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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인터뷰

갖고 즐기는 자연

2016-09-21

 


 

자연은 넓다. 싱그럽고 푸르른 자연은 넓지만 멀다. 무조건 좋은 것, 그래서 늘 동경하지만 너무나 거대해 소유할 수 없다는 것이 자연에 대한 일반적인 지론이었다. 

 

자연, 다시 생각해보면 

하지만 조금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그리 거창할 것도 없다. 갖고 싶으면 가지면 된다. 왜 꼭 넓고 푸르러야만 하는가. 그것이 자연이라고 누가 정의해 놓았는가. 그저 보기에 아름다우면 되고, 그래서 기분이 좋으면 되는 거다. 

 

자연에 대한 ‘정의’가 새로워지면 자연을 통해 할 수 있는 것, 얻고 즐길 수 있는 것이 훨씬 많아진다. 이러한 생각은 바로 베리띵즈의 윤숙경 대표가 자연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이기도 하다. 

 

“자연은 다양하게 뻗어나갈 수 있는데 ‘착하고 좋은 것들’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것 같아요. 자연에 대한 관심이 커졌지만 여전히 ‘자연’하면 ‘멀리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것 같아요. 히말라야 산맥, 이런 건 정말 좋지만 멀잖아요. 가까운 자연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옥수동에 위치한 베리띵즈의 작업실

옥수동에 위치한 베리띵즈의 작업실

 

 

공원이 참 좋아서 

그녀의 이러한 ‘가까운 자연’에 대해 관심은 매우 사적인 경험에서 비롯됐다.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고 한 패션 브랜드에서 패션마케팅 업무를 담당했던 윤 대표는 6년 차 때 퇴사를 했다. 쉼 없이 달리기도 했고 남자친구와도 헤어져 심신이 많이 지쳐있던 그는 동생이 있던 런던으로 가 많은 시간을 공원에서 보냈다. “공원에 갔는데 제가 울고 있더라고요, 주책맞게. 왜 울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슬퍼서 운 것 같진 않아요. 너무 좋기도 했거든요. 그때 공원 브랜딩을 공부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어요.”

 

학교를 알아보았지만 ‘공원’만을 다루는 학과는 영국에도 없었다. 디자인과 아트를 베이스로 너무 학구적이지 않고 싶었던 그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자신만의 길을 찾았다. “아트도 좋아하고 잡지 보는 걸 워낙 좋아해서 그쪽으로 키워드를 잡았어요. 그러다 보니 필터가 생기더라고요.” 

 

공원에 대한 일반적인 정보를 나열하는 대신 사람들이 공원에 대해 느끼는 감정들을 수집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공원에 대한 ‘이모셔널 맵(emotional map)’을 만들었다. “사람들에게 이 공원이 왜 좋은지를 물어봤어요. ‘화가 날 때 뛰면 참 좋아, 나무가 하나도 없거든’, ‘사슴이 보고 싶으면 이곳에 가’, 이런 대답들을 들을 수 있었죠. 이런 정보들은 ‘연예인이 입은 옷이 참 예쁜데 어디 옷이더라’ 하는 식의 정보나, 친구가 입은 옷이 예뻐서 ‘이거 어디에서 샀어?’하고 직접적으로 묻는 것과는 가치와 느낌이 많이 다르잖아요. 무척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았죠.”

 

베리띵즈의 스튜디오에서는 아름다운 모양의 다양한 식물들이 자연스럽게 자리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베리띵즈의 스튜디오에서는 아름다운 모양의 다양한 식물들이 자연스럽게 자리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매우’의 것, Very things

그렇게 ‘베리띵즈(Verythings)’라는 논문이 완성됐다. “‘매우 좋은 것’, ‘제일 좋은 것’이라는 뜻으로 지었어요. 이런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을 최상위로 보고 계속 해나가야겠다는 생각으로 ‘가장 경이로운 것’, ‘가장 섹시한 것’, ‘매우의 것’, 그렇게 이름을 붙였죠.” 

 

그녀도 처음부터 자연이 좋았던 것은 아니다. “할머니의 전유물 정도로만 생각했었어요. 근데 그때 진짜 힘들었나 봐요. 퇴사하기 전 회사에서 그린 캠페인을 진행했었는데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회의감을 느꼈어요. 에코티, 에코백을 만들고 텀블러 쓰자는 캠페인도 했지만 정작 사무실에서는 텀블러도 쓰지 않고 분리수거도 하지 않았고요. 그때 이미 제가 지금 하는 일과의 연관성이 생겼던 것 같아요.”

 


다양한 식물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베리띵즈의 스튜디오

다양한 식물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베리띵즈의 스튜디오

 

 

베리띵즈의 스펙트럼

베리띵즈하면 ‘자연, 네이처 띵즈(Nature things)를 소재로 감각적인 공간을 선보이는 디자인 그룹’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사실 베리띵즈는 ‘공원’에 대한 애정을 베이스로 디자인 이외에도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윤 대표가 한국으로 돌아와 가장 먼저 찾아갔던 곳은 농촌진흥청이었다. 전시를 앞두고 씨앗 후원을 받기 위해서였다. “농촌진흥청 관계자분이 무척 좋아하시면서 관상용 씨앗을 보여주셨는데 패턴이 무척 흥미로웠어요. 그때의 인연으로 농촌진흥청의 견학 프로그램도 기획했고요. 한국에 막 돌아왔을 때가 2013년도였는데 도시농업 육성 5개년 사업으로 여러 가지 행사들이 많이 진행됐거든요. 한국의 현실이 보이면서 제가 할 일들이 참 많다는 걸 느꼈죠.” 

 

현재 베리띵즈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기 위해 자연의 다양한 형태를 다루는 콘텐츠를 보여주고 있다. ‘베리키피디아’가 대표적인 작업으로 지난여름 개최됐던 국제갤러리의 ‘유명한 무명’전에서 선보였던 공기정화식물도 그중 하나다. “식물을 오브제나 디자인 피스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생기긴 했지만 아직까진 식물이라는 아이템이 기능적으로 보이는 것이 사실이에요. 기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식물이 대단한 기능을 해주길 바라는 건 아니지만 우선은 이로운 점을 생각하게 된다는 거죠.”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유명한 무명’전 에서는 나사(NASA)의 식물 공기정화능력 실험 결과 순위를 전시했다. 〈THE 50 GREATEST PLANTS BY NASA, 나사의 공기 정화 연구: 실내 공기 오염 물질 감소를 위한 실내조경식물 50〉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유명한 무명’전에서는 나사(NASA)의 식물 공기정화능력 실험 결과 순위를 전시했다. 〈THE 50 GREATEST PLANTS BY NASA, 나사의 공기 정화 연구: 실내 공기 오염 물질 감소를 위한 실내조경식물 50〉

 



‘유명한 무명’전에서는​ 선인장을 통한 사운드 작업과 식물 병원에서의 치료기록, 아름다운 색과 형태의 호박 등을 선보이기도 했다.

‘유명한 무명’전에서는 선인장을 통한 사운드 작업과 아름다운 색과 형태의 호박, 식물 병원에서의 치료기록 등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밖에도 선인장을 터치할 때 나는 소리를 조합해 사운드를 만들었고 알록달록 아름다운 빛깔과 형태의 호박을 모아 전시했으며 식물 병원에서의 식물 치료기록과 입·퇴원 기록을 전시했다. 

 

“‘베리키피디아’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지 방향을 잡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작품들이에요. 사실 저희가 다루는 정보들은 고급정보들이 아니거든요. 어떻게 큐레이션 하느냐가 중요하죠.”

 

윤숙경 대표의 ‘식물’

그녀에겐 ‘그린(green)’한 것만이 자연이 아니다. 그래서 그녀가 말하는 식물의 개념도 일반적인 것과는 좀 다르다. ‘너티(Naughty) 플랜트’, ‘섹시(Sexy) 플랜트’, ‘베드(Bad) 플랜트’ 등의 ‘음탕한’ 식물과 죽은 식물인 ‘데드(Dead) 플랜트’도 있다. 그런 다양한 식물들을 정보로, 음악으로, 설치로 표현한다. 

 

“우리가 모은 정보들을 사이트에 올렸어요. 공개적으로 오픈한 적이 없는데도 많은 분들이 들어와서 보시고 문의를 해주셨죠. 이제 정말 필요할 때가 됐구나 싶어요. 얼마 전 연구소로 등록이 됐는데 그동안 제대로 해오지 못했던 작업들을 연구소의 역할을 통해 제대로 다시 시작할 때가 된 것 같아요.”

 

9월 10일부터 10월 4일까지 한남동에 위치한 스튜디오 콘크리트에서 열리는 전시에서도 베리띵즈의 자연에 대한 넓은 시각을 확인할 수 있다. ‘Mushrooming Tower’와 ‘Vastness : Energy Something’를 선보이는 이번 전시 ‘THEY LIVE : 그들이 산다’에서는 도심 속 생물, 생물과 사물의 경계를 통해 ‘나’와 ‘타인’의 관계를 느낄 수 있다. 

 


‘THET LIVE’, ‘Mushrooming Tower’

‘THET LIVE’, ‘Mushrooming Tower’

 


‘THET LIVE’, ‘Vastness : Energy Something’

‘THET LIVE’, ‘Vastness : Energy Something’

 

 

베리띵즈의 할 일

베리띵즈는 참으로 많은 일을 한다. 조경도 하고 인테리어도 하고 브랜딩도 하고 아트도 한다. 현재 진행 중인 배우 유아인 씨의 집 조경작업에서는 핑크 잔디로 정원을 꾸밀 예정이다. 

 

“이 다양한 카테고리의 공통점이 ‘자연’에만 있는 것은 아니에요. 자연만 소재로 다루는 것도 아니고 또, 자연을 자연으로만 보지도 않고요. 패션, 아트, 디자인, 리빙이 모두 한 선에 있다고 생각해요.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필요한 활동들에 자연이 개입되어 있다고 보는 거죠. 무엇과 붙여보아도 참 잘 맞아떨어지거든요. 저희가 하는 일이 다 한 가지 선상에 있다고 생각해요.” 

 

베리띵즈 윤숙경 대표

베리띵즈 윤숙경 대표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베리띵즈는 앞으로도 많은 일을 할 계획이다. 공간도 꾸미고 제품도 디자인하고 조경도 할 거다. 이 모든 일을 통한 최종 목표는 R&D 센터를 통해 더 나은 삶을 위한 디자인솔루션을 제시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자연을 그리워하죠. 하지만 도시를 떠나긴 싫어해요. 저흰 그런 사람들을 위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동네마다 다른 가로수, 그 모양들만 가지고도 무언가를 할 수 있거든요. 늘 보는 것들이지만 고개가 끄덕여지는 순간이 많아요. 그런 포인트를 계속 이야기하고 싶어요. 너무 먼 자연 말고, 너무 착하고 예쁜 자연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그냥 자연스럽게 함께 있는 것, 그런 자연이 됐으면 좋겠어요.”

 

에디터_ 최유진(yjchoi@jungl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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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에디터
감성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디자인, 마음을 움직이는 포근한 디자인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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