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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집을 둘러싼 모험들 1. 건축가 이재하

2016-04-15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걸쳐 집을 둘러싼 많은 것들이 변화를 시작했다. 거대한 흐름이 주거에 몰리는 현상은 스스로의 가치를 위해 적극적이고 능동적 태도를 보이는 소비성향과 개개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몰입하는 우리 사회전반 곳곳의 분위기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집’을 디자인·설계하는데 가장 주된 역할을 하는 건축가와 디자이너들은 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현재 국내 주택 프로젝트로 주목 받고 있는 젊은 건축가들, 그들을 만나 현재의 집을 둘러싼 개념들, 변화 양상과 새로운 집의 경험들 그리고 생각을 들어봤다. 

 

에디터 ㅣ 김미주(mjkim@jungle.co.kr

사진 ㅣ 박완순 

 

‘주택’을 소유한다는 것. 그것은 누군가의 절실한 소망이자, 꿈이다. 개인의 평생 목표 혹은 한 가족이 이루는 삶의 터전, 외국도 마찬가지겠지만, 한국에서 주택을 소유한 사람들은 이른바 인생의 운수가 좋거나 태어날 때부터 반짝이는 수저를 물었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젊은 시절 무수한 노력을 이룬 결실일 것이다. 

 

삶이 소망한 바를 우리는 늘 주택을 통해서 얻었다. 집 하나만 가져도 먹고 살 걱정을 덜 수 있다는 생각을 구시대적이라 한다면, 현재는 구시대적인 생각을 갖는 것 조차 버거운 시대다. 그래서 주택을 디자인한다는 것은 누군가의 ‘꿈’을 이루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판교 주택단지는 집단적 아키토피아(architopia, architecture+utopia)의 장소로 꼽힌다. 이곳은 명확한 지역적 지표를 골라내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건축가들의 주택 프로젝트가 진행됐고, 여전히 진행 중이다. 건축가 이재하를 만나야 했던 이유도 그러했다.  

 

 

판교동 아이집(i-zip)

판교동 아이집(i-zip) (출처: 사진_ 박완순, 스케치_이재하건축사사무소)

 

 

이재하 건축가를 만난 곳 역시 그의 아틀리에가 자리한 경기도 판교였다. 그는 현재 공공연하게 주택전문 설계가로 불린다. 이유인즉슨, 그가 최근에 진행한 프로젝트의 대부분이 주택임과 동시에 판교에 주택단지에 가면 그가 설계한 건축물이 유난히 많기 때문. 한 명의 건축가가 같은 지역에 꽤 많은 주택을 설계했다, 왜일까? 단지 마을에서 입소문이 나서? 그것도 아니면, 하나같이 살기 좋은 주택을 완성하고 있어서? 

 

건축가 이재하는 지난 2011년 i-zip 프로젝트 이후 국내에서 두각을 나타낼 정도로 다양한 형태의 많은 주택 프로젝트를 설계한 건축가로 꼽힌다. 지난 2009년에는 해외에 연고가 없음에도, 한국 건축가로 시카고 아테나움 건축상(http://www.chi-athenaeum.org)을 수상해 주목 받았다. 한해 20채가 넘는 주택을 설계한 바 있는 그는, 양적 공세라는 핀잔이 무색할 만큼 과감하고 실험적인 디자인으로도 명망이 높다. 인터뷰 중간에도 그의 또 다른 예비 건축주는 그의 작업실 한켠 테이블에서 대기 중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아온다. 이유가 뭘까.  

 

 

 

판교 운준동에 위치한 주택, Breeze 2014

판교 운준동에 위치한 주택, Breeze 2014 (출처: 사진 _ 박완순, 스케치 _ 이재하건축사사무소)


 

Jungle:  이재하 소장님은 주택 프로젝트로 이름이 알려진 것과 달리 첫 프로젝트는 노들섬 오페라 하우스였죠. 주택을 전문적으로 시작하게 된 계기가 따로 있나요?  

 

국내 젊은 건축가들의 초기 작업은 주로 소규모 주택인 경우가 많아요. 저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았죠. 한국의 대학에서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건축 실무를 쌓으며 사무소를 내 독립을 했어요. 현상공모도 참여했지만, 실제 프로젝트는 주택으로 진행하게 된거죠. 

 

주택 작업을 쭉 거듭하다 보니 주변의 평가가 나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 이후로 주택 프로젝트로 지속적인 의뢰가 들어왔고,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현재까지도 많은 주택 프로젝트가 이어지고 있어요. 특별히 주택만 하겠다고 결정하지는 않았습니다. 

 

Jungle:  해외 건축 거장들의 프로젝트를 보면, 건물 자체는 미학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거주자 들은 장기간 거주하지 못하고 떠나는 경우가 많지요. 그러나 소장님의 프로젝트들은 예술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거주자들의 만족도도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양한 주택 프로젝트를 통해 많은 경험이 반영된 것이라 생각해요. 건축가가 자신의 욕심 때문에 예술성만을 추구하며 거주자가 행복하게, 쾌적하게 살 수 있는 권리를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건축적으로도 있어서는 안될 일이라고 생각해요. 또한, 작가주의를 고집하며 예술적인 욕심을 추구하는 성향도 아니거니와, 건축주들이 거주하며 불편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지만, 그들이 수용 가능한 불편함을 고려하는 것도 저만의 방식이죠. 그 안에서 실험적인 예술성을 보여주는 것이 방법이 되겠지요. 그러다 보면 훨씬 더 값진 것들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깨달았죠.  

 

 

건축가 이재하가 설계한 서현동 주택 2013

건축가 이재하가 설계한 서현동 주택 2013 (출처: 박완순)

 

 

Jungle: 마치 시소를 탄 것처럼 심미성와 기능성 사이를 조율하는 것은 건축가에게도 큰 과제일 듯 한데요, 주택이 아름다움을 갖춘 기능성을 살린 건축 형태라고 하셨는데, 기능성과 심미적인 부분의 균형점을 맞추기 위해 특별한 고민을 하시는지, 건축주의 한정적 예산 앞에 건축가가 추구하는 예술적 균형은 어떻게 해결하시나요?  

 

가능한 양쪽을 포기하지 않는 선에서 균형점을 찾으려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정말 많은 노력을 하는 수 밖에 다른 방법은 없는 것 같아요. 저는 둘 중 어느 하나에 치우치면 안된다는 생각이 강렬하고 이에 절충점을 찾는 것이 가장 현명하지만, 가급적 포기하지 않고 수많은 스터디를 거듭하죠. 

 

건축주들이 의뢰를 위해 저를 찾을 때는 물론 희망하는 주택에 관한 요구사항이 일반적으론 많아요. 하지만 모든 것을 반영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그에 맞추려한다면, 디자인 폭이 매우 좁아지죠. 건축주들이 원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조합해 조그만 땅 위해 해결점을 찾는 것은 물론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 역시 건축가로서 노력해야 할 부분 중 하나죠. 대부분이 건축주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저도 노력하지만, 디자인적 솔루션이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는 양해를 구하는 편입니다. 

 

역으로 건축가를 믿고 창의성을 발휘하도록 지켜봐 준다면, 그에 걸맞은 조형미를 가득 담은 건축물이 탄생하는 경우도 있지요. 가령 ‘기능성이 1, 작품성이 10이라면 7 정도로 해달라’ 라고 명확하게 얘기하는 건축주도 있었어요. 

 

건축 예산과 예술성은 비례하게 되어 있습니다. 작품성이라는 것은 결국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고, 디테일한 부분에서의 많은 공임이 드는 것이 사실이지요. 시공에 필요한 공사비도 증가하게 되며, 조형적으로도 단순히 심플한 박스 위주의 조형미를 벗어나 다른 가능성을 찾다 보면 형태적으로 실험적인 시도를 하게 되죠. 따라서 이를 구현하기 위한 공사과정도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만큼의 예산이 투입되기 때문이지요.  

 

 

서현동 주택 디자인 스케치

서현동 주택 디자인 스케치 (출처: 이재하건축사사무소)


 

 

 

 

 

Jungle:  건축사무소에서 주택 설계만 한다는 것 자체에 무리가 없을까요?   

 

물론 어려움이 많지요. 주택이란 것이 설계를 해냈다고 해서 결과가 꼭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죠. 다양한 기능을 가진 건물들 중에서도 건축주가 가장 깊이 있는 관심을 보이는 건물이 ‘주택’이고, 같은 주택이라 해도 제각각 용도가 다르죠. 또한, 일반적으로 본인이 살 집은 누구나 꿈꾸고 있는 건물이며, 그에 따라 디테일한 부분들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을 것은 당연하고요. 미적인 부분 혹은, 주택에서의 기능적인 부분 등, 다양한 요소들을 세밀하게 고려하여야 하기 때문에 아직도 설계하면서 어려움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Jungle: 건축주와의 호흡이 꽤 좋았던 프로젝트를 꼽는다면? 

 

대표적인 건물은 판교의 아이집(i-zip). 건축주의 특별한 요청이 거의 없었다. 건축주의 요구사항이 적을수록 좋은 아이디어가 샘솟듯 쏟아집니다(웃음). 최근 완공된 서현동 주택도 그렇고. 언급했듯이 건축가의 자율성이 많이 보장되면, 성향이 많이 반영된 건물이 디자인되는 편이죠.   

 

Jungle: 소장님은 한 때 판교 주택가로 불리기도 했지요? 그만큼 판교에 진행한 프로젝트가 많다는 얘긴데, 건축 설계에 지역성과의 특별한 상호작용이 반영되는 편인가요? 

 

최근의 저희 사무소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전국으로 분포되어 있고, 판교에서의 비율은 30% 정도 됩니다. 다만 최근 2~3년간은 프로젝트의 절반이 판교에 집중되어 있었지요. 판교는 최근 개발되어 새로 지어지는 주택들도 많고, 새로 건축을 원하는 잠재 건축주들도 많은 편이죠. 저뿐만 아니라 판교에 위치한 멋진 건물들을 접한 예비 건축주들은 수소문하여 건물 설계자를 찾고, 다시 그들에게 의뢰를 합니다. 아직도 현재 그 수요는 꾸준한 것 같아요. 

 

제 프로젝트에서 지역적인 맥락은 주 고려 대상은 아닙니다, 다만, 건물 자체 본연의 아름다움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고, 주변 맥락에 맞춘 건물을 생각하지는 않고 있어요. 건물이 위치한 그 땅에서 그 건축물이 빛나게 되면 주변에 산재한 다양한 요소들에 그 심미적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까요.

 

판교동 단독주택 2014

판교동 단독주택 2014 (출처: 사진_ 박완순, 스케치_이재하건축사사무소)

 

 

 

Jungle: 많은 건축가들이 자신만의 건축적 어휘를 가지고, 자신만의 리서치 방식을 통해 작업을 진행하죠. 소장님이 작업한 주택은 한 사람의 디자인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디자인이 확연히 다르죠. 작업과정에 대한 설명을 해주신다면?  

 

디자인적 ‘동일함’ 이란 것에 대해 스스로의 흥미도 떨어지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때의 기대와 흥분을 항상 느끼는 편입니다. 먼저 건축주의 요청사항을 리스트 업하고, 대지를 분석하며, 요청사항을 기반으로 배치를 합니다. 

 

동시에 미적인 양식을 건물에 반영하고자 하기 때문에 그 후 복합적인 내용들은 스케치와 직감, 경험 등을 통해 구현시키죠. 일련의 과정들이 다른 건축가들과 비교하면 특별 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생각이 다양한 요소와 복합체를 이루는 그 순간 나오는 아이디어나 이미지 등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Jungle: 최근에는 주거에 관한 새로운 시도들이 쏟아지고 있죠. 셰어하우스(Share House)나 마이크로 하우징(Micro Housing) 등 주거양식에 대해서 사회적인 요구가 다양해 지고 있는데요.  

 

지금껏 진행했던 프로젝트에서는 아직까지 이런 요구를 하는 건축주들이 없었기에 집중적으로 생각해보지는 않았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주거양식을 요구하는 사회, 건축적 요구에 대해서는 건축가들도 그 흐름을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거비 부담이 너무 크기에 나오는 사회적인 현상이라 생각하는데, 저 역시 이에 대해서는 분노를 느낍니다. 정부, 시공사, 일조한 국민들 모두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죠. 정치, 사회적으로도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필요한 부분이죠. 

 

 


 

 

Jungle: 판교 인근 프로젝트 중 관심 가는 다른 건축가의 프로젝트들도 눈 여겨 보시나요? 다른 분야와 협업에 대한 고민도 하고 있는지? 

 

저는 특별히 교류하는 아티스트나 작가는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판교 주택단지 내 위치한 건물 대부분은 완성도가 높다고 생각해요. 그 중 정수진 건축가의 중정을 강조한 건물들이나, 조성욱 건축가의 인테리어 완성도 같은 부분들은 높이 평가할 부분이죠. 제 작업 성향상 협업은 개인적으로는 어렵다고 생각해요. 스스로 모든 작업을 관할하고 손을 거쳐야 마음이 놓이는 편이라서 그 부분에 대한 협업은 힘들 것 같네요.  

 

 

판교 단독주택 2013

판교 단독주택 2013 (출처: 사진_ 박완순, 스케치_이재하건축사사무소)

 

 


Jungle:  건축가로서 주택 건축에 앞선 자세, 사회적 책임에 대한 소장님의 생각이 궁금한데요. 

 

집을 짓는다는 것은 개인의 꿈을 현실화 시키는 것입니다. 이런 꿈을 안고 건축가를 믿고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찾아온 대부분의 사람들을 반드시 만족시키고자 하는 책임감은 막중하지요. 주택을 건축하는 대부분의 건축가가 그런 생각들을 갖지 않을까요? 그 뒤로는 건축에서의 아름다움을 구현하기 위한 자아실현. 그 이후가 경제적인 얘기가 될 것 같네요. 

또한 건축가는 ‘도시’라는 커다란 틀 속에서 많은 비용을 들여 직접 눈에 보이는 실체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커다란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최대한의 아름다움을 구현해 사람들로 하여금 즐거움과 행복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Jungle: 소장님이 생각하고 있는 좋은 주거의 조건은 무엇인가요? 

 

본인이 늘 꿈꾸던 아름다운 집, 뛰놀 수 있는 마당 등의 요소들은 행복한 삶을 만드는데 어느 정도 일조한다고는 생각해요. 무엇보다도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가졌다면 자신의 집에 대한 즐거움과 자부심이 더 커지겠죠. 거주자의 편의를 위해 건축 강론에 가장 기본적인 채광, 환기 등이 잘 고려된 집. 편안하게 잠 잘 수 있는 집. 이러한 기본적인 요건들에서 좋은 주거가 탄생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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