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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위기의 시대에서 디자이너의 역할

에치오 만치니 | 2016-06-13

 

지나친 산업화와 기술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자원 고갈과 환경 오염, 지역 공동체 파괴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이런 환경 속에서 문제를 해결한다는 디자인의 역할은 인류가 맞이한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론으로 주목받고 있다. 변화하는 세상처럼 디자인 역시 의미가 확대되고 흐름에 맞게 변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디자이너의 역할은 무엇이며 어떠한 자질을 갖춰야 하는가?

 

에디터 | 허영은(yeheo@jungle.co.kr)

자료제공 | 안그라픽스

 

<모두가 디자인하는 사회> 표지 이미지

<모두가 디자인하는 사회> 표지 이미지

 

현재 인류는 역사상 가장 큰 위기를 맞고 있다. 전쟁, 기아 등 과거부터 있었던 문제부터 환경오염, 경제 위기, 비인간화, 고령화 사회 등 우리가 예상하지 못 했던 문제까지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 결과로 사람들은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이끌었던 정책과 사상이 사실상 최적의 방법이 아님을 깨달았고, 모두가 같이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스스로 간구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사회 문제의 등장과 기존 가치관 붕괴라는 시대적 상황은 디자이너에게 ‘과연 디자인은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고민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소수 디자이너들은 자발적으로 사회 문제를 다루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거나 혹은 직접 진두지휘하며 나름대로 답을 내놓았다.

 

디자이너의 사회 참여는 시간이 지날수록 활발해졌고 그로 인해 디자인의 의미와 영역이 확대되었다. 과거 광고, 패키지, BI 등 아름다운 형태로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디자인의 주 역할이었다면, 현재는 서비스나 시스템 등 사람들 삶에 영향을 끼치고 새로운 사회를 설계하는 영역까지 범위가 확대되었다. 사람들의 의식을 바꾸고 행동을 유도하여 사회를 살기 좋은 곳으로 바꾼다는 점에서 디자인은 이전보다 사회와 더 깊은 관계를 맺게 되었고, 사회혁신 분야가 제품, 그래픽, 영상 등과 함께 디자인의 한 영역으로 위치하게 되었다.

 

 

사회혁신 디자인은 현재 활발한 분야 중 하나지만, 사실상 개념을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디자이너는 많지 않다. 이유 중 하나는 사회혁신 디자인이 다루는 분야가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회 문제이기 때문이며, 다른 이유는 일반인과 전문 디자이너 모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혼란 속에서 에치오 만치니(Ezio Manzini)의 책 <모두가 디자인하는 사회>는 사회혁신이란 무엇이고, 왜 일어났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디자이너의 역할은 무엇인지를 전문가의 시선으로 본 여러 사례를 통해 설명한다.

 

에치오 만치니가 정의하는 사회혁신 디자인이란 다양한 지식, 사고, 기술을 적용해 우리 삶의 방식을 바꾸고 사회 변화를 촉발할 수 있는 제품, 서비스, 정책, 조직 등을 디자인하는 것이다. 주로 문제를 겪은 당사자나 혹은 그에 관심 있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일으키고 여러 사회 조직의 협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책에 나온 사례들도 한 개인이나 단체가 아이디어를 내면서 시작된 경우가 많은데, 에치오 만치니는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누구나 무언가를 생각하고 만들 수 있는 ‘보편적인 디자인 능력’을 갖춘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모두가 디자인할 수 있는 시대란 사회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지만, 한편으로 전문 디자이너에게는 자신의 위치에 대한 고민을 안겨준다. 저자인 에치오 만치니는 이럴 때일수록 디자인 훈련을 거쳐 다양한 경험을 쌓은 전문 디자이너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디자인 훈련을 갖춘 전문 디자이너는 사회혁신 과정에서 수많은 아이디어를 효과적으로 접근하고 조율할 수 있다.” 즉, 누구나 아이디어를 낼 수 있지만 이것들을 조율하여 프로젝트를 한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것은 전문 디자이너의 몫인 것이다.

 

전문 디자이너가 사회혁신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사회혁신 프로젝트를 시작한 만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가 겪는 문제들은 지역과 문화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전 세계에서 동시대적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문제를 해결한 좋은 디자인은 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다른 지역에도 적용되면서 널리 확산될 수 있다. 이렇게 널리 퍼진 아이디어가 오랫동안 유지되어 진정한 의미의 사회혁신 디자인으로 자리 잡기 위해선 전문적이고 통합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이를 확산, 유지시킬 수 있는 전문 디자이너의 손길이 필요하다.

 

 

아마 앞으로는 더 다양하고 복잡한 사회문제들이 나타날 것이다. 사회가 변할수록 디자인의 의미와 영역 역시 변할 것이며, 디자이너에게 요구되는 자질도 달라질 것이다. 매 순간마다 위기를 맞이하는 시대에서 디자이너는 사회, 환경, 경제 등 사회 여러 분야에서 대두되는 현상과 그에 따른 문제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콘셉트, 시나리오, 비전의 형태를 제시하거나 플랫폼을 디자인해야 한다. 그리고 보편적인 디자인 능력을 가진 사람들과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촉진자로서 새로운 위치를 가지게 될 것이다. 함께 일하는 사람도, 고려해야 할 사항도, 뜻을 이룰 기회도 커졌다. 어쩌면 디자이너에게 미래는 위기의 시대가 아니라 디자인의 힘을 맘껏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의 시대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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