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02
네덜란드 디자인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헤릿 리트벨트, 마르셀 반더스, 드로흐 디자인(Droog Design)을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네덜란드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디자이너 가운데 한 사람은 의외로 한국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름이다.
바로 ‘코 리앙 이(Kho Liang Ie, 1927~1975)’라는 디자이너다.
이번 암스테르담 스테델릭 미술관(시립미술관)에서 열린 그의 회고전은 왜 그가 네덜란드 디자인 역사에서 특별한 존재인지 다시 확인하게 만든 전시였다.
<인도네시아에서 태어나 네덜란드 디자인을 바꾼 사람>
‘코 리앙 이’는 1927년 당시 네덜란드령 동인도였던 인도네시아 자바섬 마젤랑에서 중국계 가정의 아들로 태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네덜란드로 건너와 현재의 헤릿 리트벨트 아카데미(Gerrit Rietveld Academie) 전신인 응용미술학교에서 실내디자인을 공부했다.
졸업 후 그는 ‘Goed Wonen(좋은 삶)’ 재단에서 일하며 전후 네덜란드 사회가 추구하던 새로운 주거문화와 현대적 생활방식을 연구했다.
1956년 독립한 이후에는 가구, 인테리어, 전시, 그래픽, 조명, 공간기획까지 넘나드는 활동을 펼쳤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975년, 불과 4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짧은 생애였지만 네덜란드 현대디자인에 남긴 영향은 매우 컸다.
‘코 리앙 이’는 1927년 당시 네덜란드령 동인도였던 인도네시아 자바섬 마젤랑에서 중국계 가정의 아들로 태어났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975년, 불과 4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짧은 생애였지만 네덜란드 현대디자인에 남긴 영향은 매우 컸다.
<가구보다 공간을 먼저 생각한 디자이너>
이번 전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가구를 진열하는 방식이었다. 보통 디자인 전시는 의자를 한 줄로 세우고 설명을 붙인다.
그러나 이 전시는 그의 실제 거실과 작업실을 그대로 재현했다. 의자와 조명, 그림, 테이블, 조각, 벽면, 천장까지 모두 하나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는 늘 말없이 이야기하는 듯했다.
가구는 혼자 존재하지 않으며, 좋은 의자는 좋은 공간 안에서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을.
이번 암스테르담 스테델릭 미술관(시립미술관)에서 열린 그의 회고전은 왜 그가 네덜란드 디자인 역사에서 특별한 존재인지 다시 확인하게 만든 전시였다.
<기능주의를 넘어 ‘생활의 풍경’을 만들다>
1950년대 그의 초기 작업을 보면 이미 세 가지 특징이 나타난다.
첫째는 철저한 기능성이다.
가구는 무엇보다 사용하기 편해야 한다고 믿었다.
둘째는 공간 구성 능력이다.
작은 집도 넓어 보이게 만들고, 사람의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공간을 설계했다.
셋째는 국제적인 감각이다.
당시 네덜란드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해리 버토이아(Harry Bertoia)의 와이어 체어와 이사무 노구치(Isamu Noguchi)의 조명을 누구보다 먼저 자신의 공간에 들여왔다.
그는 세계 디자인의 흐름을 가장 빨리 읽는 사람이었다.
<그의 대표작은 지금도 생산된다>
전시장 한편에는 1968년 네덜란드 가구회사 아티포트(Artifort)를 위해 디자인한 2인용 소파가 놓여 있었다.
단순한 금속 프레임 위에 부드러운 등받이와 좌석을 얹은 이 소파는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생산되고 있다.
그의 디자인에는 복잡한 장식이 없다.
그러나 구조는 명확하고, 앉으면 편안하다.
좋은 디자인은 시간이 흘러도 낡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가구를 진열하는 방식이었다. 이 전시는 그의 실제 거실과 작업실을 그대로 재현했다. 의자와 조명, 그림, 테이블, 조각, 벽면, 천장까지 모두 하나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디자이너이면서 편집자였던 사람>
코 리앙 이는 단지 가구를 디자인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교사였고, 전시기획자였으며, 디자인 단체를 이끌었고, 국제 콘퍼런스를 조직했다.
특히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디자인 잡지 ‘도무스(Domus)‘의 오랜 네덜란드 특파원으로 활동하며 네덜란드 디자인을 세계에 소개했다.
오늘날로 말하면 디자이너이자 큐레이터이며, 저널리스트이자 문화기획자였던 셈이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하나의 물건보다 하나의 문화에 가까웠다.
이번 전시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매우 설득력이 있었다. 가구를 먼저 보여주지 않고, 시대를 설명하고, 삶을 보여주고, 마지막에 디자인을 이해하게 만든다.
<전쟁 이후, 새로운 디자인의 탄생>
전시는 ‘코 리앙 이’ 개인만을 보여주지 않았다. 먼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사회가 왜 새로운 디자인을 필요로 했는지를 설명한다. 전쟁은 끝났지만 사람들은 과거의 권위주의와 결별해야 했다.
추상미술이 확산됐고, 코브라(COBRA) 그룹이 등장했으며, 프랑스의 누벨 에콜 드 파리(Nouvelle École de Paris)가 새로운 조형언어를 만들어 갔다.
한편 전후 금속이 부족했던 유럽에서는 목재와 합판이 중요한 재료가 되었고, 미국에서는 찰스와 레이 임스가 성형합판 기술을 발전시키며 현대 가구 디자인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코 리앙 이’ 역시 이러한 시대적 변화 속에서 자신의 디자인 언어를 완성해 갔다.
그의 작품은 개인의 재능만이 아니라 시대의 산물이기도 했다.
<전시가 말하는 것은 ‘가구’가 아니라 ‘삶’>
이번 전시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매우 설득력이 있었다. 가구를 먼저 보여주지 않고, 시대를 설명하고, 삶을 보여주고, 마지막에 디자인을 이해하게 만든다.
관람객은 어느새 의자를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꿈꾸었던 현대적인 생활방식을 경험하게 된다.
이번 전시는 한 사람의 회고전이 아니라, 디자인이 어떻게 삶을 바꿀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조용하지만 깊은 선언이었다.
<‘생활의 질서‘를 설계한 디자이너>
‘코 리앙 이’는 형태를 발명한 디자이너라기보다 ‘생활의 질서‘를 설계한 디자이너였다.
그에게 좋은 디자인란 아름다운 물건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이 조금 더 편안하고, 조금 더 아름답고, 조금 더 품격 있게 흘러가도록 만드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의 의자는 지금도 낡지 않았고, 그의 공간은 지금도 현대적으로 느껴진다.
이번 전시는 한 사람의 회고전이 아니라, 디자인이 어떻게 삶을 바꿀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조용하지만 깊은 선언이었다.
글, 사진_ 정석원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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