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림작가’ 임진순은 멸종위기 동물, 자연, 일상, 그리고 희망을 상징하는 파랑새를 주로 그리는 디지털 아티스트다. 파롱이를 중심으로 파파와 파마가 부모님이고, 파순이, 파닥이, 파뚱이, 파무초, 팔랑이, 파솔라, 파토, 파돌이 등이 일가친척인데 제각각 특성도 있다. 예를 들면 파롱이의 ‘롱’은 ’wrong’으로서 늘 엉뚱한 캐릭터를 뽐낸다. 작가는 파롱이가 곧 자신의 분신이라고 말한다.  

임진순 작가

파롱이와 가족들

파롱이 

임진순 작가의 '멸종위기 동물들'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워낙 좋아했어요. 고등학교 시절 미대에 가려고 마음을 먹었던 적이 있었는데, 과제물을 그려 미술선생님께 보여드리니 제가 그린 그림이 아니라고 하시는 거예요. 고등학생의 그림이 아니라고 하셨죠. 0점을 받았어요. 그런 일이 반복되니 힘이 빠졌고 미대 진학을 포기하게 됐습니다.” 또래에 비해 너무 그림을 잘 그린 덕(?)에 오해를 받았던 그는 미술대학에 진학하지 않았지만 그림을 놓지 않았다. 

임진순 작가가 그린 임진순 작가와 파롱이

스스로를 ‘글림작가’라고 칭한 그는 글도 쓰는 작가다. ‘글림’이라는 말은 ‘글 그리고 그림 쓴다’라는 의미다. 그의 영어 이름은 이끌림(E-Klim). 이끌리는 글림 작업을 하겠다는 뜻이 담겨있다. 첫 직업은 영화잡지 기자였다. 영화 전문지 <프리미어>에서 3년간 기자로 활동했다. 이후에도 쭉 영화일을 했다. 마케팅, 수입, 배급, 제작 등 영화 관련 업무를 20년간 해왔다. 그림작업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계속 병행하고 있는데 영화제 포스터 디자인, 시사 만평, 단행본 삽화, 캐릭터 디자인, 캐리커처, 캘리그라피, CI, BI 등 분야가 매우 다양하다. 

글 작업 분야도 다양하다. 창작스토리공모전 7개 부문 수상, 한글공모전 동화부문 장려상, 어린이청소년 식생활문화 개선사업 뮤지컬 공모전 당선, 시나리오 계약 등의 화려한 이력이 있는 그는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작사가로도 등록돼 있다. 간간히 단행본 윤문도 하고 책 기획 및 집필도 한다. 
학창 시절에는 동아리 회원들과 일제 잔재를 추적하는 <부끄러운 문화 답사기>(1997)를 펴냈고, 2003년에는 <부끄러운 미군 문화 답시가>도 후속편으로 펴냈다. 

<행복은 늘 내 곁에 있어>

2019년에는 100인의 산문집 <행복은 늘 내 곁에 있어>(카모마일북스)을 기획하기도 했다. “페이스북 친구들과 함께 한 작업이었어요. 저의 그림 한 점과 99명의 페친들이 쓴 행복에 관한 글 한 꼭지가 서로 매칭되는 방식이었죠. 초등학생부터 팔순 어르신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작가들이 참여하셨죠.”

그의 그림이 대외적으로 알려진 것은 고 노무현 대통령 5주기 추모 공식 기념품 디자인을 통해서였다. “낙서하는 걸 좋아해서 쉬지 않고 종이에 작은 그림들을 그렸어요. 그러던 어느 날 갤럭시 노트3를 구입하게 됐는데, 거기에 그림 어플과 펜슬이 있었습니다. 그림을 확대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재밌는 거예요. 그걸 이용해서 그림을 그리다 고 노무현 대통령과 관련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죠. 그러던 어느 날 일산에 있는 ‘바보주막’에 갔다가 벽에 낙서를 했는데, 문성근 배우님이 그걸 보고 노무현재단에 연락을 해 인연이 닿았어요.” 그렇게 그의 그림은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전주 현대옥 콩나물박물관 일러스트 작업 등을 하기도 했다. 

‘animal x minimal’ 전시 포스터

‘animal x minimal’전 

‘임진순 개인전_ 함께 사는 세상-정치, 사람, 자연’ 

임진순 작가는 올해 전시를 통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 5월엔 이랜드갤러리로부터 제안을 받아 구로 NC백화점 갤러리에서 아들의 사진과 함께 한 부자전(父子展) ‘animal x minimal’을 열어 총 48점을 전시했다. 9월에는 언론사 ‘더탐사’에서 운영하는 더탐사스튜디오에서 그의 전시가 열렸다. 촛불갤러리의 두 번째 이야기였던 ‘임진순 개인전_ 함께 사는 세상-정치, 사람, 자연’에서 그는 마블링으로 디자인한 동물 작품, 멸종위기동물 작품, 고 노무현 대통령과 관련된 작품 등 총 28점의 작품을 전시했다. 

‘landscape’전 포스터

‘landscape’전 전경

최근엔 복합문화공간 ‘빛이든공간’에서 그의 개인전 ‘landscape’가 열렸다. “모니터를 통해 움직이는 그림, 즉 미디어 아트를 선보이는 전시입니다. 바람 따라 구름이 흘러가고, 파도가 치는 방식입니다. 사실 그동안 포토샵 스타일에 기반을 둔 손그림을 주로 그렸었는데, 어느 날 벡터 기반의 그림이 그리고 싶어졌어요. 깔끔하게 딱 떨어지는 느낌도 해보고 싶었죠. 자연을 주제로 바다, 지평선, 수평선, 섬, 구름, 태양 등 편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들을 그렸습니다. 원색을 사용해 밝은 느낌을 강조했고요. 약 80점 작업물 중에서 대표작을 골라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게 됐습니다.” 
살아 움직이는 듯한 그의 이번 작품들은 ‘빛글림(Bitglim)’ 온라인 사이트에서도 감상할 수 있다. 컴퓨터 모니터는 물론 집에 있는 스마트 TV로도 움직이는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임진순 작가는 자연과 일상에서 주로 영감을 얻어 작업을 하는데 관심 분야가 다양하다. “대부분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일상사, 자연, 환경 등을 주제로 삼고 있는데요.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사회적인 이슈를 그림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오늘은 자연주의 그림을 그렸다가 어느 날 세상이 시끄러우면 이를 주제로 시사만평을 그리기도 하죠. 한 가지 그림만 고집하지 않습니다. 최근에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에게 가족 그림을 그려 드리기도 했죠.” 

디지털을 기반으로 하는 이러한 그의 작품들은 다양한 어플을 통해 탄생된다. “약 5개 정도의 어플을 사용하고 있어요. 그날그날 그리고 싶은 그림, 표현하고 싶은 내용과 방식에 따라 그에 맞는 어플을 활용하고 있는데요. 가장 많이 쓰는 것이 프로크리에이터입니다. 스케치스프로, 어도비프레스코, 아트셋, 어셈블리앱도 자주 사용합니다. 그림을 그릴 때마다 스타일도 달라져야 할 필요가 있는데 다양한 어플을 사용하면 유화, 수묵화, 벡터 방식 등으로 마음대로 표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한글을 주제로 한 임진순 작가의 작품

그는 한글을 주제로도 작업을 했었다. “대부분의 디자이너분들이 그러시겠지만 저도 한글에 관심이 많은 편이었어요. <한글 먹고 싼 지우개 똥>이라는 동화를 써서 상을 받은 적도 있죠. 여기서 멈추지 않고 외국사이트를 통해 제 한글 그림을 알려보고 싶었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한글을 디자인해보기로 하고 ‘ㅎ’을 포인트 삼아 디자인했습니다. 미국의 사이트 소사이어티6, 레드버블 등에 굿즈 작품을 올리기도 했죠.” 이밖에도 임진순 작가의 아트상품은 m.site.naver.com/1fgKO에서 구입할 수 있다. 

임진순 작가

그는 최근 수묵화 느낌의 디지털 작업에 빠져 있다. “다음 전시회를 하게 되면 수묵화 느낌의 그림들을 선보이고 싶어요. 일명 디지묵(digit墨)이라고 이름 붙여봤습니다. 전통적이지 않으면서도 먹의 느낌이 살아있는 느낌의 디지털 작업입니다.”  

먼 미래엔 원화 작품을 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언젠가는 원화를 그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디지털 작업은 그 때를 위한 밑그림이라 생각하고 매일매일 한두 점 이상의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생각나면 그리고, 그리면서 다시 생각하고, 그래서 또 그리는 것이 저의 일상입니다.”

인터뷰어_ 정석원 편집주간(jsw@jungle.co.kr)
에디터_ 최유진 편집장(yjchoi@jungle.co.kr)

사진제공_ 임진순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