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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완전히 새로운 예술품이 된 일상 속 오브제

2019-05-22

뒤샹은 변기를 예술품으로 선보이며 레디메이드(ready-made)라는 개념을 만들었고, 우리는 얼마전 마침내 그것을 마주했다. 이번엔 좀 더 새로운 개념을 맞이할 차례다. 김나영과 그레고리 마스의 핸드메이드 레디메이드(handmade ready-made)다. 

 

김나영 & 그레고리마스 ‘리프로스텍티브 REPROSPECTIVE’전 전경

 

 

듀오 작가 김나영과 그레고리 마스는 이미 만들어진 것들에 그들의 손으로 리터칭을 한다.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잡동사니들을 직접 수집하고, 작가적 상상력을 더해 매우 전통적인 예술에 기반한 방식으로 작업을 한다. 전혀 다른 콘텍스트, 완전히 다른 맥락의 이미지와 오브제들이 이들의 예술 철학, 감성과 색을 통해 이종(異種) 결합돼 재탄생하는 것이다. 

 

이들의 작품은 어느 것 하나 그냥 만들어진 것이 없다. 철저하게 역사와 문화, 철학적인 내용을 바탕으로 한다. 추상적이지만 유머러스하고, 키치적이지만 깊이 있는 작품에는 해학이 숨겨져 있다.

 

단순히 은박 종이를 붙인 것 같지만 ‘빛을 다루는 예술’이라는 회화에 대한 그들의 생각이 담겨있는 작품 〈은색 캔버스(Silver Canvas)〉는 원근법과 같은 회화의 전통기법을 발견할 수 있는 회화의 기본에 충실한 학구적인 작업으로, 연극에서 사용되는 특수한 재질의 은색 패브릭이 전혀 다른 맥락의 예술적 오브제로 탄생했다. 

 

동서양을 문화적으로 연결하는 메타포이자 뇌의 은유적인 표현인 국수 형태에 흙과 백자, 청자 유약을 바르고, 4차 소성을 거쳐 완성한 〈네 머리를 써라(Use Your Noodle)〉는 니체, 콘라드 추제 등 역사적인 인물들과 액션스타 척 노리스 등 코믹한 이미지의 대중스타들의 어록이 담겨있는 작업으로, 지적이고 우스꽝스러운 내용들로 반전을 느끼게 한다.

 

파리 국립 미술학교에서 만난 이들은 2004년 결혼과 함께 공동 작업을 시작했다. 한국인과 독일인으로 서로 다른 문화를 지닌 이들은 하위문화부터 고급문화까지 넓은 분야를 다룬다. 

 

김나영 & 그레고리마스 ‘리프로스텍티브 REPROSPECTIVE’전 전경

 

 

2004년부터 지금까지 15년간의 이들의 작업을 되돌아보는 전시 김나영 & 그레고리마스 ‘리프로스펙티브 REPROSPECTIVE’가 성곡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REPROSPECTIVE’는 ‘재생하다(reproduce)’와 ‘회고하는(retrospective)’을 합친 말로 그들의 지금까지의 작업을 다른 공간에 재생산해 보여준다. 

 

전시는 네 개의 섹션으로 구성된다. 각 섹션의 제목은 지금까지 해왔던 개인전의 타이틀로, 팝송이나 소설의 제목, 경제학자의 이론 등 우리 사회의 흐름이 담겨있다. 각 방에는 지금까지의 작업들 중 공간과 어울리는 의미있는 작품들을 선별, 조합, 배치해 전시를 ‘리프로듀스’한다. 

 

 

‘무아 자기도취’ 섹션

 

 

‘무아 자기도취(no-ego ego trip)’ 섹션에서는 영문이 더해진 표구들을 여럿 선보인다. 버려진 한옥에서 수집한 옛날 표구 액자들에 한자를 전혀 알지 못하는 그레고리 마스가 영어로 글자를 쓴 작품이다. 동양화 및 서예 액자에 자리한 영문은 완전히 새롭지만 묘한 연관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낭만 결핍증’ 섹션. 작가가 만든 옷을 입은 인형들과 아나키스트의 A가 새겨진 아티스트의 장갑이 보인다. 

 

 

‘낭만 결핍증(Romance deficiency disorder)’에는 반미학적 작업이 많다. 〈무아 자기도취(no-ego ego trip)〉의 인형들은 작가가 직접 만든 옷을 입고 있다. 직업, 성별, 나이, 속한 시대 등을 유추할 수 없게 하는 의복을 입은 인형들은 정형화된 신분이 제거된 자아들이다. 

 

옛 느낌을 연출하기 위해 브라운 톤으로 꾸며진 문화역서울284에서 선보였던 다양한 브라운의 표본을 작업한 〈갈색 옷걸이(Brown hanger)〉와, 무정부주의(Anarchist)의 ‘A’를 새긴 〈예술가의 작업 장갑(Artist’s working gloves)〉도 전시된다. 

 

‘시스템의 목적은 그 시스템이 하는 일’ 섹션. 김나영 & 그레고리 마스의 첫 공동작업 〈양말 건조대〉

 

〈두부 플로우차트(Tofu flowchart)〉. 이 도표 작업은 현재 세 개의 전시공간을 채울 정도의 양으로 발전했다. 

 

 

‘시스템의 목적은 그 시스템이 하는 일(Purpose of a system is what it does)’에서는 김나영과 그레고리 마스의 첫 공동작업 〈양말 건조대(Sock dryer)〉와, 다른 크기, 서로 다른 크기의 피규어를 통해 다른 차원의 인물들이 만날 수 있도록 한 〈갈색 스타워즈 피규어(Brown Star Wars Figures)〉, 미술의 순수함을 두부에 비유해 두부와 이들의 관계를 도표로 만든 〈두부 플로우차트(Tofu flowchart)〉 등을 볼 수 있다. 

 

〈네가 알아내라〉. 도라에몽과 친구들, 동성애자 빌리보이, 화병, 신라 토기 복제본 등 다양한 캐릭터들이 기울어진 좌대 위에서 수평을 맞추고 서 있다.

 

 

도라에몽을 비롯한 캐릭터들과 피규어들로 이루어진 〈네가 알아내라(You figure it out)〉는 이들이 수집한 모든 것들의 정수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사물과 인간과의 관계를 말하는 이 작업과 함께 사물이 모여 풍경이 되는 과정을 분자구조로 나타내기도 했다. 

 

미술관 2관 건물 입구에 설치된 목욕탕 간판

 

 

미술관 2관 건물 입구에는 커다란 목욕탕 간판이 돌아가고 있다. 고물상에서 구입한 목욕탕 간판에 조명을 달아 장식한 작품이다. 

 

〈헌터 톰슨 사냥꾼 선글라스〉. 2009년 남불에서의 개인전 ‘비적자생존(Survival of the Shitest)’의 중심이 된 작품이다. 

 

 

2관 전시공간에 마련된 ‘무감각의 미(Beauty of Being numb)’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은색 캔버스〉, 〈네 머리를 써라〉를 비롯해 사회 부적응자들, 하위문화, 반문화에 대한 이들의 옹호와 이분법적 시각에 대한 전환의 필요성을 담은 〈헌터 톰슨 사냥꾼 선글라스(Hunter S. Thompson’s Shooter Shades)〉 등을 만날 수 있다.   

 

일상이 예술이고, 예술이 곧 일상인 김나영과 그레고리 마스는 “예술의 영광을 위해 살고 있다”고 말한다. 생활 속에서 늘 예술을 실천하는 그들의 작업은 우리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과 예술을 좀 더 유쾌하게 즐기는 방법을 선사한다. 

 

전시는 6월 30일까지 개최되며, 전시 기간 중 6월 매주 토요일에는 작가와 함께하는 전시투어, 아티스트 토크, 특별강연회 등 다양한 전시연계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에디터_ 최유진(yjchoi@jungl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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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그레고리마스 #리프로스펙티브 #REPROSPECTIVE #성곡미술관 

최유진 에디터
감성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디자인 이야기, 우리 마음을 움직이는 포근한 디자인의 모습을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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