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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정글 칼럼] “광장은 기념비가 아니다” - 광화문 ‘감사의 정원’이 놓친 공공디자인의 원칙

2026-05-14

좋은 의도가 항상 좋은 디자인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광화문광장에 조성된 ‘감사의 정원’을 둘러싼 논란은 바로 이 오래된 진실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먼저 분명히 할 것이 있다.
6·25전쟁 참전국에 대한 감사와 추모의 마음 자체를 문제 삼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한민국이 오늘 존재할 수 있었던 데에는 수많은 젊은이들의 희생이 있었고, 그 기억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

 

문제는 ‘감사’가 아니다. 문제는 ‘디자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공공공간을 바라보는 철학의 문제다.

 

서울시는 광화문광장에 ‘감사의 정원’을 조성하며 높이 6.25m의 석재 구조물 23개를 세웠다. 각 구조물은 참전 22개국과 대한민국을 상징한다. 설계자는 이를 시민이 걸으며 체험하는 기억의 공간이라 설명한다.

 

하지만 시민들이 즉각적으로 읽어낸 이미지는 달랐다.
“마치 ‘받들어총’ 같다.”

 

공공디자인에서 시민의 첫 인상은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 디자이너의 의도가 아니라 시민의 해석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좋은 의도가 항상 좋은 디자인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광화문광장에 조성된 ‘감사의 정원’을 둘러싼 논란은 바로 이 오래된 진실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광장은 건물이 아니다>

 

건물은 기능을 위해 경계를 만들 수 있다.
기념관은 메시지를 위해 서사를 구축할 수 있다. 박물관은 동선을 통제할 수 있다.

 

하지만 광장은 다르다. 광장은 비워져 있어야 한다. 사람이 모이고, 흩어지고, 우연히 마주치고, 때로는 침묵하고, 때로는 외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광장의 본질은 ‘개방성’이다.
그런 점에서 광화문광장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특별한 장소다. 이곳은 단순한 도시 오픈스페이스가 아니다.

 

조선 왕조의 역사적 중심축 위에 놓인 공간이자, 현대 대한민국 시민 민주주의의 상징 공간이다.

 

2002년 월드컵 거리응원, 촛불집회, 각종 국가적 집회와 추모가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광화문은 이미 특정한 역사적 기억을 가진 살아 있는 공공무대다.

 

그렇다면 이 공간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더 많은 조형물일까? 더 강한 메시지일까? 아니다. 더 큰 ‘절제’다.

 

 

광장의 본질은 ‘개방성’이다. 그런 점에서 광화문광장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특별한 장소다. 이곳은 단순한 도시 오픈스페이스가 아니다.

 

 

<좋은 공공디자인은 자신을 과시하지 않는다>

 

특히 민주주의 광장에서는 더 그렇다.
세계의 위대한 광장을 떠올려보자.

 

뉴욕의 타임스스퀘어는 광고로 가득하지만 사람의 흐름을 막지 않는다.
파리의 콩코르드 광장은 기념축을 갖고 있지만 집회의 개방성을 유지한다.
베를린의 공공기억 공간들은 무겁지만 광장을 점령하지 않는다.

 

기억은 중요하다.
그러나 기억을 담는 방식은 더 중요하다.

 

‘감사의 정원’이 불편하게 읽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 구조물은 광장의 일부가 아니라 광장을 ‘재규정’하려 한다.

 

열린 공간을 선형 구조물로 구획하고, 흐름을 시각적으로 통제하며, 강한 상징을 부여한다. 이 순간 광장은 시민의 자율적 공간에서 설계자의 메시지 공간으로 바뀐다.

 

공공디자인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이 바로 이것이다. 공공을 위한 디자인이 공공을 가르치기 시작할 때, 그 순간 공공성은 무너진다. 

 

열린 공간을 선형 구조물로 구획하고, 흐름을 시각적으로 통제하며, 강한 상징을 부여한다. 이 순간 광장은 시민의 자율적 공간에서 설계자의 메시지 공간으로 바뀐다.

 

 

<또 하나의 문제는 장소성이다>

 

‘감사의 정원’ 같은 추모 프로젝트 자체를 부정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왜 하필 광화문이어야 하는가?

 

서울에는 이미 전쟁 기억을 다루는 훨씬 적절한 장소가 있다.
전쟁기념관이 있다. 국립현충원도 있다.
또는 UN 참전국을 기리는 별도의 국제평화공원도 가능하다.

 

광화문은 전쟁 추모 특화 공간이 아니다.
광화문은 훨씬 더 복합적이고, 훨씬 더 시민적인 공간이다.

 

장소에는 맥락이 있다. 좋은 디자인은 맥락을 읽는다. 그러나 나쁜 디자인은 메시지를 먼저 들이민다.

 

이번 프로젝트가 비판받는 이유는 조형물의 형태 때문만이 아니다. 장소 읽기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광장은 설계자의 자기표현 무대가 아니다. 정치의 상징 무대도 아니다. 시민의 것이다. 그래서 공공디자인에는 겸손이 필요하다.

 

 

<공공디자인은 예술이 아니다>

 

정확히는, 작가의 자기표현이 우선되는 예술이어서는 안 된다.
작가가 자기 메시지를 밀어붙이는 순간, 공공성은 훼손된다.

 

공공디자인은 시민의 삶을 위한 서비스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만들었는가”보다 “시민이 어떻게 사용하는가”다.

 

광장은 설계자의 자기표현 무대가 아니다.
정치의 상징 무대도 아니다. 시민의 것이다. 그래서 공공디자인에는 겸손이 필요하다.

 

이번 광화문 ‘감사의 정원’ 논란은 조형물 하나의 성공과 실패를 넘어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공공공간을 누구의 것으로 생각하는가? 행정의 것인가. 정치의 것인가. 설계자의 것인가. 아니면 시민의 것인가.

 

그러나 좋은 의도만으로 좋은 공간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광화문광장이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콘크리트가 아니다. 더 많은 시민이다.

 

 

<좋은 의도는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좋은 의도만으로 좋은 공간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광화문광장이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콘크리트가 아니다. 더 많은 시민이다.

 

광장은 비어 있을 때 가장 강하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그 ‘비어 있음’ 속에서 살아 숨 쉰다.

 

글_ 정석원 편집주간
사진_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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