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17
암스테르담 중앙역 뒤편에서 무료 페리를 타고 IJ강을 건너면 도시의 풍경이 완전히 달라진다.
15분 정도 배를 타고 가면, 정교하게 정비된 운하와 오래된 벽돌 건축물 대신 거대한 크레인과 녹슨 철골, 낡은 공장과 창고가 모습을 드러낸다. 한때 선박을 만들던 산업지대였던 NDSM 부두다.
그리고 이 거대한 조선소 창고 중 하나에 세계 각국의 스트리트 아트와 그래피티를 모아놓은 STRAAT 뮤지엄이 자리하고 있다.
STRAAT은 네덜란드어로 ‘거리’를 뜻한다. 이름 그대로 이곳은 거리에서 태어난 예술을 다루는 미술관이다. 그러나 거리의 작품을 잘라 옮겨놓은 곳은 아니다. 세계 각국의 작가들을 암스테르담으로 초청해 이 거대한 창고 안에서 직접 작품을 제작하게 하고,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작가의 이야기까지 함께 기록한다.
현재 약 2,400평 규모의 공간에 170명이 넘는 작가가 참여한 180점 이상의 대형 작품이 전시돼 있다. 대부분 실제 건물 외벽 크기로 제작됐으며, 상당수는 작가가 이곳에 머물며 현장에서 완성한 작품이다.
STRAAT은 단순한 스트리트 아트 전시장이 아니다. 이곳은 거리예술을 수집하고 보존하는 미술관이면서, 새로운 작품을 생산하는 스튜디오이고, 작가와 관람객을 연결하는 플랫폼이며, 버려진 산업시설을 도시의 문화자산으로 바꾼 공간재생 프로젝트다.
STRAAT은 네덜란드어로 ‘거리’를 뜻한다. 이름 그대로 이곳은 거리에서 태어난 예술을 다루는 미술관이다. 그러나 거리의 작품을 잘라 옮겨놓은 곳은 아니다. 세계 각국의 작가들을 암스테르담으로 초청해 이 거대한 창고 안에서 직접 작품을 제작하게 하고,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작가의 이야기까지 함께 기록한다.
<배를 만들던 조선소가 예술가들의 도시가 되기까지>
NDSM은 ‘네덜란드 조선·도크 회사’를 뜻하는 Nederlandsche Dok en Scheepsbouw Maatschappij의 약자다.
192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이곳은 암스테르담을 대표하는 대규모 조선소였다. 수천 명의 노동자가 이곳에서 배를 만들고 수리했다.
그러나 유럽 조선산업이 쇠퇴하면서 NDSM은 1980년대 문을 닫았다. 거대한 공장과 창고, 조립장과 크레인만 남았다. 기능을 잃은 산업시설은 오랫동안 방치됐지만, 값싼 작업 공간을 찾던 예술가와 디자이너, 공연기획자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버려진 조선소는 자연스럽게 예술가들의 작업실과 공연장, 축제장으로 바뀌었다. 건물 외벽과 가설벽에는 그래피티와 벽화가 채워졌고, NDSM은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자유로운 시각문화 실험장이 됐다. 오늘날 NDSM은 스트리트 아티스트가 비교적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는 이른바 ‘Hall of Fame’으로도 인식된다.
STRAAT이 들어선 건물 역시 과거 조선소의 용접·조립 작업에 사용되던 거대한 산업용 창고였다.
이곳은 한동안 유럽 최대 규모의 벼룩시장 가운데 하나로 알려진 IJ-Hallen의 공간으로 사용됐다. 벼룩시장이 열리던 시절, 넓고 삭막한 창고를 꾸미기 위해 주변에서 활동하던 스트리트 아티스트들이 작품을 그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공간을 장식하기 위한 벽화였다.
그러나 작품이 하나둘 늘어나면서 거대한 창고 안에 독특한 컬렉션이 형성됐다. 단순한 장식으로 보기에는 작품의 규모와 완성도, 참여 작가들의 면면이 점점 커졌다.
2015년 무렵부터 이 공간을 정식 미술관으로 발전시키려는 구상이 시작됐고, 여러 준비과정과 건물 보수, 코로나19의 어려움을 거쳐 2020년 10월 STRAAT 뮤지엄이 공식 개관했다.
즉, STRAAT은 처음부터 완성된 계획을 세우고 출발한 미술관이 아니다.
작가가 찾아오고, 작품이 쌓이고, 관람객이 관심을 보이면서 자연스럽게 미술관으로 진화한 공간이다.
STRAAT이 수집하는 것은 완성된 이미지뿐만이 아니다. 작가가 어떤 도시에서 활동해왔는지, 왜 이런 주제를 선택했는지, 어떤 사회적 메시지를 담았는지, 거리와 제도권 미술 사이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왔는지까지 함께 기록한다.
<작품을 구입하지 않고, 작품이 태어날 조건을 만든다>
일반적인 미술관은 이미 완성된 작품을 구입하거나 기증받아 컬렉션을 만든다.
그러나 STRAAT의 컬렉션 형성 방식은 다르다.
미술관이 세계 각국의 작가를 선정하고 암스테르담으로 초청하면, 작가는 STRAAT 내부나 NDSM 현장에서 새로운 작품을 제작한다. 미술관은 거대한 캔버스와 작업 장소를 제공하고, 작가는 거리에서 작업하듯 사다리와 리프트, 스프레이와 롤러를 이용해 작품을 완성한다.
작품 크기는 대부분 실제 건물의 외벽과 비슷하다. 작가는 작은 스튜디오용 그림을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거대한 공간과 관람 거리를 고려해 작품을 설계한다. 작품은 며칠 만에 완성되기도 하고, 작품의 규모와 기법에 따라 더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관람객이 방문하는 시간에도 작업이 계속되는 경우가 있다. 이때 관람객은 완성된 작품만 보는 것이 아니라, 밑그림이 그려지고 색이 쌓이며 거대한 이미지가 탄생하는 과정을 직접 목격한다.
이곳에서는 작품 제작 과정 자체가 하나의 전시가 된다.
STRAAT의 공식 설명에 따르면 현재 전시작 대부분이 현장에서 제작됐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의 컬렉션은 다른 미술관에서 빌려온 작품의 집합이 아니라, 이 공간과 작가의 만남을 통해 탄생한 장소 특정적 기록에 가깝다.
STRAAT이 수집하는 것은 완성된 이미지뿐만이 아니다. 작가가 어떤 도시에서 활동해왔는지, 왜 이런 주제를 선택했는지, 어떤 사회적 메시지를 담았는지, 거리와 제도권 미술 사이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왔는지까지 함께 기록한다.
거리에서는 작품을 볼 수 있지만 설명을 듣기는 어렵다. STRAAT은 바로 그 지점에서 미술관의 역할을 찾는다. 미술관은 자신들의 역할을 거리에서는 충분히 들을 수 없었던 이야기를 관람객에게 제공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유명 작가와 무명 작가를 같은 벽에 세우다>
STRAAT의 또 다른 특징은 유명 작가 중심의 미술관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국제적으로 알려진 스트리트 아티스트뿐 아니라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한 신진 작가, 지역 기반 작가, 그래피티 1세대와 젊은 세대의 작품이 한 공간에 함께 놓인다.
미술관은 ‘거장’과 ‘신인’을 엄격하게 구분하지 않는다. 작품의 크기나 전시 위치 역시 작가의 시장가격에 따라 결정되는 일반적인 상업 갤러리의 방식과는 다르다. 작품이 가진 메시지와 공간적 관계, 시각적 리듬에 따라 배치된다.
이러한 운영방식은 스트리트 아트의 본래 정신과도 맞닿아 있다. 거리에서는 학력이나 경력, 소속 갤러리보다 누가 더 새로운 이미지와 강한 메시지를 만들어내느냐가 중요하다. STRAAT은 거리예술 특유의 개방성과 경쟁, 실험성을 미술관 안에서도 유지하려 한다.
그래서 이곳의 컬렉션은 완결되지 않는다.
새로운 작가가 계속 초청되고 신작이 추가된다. 기획전을 계기로 제작된 작품이 컬렉션에 편입되기도 하고, 기존 작품의 위치가 바뀌거나 일부 작품이 교체되기도 한다.
전시는 고정돼 있지만 동시에 계속 움직인다. 거리의 벽이 끊임없이 덧칠되고 변화하듯, STRAAT의 컬렉션도 살아 있는 생태계처럼 성장한다.
미술관은 ‘거장’과 ‘신인’을 엄격하게 구분하지 않는다. 작품의 크기나 전시 위치 역시 작가의 시장가격에 따라 결정되는 일반적인 상업 갤러리의 방식과는 다르다. 작품이 가진 메시지와 공간적 관계, 시각적 리듬에 따라 배치된다.
<철거 대신 흔적을 남긴 공간>
STRAAT의 건축적 매력은 새롭게 디자인한 부분보다 지우지 않은 부분에서 나온다.
창고 내부에는 과거 조선소에서 사용하던 철골 구조와 크레인, 레일과 작업 흔적이 남아 있다. 콘크리트 바닥은 매끈하게 마감되지 않았고, 벽과 기둥에도 산업시설 특유의 거친 질감이 그대로 드러난다.
일반적인 미술관이라면 작품 감상을 방해한다고 판단해 가렸을 요소들이다. 하지만 STRAAT에서는 이 흔적들이 전시의 배경이 된다.
스트리트 아트는 원래 깨끗한 흰 벽보다 낡은 벽돌과 콘크리트, 철문과 공사장 가림막에서 태어난다. 따라서 조선소 창고의 거친 표면은 작품과 충돌하지 않는다. 오히려 작품이 원래 속해 있던 도시 환경을 실내에 재현한다.
이 공간은 이른바 화이트 큐브형 미술관과 정반대다. 화이트 큐브가 외부 환경을 제거하고 작품에만 집중하게 한다면, STRAAT은 공간의 역사와 구조, 소음과 빛까지 작품 감상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낡은 건물을 새것처럼 바꾸지 않고, 낡음 자체를 공간의 정체성으로 사용한 것이다.
<2,400평의 거대한 창고를 전시장으로 바꾸는 법>
STRAAT 내부에 들어서면 처음에는 어디서부터 봐야 할지 막막할 정도다. 천장이 높고 시야가 멀리 열려 있다. 작품은 벽면에만 걸리지 않는다. 독립된 가벽에 설치되거나 철골 구조에 매달리고, 바닥에 놓이거나 공중에 매달린 오브제와 결합되기도 한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전시는 일정한 관람 리듬을 갖는다. 먼 거리에서는 여러 작품이 하나의 도시 풍경처럼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면 스프레이 입자와 붓 자국, 캔버스의 질감이 드러난다. 다시 계단을 올라 상부 통로와 카페 공간에 도착하면 전시장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관람객은 같은 작품을 아래에서, 정면에서, 위에서 반복해 보게 된다. 이러한 다층적 시점은 STRAAT 공간의 핵심이다.
대형 작품은 가까이에서만 보면 전체 구성을 파악하기 어렵다. 반대로 멀리서만 보면 작가의 섬세한 손길을 느끼기 어렵다. STRAAT은 관람객이 거리를 조절하며 작품을 읽도록 동선을 설계했다.
전시 벽은 공간을 완전히 차단하지 않는다.
작품 사이로 다른 작품이 보이고, 서로 다른 색과 이미지가 중첩된다. 하나의 작품을 보다가 자연스럽게 다음 작품으로 시선이 이동한다. 정해진 순서에 따라 작품을 보는 미술관이 아니라, 관람객이 자신의 방식으로 길을 만들어가는 미술관이다.
STRAAT은 이 모순을 완전히 해결하지 않는다. 대신 거리와 미술관을 경쟁 관계로 보지 않고 서로 보완하는 관계로 설정한다.
거리에서는 우연성과 긴장감, 도시와의 직접적인 충돌을 경험할 수 있다. 미술관에서는 작품의 배경과 작가의 철학, 장르의 역사와 기법을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미술관의 전면을 바꾼 안네 프랑크>
STRAAT을 방문할 때 가장 먼저 마주하는 작품은 건물 외벽의 거대한 안네 프랑크 초상이다. 브라질 출신의 스트리트 아티스트 <에두아르도 코브라>가 제작한 작품으로, 제목은 〈Let Me Be Myself〉다.
이 대규모의 벽화에는 밝게 웃는 안네 프랑크의 모습이 특유의 다채로운 기하학 패턴과 함께 표현돼 있다. 작품은 2016년 제작됐으며, 차별과 혐오를 넘어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권리를 이야기한다.
이 작품은 STRAAT의 정체성을 상징한다.
안네 프랑크는 암스테르담의 역사적 기억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코브라의 벽화는 그 기억을 오늘날의 시각언어인 스트리트 아트로 다시 해석한다.
과거와 현재, 역사와 대중문화, 도시의 기억과 거리예술이 하나의 벽에서 만난다.
미술관의 간판보다 단 한 점의 작품이 공간의 정체성을 더 강력하게 설명하는 사례다.
멀리서도 보이는 안네 프랑크의 얼굴은 STRAAT으로 사람을 안내하는 표지판이자, 미술관이 추구하는 사회적 메시지를 압축한 브랜드 이미지다.
<작품을 다섯 가지 감정과 태도로 읽다>
STRAAT의 상설 컬렉션은 작가의 국적이나 연대, 기법만으로 나누지 않는다. 작품이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는 태도에 따라 개인적 이야기, 미학적 실험, 현실과 장소, 사회적 의식, 공감과 연대 등의 주제로 연결한다.
이러한 분류는 스트리트 아트를 단순한 스타일이나 장식으로 보지 않게 한다. 화려한 색채와 거대한 인물상 뒤에 개인의 정체성, 이주와 인종, 환경, 정치, 전쟁, 소비문화, 젠더와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질문이 담겨 있음을 보여준다.
그래피티 역시 단순한 낙서가 아니다. 자신의 이름을 반복해 쓰는 태그는 도시 안에서 존재를 드러내려는 행위다. 선과 글자의 흐름, 반복과 속도는 그래피티만의 시각언어를 만든다.
STRAAT은 이러한 그래피티의 역사와 규칙, 공동체 문화를 별도의 연구와 전시로 확장하고 있다. 2026년에는 네덜란드 그래피티 라이브러리와 3년간 협력해 사진과 책, 잡지, 포스터, 스케치 등 35년 이상 축적된 아카이브 일부를 상설 소개하기 시작했다. 작품뿐 아니라 그래피티의 유형·무형 문화유산을 함께 보존하려는 시도다.
STRAAT의 상설 컬렉션은 작가의 국적이나 연대, 기법만으로 나누지 않는다. 작품이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는 태도에 따라 개인적 이야기, 미학적 실험, 현실과 장소, 사회적 의식, 공감과 연대 등의 주제로 연결한다.
<보는 미술관에서 직접 만들어보는 미술관으로>
STRAAT은 전시 관람에만 머물지 않는다.
학생과 가족, 일반 관람객을 위한 가이드 투어와 그래피티•스텐실 워크숍을 운영한다. 참가자는 작품을 감상한 뒤 자신만의 글자를 디자인하거나 스텐실 기법으로 이미지를 제작한다.
학교 프로그램에서는 작품 속 사회적 메시지를 찾고, 스트리트 아트가 도시에서 수행하는 역할을 토론한다. 미술관 내부와 NDSM 부두를 함께 둘러보는 프로그램도 운영해 작품과 장소의 관계를 이해하도록 돕는다.
이러한 교육은 단순한 체험 행사가 아니다.
스트리트 아트의 핵심은 자신의 생각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공공 공간에서 타인과 소통하는 데 있다. 워크숍은 관람객을 작품의 소비자에서 표현의 주체로 전환한다.
미술관이 작품을 보여주는 곳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창작자를 만드는 곳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STRAAT을 보며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산업유산 재생의 목적이 낡은 공간을 새것처럼 만드는 데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곳은 조선소의 흔적을 지우지 않았다. 오히려 조선소가 가진 압도적인 규모와 거친 물성, 높이와 깊이를 스트리트 아트의 전시 조건으로 활용했다.
<입장료만으로 운영되는 미술관이 아니다>
STRAAT의 운영은 여러 층위로 구성된다.
기본적으로 입장권과 멤버십, 가이드 투어와 워크숍이 중요한 수입원이 된다. 연간 회원은 일정 금액을 내고 동반자와 함께 반복 관람할 수 있다. 매월 첫째 금요일에는 야간 개장을 운영해 낮 시간 중심의 일반 미술관과 다른 관람 경험도 제공한다.
뮤지엄숍에서는 작가의 판화와 포스터, 책, 의류와 디자인 상품을 판매한다. 이곳의 상품은 단순한 기념품이 아니라 작가의 작품을 작은 크기와 합리적인 가격으로 소유할 수 있게 하는 또 하나의 유통 플랫폼이다.
또한 STRAAT은 미술관 밖의 공공미술 프로젝트와 기업 협업도 진행한다. 부동산 개발사나 기관의 의뢰를 받아 장소에 적합한 작가를 선정하고, 지역의 역사와 환경을 반영한 벽화와 공간작품을 기획한다. NDSM의 산업적 과거와 자연, 미래를 주제로 작가를 선정해 주거시설에 작품을 제작한 사례처럼, 미술관이 보유한 큐레이션 역량을 외부 프로젝트로 확장한다.
이러한 방식은 작가에게 새로운 작업 기회를 제공하고, 미술관에는 운영 재원을 마련하며, 기업과 지역에는 수준 높은 공공예술을 제공한다. 전시·교육·상품·회원제·공공미술 프로젝트가 하나의 생태계로 연결되는 구조다.
뮤지엄숍에서는 작가의 판화와 포스터, 책, 의류와 디자인 상품을 판매한다. 이곳의 상품은 단순한 기념품이 아니라 작가의 작품을 작은 크기와 합리적인 가격으로 소유할 수 있게 하는 또 하나의 유통 플랫폼이다.
<거리예술을 제도 안으로 들여온 역설>
STRAAT에는 근본적인 질문이 따라다닌다.
“거리에서 자유롭게 태어난 예술을 입장료를 내야 하는 미술관 안으로 옮기는 것이 과연 옳은가.”
그래피티와 스트리트 아트는 제도와 권위, 소유권에 대한 저항에서 출발했다. 허가받지 않은 벽과 지하철, 공공시설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행위였다. 그런 예술을 미술관이 소장하고 설명하며 상품화하는 순간, 본래의 저항성이 약해질 수 있다.
STRAAT은 이 모순을 완전히 해결하지 않는다. 대신 거리와 미술관을 경쟁 관계로 보지 않고 서로 보완하는 관계로 설정한다.
거리에서는 우연성과 긴장감, 도시와의 직접적인 충돌을 경험할 수 있다. 미술관에서는 작품의 배경과 작가의 철학, 장르의 역사와 기법을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또한 STRAAT은 NDSM이라는 실제 스트리트 아트 현장에 자리한다. 관람객은 실내 전시를 본 뒤 밖으로 나가 부두 곳곳의 벽화와 그래피티를 다시 만난다. 미술관과 거리 사이의 경계가 느슨하다. STRAAT은 거리예술을 미술관에 가두기보다, 미술관을 거리로 다시 확장하는 개념을 실천하고 있다.
<산업유산 재생의 핵심은 깨끗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STRAAT을 보며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산업유산 재생의 목적이 낡은 공간을 새것처럼 만드는 데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곳은 조선소의 흔적을 지우지 않았다. 오히려 조선소가 가진 압도적인 규모와 거친 물성, 높이와 깊이를 스트리트 아트의 전시 조건으로 활용했다.
새 미술관을 지었다면 이 같은 공간을 만들기 위해 막대한 비용이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STRAAT은 기존 건물이 가진 한계를 약점이 아니라 자산으로 바꿨다.
천장이 너무 높은 것은 초대형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조건이 됐다. 벽이 거친 것은 스트리트 아트와 어울리는 배경이 됐다.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조선소 부지는 페리를 타고 찾아가는 특별한 여행 경험이 됐다. 공간재생은 낡은 것을 없애는 일이 아니라, 낡은 공간만이 가진 힘을 발견하는 일이다.
STRAAT은 거리예술을 수집한 것이 아니라, 거리예술이 지속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었다. 그리고 버려진 조선소를 깨끗한 미술관으로 바꾼 것이 아니라, 조선소의 역사와 스트리트 아트의 에너지가 서로를 살리도록 했다.
<‘작품’보다 더 오래 남는 것은 ‘시스템’이었다>
STRAAT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거대한 벽화만이 아니었다. 작가를 찾아내고, 장소로 초청하고, 작품을 제작하게 하고, 기록하고, 전시하고, 교육과 상품으로 확장하는 일련의 시스템이었다. 작품 한 점은 언젠가 훼손되거나 교체될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작품이 계속 탄생하는 구조가 있다면 미술관은 멈추지 않는다.
STRAAT은 거리예술을 수집한 것이 아니라, 거리예술이 지속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었다. 그리고 버려진 조선소를 깨끗한 미술관으로 바꾼 것이 아니라, 조선소의 역사와 스트리트 아트의 에너지가 서로를 살리도록 했다.
그래서 이곳은 과거를 보존한 산업유산이면서 동시에 현재도 계속 작품이 만들어지는 생산 현장이다. 거리에서 태어난 예술은 미술관 안에 들어왔지만 길들여지지 않았다. 거대한 창고의 철골과 콘크리트 사이에서 여전히 자유롭고, 거칠고, 끊임없이 변화한다.
STRAAT은 작품을 보관하는 미술관을 넘어, 작품이 계속 태어나는 미술관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것이 이번 <공간다큐>에서 내가 얻은 가장 큰 배움이었다.
글, 사진_ 정석원 편집인
#디자인정글공간다큐 #STRAAT #암스테르담 #NDSM #스트리트아트 #도시재생 #산업유산재상 #공간디자인 #재생문화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