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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스토리⨉디자인] 마스크 이야기

2020-04-30

2020년 새해가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우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 이하 코로나19)와 관련된 중대 뉴스와 이슈 없이 지나치는 날이 없을 만큼 코로나와의 싸움 속에서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통에 전 세계 인류 사이에서 새롭게 떠오른 범(汎) 글로벌적 생활 필수품이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마스크다.

 

3M 수술용(의료용) 마스크는 현재 유럽에서 일반인들 사이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표준형 MNS(mouth nose protective mask)다. Courtesy: 3M 

 


대기오염에 대한 대책으로 공해 마스크 착용이 일상화돼 있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양권 나라들과는 달리 구미(歐美) 서구인들에게 마스크란 병원 의료인이나 환자만 쓰는 전문 의료품이었다. 이번 코로나19의 확산을 계기로 전 세계 어딜 가나 마스크 착용자가 그렇지 않은 경우 보다 많아졌다. 인터넷 소셜미디어와 언론 사이트에는 마스크 착용법과 집에서 직접 만들어 쓸 수 있는 DIY 마스크 만드는 법을 공유하는 다양한 정보와 아이디어가 넘쳐나고 있다.

 

18세기 유럽 의사들이 입었던 방역 마스크와 방역복. 얀 반 그레벤브뢱(Jan van Grevenbroeck, 1731~1807), 흑사병 유행 시절 활동하던 베니스의 전염병 의사. 종이에 펜, 잉크, 수채 Collection: Museo Correr, Venice

 

 

사실 세계 보건 의료사(史)를 살펴보면 마스크의 유래는 수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럽에서 르네상스 시대 사람들은 흑사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 손수건으로 코를 가렸다고 하며, 17세기 이후부터 19세기까지 역병이 돌 때마다 흑사병 의사들이 새 부리처럼 뾰족하게 생긴 가면을 쓰고 진찰을 다녔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마스크의 원형은 20세기 초 1910년 북만주를 휩쓸었던 폐흑사병 때 우롄더(伍連德)라는 의사가 고안한 것이다. 병균이 공기를 통해 감염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우롄더 박사는 거즈와 무명천을 겹겹이 얻어 코와 입을 막은 후 길게 자른 거즈로 얼굴과 머리통을 감아 고정시키도록 디자인했는데, 이 초기 헝겊 마스크는 이후 1918년에 유럽과 미국을 휩쓴 스페인 독감 때 위력을 발휘하며 불티나게 팔려나간 히트 위생 상품이 됐다.

 


마스크를 통한 폐흑사병 침투율을 실험 중인 우롄더 박사(우측)과 에버슨 박사. 1916년. 사진 출처: CRASSH / University of Cambridge 

 


그로부터 꼭 한 세기가 지난 지금, 다시 한번 마스크는 생활 필수 소비재로 떠오르며 세계 최고 ‘히트 상품’으로 등극했다. 우리가 널리 사용하는 마스크는 본래 여성용 속옷인 브래지어에 사용할 의도로 만들어졌단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미국 특허청 기록에 따르면 지금으로부터 약 60년 전인 1961년, 3M 사는 혁신적인 브래지어 디자인 특허권을 출원했다(자료: 미국 특허청, 특허출원번호 3,064,329). 이때 브래지어 디자인을 담당했던 주인공은 3M 자문 디자이너로 일하던 여성 디자이너 사라 리틀 턴불(Sara Little Turnbull, 1917~2015)로, 그녀는 3M이 새로 개발한 첨단 폴리머 주형 기법이 지닌 잠재력을 일찍이 직감했다.

 

3M에서 디자인 자문을 하던 사라 리틀 턴불은 1961년 뻣뻣한 폴리머를 녹여 고압 공기로 미세섬유에 주입하는 공법을 응용해 만든 포장용 리본을 개발해 문구 시장을 강타했다. Photo: Unsplash 

 


폴리에스터 섬유를 녹여 고압 공기를 미세섬유에 주입시켜 형상을 가하는 방식으로 생성된 부직포 브래지어 컵은 통기성이 좋고 형체 유지성이 우수한 것이 장점이었다. 3M이 이 첨단 부직포 브라의 시장 출시에 한창이던 사이, 세상은 갑자기 변했다. 3M 사에 전해 내려오는 사내 야사가 이르건대, 1960년대 말부터 미국과 유럽의 청년들 사이에서 번지기 시작한 반문화 운동과 페미니즘을 계기로 여성용 속옷 시장은 새 유행 국면을 맞았다. 1940~50년도부터 유행하던 뾰족 봉긋한 뽕이 들어간 일명 ‘총알 브라(bullet bra)’가 여성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당하기 시작하자 3M이 시장 출시를 앞두고 있던 사라 리틀의 부직포 브라는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사라 리틀 턴불이 디자인한 부직포 브라컵 스케치

 

 

1961년 특허 출원한 3M 부직포 브라컵 디자인. Courtesy: Design Museum Foundation

 

고온주형된 부직포 브라컵을 필터가 달린 산업용 호흡 마스크로 변신시켰다. Image: Unsplash 

 


마침 때는 당시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기 시대, 미국 군사 산업계에서 탄소섬유 필터가 장착된 화학무기 대피용 공기 필터 마스크를 산업용으로 전환해 활용하던 시기였다. 눈부신 경제성장과 산업화에 따른 급증하는 석탄 수요에 맞춰 광산업이 번성하던 당시, 미국과 유럽에서는 광부용 흑진폐증 예방용 산업용 방진 마스크에 대한 수요가 높았다. 당시 광부들이 사용하던 호흡 마스크는 등에 산소통이 연결돼 무겁고 거추장스러우며 착용이 덥다는 것이 문제점이었다는 점을 간파하고, 사라 리틀은 N95 마스크 특유의 혁신적 디자인 요소들 - 예컨대, 반원형 또는 3차 접이식 코입 덮개, 주형 부직포 소재, 신축성 있는 귀걸이 스트랩, 금속 코 클립 - 을 추가시켜 개선했다. 

 

이렇게 해서 원래 부직포 브라컵은 호흡과 착용이 월등히 간편함과 동시에 기름을 제외한 대기 중 미세오염물질과 균을 95% 이상 효과적으로 걸러내는 N95 호흡 마스크(Not resistant to oil, 95% -NIOSH 기준, respirator)로 재탄생했다.

 

미국질병예방센터(CDC) 승인된 ’N95’ 호흡 마스크(repirator)는 크게 산업용 방진 마스크(왼쪽, Photo: Jonathan J. Castellon, Source: Unsplash)와 의료용 미립 물질 여과 마스크(오른쪽, Courtesy: 3M) 두 가지가 있다. 성능 최적화를 위해 얼굴에 밀착되도록 반원형 컵 모양에 귀걸이 스트랩과 금속 코 클립을 갖췄다. 

 


실패와 위기는 새로운 기회이기도 하다. 3M 코퍼레이션은 장애물을 지략으로, 고정관념을 사고의 확대로, 딜레마를 기회로 전환시키는 혁신 문화를 발휘했다. 예를 들어 오늘날 모든 사무실 필수품 중 하나가 된 포스트 잇(Post-it®) 노트는 이와 유사한, 실패→혁신→성공으로 승화시킨 3M 사의 기업 문화 연구에서 반드시 언급되는 사례다. 

 

본래 항공기 조립용 초강력 접착제를 개발하던 한 연구원이 실수로 만들어낸 접착력 약하고 압력에 민감한 아크릴레이트 코폴리머 마이크로스피어라는 접착제가 끈적임 없이 접탈착되는 포스트잇은 히트 문구 상품이자 기발한 아이디어의 심볼이 되기까지 무려 10년에 걸친 재개발과 끈질긴 사내외 설득 과정을 거쳤다는 뒷이야기는 경영학에서 빠지지 않고 회자되는 혁신 사례다. 

 

불굴의 인내와 끊임없는 개선 의지로 ‘창조적 위기’를 ‘혁신적 문제해결력’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는 말은 공허한 미사여구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3M의 사내 개발 연구소의 ’30% 룰’에서도 입증되듯, 3M 최대 히트 상품들 중 30%는 한때 실패한 프로젝트였었다고 하니 말이다. 


글_ 박진아 객원편집위원(jina@jinapa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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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COVID #마스크 #스토리디자인 

박진아 칼럼니스트
미술평론가, 디자인 및 IT 경제 트렌드 평론가, 번역가이다. 뉴스위크 한국판, 월간디자인의 기자를 지냈고, 워싱턴 D.C. 스미소니언 미국미술관, 뉴욕 모마, 베니스 페기 구겐하임 갤러리에서 미술관 전시 연구기획을 했다. 현재 미술 및 디자인 웹사이트 jinapark.net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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