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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인터뷰

[포커스 인터뷰] 그림으로 ‘아주 커다란 휴식’ 전하는 일러스트레이터 서수연 작가

2024-02-20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하루가 저물어가는 시간, 그림을 그리면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작가가 있다. 일러스트레이터 서수연 작가다. 그녀는 다양한 질감으로 인물이나 동물을 그리며 누군가의 마음 어딘가에 닿아 작은 울림을 만들어내는 그림을 그리고자 한다. 

 

서수연 작가

 

 

직장과 육아를 병행하는 서수연 작가는 2016년부터 일을 마치고 아이들을 데리러 돌아가는 길,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그림을 그리는 ‘퇴근 드로잉’을 시작했다. 직장과 육아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일과 상관없이 그저 그리고 싶은 그림을 자유롭게 그리고자 시작된 이 드로잉은 아이들이 모두 잠든 밤 캄캄한 거실에서 비밀처럼 그린 그림들로 이어져갔고, 8년째 지속되고 있다. 온전한 작가 자신만의 기쁨을 누리는 이 시간의 그림들은 다음해의 달력이 되기도 한다. 

 

무루 할머니, Oil pastel, colored pencil on paper, 12 x 18 cm, 2020 ⓒ Seo Soo Yeon

 

 

2017년부터 책, 매거진 등의 분야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서수연 작가의 첫 작업은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였다. 무루 작가의 에세이집으로 글이 좋아 일러스트 작업을 하게 됐고, 이후 <돌봄과 작업>, <자기만의 방으로> 등의 작업에 참여했다. 최근에는 첫 번째 그림책 <백 살이 되면>을 작업했다. 황인찬 시인의 2021 현대문학상 수상작을 담은 이 책은 아주 긴 휴식에 대한 이야기로 작가의 몽환적인 그림이 글과 함께 어우러진다.  

 

일러스트레이션 전문 갤러리 알부스 갤러리에서 서수연 작가의 전시가 2월 29일까지 열리고 있다. 전시의 제목은 ‘아주 커다란 휴식 Way Back Home’이다. 작가는 스스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를 떠올리며 당시 자신이 그림을 그리기는 것을 바라는 건 온전히 작가 자신뿐이었다고 말한다. 아무도 자신이 그림 그리는 것을 바라지 않았고 자신이 그린 그림에는 어떤 가치도 없었지만, 온전히 자신의 기쁨으로 존재하던 그 시간이 무척 큰 휴식으로 느껴졌고, 아무 이유도 없이 그저 좋아서 그림을 그리는 그 시간이 ‘아주 커다란 휴식’이었다고 한다. 

 

구르는 구슬을 위한 작은 손들, Oil pastel, colored pencil on paper, 42 x 13.5 cm, 2023 ⓒ Seo Soo Yeon

 

백 살이 되면_ 표지, Oil, oil pastel, colored pencil on paper, 39 x 54 cm, 2023 ⓒ Seo Soo Yeon

 

 

2021년 전시 이후 3년만에 열리는 서수연 작가의 개인전으로, 전시에서는 <백 살이 되면>의 원화와 퇴근 드로잉, 다수의 책 표지 및 매거진 삽화 작업 등 60여 점의 원화를 만날 수 있다. 전시는 무료관람이며, 목요일은 ‘퇴근길 야간관람’이 저녁 8시까지 진행된다. 

 

퇴근드로잉 2022-26, Oil pastel, colored pencil on paper, 29.7 x 21 cm, 2022 ⓒ Seo Soo Yeon

 

 

Q. 8년째 ‘퇴근 드로잉’을 그리고 계신데,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2011년부터 지금까지 카페를 운영하고 있어요. 2016년부터 퇴근 후에 그린 드로잉 ‘퇴근 드로잉을 계기로 그림을 더 열심히 그리게 됐죠.

 

퇴근 드로잉은 일을 마치고 집에 가면서 이동 중에 그린 아주 작고 간단한 드로잉으로 시작됐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갈 때 사람들은 책을 읽거나, 핸드폰으로 재미있는 걸 보면서 가요. 그것과 같았습니다. 퇴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작은 드로잉을 하고 집에 도착하기 전에 그걸 업로드 하는 것. 그게 퇴근 드로잉의 시작이었어요. 

 

Q.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작업인 것 같은데.


어른이 된 저는 삶의 의무를 이행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아이들을 돌보고, 가게 일을 하고 집안일을 해요. 그냥 가만히 있을 틈이 없어요. 퇴근하면서 지하철에 실려 집으로 가고 있을 때가 그냥 있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고, 그 시간에 그림 그릴 수 있다는 게 좋았습니다.

 

지금은 퇴근할 때 제가 운전을 해야 해서 지하철에서의 드로잉은 할 수 없게 되었고, 대신 퇴근 후 집에서 퇴근 드로잉을 그리고 있어요. 여러가지 재료를 사용하게 되면서 헐겁고 가벼웠던 드로잉들은 다양한 색과 질감을 입게 되었고, 좀 더 많은 분들의 관심을 받게 됐습니다. 그저 제가 좋아서 그렸는데도 어떤 그림들은 누군가의 마음을 건드리기도 한다는 게 저에게는 또 다른 기쁨이었습니다.

 

이제는 많은 분들이 제 그림에 관심 가져 주신다는 것을 알고, 일로 그림 의뢰를 받는 일도 있지만 그래도 퇴근 드로잉은 여전히 쉼의 영역으로 남아 있어요. 일 마치고 좋아서 하는 것요. 

 

Q. 언제까지 이어갈 예정인가.


저는 2050년까지 퇴근 드로잉을 그리고 싶습니다. 2050년에 저는 70살이 되는데, 아마 70세까지는 어떤 식으로든 노동하는 삶을 살게 될 거라는 짐작 때문에 2050년으로 정했어요. 그리고 언제까지나 일을 마친 뒤 작은 드로잉을 하는 기쁨을 지키겠다는 다짐이기도 하고요. 

 

 

 

 

전시 전경

 

 

Q. 이번 전시에선 어떤 작업을 선보이나. 


좀 내성적인 면이 있어서 개인전 같은 것을 좀 어려워하는 편이에요. 일과 육아를 병행해야 해서 그림 그릴 시간도 부족한데 전시까지 할 엄두가 잘 나지 않기도 했어요. 하지만 언젠가 전시를 하게 된다면 알부스 갤러리에서 하고 싶다고 말하곤 했었는데, 정말 알부스 갤러리에서 전시를 하게 됐네요.

 

이번 전시는 퇴근 드로잉부터 책 커버와 삽화들 그리고 저의 첫 그림책에 이르기까지 제가 작가가 되기까지 그간의 작업물들을 모두 보실 수 있도록 준비했어요. 그림책의 원화를 궁금해하셨던 분들이나 그림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그림을 그리고 싶으신 분들, 그리고 제 그림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께 드리는 인사입니다. 한편으로는 앞으로 더 열심히 그림을 그리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이기도 해요. 작은 방에 꼭꼭 숨겨져 있던 그림들의 맨 얼굴을 어떻게 봐 주실 지 두근두근 합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은. 


저는 주로 작은 종이에 작은 그림을 그려왔기 때문에 큰 그림에 대한 동경이 있어요. 앞으로는 더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서 큰 그림을 그려보고 싶습니다. 단순히 물리적으로 그림의 크기를 키우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재료와 기법에 대한 연구도 하고 싶어요. 올해와 다음해에는 작업하기로 한 그림책도 두 권 정도 있고요. 물론 퇴근 드로잉도 꾸준히 작업하고 싶습니다. 아직 26년 남았으니까요. 

 

인터뷰어_ 정석원 편집주간(jsw@jungle.co.kr)
에디터_ 최유진 편집장(yjchoi@jungle.co.kr)
사진제공_ 알부스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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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에디터
감성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디자인, 마음을 움직이는 포근한 디자인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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