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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디자인정글 포커스 인터뷰] “우리는 질문을 디자인했습니다” — 서울대 디자인과 학생 6명이 만든 2027 Grand Quest 캘린더

2026-09-24

<과거의 질문과 미래의 질문을 잇고, 대학의 지적 자산을 디자인으로 확장하다>

 

달력은 가장 익숙한 디자인 매체 가운데 하나다. 날짜를 확인하고 일정을 기록한다. 한 해가 지나면 역할을 다하고 새로운 달력으로 교체된다.

 

그런데 달력이 단순히 날짜를 알려주는 도구가 아니라, 매달 하나의 질문을 던지는 매체가 된다면 어떨까.

 

서울대학교 총동창회가 기획한 2027년 캘린더는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주제는 서울대학교가 미래를 향해 던지는 도전적인 질문, ‘Grand Quest’다.

 

이번 프로젝트가 흥미로운 것은 Grand Quest라는 대학의 지적 자산을 단순히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서울대학교 디자인과 22학번 학생 6명 권솔, 노희수, 박서연, 전수정, 최민서, 한상규가 이를 자신들의 언어로 다시 해석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1학년 때부터 함께 여행하고 직접 디자인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해온 가까운 동료들이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Grand Quest를 주제로 삼자는 아이디어 자체가 학생들에게 주어진 과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첫 미팅을 앞두고 학생들은 서울대 80주년을 맞아 발표된 SNU Grand Quest에 주목했다. 총동창회는 ‘새롭고 미래지향적이면서도 배움을 줄 수 있는 메시지’를 원했고, 학생들은 전년도 캘린더가 ‘학생들이 바라본 현재의 서울대학교’를 담았다면 2027년에는 ‘학생들이 바라보는 미래의 서울대학교’를 담아보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Grand Quest가 캘린더의 중심으로 들어왔다. 

 

여기에는 프로젝트를 발주한 서울대학교 총동창회 송우엽 사무총장의 기획적 판단도 작용했다. 총동창회가 처음부터 완성된 디자인 방향을 정해놓기보다 학생들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지를 열어두면서, Grand Quest라는 아이디어가 실제 캘린더 프로젝트로 발전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 프로젝트는 단순한 ‘학생 참여 디자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총동창회가 판을 만들고, 학생들이 질문을 발견하고, 서로 다른 세대가 함께 결과물을 만들어낸 협업 프로젝트라 할 수 있다.

 

2027 서울대학교 총동창회 캘린더는 날짜만을 디자인한 것이 아니다. ‘질문’을 디자인했다. 디자인 참여자 6인의 모습 (사진: 아랫줄 왼쪽부터 한상규, 노희수, 최민서 / 윗줄 왼쪽부터 전수정, 박서연, 권솔)

 

 

<과거의 질문과 오늘의 질문을 짝짓다>

 

Grand Quest의 질문들은 쉽지 않다. 인공지능과 민주주의, 학습과 망각, 세포와 가역성, 공동체와 균형, 면역과 생존, 노화와 생명의 시간에 이르기까지 학문의 경계를 넘나든다.

 

학생들이 발견한 해법은 흥미로웠다. 현재의 질문을 12개월에 단순히 나열하는 대신, Grand Quest에 축적된 역사 속 질문과 2026년의 질문을 두 달씩 짝지었다.

 

그 배경에는 ‘세대의 연결’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학생들은 총동창회가 과거·현재·미래 세대의 동문이 만나는 곳이고, Grand Quest 역시 현재가 미래에 질문을 던지는 프로젝트라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특히 송우엽 사무총장이 이야기했던 총동창회의 비전 ‘Go Together’와도 연결되는 지점이었다. 

 

그렇게 합리성과 민주주의, 학습과 망각, 회복과 가역성, 자율과 균형, 방어와 생존, 생명과 시간이라는 여섯 쌍의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여기서 또 하나의 디자인 번역이 이루어졌다. 질문을 사물로 바꾸는 일이었다.

 

학교와 아고라, 책과 연필, 플라스크와 퍼즐, 지구와 저울, 심장과 분자구조, 시계와 식물.

 

어려운 질문을 설명문으로 풀기보다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사물을 통해 먼저 만나게 한 것이다. 학생들은 “사물을 먼저 보고 질문을 읽으면서 익숙했던 사물을 조금 다른 의미로 바라보게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고 설명한다. 

 

캘린더 디자인 자문을 맡았던 필자 역시 학생들에게 강조했던 것도 같은 지점이었다.

 

“사물을 잘 그리는 데서 멈추지 말고, 그 사물을 통해 질문이 보이게 하자.”

 

좋은 일러스트레이션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질문을 시각언어로 번역하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본질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실제 수정 과정에서도 이런 변화가 나타났다. 민주주의를 표현했던 고전 건축물은 사람들이 모여 토론하고 참여하는 ‘아고라’로 바뀌었고, 세포의 가역성을 다룬 5월 그래픽에는 순환과 되돌림을 상징하는 뫼비우스의 띠가 더해졌다. 학생들은 자문위원의 자문과 총동창회의 피드백을 받아들이면서 처음의 이미지를 다시 해석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단순한 ‘학생 참여 디자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총동창회가 판을 만들고, 학생들이 질문을 발견하고, 서로 다른 세대가 함께 결과물을 만들어낸 협업 프로젝트라 할 수 있다.

 

 

<오방색과 민화로 미래의 질문을 그리다>

 

12장의 그림을 하나의 캘린더로 만드는 시각적 방법도 주목할 만하다.

 

학생들은 두 달씩 하나의 색을 부여하고 그라데이션을 통해 색이 다음 달로 이어지도록 했다. 채움과 비움, 포지티브와 네거티브가 교차하고 형태가 분해됐다가 다시 조합된다. 하나의 정답보다 새로운 관점과 가능성을 찾는 Grand Quest의 성격을 그래픽 시스템 자체에 반영한 것이다. 

 

그런데 언뜻 미래적으로 보이는 이 그래픽의 뿌리에는 우리의 전통이 자리하고 있었다.

 

색은 오방색과 오간색, 사물의 입체적 표현은 민화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방향을 상징하는 오방색을 여러 학문으로 뻗어나가는 질문에 연결하고, 실제 원근보다 관념에 따라 사물을 표현했던 민화의 방식을 추상적인 질문의 시각화에 적용했다. 디지털 그래픽에는 종이처럼 불규칙한 질감을 입혀 차가운 인상도 줄였다. 

 

전통적인 시각문화의 문법으로 인공지능과 생명과학의 미래를 묻는다는 점에서 이번 캘린더의 또 다른 재미가 생긴다.

 

 

 

 

 

 

 

 

 

 

 

 

 

Grand Quest의 질문들은 쉽지 않다. 인공지능과 민주주의, 학습과 망각, 세포와 가역성, 공동체와 균형, 면역과 생존, 노화와 생명의 시간에 이르기까지 학문의 경계를 넘나든다. 학생들이 발견한 해법은 흥미로웠다. 현재의 질문을 12개월에 단순히 나열하는 대신, Grand Quest에 축적된 역사 속 질문과 2026년의 질문을 두 달씩 짝지었다.

 

 

<작업에 참여한 여섯 학생에게 물었다>

 

Q. 여섯 명이 함께 작업하면서 각자 어떤 역할을 맡았나?

 

최민서는 월면 그래픽의 비주얼 아이덴티티와 1·2월, 전수정은 표지 그래픽 및 봉투와 3·4월, 노희수는 총동창회와의 소통을 포함한 전체 총괄과 5·6월, 한상규는 표지·월면 레이아웃과 7·8월, 박서연은 숫자면 레이아웃·편집과 9·10월, 권솔은 11·12월 그래픽을 담당했다.

 

그러나 작업은 여섯 조각으로 나뉘지 않았다. 전체 기획과 시각 방향을 함께 결정하고 공유 작업 툴을 이용해 서로의 결과물을 계속 수정하면서 컬러와 질감, 형태를 하나의 시리즈로 맞춰갔다. 

 

Q. Grand Quest처럼 어려운 질문을 어떻게 일상의 캘린더로 옮겼나?

 

전수정은 이번 작업을 “어려운 질문을 일상의 언어로 옮기는 과정”이었다고 말한다. 질문이 부담스러운 학술적 명제가 아니라 달력을 한 장씩 넘기다가 만나는 작은 호기심이 되기를 바랐다. 

 

특히 3·4월은 학생들이 가장 성공적인 연결로 꼽은 조합이다. 과거에는 기계가 ‘학습’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면, AI의 학습능력이 현실이 된 오늘은 오히려 기계가 인간처럼 ‘망각’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같은 대상을 향한 질문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한 쌍의 달력으로 보여준다. 

 

Q. 여섯 명이 작업하면 서로의 스타일을 맞추기가 어렵지 않았나?

 

학생들은 개인 취향보다 주제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공통의 시각언어를 찾는 것을 우선했다고 한다. 비주얼 아이덴티티 담당자를 두고 제작 가이드를 만든 뒤 네 차례가량 그래픽을 함께 검토했다. 

 

오랫동안 친구로 지내온 관계도 힘이 됐다. 서로 눈치를 보기보다 필요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하고, 작업에 대한 비판과 개인적인 감정을 분리할 수 있었다. 혼자라면 놓쳤을 가독성과 타이포그래피의 작은 문제도 여섯 개의 시선으로 발견했다. 

 

Q. 실제로 사용하는 달력이라는 점은 디자인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

 

한상규는 이 작업이 디자이너만을 위한 작품이었다면 훨씬 파격적인 레이아웃을 시도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다양한 전공과 연령의 동문이 매일 사용하는 제품이기 때문에 가독성과 실용성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래픽의 색을 텍스트까지 연결하면서도 읽기 어려워지지 않도록 채도를 조절하는 등, 시각적 정체성과 실제 사용성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갔다. 

 

Q. 각자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은 무엇인가?

 

노희수는 순환과 되돌림을 뫼비우스의 띠로 풀어낸 5월, 박서연은 외부의 침입에 대응하는 생명의 구조를 표현한 9월의 심장, 전수정은 조선 후기 책가도의 형식을 통해 기계의 패턴 인식을 표현한 3월, 권솔은 시계와 계단을 결합해 시간과 노화에 대한 인간의 개입을 묻는 11월을 꼽았다. 

 

최민서는 자문과 피드백을 거치며 파르테논에서 아고라로 발전한 2월, 한상규는 전형적인 천칭을 로우앵글의 2.5D 그래픽으로 재해석한 8월에 가장 애착이 간다고 했다. 

 

각자의 선택은 달랐지만 공통점이 있다. 처음부터 정답을 알고 시작한 작업보다 고민하고, 실패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이면서 바뀐 작업을 더 소중하게 기억한다는 것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대학의 지적 자산 + 학생의 창의성 + 총동창회의 기획과 지원이 결합하면 무엇을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준 작은 사례다.

 

 

<좋은 대학은 답만 가르치지 않는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필자가 가장 의미 있게 바라본 지점도 여기에 있다.

 

대학은 이미 만들어진 지식을 전달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아직 답이 없는 문제를 발견하고 질문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대학의 캘린더 역시 캠퍼스의 아름다운 풍경이나 상징물을 보여주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우리 대학은 지금 무엇을 질문하고 있는가.’
2027 서울대학교 총동창회 캘린더는 그 질문을 1년 동안 동문들의 책상과 벽으로 가져갈 것이다.

 

학생들도 이 캘린더가 정답을 전달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한 달에 한 번이라도 평소 생각하지 않았던 질문 앞에서 잠시 멈추고, 2027년이 끝났을 때 익숙한 것에 다시 한번 ‘왜?’라고 묻는 태도가 남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것이 어쩌면 이번 캘린더의 가장 중요한 기능일지도 모른다.

 

이번 프로젝트는 디자인을 발주한 서울대학교 총동창회 송우엽 사무총장의 기획적 판단도 작용했다. 총동창회가 처음부터 완성된 디자인 방향을 정해놓기보다 학생들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지를 열어두면서, Grand Quest라는 아이디어가 실제 캘린더 프로젝트로 발전할 수 있었다. (사진: 송우엽)

 

 

<캘린더 한 권보다 더 중요한 것>

 

그리고 이번 작업은 한 번의 성공적인 결과물로 끝나지 않았으면 한다.

 

서울대학교에는 연구와 교육을 통해 축적되는 방대한 지적 자산이 있고, 대학에는 그것을 동시대의 언어로 번역할 젊은 학생들이 있다. 총동창회에는 서로 다른 세대를 연결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있다.

 

이번 프로젝트는 대학의 지적 자산 + 학생의 창의성 + 총동창회의 기획과 지원이 결합하면 무엇을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준 작은 사례다.

 

특히 총동창회 송우엽 사무총장은 완성된 디자인을 발주하는 데 머물지 않고 학생들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총동창회와 학생들 사이의 협업 구조를 만들었다. 학생들이 찾아낸 Grand Quest라는 주제가 실제 총동창회 캘린더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이러한 열린 기획과 조율이 있었다.

 

이런 방식이 지속된다면 해마다 새로운 가능성이 열릴 수 있다. 이런 디자인팀을 동아리로 발전시켜 명맥을 이어갈 수도 있다.

 

그해 서울대학교가 고민하는 연구와 사회적 의제를 학생들이 찾아내고, 그것을 디자인으로 해석하고, 선배 동문과 전문가가 경험을 나누며 자문하고, 총동창회가 실제 결과물로 만들어 다시 동문사회에 돌려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캘린더 제작은 매년 반복되는 인쇄물 제작이 아니라 선배와 후배, 연구와 디자인, 대학과 사회가 만나는 하나의 교육 프로젝트가 될 수 있다.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한 여섯 학생도 이제 각자의 길을 준비하고 있다. 브랜딩과 그래픽, 제품과 리빙디자인 등 지향점은 서로 다르지만, 사람과 사회를 관찰하고 디자인을 통해 자신의 질문을 이어가려 한다.

 

2027년의 마지막 장을 넘겼을 때 이 캘린더의 역할은 끝날 것이다. 하지만 학생들이 던진 질문까지 그때 끝날 필요는 없다.

 

좋은 디자인은 답을 보여주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때로는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질문을 보이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2027 서울대학교 총동창회 캘린더는 날짜만을 디자인한 것이 아니다.

 

‘질문’을 디자인했다.

 

그리고 그 질문을 통해 서울대학교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세대를 연결하는 유용한 매개체가 될 것이다.

 

글_ 정석원 편집인(jsw0224@gmail.com)
사진제공_ 서울대학교 총동창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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