 한강에 배를 띄우는 데는 법적으로 별다른 제약이 없었다. 첫 번째 프로젝트는 두 작가가 한강을 도강하며 기록한 것들을 관객에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배를 개조해 사람들을 태우는 등 관객참여형 작업으로 탈바꿈시켰다. 여기에 가이드 투어와 배우들의 퍼포먼스까지 추가했다. 한강에 덧씌워진 관습적인 기억을 전복시키기 위함이었다.

 

틈새 _ Drawing

 

틈새 _ Drawing

 

사진, 회화, 퍼포먼스가 가미된 관객 참여 프로젝트 
랑랑의 작업은 직관적이다. 갤러리나 미술관에서 작가의 세계를 간접적으로 인식하는 것과 달리, 관람객이 작가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작업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즉, 물과 바람의 흐름을 몸소 체험하며, 한강에 켜켜이 쌓인 시간의 파편들을 작가들과 함께 탐색하는 것이다. 옥수동 근처 저자도의 소멸과 생성, 도시화의 부작용 등을 상징하는 파편들이 바로 그 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유랑을 마친 참가자들이 추후 한강을 보다 세심하게 살펴보게 된다면, 프로젝트는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안성석과 정혜정이 여느 아티스트 듀오와 차별화되는 점은 공통의 결과물을 지향하지 않는다는 것. 이들에게 ‘호락질호’는 각자의 작업을 진행하기 위한 플랫폼이자, 한강을 둘러싼 문제의식과 개념을 공유하는 공간이다. 배에 오른 안성석은 카메라를 이용해 한강 구석구석을 촬영했고, 정혜정은 파도의 흐름과 수생식물, 한강시설 등을 그림으로 남겼다. 그리고 이들을 역사 이야기, 지도 등과 같이 엮어냈다.

 


‘랑랑 프로젝트’는 한강을 구축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시스템에 균열을 내는 데 그 의의가 있다. 참가자들이 배에 오르며 제일 많이 한 질문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이렇게 배를 띄워도 돼요?”였다. 특별한 제약이 없는데도 말이다. 랑랑은 이런 모습에서 한강과 사람이 분리됐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한강과 관련된 금기가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말하고 싶었다. 또한, 프로젝트에는 한강이 이벤트를 위한 장소로만 이용되는 현실을 경계하려는 목적도 있다. 서울시는 시민들을 위한다는 목적으로 한강에서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하지만 대개 일회성이다. 우리 삶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부분도 없다. 그러니 시민들의 관심이 이어지지 않는 것. 차라리 한강의 자연친화적인 면모를 부각시키는 것은 어떨까 하는 것이 랑랑의 생각이다. 한강이 시민들의 진정한 품으로 돌아간다면 다시 우리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 있지 않을까. 이를 위해선 한강에 주체적으로 개입하려는 랑랑의 의지를 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함께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랑랑 급변하는 현실, 사람과 역사에 대해 집중하는 안성석과, 실제로 존재하지만 평소엔 인식하진 못하는 비가시적 세계의 틈새를 찾아 기록하고 아카이빙 하는 정혜정이 만나 결성된 아티스트 듀오다. 

 

sungseokahn.com & hjjung.com 

 

에디터_ 박이현
디자인_ 김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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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사진 #사진 #랑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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