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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스칸디나비아 디자인 이야기] 코펜하겐, 디자인으로 물들다

2019-07-08

‘3 days of design in Copenhagen 2019’ 투어

 

지난 5월 연재에서는 덴마크 최대 디자인 축제인 ‘3 days of design’의 공동 설립자 시그네 테렌지아니(Signe Trenziani)와의 토크 세션을 전했다. 세션이 끝날 즈음 필자는 2019년 행사의 공식 프레스(Official press)로 초청을 받게 되었다. 덕분에 행사기간 동안 진행된 프레스 투어에 참여하며 그 현장을 조금 더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다. 

 

주최 측으로부터 받은 스케줄표는 상당히 타이트했다. 전 세계에서 온 저널리스트, 에디터, 기자로 구성된 프레스팀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지는 강행군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거의 시간 단위로 움직이며 디자이너의 팝업스토어, 브랜드 론칭 현장, 세미나, 워크숍 등에 참석하는 계획이었다. 생각보다 빠듯한 일정에 놀라기도 했지만 수많은 북유럽의 크리에이터들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에 설레었다. 본 연재글에서는 전시에 참여한 각 브랜드들의 소개보다는 전반적인 행사 분위기와 그 흐름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각 브랜드들의 자세한 소개와 스토리는 ‘3 days of design’ 사이트(3daysofdesign.dk)를 방문하면 확인할 수 있다).

 

지난 5월 23일부터 25일까지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3 days of design’의 현장 스케치 ⓒ filippo. bamberghi / 3days of design

 

 

이벤트의 전야제는 상당히 인상적인 행사로 시작되었다. 덴마크를 대표하는 가구 브랜드 중 하나인 몬타나(Montana)가 초청한 프레스팀을 위한 프라이빗 디너. 컬러 디자이너(CMF designer)와 셰프가 함께 준비한 컬러 스타일 디너(Color styled dinner)는 상당히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새로운 시즌에 선보일 컬러 컬렉션과 그 팔레트를 요리에 접목한 신선한 시도였다. 서빙되는 요리 옆에 컬러 팔레트가 디스플레이 되면, 직접 셰프가 등장해 음식의 콘셉트와 컬러 이야기를 설명해 주었다. ‘경험을 디자인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일까.

 


디자이너와 셰프의 컬래버가 인상적이었던 덴마크 가구 브랜드 몬타나 주최 갈라 디너 현장 ⓒ 3 days of design

 

 

다음날 찾은 코펜하겐 시내는 5월의 화사한 햇살을 머금고 디자인 축제 분위기로 한껏 들떠있었다. 거리 곳곳의 스토어들은 빨간 풍선을 걸고 디자인 축제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인을 보내고 있었다. 프레스 투어 첫 프로그램으로 방문한 덴마크를 대표하는 디자인 브랜드 헤이(HAY). 디자인 총괄 디렉터가 새로운 시즌의 방향을 큐레이션하고, 미공개 신제품을 공개한다. 이어 프레스팀을 위해 준비된 오가닉 콘셉트의 (지극히 헤이스러운) 런치 테이블로 안내한다(처음 프레스 투어에 참가하며 알게 된 사실이지만, 각 브랜드들은 이 투어 세션에 상당한 공을 들인다. 프레스팀이 기고하는 기사와 글들이 전 세계에 자신의 브랜드를 소개해주는 광고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때문에 적극적인 브랜드의 소개뿐 아니라 케이터링 준비, 런치 & 디너 테이블 세팅에 와인 파티와 콘서트 기획, 그리고 선물까지. 그야말로 브랜드의 이야기를 꽉꽉 눌러 담은 풀 패키지의 경험을 준비한다).

 

 

디자인 전시뿐 아니라 코펜하겐의 도심 곳곳의 건축물을 둘러보는 것도 흥미로운 경험이다 ⓒ filippo. bamberghi / 3days of design

 

 

인상적이었던 브랜드 세미나 현장이 또 있다. 수백 년은 되어 보이는 건물의 입구에 들어서자 미니멀하고 현대적으로 리모델링된 대비적인 공간이 나타난다. 특히 건축을 전공한 셰프가 준비한 케이터링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정갈하고 잘 디자인된 음식에 사람들은 선뜻 손을 대지 못하고 사진 찍기에 바쁘다. 테이블웨어를 디자인하는 브랜드가 케이터링의 스토리와 공간의 이야기를 한 그릇에 잘 담아낸 것이다. 이는 우리에게 전혀 다른 경험을 제공하고 있었다. 단순히 ‘그 제품 예쁘더라’가 아니라 그 공간과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도록 만들고 있었다. 영리하고 지혜로운 발상이다.

 

투어 코스 중 또 하나 흥미로웠던 점 하나는 코펜하겐에 위치한 다양한 국가의 대사관들이 이 디자인 축제에 참여한다는 것이었다. 스위스 대사관, 핀란드 대사관, 프랑스, 포르투갈 대사관 등에서는 자국을 대표하는 디자인 브랜드와 상품들, 그리고 디자이너가 큐레이션을 했다. 소개되는 디자인 브랜드도 흥미로웠지만 각국의 대사관저를 둘러보는 것도 또 다른 볼거리였다. 특히 각 나라를 대표하는 기관이다 보니(코펜하겐이라는 도시에 있지만) 자국의 전통과 문화를 표현한 인테리어와 공간의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코펜하겐시의 지원을 받은 교통수단도 즐거운 경험을 더해주었다. 투어의 스폿에 따라 자전거, 버스, 수상보트로 구성된 이동 수단을 이용하게 된다. 대부분의 디자인 전시행사는 특정 전시공간에 한정되어 치러지는 것이 대부분인데 반해 ‘3 days of design’의 경우 도심 전체에서 행사가 이뤄짐으로 이 같은 이동 수단은 상당히 편리했다. 이동 중에 경험하는 코펜하겐의 도심 풍경은 덤으로 얻는 즐거운 경험이었다.

 

 

다양한 방식으로 디자인의 철학과 스토리를 전하는 브랜드들 ⓒ filippo. bamberghi / 3 days of design

 

 

세미나, 콘서트, 전시기획 등 브랜드의 스토리를 전달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 filippo. bamberghi / 3 days of design

 

 

흐릿해지는 경계들
두 번째 날 프레스 투어는 덴마크의 디자인 거장의 오브제가 전시된 핀 율 하우스(House of Finn Juhl)에서 시작되었다. 순간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이 공간을 채운다. 정갈하게 놓여있는 테이블, 의자, 조명들이 흐르는 음악과 어우러져 그 공간을 하나의 이야기로 묶어버리는 듯했다. 사람들은 하나둘 공간에 무심하게 놓여있는 핀율의 의자에 앉아 음악에 심취하고 있었다. 피아노 콘서트를 기획한 핀율 하우스의 디렉터도 바로 이 총체적인 경험을 강조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단순히 좋은 기능이나 멋진 디자인만을 원하지 않는다. 오브제가 주는 이야기, 경험 등을 바라보고 귀를 기울인다. 다양한 분야의 경계선이 점차 흐릿해지고 서로를 넘나드는 크로스오버(cross-over) 현상은 이미 일상이 되어 가고 있었다. 같은 맥락으로 과거 통상적으로 불리던 프로덕트 디자이너(product designer)가 일반적으로 제품의 외관 형상을 디자인하는 직업군이었다면, 이제 그 범위는 더욱 넓어졌다. 예를 들어 소셜미디어 서비스인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도 인하우스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존재한다. 그들이 정의하는 프로덕트는 UX/UI 디자인, 서비스 디자인, 웹디자인 등이 포함된다. 디자이너들이 이제는 보다 넓은 스펙트럼을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다.

 

 

지금 북유럽에서 힙한 브랜드의 스토리텔링을 경험할 수 있는 세미나 현장 ⓒ filippo. bamberghi / 3 days of design

 

 

필자는 프레스 투어 기간 동안 이 ‘흐릿해지는 경계’를 다양한 브랜드를 통해 수차례 경험할 수 있었다. 현시대 문화의 흐름이자 트렌드로 보인다. 특히 이 글을 읽는 디자이너, 그리고 전공 중인 학생들은 이 부분에 주목하길 바라본다. 나는 ‘UX 디자이너가 되겠다’, 혹은 ‘제품 디자이너가 되겠다’라는 목표는 이제 더 이상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디자이너’라는 직업의 성격은 복합적이며, 동시에 매력적이 되어가고 있으니까.

 

 

도시 전체가 디자인 축제로 물드는 ‘3 days of design in Copenhagen’의 현장 스케치 ⓒ 3 days of design

 


루프탑 갤러리에서 열린 프레스 갈라디너 현장 ⓒ 3 days of design

 

 

지난 연재에서 언급했듯이 북유럽의 디자인을 들여다보면 다양성과 브랜드의 깊이에 놀라게 된다.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에 강점을 보이는 이들 뒤에는 상당한 안전망(Safty net)이 존재한다. 새로운 브랜드 창업의 현실적인 부분에 대해 정부가 지원해주고 또 보호해준다. 때문에 브랜드의 론칭 혹은 론칭 후의 실패에 대해 이들이 느끼는 두려움은 우리의 그것과는 다르다. 물론 어느 디자인 분야를 막론하고서라도 신생 브랜드의 론칭은 쉽지 않다. 더불어 브랜드의 역량과 디자인 퀄리티 등은 치열할 정도로 높아져만 간다. 하지만 도전과 실패에 대한 사회적 인식, 그리고 현실적인 지원 덕분에 이곳 디자이너들은 보다 자유롭게 본인들의 열정을 드러낼 수 있어 보인다.

 

학교 졸업 후 대기업 디자이너가 되는 것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현실을 들여다보게 된다. 이 같은 현상은 역설적이게도 다양한 디자인 분야의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첨단 분야의 전자제품 디자인에 있어서는 강점을 보이지만 그 외 제품군의 디자인 경쟁력에 있어서는 아직 갈 길이 먼 현실이 이를 반증해주고 있다. 젊은 디자이너들이 들어설 수 있는 길이 여러 갈래가 되길 바라본다. 무조건 험난해 보이는 길들이 아니라, 각기 나름의 빛을 발하는 매력적인 이정표가 곳곳에서 있는 미래를 그려본다.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디자인 경쟁력의 발전과 그를 바탕으로 또 다른 가능성을 연결해주는 파워풀한 링크가 필요한 때이다.

 

‘3 days of design’은 평소 지나치던 브랜드들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였고, 그 이면에 숨어있는 그들의 도전과 비전을 접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 시간을 통해 앞으로 우리 디자인의 미래와 방향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더불어 이번 프레스 투어를 통해 헤이, 노만 코펜하겐(Normann Copenhagen), 프리츠 한센(Fritz Hansen) 등의 크리에이터들과 ‘디자이너 토크 세션’을 함께 진행하기로 하고 서로 명함을 주고받았다. 앞으로 진행될 이 세션들을 통해 보다 다양하고 깊이 있는 북유럽의 디자인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글_ 조상우 스웨덴 Sigma Connectivity 사 디자인랩 수석 디자이너(www.sangwooch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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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우 디자이너
현재 북유럽 스웨덴에서 산업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삼성전자 모바일 디자인 그룹 책임 디자이너, 소니 모바일(Sony mobile) 노르딕 디자인 센터를 거쳐, 현재 스웨덴 컨설팅 그룹 시그마 커넥티비티(Sigma connectivity), IoT 부문 수석 디자이너로 근무하고 있다.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근원지에서 살아가며 느끼는 경험들을 바탕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한다.www.sangwooch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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