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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가구와 조각 사이

2019-09-03

‘가구’하면 떠오르는 것은 형태와 기능이다. 물건을 수납하기 좋은 반듯한 모양과 무엇에 쓰이는지에 대한 용도 말이다. 우리는 가구를 말할 때 그러한 목적성에 최적화된 것들을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가구가 그러한 것은 아니다. 여기에 그런 생각들을 뒤집어줄 가구들이 있다. 권오상, 김민기 작가의 협업 가구들이다. 

 

이들의 가구는 우리가 그동안 보아온 가구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가구’로 보이는 것들도 있지만, ‘이게 뭘까’ 하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것들도 많다. 기하학적인 형태의 조합이지만 의자임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가구부터 무엇에 위한 것인지 쉽게 추측할 수 없는 가구까지. 그들의 가구가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에서 전시된다. 

 

권오상 작가와 김민기 작가의 협업 가구전 ‘가구(Furniture)’ 포스터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가구(Furniture)’ 전시 전경

 

 

전시장에 들어서면 공간의 특성상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전시공간에 독특한 형태로 이루어진 여러 가구들이 설치돼 있다. 컬러도 가지각색이다. 이 가구들은 어떻게 탄생하게 됐을까. 

 

〈뉴 스트럭쳐〉, 〈릴리프〉 시리즈를 제작한 후 남은 자작나무 합판이 작업실에 쌓여가는 것이 아깝다고 생각한 권오상 작가는 이것들을 어떻게 활용할까 생각했다. 후배이자 동료인 김민기 작가에게 이것들을 이용해 작업실에서 사용할 가구를 제작해달라고 했다. 이때부터 이들의 협업관계는 시작됐다. 권오상 작가의 작업에서 남겨진 재료를 사용해 가구를 디자인하고, 그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으며 두 작가의 협업 가구들이 만들어졌다. 

 

두 작가의 협업 가구 중 첫 번째 결과물 〈녹색 스툴(Green-colored Stool)〉 시리즈, 2018, acrylic on plywood, varnish, 39(h)x34.5x58cm, 39(h)x73x40cm, 39(h)x48x44.5cm

 

 

첫 결과물은 다섯 점의 녹색 스툴이었다. 〈뉴 스트럭쳐〉(2014~), 〈릴리프〉(2016~) 시리즈를 제작후 남은 잔여물을 랜덤하게 잘라서 만든 스툴로, 다양한 색의 층 위에 녹색을 덮고 모서리를 긁어내는 등, ‘파티나(patina)’를 연상시키는 공예적 방법을 시도했다. 

 

중앙에 커다랗게 무언가 잘려나간 모습이 그대로 살아있는 합판 사이로 맞은편이 보인다. 그런 합판을 조합해 파티션이 만들어졌다. 합판 사이 구멍 사이에는 와이어로 장식이 돼 있다. 파티션의 본래의 기능과는 동떨어져 있지만 공간을 분리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위한 오브제다. 가구에 사용된 색은 모두 권오상 작가가 작품에 사용했던 색이다. 이 색들로 김민기 작가가 회화적인 요소를 가미했다. 

 

의자에 시바툴(sibatool)을 얹힌 시바툴 의자에는 손으로 주물러 만든 표면이 그대로 살아있다. 이의자에 앉으면 큰 돌에 걸터앉은 느낌일 것 같다. 거친 손작업은 감성은 콘솔과 테이블 다리에서도 볼 수 있다.  

 

〈콘솔(Console Cabinet)〉, 2019, acrylic on plywood, varnish, 188(h)x70x66cm

 

 

콘솔은 권오상 작가가 생각하는 대표작이기도 하다. 일반적인 콘솔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지만 물건을 올려두거나 수납도 가능하다. 

 

〈반지 보관대(Ring Storage Rack)〉, 2019, acrylic on plywood, varnish, 195(h)x120x80cm

 

 

전시장 중앙에 조각품같아 보이는 가구는 반지 보관대다. 작업을 하다 보면 반지가 망가지는 일이 많아 반지를 빼고 작업을 하는데, 반지를 둘 곳이 마땅치 않아 제작하게 됐다고 한다. 가운데 부분이 반지를 올려두는 곳으로, 빨간색 페인팅으로 강조했다. 김민기 작가는 이 작품을 어지러운 스튜디오 공간 안에서 X자의 원점 좌표로 기능하도록 고안했다. 

 

〈공구진열대(Tool Display Table)〉, 2019, acrylic on plywood, varnish, 113(h)x150x40cm

 

 

공구진열대와 스탭퍼는 작업실에서 꼭 필요한 가구이기도 하다. 피아노나 책상, 장난감 상자를 떠오르게 하는 공구진열대는 다른 물건을 수납하거나 올려두기에도 적당할 것 같다. 스탭퍼에 달린 체인은 장식적 요소다. 작가들은 분명한 기능을 지닌 이 가구에 옆면의 패턴과 체인을 통해 장식물이라는 용도를 부여했다. 잘린 합판에 바퀴를 달아 물건을 옮길 때 사용할 수 있도록 수레도 만들었다. 

 

대리석 소조대는 작업실에서 사용되는 일반적인 도구로 보이지만 사실 이 도구는 전혀 일반적이지 않다. 과거 조각 재료로 가장 사랑받았고, 고급스러운 가구 재료로 사용되는 대리석은 작품이 아닌 작업을 위한 도구가 됐다. 물론, 대리석을 상판으로 한 대리석 테이블도 있다.

 

〈뉴 스트럭쳐 체어(New Structure Chair)〉 시리즈, 2018, Chinese ink on wood, varnish, 94(h)x42.5x39cm, 175(h)x40.5x39.5cm

 

 

다른 가구를 위해 만들어진 가구도 있다. 100년 된 목문(木門)으로 만들어진 테이블을 위해 제작한 뉴 스트럭쳐 체어다. 작가들은 테이블의 문화적, 역사적 맥락을 고려해 등받이를 높게 하고 먹칠로 마감했다. 

 

(왼쪽부터)권오상 작가와 김민기 작가

 

 

권오상 작가는 새로운 방식을 끊임없이 모색하며 다양한 범주에서 조각적 의미를 실험하고, 김민기 작가는 기능과 가치를 상실하고 버려진 사물들 각각의 개별 역사를 기리는 작업을 하며 실제 가구들을 제작하기도 했다. 이들은 그간의 작업들과는 다소 상반되는 의도로 이번 작업에 임했다. 권오상 작가는 조각보단 가구로써 이번 작업을 바라보았고, 김민기 작가는 조각으로 작업에 접근했다. 

 

이들의 전시 제목은 ‘가구(Furniture)’로, 어떠한 형용사나 수식어 없이 이들이 말하는 가구를 보여준다. 전시장에서는 ‘가구’를 떠올렸을 때, ‘가구’라는 전시명을 들었을 때 그리고 이 두 작가의 가구를 보았을 때의 생각들이 교차한다. 가구 같지만 조각 같은, 조각 같지만 가구 같은 두 작가의 가구는 가구와 조각 사이 혹은 그 접점에 대해 살펴보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전시는 12월 8일까지다. 

 

에디터_ 최유진(yjchoi@jungle.co.kr)
사진제공_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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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에디터
감성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디자인, 마음을 움직이는 포근한 디자인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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