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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스칸디나비아 디자인 이야기] 북유럽 그래픽 디자인 이야기

2018-12-27

북유럽의 디자인하면 대부분 스칸디나비아의 인테리어 트렌드나 실용적이고 미니멀한 가구, 조명 디자인 등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이와 더불어 북유럽의 그래픽 디자인 역시 최근 들어 주목받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일상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특히 시각적으로 돋보이는 이들의 그래픽 디자인에 대해 소개해 보고자 한다.

 


거리에서 볼 있는 다양한 상점의 간판 디자인들 ⓒ Sangwoo Cho

 

 

필자가 처음 이곳에 와서 흥미로웠던 점 중의 하나는 거리에 보이는 다양한 사인들, 그리고 마켓이나 은행, 병원, 쇼핑몰 등 주변의 다양한 환경 속에서 보이는 감각적인 그래픽 디자인이었다. 한마디로 눈이 즐거웠다고나 할까. 치열한 경쟁 브랜드 사이에서 저마다 나를 봐 달라는 듯이 소리치는 현란한 광고나 사인들은 이곳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모두 디자이너들의 손길을 거친 듯 깔끔하고 세련되며 크게 과장되어 있지 않다. 특히 그래픽 디자이너에게 북유럽 방문을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은 이유다. 그만큼 다양한 영감과 유니크한 매력을 곳곳에서 보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필자는 얼마 전 덴마크에서 가장 힙하다는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와 함께 ‘디자이너 토크’ 세션을 진행하기도 했다(내용은 곧 연재될 예정이다). 이 세션에서 필자가 느낀 것은 이들의 디자인 접근이 상당히 순수(?) 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기업의 이윤과 수입 창출 등 비즈니스적인 부분이 기본적으로 고려되긴 하지만, 디자인은 이러한 것을 아우르는 위치에서 전체 방향을 드라이브하는 것을 보게 된다. 어찌 보면 디자이너에게는 가장 이상적인 프로젝트일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대부분 기업들의 전략 자체도 기본적으로 디자인의 영향력을 이미 상당히 중요한 요소로 고려한 상태에서 운영되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디자인들은 서로 다른 디자인들과 묘하게 균형을 이루며, 도시 전체의 이미지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거리의 공중 화장실에 표기된 그래픽 디자인 ⓒ Sangwoo Cho

 

 

그래픽 디자인 요소(graphic design elements)는 사실 제품 디자이너, UX 디자이너, 가구 디자이너 등 거의 모든 분야의 디자이너들에게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균형적인 레이아웃과 감각적인 컬러의 배합, 서체의 활용까지 이 모든 요소는 어느 분야의 디자인을 막론하고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요소이기 때문이다. 애플의 故 스티브 잡스 역시 이 그래픽 디자인이 가진 중요성에 대해 일찌감치 깨닫고 있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포틀랜드 리드 대학교(Reed College)에 다닐 당시에 청강한 캘리그래피 관련 수업은 훗날 애플 제품에 적용되는 트루타입(True Type) 폰트를 개발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이는 애플의 라인업 전반에 적용되는 그래픽 디자인 요소로 발전되어 왔으며, 시장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주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부분은 곧바로 브랜드의 가치로 직결되며 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매출로도 이어지고 있다.

 

현대카드, 배달의 민족 등 국내의 기업들도 이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갖고 있는 잠재력을 미리 알아보고 폰트 디자인, 브로슈어 디자인 등에 적극적인 투자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용자가 제품이나 서비스를 처음 마주하는 단계 중 가장 첫 번째가 바로 ‘시각적 인지’이기에 이러한 그래픽의 결과물들은 브랜드 이미지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중요한 연결고리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오늘날 그래픽 디자인의 역할은 확실히 예전에 비해 광범위해졌으며, 파워풀한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는 포지션에 위치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다시 북유럽의 이야기로 돌아와보자. 스웨덴을 대표하는 그래픽 디자이너 중에는 올레 엑셀(Olle Eksell)이 있다. 그의 대표작인 〈코코아 아이즈(Cacao Ögon)〉는 스웨덴 초콜릿 회사인 마제티사 (Mazetti)가 1956년 기업의 리브랜딩을 위해 열었던 공모전을 진행한 프로젝트로 유명하다. 현재는 북유럽의 그래픽 디자인을 상징하는 하나의 아이콘이 될 정도로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이 패키지는 지금도 이곳 마켓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 포스터로도 제작되어 미술관 갤러리에서도 판매되고 있으니 실로 스웨덴을 대표하는 아이코닉한 디자인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다음의 사이트에서 그의 작품들을 감상해보자.
www.olleeksell.com
aoisora.me/olle_eksell_in_motion

 

올레 악셀의 대표 작품인 코코아 아이즈의 패키지 디자인(좌측)과 포스터 ⓒ Sangwoo Cho

 

 

그런가 하면 독특한 제품 패키지로 눈길을 끄는 제품도 있다. 바로 칼레스(Kalles)라는 브랜드의 크림소스다. 생선 알을 주원료로 하여 만들어진 이 크림은 식빵부터 과자류, 삶은 계란 등과 함께 먹기에 좋으며, 스웨덴의 국민 식품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남녀노소 누구나가 즐기는 아이템이다. 어느 마켓을 가더라도 쉽게 구할 수 있다. 사진에서 보듯이 정말 다양한 맛의 크림이 있어서 취향대로 골라 먹는 재미도 있다. 무려 1954년에 디자인된 이 패키지 디자인이 지금까지 그 형상을 그대로 유지하며 출시되고 있다는 점이 놀랍기도 하다. 필자가 스웨덴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튜브 형상을 한 이 소스를 보고 동료에게 ‘스웨덴에는 정말 다양한 종류의 치약이 있구나”라고 말한 적이 있다. 지금도 생각하면 저절로 웃음이 나오곤 한다.

 

마트 한편에 진열된 칼레트 크림소스 진열대. 다양한 컬러와 디자인으로 각각의 맛을 표현하고 있다. ⓒ Sangwoo Cho

 

 

이곳 북유럽에서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이 있다. 바로 광고나 사인물에 유명인을 쓰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잘 알려진 영화배우나 탤런트가 특정 브랜드를 선전하는 광고 혹은 사인물은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나라 광고들과 비교한다면 조금 심심할 정도이다(물론 스웨덴의 유명한 축구선수 즐라탄(Zlatan)이 광고하는 스포츠 브랜드 등이 있긴 하다).

 

하지만 제품 자체가 가진 온전한 내용과 기능만을 기본으로 한 그래픽들은 간결하고 높은 가독성을 보여준다. 앞서 언급한 내용처럼 불필요한 부분에 힘을 빼고 오히려 핵심에 집중하려는 이들의 의도가 보이는 대목이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연예인을 고용하거나 광고 촬영에 대한 비용이 절감되니 제품 자체의 퀄리티에 더 투자하게 되는 선순환의 기능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진열대에 놓여있는 이 제품들은 신기할 정도로 타사 제품들과 전혀 이질감 없이 잘 어울린다. 물론 이 같은 그래픽 디자인 요소가 직접적으로 매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서는 섣불리 판단하기 어렵겠지만 디자인적 관점으로만 본다면 개인적으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제품의 패키지와 그래픽이 심플해지니 좀 더 제품 자체의 기능이나 특성에 집중해서 판단할 수 있게 된다고나 할까.

 

마트에 진열된 다양한 상품 코너. 연예인들이 등장하는 광고 대신 단순하게 디자인된 레이블이 돋보인다. ⓒ Sangwoo Cho

 

 

서두에서 언급했던 거리의 다양한 상점들의 간판 디자인도 디자이너들에겐 흥미로운 구경거리 중 하나이다. 저마다의 개성을 드러내며 걸려있는 사인들은 그 상점의 성격과 특징을 함축적으로 나타냄과 동시에 고풍스러운 유럽의 건물들과 조화를 이루며 또 하나의 관광 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단순히 가게의 홍보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인이 걸리게 될 건물과의 어우러짐까지 생각한다는 것이 이들의 이야기이다.

 

이처럼 감각적이면서도 때로는 과감한 디자인들이 거리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고 있다. 단순하게 번쩍이는 네온사인 대신 가게의 본질, 즉 비즈니스의 목적만을 간결하게 표현하는 방식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필자도 이 감각적인 간판 디자인에 흥미를 느끼고, 얼마 전 이를 대상으로 사진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그 결과물도 공유해 보려 한다.

 

유럽의 거리를 걷다 보면 만나게 되는 재치 있고 감각적인 사인물 디자인 ⓒ Sangwoo Cho

 

 

빼고, 덜어내고, 걷어내면 비로소 드러나는 본질

우리는 본질을 둘러싸고 있는 너무 많은 포장들로 인해 그 실체를 들여다보기 힘들 때가 종종 있다. 과장된 패키지, 현란한 컬러들과 레이아웃이 먼저 보이는 제품들이 있다. 이는 단지 시각적인 부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제품광고를 위해 유명인을 섭외하고, 그들의 사진을 전면에 내세워 패키지를 디자인하고, 시선을 사로잡는 TV 광고를 촬영한다. 물론 이 같은 상황을 모든 상품의 사례로 일반화하기에는 무리가 있겠지만, 상품 자체의 본질보다는 그것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부수적인 요소에 더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경우를 보게 된다. 그리고 소비자들은 제품 본연의 기능이나 활용도가 아닌, 광고 속 연예인 누구누구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 식이다.

 

반면 제품 자체의 본질만을 강조하며 시장에 접근하는 브랜드들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의 무인양품(無印良品, MUJI)일 것이다. 네이밍 자체가 바로 ‘브랜드가 없는 좋은 제품’을 의미한다. 출시되는 제품에는 그 흔한 브랜드 로고조차 없고, 광고 영상은 유명 연예인이 아닌 흔히 마주칠 것 같은 일반인이 모델로 등장한다. 주력으로 미는 대표 상품도 없으며 오히려 가구, 서점, 식품관 등 전혀 다른 분야들의 비즈니스를 연계해 진정한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로 성장하고 있다. 제품의 디자인조차 무색의 심플함을 유지하며 오직 기능에 충실한 미니멀리즘을 앞세우고 있는데, 이 같은 요소들이 브랜드의 성공에도 한몫을 하고 있다. 이쯤 되면 ‘이유 있는 싼 제품(わけあって, 安い)’이라는 무인양품의 초창기 슬로건은 고객의 심리를 정확히 꿰뚫어본 혜안으로 풀이될 수 있겠다.

 

이는 상당히 역설적이기도 하다. 제품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모든 장치들을 빼내고, 덜어내고 나니 오히려 핵심 본질만 남게 되고, 이것은 단순 명료하니 소비자들은 이해하기 쉽다.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도, 현란하게 돌아가는 광고도 필요 없다. 복잡하기만 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소비자들은 오히려 이 단순하고 진실된 이야기에 더 끌리고 공감하기 때문이다.

 

북유럽의 그래픽 디자인을 들여다보며 자연스럽게 ‘본질(本質)’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오게 된 것은, 바로 스칸디나비아 디자인 철학이 이 본질에 대한 흐름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북유럽의 가구나 인테리어 분야, 그리고 지금 이야기하는 그래픽 디자인 분야까지도 그 흐름은 동일하게 보인다. 다만 어떠한 방식으로 드러나는지만 다를 뿐 그 중심이 되는 축은 하나인 것이다. 

 

글을 마무리하다 보니 우리의 일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우리 스스로도 어쩌면 너무 많은 것들로 치장하고, 또 포장하는지도 모른다. 더욱이 최근 들어서는 소셜 미디어의 영향으로 우리는 무언가를 깔끔하게, 아주 잘 포장된 상태로 보여주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겹겹이 포장된 것들을 모두 걷어내고 진실된 속내를 내보인다는 것은 어찌 보면 두렵기까지 한 일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단순하고 간결하게 있는 그대로를 전달하는 것에는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묵직한 힘이 있음을.

 

디자인이든 타인과의 관계든 간에, 꾸미지 않은 스스로의 모습 그대로 다가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때이다. 진심은 언제나 통하는 법이니까.

 

글_ 조상우 스웨덴 Sigma Connectivity 사 디자인랩 수석 디자이너(sangwoo.cho.0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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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그래픽디자인 #스칸디나비아디자인이야기 

조상우 디자이너
현재 북유럽 스웨덴에서 산업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삼성전자 모바일 디자인 그룹 책임 디자이너, 소니 모바일(Sony mobile) 노르딕 디자인 센터를 거쳐, 현재 스웨덴 컨설팅 그룹 시그마 커넥티비티(Sigma connectivity), IoT 부문 수석 디자이너로 근무하고 있다.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근원지에서 살아가며 느끼는 경험들을 바탕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한다.www.sangwooch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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