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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누구나 가슴속에 영웅 한 명쯤 품고 살잖아요

2016-10-25

 

 

당신의 영웅은 누구인가? 지구를 지키고 악당과 싸우는, 그런 영화 속 영웅 말고, 당신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평범하지만 특별한 ‘진짜’ 영웅 말이다. 

 

'페스티벌 284: 영웅본색' 행사 포스터

 

영웅. 영어로는 Hero.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고 용맹하여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을 뜻한다. 그러니까 보통의 평범한 사람과는 정반대에 놓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 ‘페스티벌 284: 영웅본색’은 이 오래된 명제에 의문을 제기한다. 

 

의문 1. 이순신 장군, 슈퍼맨, 야구선수 박찬호. 흔히 ‘영웅’ 하면 떠올리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 영웅들은 누가 정한 걸까?

 

의문 2. 대다수가 말하는 영웅의 정의에 당신도 동의하는가? 당신의 마음속 깊숙이 자리한 영웅은, 혹시 무척이나 평범한 사람 아니던가? 이를 테면 당신의 아버지 같은.

 

의문 3. 평범한 사람은 영웅이 될 수 없는 걸까? 평범하기도 어려운 시대를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그 자체로 영웅이 될 자격이 충분한 것 아닌가?

 

비범과 평범 사이

문화역서울 284 건물 1층 로비에는 이번 페스티벌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 전시돼 있다. 권오상 작가의 사진 조각 <데오도란트 타입(Deodorant Type)>으로, 입체의 모델을 다각도에서 촬영한 후 이 사진들을 아이소핑크(스티로폼의 일종) 표면에 붙여 완성했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박찬호, 김혜자 같은 유명인과 일반인의 환조를 뒤섞어 놓음으로써 영웅의 조건이나 평가는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는 곧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다는 말과 같다.

 

권오상 <데오도란트 타입>

권오상, <데오도란트 타입>

 

권오상 <데오도란트 타입>

권오상, <데오도란트 타입> 중 배우 김혜자

 

1층 끝 방에는 한 노인의 나신이 놓여 있다. 최수앙 작가 외 5인으로 이뤄진 모조 기념사업회의 작품 <최평열 과장 기념관(Chief Choi Pyung_yul Memorial Hall)>이다. 평범한 인생을 살아온 70대 노인 최평열 씨의 일대기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작품으로, 최평열 씨는 최수앙 작가의 실제 아버지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누군가의 아버지가 아닌, 평범한 사람으로서의 최평열에 주목했다. 이 프로젝트는 누구든지 영웅이 될 수 있다는 따뜻한 메시지와 더불어 한 시대나 지역의 영웅이 어떻게 조작되고 탄생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모조 기념사업회 <최평열 과장 기념관>, 2016

모조 기념사업회, <최평열 과장 기념관>, 2016

 

모조 기념사업회 <최평열 과장 기념관>, 2016

모조 기념사업회, <최평열 과장 기념관>, 2016

 

2층의 가장 큰 전시장에 들어서면 셀러브리티들이 당신을 반길 것이다. 중국 작가 장 웨이의 <가상극장(Artificial Theater)>으로, 얼핏 스티브 잡스나 앤젤리나 졸리, 오드리 햅번 등 해외 유명인의 사진을 늘어놓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이미지는 중국인 300여 명을 촬영한 인물 사진에서 피부와 머리카락 등을 가져와 컴퓨터로 짜깁기해 만들어낸 것이다. 결국 영웅이라는 것은 평범한 사람의 영혼과 정신에 깃들어 있는 것임을 시사한다.

 

장 웨이 <가상극장> 연작

장 웨이, <가상극장> 연작

 

장 웨이 <가상극장>, 영웅 스티브 잡스, 2015, Duratrans, Lightbox installation, 156×120cm

장 웨이, <가상극장>, 영웅 스티브 잡스, 2015, Duratrans, Lightbox installation, 156×120cm

 

그러므로 당신도 영웅이다

아예 스스로 영웅이 된 작가도 있다. 1층 구석으로 가면 캐릭터 모형과 만화책으로 가득한 자취방이 있다. 이 평범한 방은 실은 영웅으로 변신하기 위한 장치가 갖춰진 비밀기지다. 장지우 작가는 <프로젝트: 영웅되기(Project: Be the Hero)>를 통해 스스로 슈피 히어로 ‘지우맨’이 되어 악당을 물리치고 약자를 돕는다. 방 한 켠에서는 지우맨이 활약상이 고스란히 담긴 영화가 상영되는데, 이는 특촬물(특수촬영물)이라 불리는 ‘슈퍼 히어로’ 장르의 전략적 기법을 그대로 모방했다. 작가는 이를 통해 평범하기 짝이 없는 ‘나’도 어쩌면 영웅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장지우, <지우맨-프로젝트 영웅되기>.

장지우, <지우맨-프로젝트 영웅되기>. 평범한 자취생의 방

 

지우맨 수트

지우맨 수트

 

장지우, <지우맨 에피소드 3>, 2016, Full-HD video installation, 13min 13sec

장지우, <지우맨 에피소드 3>, 2016, Full-HD video installation, 13min 13sec

 

광장으로 나가면 각자가 생각하는 다양한 영웅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건축가 김광수의 파빌리온 프로젝트 <만다라 영웅(Mandala Hero)>이다. 관객과 작가가 사진과 액자를 주고받는 일종의 액자놀이로, 작가는 이 과정을 통해 관객에게 자신만의 영웅을 찾아보라고 권한다. 관객이 ‘자신의 영웅’ 사진을 찍어 작가에게 보내면, 작가는 그 사진을 프린트해 관객에게 보낸다. 관객은 다시 사진이 놓인 광경을 찍어 작가에게 보내고, 작가는 이를 새로운 액자로 만들어 보내준다. 관객과 작가, 그리고 공간이 관계를 형성하는 이 과정을 통해 미완의 작품은 비로소 완성된다. 

 

김광수, <만다라 영웅>, 2016, 광장파빌리온

김광수, <만다라 영웅>, 2016, 광장파빌리온

 

김광수, <만다라 영웅>, 2016, 광장파빌리온

김광수, <만다라 영웅>, 2016, 광장파빌리온


 

전시를 둘러보고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영웅의 조건과 그에 대한 평가는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영웅의 정의는 결코 영원하지 않으며, 그러므로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다. 평범한 나의 아버지, 애완동물, 심지어 야식메뉴까지.

 

 

덧. ‘페스티벌 284: 영웅본색’에는 이것 말고도 기발하고 흥미로운 작품이 많다. 무려 8개국 24팀 70명의 작가가 참여해 오늘날 우리들의 진정한 영웅에 관해 이야기한다. 전시뿐만 아니라 공연, 영화, 워크숍 등의 프로그램으로 엮어 관객이 직접 참여하고 즐길 수 있도록 구성했다. 무료 관람이라 더 반가운 이 행사는 12월 4일까지.

 

제이미 우드, <오 노!>, 연극

제이미 우드, <오 노!>, 연극

 

제이미 우드, <오 노!>, 연극

제이미 우드, <오 노!>, 연극

 

 

에디터_ 추은희(ehchu@jungle.co.kr)

사진제공_ 문화역서울 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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