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영역

컬쳐 | 인터뷰

[스칸디나비아 디자인 이야기] 북유럽의 세라믹 아티스트를 만나다 - 케르밀커 잉케 빈센츠

2020-05-30

[디자이너 토크 Designer Talk]

 

유약 냄새와 흙먼지 가루, 뜨거운 가마의 열기, 묵직한 클레이들이 쌓여 있던 그곳을 기억한다. 내가 산업 디자인 전공으로 대학에 다닐 때, 바로 옆 강의실이 도자 공예 전공 실기실이었다. 아직도 그 공간의 기분 좋은 냄새와 분위기를 기억한다. 도예, 회화, 조소 등의 순수 미술 분야에서 느껴지는 왠지 모를 신비함이랄까. 우연한 기회로 얼마 전부터 일러스트 작업을 매거진에 연재하게 되었는데 아마 학창 시절 순수 미술에 대한 호기심의 영향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번 디자이너 토크 세션은 덴마크의 세라믹 아티스트와 함께 진행했다. ‘북유럽에서 활동하는 세라믹 아티스트’라니 개인적으로도 상당히 기대가 되는 타이틀이다. 전혀 낯선, 혹은 새로운 분야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늘 호기심을 자극하고 지식의 새로운 문을 열어주기 마련이다. 그리고 항상 그 문 뒤편에는 가슴 벅찬 새로운 인사이트가 기다리고 있다. 

 

유난히 해가 짧던 어느 겨울날, 세라믹 아티스트 케르밀커 잉케 빈센츠(Keramiker Inge Vincents)의 스튜디오를 찾았다. 그녀의 스튜디오가 위치한 예스버가르드(Jægersborggade) 지구는 최근 코펜하겐의 힙스터 거리로 급부상하고 있는 지역이다. 트렌디한 갤러리와 디자인 스튜디오, 미슐랭 레스토랑 등이 모여있는 지역이다.

vincents.dk

 


세라믹 아티스트 케르밀커 잉케(Keramiker Inge)와 함께 ⓒ Keramiker Inge Vincents

 

 
토크 세션에 온 것을 환영한다. 소개를 부탁한다.
반갑다. 세라믹 아티스트 잉케라고 한다. 지난 2008년 스튜디오를 오픈했으니 벌써 이 일을 해온지도 10여 년이 훌쩍 넘어가고 있다. 현재는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 오브제를 디자인, 제작하고 있다. 스튜디오를 시작한 이후로 스스로의 독창적인 디자인 언어를 표현한 제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작품의 주소재가 되는 클레이(Clay)는 매력적인 물성과 특성을 갖고 있다. 작업에 자유도가 높고 동시에 까다로우며, 시작과 끝이 변화무쌍한 매력적인 소재라 할 수 있다. 내가 세라믹 아트에 푹 빠진 이유다.

 

어떻게 세라믹 아트에 입문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사실 학창 시절 나는 순수미술과는 전혀 상관없는 비즈니스 스쿨 출신 경영학도였다. 하지만 한자리에 앉아서 일하는 스타일이 잘 맞지 않았다. 좀 더 크리에이티브한 일을 하고 싶었다. 우연한 기회로 어린 시절 즐겨 갖고 놀았던 찰흙을 사용하는 클레이 아트(Clay art)분야를 접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이 분야의 작업을 해오고 있다. 클레이를 만지는 시간은 마치 명상의 시간처럼 편안하고 고도로 집중하게 해준다. 내가 클레이를 사랑하는 이유다.

 

클레이 아트로 개인 브랜드를 갖는 것은 아직까지 생소하다. 당신만의 브랜드 철학이 있다면.
고유한 언어를 담아내려 한다. 최근의 작업들은 ‘반투명(transparent)’이라는 주제와 투과되는 빛의 이야기를 주요 콘셉트로 한다. 롤링(rolling) 기법을 통해 종이처럼 얇아진 클레이를 기본으로 테이블 웨어를 기본으로 한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 오브제를 제작한다. 전혀 다른 수준의 집중도가 필요한 과정들이다. 이 작품들을 알아본 많은 사람들은 특별한 프로모션이나 광고 없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스튜디오를 방문한다. 이곳 북유럽뿐 아니라 지구 반대편에서도 자주 연락을 받는다. 이 시대 미디어의 힘은 대단한 것 같다(웃음).


브랜드의 방향성은 생산 베이스의 작업을 기반으로 한다. 다시 말해 (수작업 공정임에도) 어느 정도 대량 제작이 가능하다. 때문에 가격도 합리적이고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접근할 수 있다. 실제 많은 아티스트들이 자신의 작품을 고가로 내놓기도 하는데 나는 방향성이 조금 다르다. 보다 대중적이고 많은 사람들의 생활 공간에 나의 제품들이 놓이길 바란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아주 극소수의 아티스트들만이 본인이 하고 싶은 영역을 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결코 쉽지 않은 길이라는 이야기다. 이 때문인지 많은 신세대 아티스트들은 쉽게 지치고 인내하지 못하는 경향을 보인다. 한 분야에서 인정받으려면 시간, 바로 시간이 필요한데도 말이다. 스스로에게 어떤 제한이나 한계를 두지 않았으면 한다. 스스로의 작업에 명확함과 확신이 있어야 하고 그 특별함에 포커스와 깊이를 만들어 가는 것이 핵심이다. 


세라믹 아트의 프로세스가 궁금하다. 여느 디자인 분야의 그것과는 다를 것 같은데.
독특하게도 나는 스케치를 하지 않는다. 클레이라는 창의적인 소재에 집중하며 오로지 손끝의 감각에 집중하여 스토리를 만들어나간다. 현재 진행 중인 작업들은 종이처럼 얇은 반투명(Translucent)의 형상을 가지며, 이를 통해 투과되는 빛의 이야기를 담아 구조를 만들어 나간다. 이 같은 콘셉트는 유니크한 형상과 디자인을 탄생시켰다. 또한 유약의 특성이라든지 가마에 굽는 온도 조절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쓰여지므로 모든 과정의 디테일에 신경을 쓴다. 그렇게 완성된 투명한 화이트 컬러, 독특한 텍스처, 직관적 구조 등이 하나의 디자인 언어를 만들어 내고 있다. 다시 말해 나에게는 규정화된 프로세스는 없다. 모두 수작업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매 순간 변형하고 진화한다. 

 

클레이 아트 혹은 세라믹 아트의 매력은 무엇인가.
이 분야는 순수 아트와 상업적 아트의 중간지점이라 볼 수 있다. 순수한 수공예 작품이지만 일상의 생활용품을 만들어낸다. 회화, 조각, 공예 등 많은 순수 미술작품들은 벽에 걸어놓거나, 거실에 장식하거나 바라보는 식이다. 하지만 세라믹 아트는 직접 꽃병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커피잔으로, 혹은 물병으로 활용한다. 우리 일상의 한 부분으로 스며드는 작품이기에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제작되는 나의 작업들도 대부분 일상생활에서 활용 가능한 오브제들로 구성된다. 누군가의 삶 속 한부분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반투명과 롤링 기법을 활용한 작업 과정 ⓒ Keramiker Inge Vincents

 

독특한 형상과 텍스처가 돋보이는 작품들 ⓒ Keramiker Inge Vincents

 

 

북유럽에서 세라믹 아티스트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역사와 전통을 가진 로얄 코펜하겐(Royal Copenhagen)은 덴마크의 대표적인 세라믹 브랜드다. 그만큼 덴마크의 세라믹 아트, 즉 도자기 공예는 오랜 역사와 의미를 담고 있다. 특히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유산을 그 어느 분야보다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는 것이 세라믹 아트라 생각한다(참고로 덴마크의 뮤지엄을 방문한다면 세라믹 아트의 역사와 방대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이렇게 역사와 전통이 잘 자리 잡은 덴마크에서 세라믹 아티스트로 활동한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안목 높은 고객층이 있고, 다양한 문화활동이 있고, 무엇보다 예술 분야를 적극 지지하는 나라의 분위기도 한몫한다. 

 

많은 작가들이 그들의 작품을 홍보하기 위해 관련 전시나 페어에 참여하는데. 
상당히 좋은 기회임은 분명하다. 새로운 제품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이며 네트워크를 하기에도 좋다. 지난 2007년 한국의 광주 비엔날레 작가로 초청되어 방문한 적이 있다. 한국의 도자기는 이미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는 분야이기에 인상적인 경험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방문해보고 조금 더 공부해보고 싶다(웃음).  

 

작업 중인 잉케 ⓒ Keramiker Inge Vincents

 

 

일반 대중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세라믹 아트만의 특별함이 있다면.
바로 모든 작업이 수작업(Hand made)이라는 점이다. 때문에 모든 작품의 형상은 다르다. 똑같이 복제될 수가 없는 것이다. 가령 고객이 거실에 놓을 꽃병을 고른다치자. 제품들은 모두 비슷한 형상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전혀 다르다. 때문에 고객들이 같은 꽃병을 고를 때에도 자기 마음에 끌리는 것을 고르게 된다. 바로 이런 제품과의 교감은 중요하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찍어낸 공산품과는 다르다. 또 하나를 들자면, 클레이라는 소재는 아이들의 교육 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손의 감각, 촉감, 형태, 입체감을 느끼며 성장해 나가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이유로 덴마크의 일부 학교의 커리큘럼에 클레이 교육이 포함되어 있다. 아이패드를 손에 들고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북유럽의 아티스트로서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영향을 받고 있는가.
어린 시절부터 이곳에서 자라왔기 때문에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유산’이 갖고 있는 특별한 영감이나 인사이트에 주목하지는 않는다(익숙해졌기 떄문일지도). 하지만 북유럽의 자연, 문화,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어떤 부분들은 내 작업세계에 스며들었을 거라 생각한다.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에는 분명 설명하기 어렵지만 강력한 힘이 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면 소개해달라.
행복한 질문이다. 하지만 한두 가지로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너무나 많은 작업들을 해 왔기에 (웃음).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 내는 것 자체가 좋은 프로젝트라 생각한다. 현재 작업 중인 결과물에 충실하고 싶다. 그 작품들이 특별한 기억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세라믹 아타스트에 관심 있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부탁한다. 
당신이 경험한 모든 것들을 모아서 당신만의 ‘배낭’에 잘 넣어두길 바란다. 언젠가는 모두 꺼내서 쓰게 된다. 다시 말해 우리가 매 순간 마주하는 모든 경험은 가치가 있다. 때문에 지금의 순간을 즐기고 그것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의 소셜 미디어에 너무 많은 시간을 들인다. 그것은 절대 현재를 사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진짜 세상에 커넥트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하고 소통하는 것이 디자이너한테는 더더욱 필요하다. 그렇게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길 바란다. 호기심을 갖고 그 이야기를 만들어가다 보면 분명 흥미로운 기회로 이어질 것이다.

 

앞으로의 비전이 있다면.
모든 일에는 시간과 공력이 필요함을 잘 안다. 오늘의 현재에 집중하고 지금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작품에만 집중하려 한다. 지금 이 순간들이, 경험이 나에게 배움을 줄 것이며, 다음 단계를 향한 밑거름이 된다고 믿는다. 미래는 오늘의 현재가 쌓여 다가오는 게 아니겠나.  

 

 

다양한 재료와 작품들로 가득한 그녀의 스튜디오 ⓒ Keramiker Inge Vincents

 

스튜디오 전경 ⓒ Keramiker Inge Vincents 

 


문화를 만들다 
이번 토크 세션을 계기로 순수 예술 분야에 대한 호기심이 더욱 강해졌다. 개인적으로도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가는 것을 즐기기에 앞으로 마주하게 될 순수미술 영역의 작품들을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될 것 같다. 스스로의 영역을 구축하고 예술적 언어로 풀어 대중들과 교감할 수 있는 반열에 오른다는 것은, 이곳 북유럽에서조차 꽤나 고되고 치열한 이야기였다. 오늘날 순수 예술작품이 상업적 성공을 거두는 것이 뉴스화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열정과 호기심으로 오롯이 그 길을 가는 수많은 그들이 있기에 우리의 삶과 일상은 놀라울 정도로 풍성해진다고 말하고 싶다. 그 작품들에는 분명 수많은 영감(Inspiration)과 열정(Passion) 그리고 문화(Culture) 가 존재한다(지금의 우리에게 절실한 것들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현실의 시간을 마주하다 보면 이런 단어들을 놓치며 살아가기 십상이다. 

 

우리의 삶을 채울 수 있는 것은 무궁무진하지만 개인적으로 꼭 채워놓고 싶은 것이 바로 문화(Culture)다. 우리가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일상의 패턴들, 특별하거나 건조한 경험들, 그리고 이를 아우르는 스토리텔링은 결국 스스로의 문화를 이루는 재료가 된다. 잘 다듬어진 나만의 문화는 미래를 위한 원동력, 동기부여, 에너지라는 멋진 엔진을 달아줄 것임을 우리는 안다. 그렇게에 지금 이 순간에도 문화의 재료를 만들어내는 그들의 행보가 반갑다. 


글_ 조상우 객원편집위원(www.sangwoocho.com)
 

facebook twitter

#북유럽 #세라믹아티스트 #케르밀러잉케빈센츠 #세라믹아트 #디자이너토크 #북유럽디자인 #스칸디나비아디자인이야기 

조상우 디자이너
현재 북유럽 스웨덴에서 산업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삼성전자 모바일 디자인 그룹 책임 디자이너, 소니 모바일(Sony mobile) 노르딕 디자인 센터를 거쳐, 현재 스웨덴 컨설팅 그룹 시그마 커넥티비티(Sigma connectivity), IoT 부문 수석 디자이너로 근무하고 있다.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근원지에서 살아가며 느끼는 경험들을 바탕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한다.www.sangwoocho.com

당신을 위한 정글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