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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인터뷰

[포커스 인터뷰] 디자이너에서 글을 쓰는 작가로, 디자이너 출신 작가 김운기 

2023-06-29

디자이너로 활동하다 전혀 다른 분야에서 일을 하는 이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이들이 새로운 직업에 대해 갖는 공통된 생각은 디자인을 통해 또 다른 일을 하게 됐고, 그 일 역시 디자인과 관련된 일이라고 여기는 점이다. 

 

김운기 작가

 

 

디자이너 출신 김운기 작가도 그러했다. 그는 30여 년간 건축디자인을 했지만 한문학자로 변신, 글을 쓰는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대 디자인 학부에서 환경디자인을 공부한 그는 대우, 현대 등에서 전시기획과 설계 등을 하며 직장생활을 했다. 88서울올림픽이 끝나고 환경, 인테리어 등 공간디자인과 건축 분야의 수요가 많아지면서 1995년부터는 직장에서 독립, 직접 건축회사를 운영했다.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디자인을 해 온 그는 2018년부터는 자문 이외에 건축 관련한 실무는 하지 않는다. 현재는 한문 고전 번역과 전공 분야의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김운기 작가로부터 디자이너로서의 그의 경험과 작가가 된 계기 등, 제2의 직업에 대해 들어보았다. 

 

Q. 어떤 디자인 작업을 하셨나.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를 소개해달라. 


대우와 현대에 근무할 때는 그룹의 국내·외 전시, 박람회 업무는 대부분 맡아 했습니다. 기억나는 정도는 SITRA’82 대우그룹관, 시애틀 조선 박람회 한국관 등이 있었고, 전경련 내 현대그룹 홍보관, 풍산기업관 등의 설계와 콤페티션 형태로 당선된 설계업무로는 전주시청 홍보관, 용인 양지리조트, 사이판 월드리조트 별관 등의 설계가 있습니다. 

 

인테리어 분야로는 세계적인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인 바피아노 뮨헨, 서울, 런던 등의 매뉴얼과 쟈크데샹쥬 미용 프랜차이즈의 서울, 파리 인테리어 매뉴얼 작업, 동대문 두타몰 인테리어 기획이 기억에 남습니다.

 

Q. 어떻게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됐나. 언제부터 글을 썼는지,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건축회사를 운영할 당시 설계업무만으로 회사를 운영하기에는 시장 규모가 작았기 때문에 건축시공까지 겸해야 했습니다. 고된 작업의 틈새에 휴식이 필요한 시간이면 헌책방이나 고서점에 있기를 좋아했고, 어느 정도 회사경영이 안정되면서 고문서나 고서를 수집하는 것이 취미가 됐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고서 수집이 30년이 넘었고, 훈몽서 분야의 보유 도서는 국내 최대 장서가에 속합니다.

 

이런 일은 한문 실력을 갖추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서 2012년부터 한문교육기관에서 한문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2017년에 공주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해 한문학 석사와 박사과정을 마쳤습니다.

 

2000년에 시집 <그대에게>를 상재하면서 문단에 나와 지금까지 세 권이 넘는 시집을 발간했고, 문단 활동을 꾸준히 하면서 언론 등에 고서 관련 칼럼을 고정적으로 써 왔습니다. 2020년부터는 <맹자외서> 등 여러 권의 한문 번역서를 출간했고, 학술지에 연구 논문을 발표하는 등 한문 관련 저술일을 하고 있습니다. 문학 활동은 삶에 활력소가 되는 정신 수양의 일환이지만, 한문 관련 저술이나 연구는 제2의 직업으로, 오랫동안 준비해 온 한문학자의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Q. 디자이너로서의 경험이 글을 쓰는데 어떻게 도움이 됐나.


대우에 근무하던 1982년부터 <월간 디자인>지에서 2년 여간 객원기자로 일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도 디자인 작업과 글쓰기가 별개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으므로 디자인 업무와 할당 기사가 제법 많았어도 생소하거나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표현하는 장르가 다를 뿐 전달하고자 하는 구체적인 메시지는 같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문학적인 글쓰기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저널이라는 사실성에 기반한 디자인지의 기자 경험은 매우 가치 있는 것이었습니다. 디자인 작업을 하면서는 고객의 소구에 우선하는지 점검하게 되고, 글을 쓸 때는 전달 요소들이 객관적이고 시각적으로 명징한지를 살피게 됩니다. 디자인 작업과 글쓰기가 유기적인 관계로 작용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운기 작가가 새롭게 선보인 <아들에게 선보인 퇴계의 편지>

 

 

Q. 이번 책에 대해서 소개해달라. 어떤 책인가. 


이 책은 퇴계가 아들에게 쓴 편지들을 번역한 책입니다. 제가 박사학위 논문을 쓴 것이 퇴계 가서(家書: 가족 간에 오간 편지)에 관한 연구입니다. 논문을 쓰기 위해서 초벌 번역했던 자료를 정리해서 이번에 책으로 낸 것이죠. 

 

퇴계가 아들에게 써서 남긴 편지는 530여 통이 됩니다. 이는 퇴계 전서 등에는 등재되지 않고 그동안 퇴계 종택에 보관되어 오던 것을 ‘한국국학진흥원’에 위탁 보관시키면서 세상에 드러나게 된 자료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나 후진들에 의하여 가감되거나 편집된 내용이 아니라, 퇴계 자신이 직접 아들에게 쓴 가공되지 않은 삶의 이야기입니다. 위인의 솔직한 내면과 인간적인 참모습을 느낄 수 있죠. 퇴계가 아들에게 쓴 편지 531통을 모두 완역해 이번에 처음으로 세상에 내놓게 된 것입니다.

 

퇴계 이황

 

 

Q.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나.


우리 국민 중에 퇴계 선생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퇴계에 대하여 잘 아는 사람도 정작 드뭅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퇴계의 학문적인 성과나 위인적인 면모만 알려져 있을 뿐, 자연인 퇴계나 그의 삶의 모습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고, 알려진 내용들조차 사실과 다른 설화 수준의 비상식적이고 와전된 내용이 많습니다. 

 

그러나 저는 450년 전 퇴계가 아들에게 직접 쓴 편지를 통해 위대한 현인도 여느 가정의 아버지와 다를 바 없는 오늘날 우리들의 사는 모습이었음을 보여주고자 하였습니다. 퇴계가 아들에게 행한 자녀교육의 공효를 통하여, 지금에도 유효한 ‘사람됨’의 진정한 의미를 찾고, 현대사회가 가야 할 자녀교육의 방향을 제시하고자 했습니다.

 

Q. 다른 직업을 꿈꾸는 후배 디자이너들에게 한 말씀 해준다면.


직업도 삶의 일부입니다. 삶은 자신의 의지와 의도하지 않는 방향으로 귀결될 수도 있으나, 직업은 자신의 의지와 노력 여부에 따라 정해집니다. 간혹 주변에서 직업때문에 표류하고 정착하지 못하는 후배들을 봅니다. 이는 삶에 대한 정밀한 계획이 되어 있지 않거나 직업정신이 견고하지 못할 때 주로 나타난다고 봅니다. 자신을 사랑하듯 삶을 아낀다면 하는 일에도 열정적이기를 권합니다. 

 

정밀하게 세운 계획이고 뜻이 견고하다면 다른 직업을 찾는 것은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는 설레는 일입니다. 다만, 직업을 바꾸고 삶의 수로를 변경하고자 하는 당위성에 대해 대답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하고 간결해야 합니다. 뜻이 다듬어지고 간절할수록 직업정신의 압축강도는 견고한 것이니까요.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Q. 앞으로의 계획은.


제1의 직업이었던 디자이너의 길을 신나게, 열정적으로 30여 년간 살아왔듯이 제2의 직업인 한문학자로서의 직업을 치열하게 살아갈 계획입니다. 오랫동안 꿈꾸며 준비해온 제2의 인생은 제1의 직업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열정이 있었기에 남은 인생의 2단 로켓 추진연료가 됐습니다. 

 

인터뷰어_ 정석원 편집주간(jsw@jungle.co.kr)

에디터_ 최유진 편집장(yjchoi@jungl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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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에디터
감성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디자인, 마음을 움직이는 포근한 디자인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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