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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인터뷰

[포커스 인터뷰] 뉴욕 팬타그램의 최선임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 디자이너 정준기

2025-02-06

1972년 설립된 뉴욕의 팬타그램은 시각 디자인 영역은 물론 건축 영역까지 세계적인 영향력을 펼친 디자인 스튜디오로, 실력적인 면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지만 유대관계를 형성하는 파트너식 구조와 수평적인 구조로 수많은 디자이너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이곳에서 최선임(Lead Senior)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 디자이너가 있다. 정준기 디자이너다.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하고 안그라픽스에서 아트디렉터로 활동했던 정준기 디자이너는 2018 평창올림픽 공식기념책자 및 브로슈어, 국제타이포그라피 비엔날레 타이포잔치 도록, 아모레퍼시픽 전용 글꼴 아리따 중문 개발 프로젝트, 시각문화 잡지 <턣> 등에 관여했다. 

 

정준기 디자이너

 

 

이후 그는 예일대학교 미술대학에서 그래픽 디자인으로 석사 과정을 밟기 위해 2019년 미국으로 건너갔고, 팬타그램의 최선임 디자이너가 됐다. 현재 그는 팬타그램 에디 오파라팀(Eddie Opara)에서 주로 디자인 작업을 하며 프로젝트의 전반적인 흐름을 조율한다. 

 

한국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했고, 많은 디자이너들이 동경하는 팬타그램에서 디자이너로 근무하고있는 그는 어떻게 팬타그램과 인연을 맺게 되었을까. 그가 바라보는 팬타그램은 어떤 곳일까. 

 

정준기 디자이너로부터 팬타그램의 이야기와 그의 디자인 이야기를 들어본다. 

 

Q. 팬타그램은 어떤 조직인가. 팬타그램에 대해 소개한다면. 


팬타그램은 1972년 영국에서 5명의 디자이너(Alan Fletcher, Theo Crosby, Colin Forbes, Kenneth Grange, Mervyn Kurlansky)가 창립한 회사입니다. 오각형 별이라는 이름이 암시하시듯이 팬타그램은 5명의 창업자가 독립적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도 유대 관계를 형성하는 파트너식 구조 위에 설립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는 현재(2025년초 기준) 뉴욕, 런던, 오스틴, 베를린에 거점을 둔 22명의 파트너로 확장된 후에도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팬타그램의 파트너 나타샤 젠(Natasha Jen)은 회사의 구조를 각양각색의 구슬이 하나로 꿰인 목걸이에 빗대었습니다. 각 스튜디오마다 색상과 재질 모두 다르지만, 팬타그램 이름 아래 모인 이들은 ‘좋은 작업’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향해 하나의 공동체로서 동행합니다. 

 

이 구조는 각 스튜디오가 개개인의 역량을 최대한 발현할 수 있도록 독립성을 보장해주는 한편, 프로젝트의 크기에 따라 인력을 적소에 배치할 수 있는 유연성과 자산(예컨대 프로젝트 수입이나 건물 임대료나 비품 구매비 등의 지출)을 효과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경제성을 갖추게 합니다. 팬타그램이 지난 50년동안 디자인 업계 전선에서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수평적인 구조 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Q. 어떤 업무를 맡고 있나. 


주로 프로젝트의 디자인 작업을 하거나 전반적인 흐름을 조율합니다. 일반적인 프로젝트의 예를 들면, 매니저들이 일정과 예산을 설계하고 저와 파트너, 동료 디자이너들은 회의를 통해 함께 디자인 방향을 정한 뒤 실행에 옮깁니다. 

 

이때 저는 디자인 작업에 충실하는 한편, 파트너와 디자이너들 사이의 소통을 돕거나 주어진 업무를 분배하는 등의 허리 역할도 맡습니다. 발표 날짜가 다가오면 팀에서 진행하고 있는 방향에 맞추어 발표자료를 설계하는 데에 깊숙이 관여합니다. 

 

디자인 업무의 경우 팀마다 분위기가 조금씩 다릅니다만, 제가 소속하고 있는 에디 오파라(Eddie Opara) 팀은 직급에 관계없이 모두 동일 선상에서 출발하게끔 합니다. 여기에는 파트너도 포함입니다. 예컨대 브랜딩 프로젝트가 있다면 파트너와 디자이너들이 각자 로고 시안을 만들어 내부 회의에 들고 오는 식입니다. 따라서 디자인에 있어서는 새로운 마음으로 업무를 진행합니다.

 

 

정준기 디자이너의 작업, <변신>

 

<턣> 2호

 

 

Q. 팬타그램에는 어떻게 입사하게 됐나.


첫 시작은 약 8년전입니다. 2016년 서울에서 AGI(Alliance Graphique Internationale)의 공동 의회 및 공개 강연(AGI Open)이 열린 적이 있습니다. 당시 행사의 전반은 안상수 선생님의 주도 아래 기획 및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안상수 선생님께서 설립한 안그라픽스 역시 기획에 도움을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하루는 안상수 선생님께서 저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팬타그램의 파트너들과 세미나 강연을 열어볼 것“을 제안하셨습니다. AGI의 일원으로 서울에 방문할 예정이었던 에디 오파라와 마리나 윌러(Marina Willer)를 연사로 추천해 주셨습니다. 그들과 일면식은 없었지만 메일로 용기를 내어 연락을 드렸고, 고맙게도 두 분 모두 초청에 응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2016년 9월 24일, AGI Open 행사 첫 날에 에디와 마리나를 만났습니다. 두 분을 모시고 한식당에서 간단히 식사를 한 뒤, 만석이 된 세미나장에서 늦은 밤까지 여러 이야기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에디와 마리나를 숙소로 모셔다 드렸을 때는 자정이 가까이 되었습니다. 꿈 같은 하루였습니다. 

 

그로부터 약 4년 뒤, 제가 예일대학교에서 그래픽 디자인 석사 과정을 밟고 있던 중 에디를 다시 만났습니다. 학교 동문이자 시니어 크리틱(Senior Critic)으로 있는 에디가 가을 학기 발표를 심사하러 온 것입니다. 인사를 건넸고, 그가 저를 알아봐 주었습니다. 긴 이야기를 나누진 못했지만 그와 신기한 인연의 끈이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후 석사 과정을 마친 2021년, 에디에게 메일 한 통을 보냈습니다. 며칠 뒤 그와 한 시간 정도 줌으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렇게 에디와의 인연이 이어짐과 동시에, 팬타그램에서 저의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통일체

 

 

 

Q. 한국에서도 디자이너로 활동했는데, 한국과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 


정도의 차이이지만 시간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릅니다. 제가 느끼기에 뉴욕에서의 대부분 업무 환경은 시간의 효율을 극도로 중시합니다. 제 주변 동료들도 모두 ‘뉴욕에서의 시간은 빨리 간다’고 입을 모을 정도입니다. 극단적인 경우 분단위로 일을 해야 할 때도 있고, 업무를 마치고 나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릅니다. 

 

반면에 제가 안그라픽스에서 경험한 한국 디자인 업계의 환경은 시간에 따른 효율보다는 결과물의 완성도를 중시했습니다. 어쩌면 이는 장인정신을 중시하는 안그라픽스의 특성일 수 있습니다 (안그라픽스의 사훈인 지성(至誠)과 창의 중 지성은 시간적 효율만으로 이룰 수 없는 면입니다). 

 

단적인 예로, 팬타그램에서는 특수한 상황이 아니고서는 디자이너가 인쇄 감리를 가지 않습니다. 반면 안그라픽스에서는 한번도 빼놓지 않고 모두 감리를 갔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팬타그램은 장인정신을 중시하지 않는다거나 안그라픽스는 시간 효율을 등한시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더불어 시간적 효율성과 장인정신은 상호보완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다만 균형의 관점에서 보자면, 서울과 뉴욕이 앞서 언급한 정도의 차이가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FluctuationOfTime

 

 

Q. 어떤 디자인 작업을 추구하고 있나.  


브랜딩, 환경 디자인, 웹, 인쇄물, 글꼴 등 시각 디자인 전반의 영역을 경계 없이 다룹니다. 한 가지 특성은 프로젝트마다 전용 글꼴을 개발하고 디자인의 핵심요소로 사용하기를 선호한다는 것입니다. 전용 글꼴 개발은 오랜 시간과 노력이 뒤따르기에 항상 적용이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방식을 선호하는 이유는 전용 글꼴이 프로젝트의 서사를 드러내는 데 있어 무척 효율적이기 때문입니다. 

 

전용 글꼴은 글자가 쓰이는 곳이라면 어디든 스며들어 프로젝트의 시각적 정체성을 규정합니다. 문자언어와 형태가 결합되어 보는(동시에 읽는)이에게 강한 메세지를 전달합니다. 저는 이 방식을 프로젝트에 고유의 목소리, 즉 대체 불가능한 개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봅니다. 

 

모든 프로젝트는 누군가에게 주목받을 만한 특수한 이야기가 있고, 이는 그 고유의 목소리로 들려질 때 더 큰 반향을 일으킵니다. 때로는 그 개성이 시선을 강하게 사로잡을 정도로 강력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돋보이지 않아야 할 맥락에서는 스며들 줄 아는 개성이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맥락을 읽고 그에 맞는 목소리를 전용 글꼴로 부여하는 것이 제가 추구하는 디자인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Paprika

 

 

Afrofuturism

 

Yale Engineering

 

 

Q. 뉴욕에서 경험한 브랜딩의 동향에 대해 말해준다면.


현재 뉴욕의 브랜딩은 미디어 발전만큼이나 그 표현 범위가 빠르게 확장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이제는 과거의 브랜딩 개념, 즉 로고마크나 로고타입을 중심으로 한 브랜딩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물론 상징적 형태로서 로고의 지위는 여전합니다. 그럼에도 이제는 로고만으로 채울 수 없는 시청각적이고 경험적인 접점이 수없이 존재합니다. 

 

확장형 로고로 브랜딩의 시각언어를 넓히는 방식도 이제는 과거의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로고 외의 다른 요소들, 예컨대 모션과 결합한 레이아웃이나 3D 일러스트레이션, 생성형 그래픽, 사운드 등이 브랜딩의 핵심요소로서 이야기 곳곳에 퍼져 나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Q. AI의 발전으로 인해 디자인 업계에도 많은 변화가 일고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초기에 소라(Sora)와 미드저니(Midjourney) 등의 생성형 AI가 등장했을 때 AI창작물이 이렇게 빨리 우리의 시각문화로 스며들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AI로 제작한 결과물들을 보면 사람이 제작하지 않은, AI스러운 인공적 미감이 있었기 때문에 사용이 무척 꺼려졌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계가 빠른 속도로 흐려지고 있습니다. 이그잭틀리(Exactly.ai)나 파이어플라이(Firefly) 등 최신 생성형 AI가 만들어내는 결과물들을 보면 실제로 사람이 만든 것인지 아닌지 분간이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사실 그래픽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굉장히 효율적인 도구를 하나 더 얻게 되었다‘며 이런 상황을 가볍게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기술의 발전에 발맞추는 것이 디자이너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이기도 하니 말입니다. 

 

그러나 이면을 보면, 시각물 제작자들의 생계 위협과 작품의 저작권 침해 등 여러 사회적이고 윤리적인 문제들도 뚜렷이 드러납니다. 이런 문제들로 인해 우리는 AI를 대할 때 자신의 행위가 어떠한 부정적 여파를 일으키지 않을지 경계하는 의식, 즉 메타인지적 사고를 갖추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AI의 사용은 단순히 효율적 디자인이 아니라 후에 돌이키지 못하는 결과에 우리를 무의식적으로 연류시키는 자기파괴적 행위가 될지도 모릅니다. 

 

현재로서는 그래픽 디자인 업계는 AI가 넘어야 할 여러 높은 장벽이 있습니다. 브랜딩은 언어의 독해력과 심리적 판단을, 글꼴 디자인은 고도의 정확성을 필요로 합니다. 그렇기에 당장에는 그 위협이 그래픽 디자이너의 삶에 와닿지 않습니다만, 우리가 이를 올바르게 사용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날마다 커지고 있습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현재 주어진 일들을 충실히 수행하며, 그 과정에서 기술적, 사회적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디자이너로 꾸준히 성장하고자 합니다.

 

인터뷰어_ 정석원 편집주간
에디터_ 최유진 편집장
사진제공_ 정준기 디자이너(jun-j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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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에디터
감성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디자인, 마음을 움직이는 포근한 디자인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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