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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디자인, 이제 권익을 말할 때

2011-10-12



국내 디자인산업이 성장함에 따라 디자인권 및 계약과 관련된 분쟁 역시 증가하고 있다. 대부분의 분쟁이 디자인 기업과 클라이언트와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약자의 입장으로 항상 손해를 감수해야 했던 것은 디자인 기업들이었다. 잘못된 관행이나 불공정한 거래로 피해를 받으면서도 클라이언트와의 관계나 내부적 사정들로 인해 적극적인 대응이 힘들었던 것이다. 최근 한국디자인기업협회(이하 KODFA)를 중심으로 이 같은 문제를 수면 위로 띄워 함께 해결해보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그리고 그 첫걸음으로 준비된 것이 ‘디자인피해사례신고센터’다.
KODFA와 한국디자인진흥원이 마련한 ‘디자인피해사례신고센터’는 디자인 기업들의 분쟁 피해 현황과 향후 대응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설립된 것으로 지난 9월 20일 개소식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김의영 KODFA 사무국장과 디자인피해사례신고센터상 정종원 디자인파크대표의 이야기를 통해 이번 사업의 목적과 의의, 그리고 향후 계획 등 보다 자세한 내용을 살펴보자.

에디터 | 길영화(yhkil@jungle.co.kr)

Jungle: 디자인피해사례신고센터가 설립된 계기나 목적은 무엇인가요?

김의영 사무국장: 현재 국내 디자인 기업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계약관계에서 소위 말해 ‘을’의 위치에 놓여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크고 작은 분쟁들이 일어나면 클라이언트와의 관계에서 불리한 측면이 많았죠. 다른 산업 분야들에서도 이런 문제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특히 디자인 분야는 유독 ‘을’쪽이 당하는 왜곡된 관행이 알게 모르게 있어왔습니다. 그리고 디자인 기업 입장에서 불리한 상황을 호소할 방법도 딱히 없었죠. 이제 국내 디자인 업계도 상당히 성숙했고, 관행이나 불공정 거래에서 오는 피해에 대해 함께 고민해야 할 시기가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Jungle: 이번 사업 이전에는 디자인 기업들의 분쟁이 어떻게 중재되었나요?

정종원 대표: 그 전에는 디자인 기업들이 스스로 대응했습니다. 그러나 국내 디자인 기업들이 중소규모인 경우가 많고, 또 시간에 쫓기며 일을 하다 보니 제대로 된 대응이라고는 할 수 없었죠. 클라이언트의 눈치도 살펴야 됐고요. 분쟁이라곤 하지만 결국 클라이언트 눈 밖에 나면 그만큼 손해는 고스란히 디자인 기업들의 몫이 되니까요. 그렇다보니 암묵적으로 ‘을’의 입장인 디자인 기업들이 참고 넘어가는 경우가 십중팔구였습니다. 간혹 법정으로 가기도 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분쟁들이 소액이라 영세한 기업들에게는 소송비용이 부담이 되기도 하고, 디자인 작업의 특성상 애매모호한 판결기준 때문에 법원에서는 책임을 반반씩 묻는 것으로 결론을 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Jungle: 그렇다면 이런 분쟁들이 일어나는 근본적인 이유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일반 산업분야에서 일어나는 분쟁과는 다른 원인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정종원: 디자인 비즈니스를 이해 못해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디자인은 보통 일반적인 상품이나 서비스가 생산되고 유통되는 것과 분명히 다릅니다. 자신의 상품을 만들어 파는 것이 아니라, 의뢰 받은 작업물을 생산하는 것이죠. 이게 무슨 차이냐면, 상품이라면 팔리던 안팔리던 시장에 내놓을 수 있지만, 디자인 작업물은 의뢰한 클라이언트가 쓰지 않겠다고 하면 세상에 나올 수 조차 없다는 것입니다. 한정된 클라이언트만을 위한 작업이란 얘기죠. 그렇기에 작업에 쏟아 붓는 시간이나 인력 등이 전부 기회비용으로 책정이 되어야 하는데, 대부분 클라이언트들은 그 과정이 생략하고 결과물만을 가지고 가치를 책정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죠. 간혹 이를 잘 알고 악용하는 클라이언트들도 있지만, 사실 대부분은 악의적으로 그런 것이라기 보다 디자인 비즈니스를 몰라서 발생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니 이전 다른 산업분야에서 통용되던 관행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죠.

Jungle: 디자인 비즈니스가 다른 산업분야와 다른 점을 자세하게 이야기 해주신다면?

김의영: 기본적으로 디자인은 인력이 작업하여 만들어내는 창의적 생산물입니다. 예를 들어 어느 클라이언트의 로고 디자인을 의뢰 받았다면, 우선 디자이너가 팀을 이루어서 작업에 들어가게 됩니다. 곧바로 인력의 소모가 생기는 것이죠. 그리고 컨셉부터 시안, 최종 로고 결과물까지 그 과정 속에 들어간 시간 역시 비용이 됩니다. 그 작업을 하는 동안 다른 작업을 못하게 되니까요. 물론 여기까지는 다른 분야들과 비슷할지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디자인 기업과 클라이언트간의 입장이 다르다는 것이죠. 최종 로고를 내놓으면서 디자인 기업은 그것을 만들어 내기 위한 시간과 인력을 모두 기회비용으로 반영하지만, 클라이언트는 최종 결과물만을 보고 판단을 합니다. 만약 클라이언트가 그 로고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디자인 기업이 그동안 투여한 기회비용은 사라져 버리게 됩니다. 이 로고 작업은 상품처럼 다른 어떤 곳에 판매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모두 클라이언트의 탓으로 돌리기도 힘듭니다. 디자인이라는 것이 표준이나 규격이 없기 때문에,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도 어느 것이 좋은 것이고, 최선을 다한 것인지 판단하기가 애매모호한 것도 사실이니까요.

Jungle: 그렇다면 클라이언트들에게 디자인 비즈니스를 이해시키는 것이 최우선의 과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김의영: 네, 그런 노력들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기획 단계부터 클라이언트와 디자인 기업 간의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합니다. 지금처럼 최종 결과물만을 두고, 서로의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하나의 공동작업으로 인식해야 하는 것이죠.

Jungle: 국내 기업들의 현실상, 인식의 전환이 당장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정종원: 맞습니다. 단계별로 차근차근 시작해야겠죠. 우선적인 과제는 현황을 아는 것입니다. 지금은 디자인 기업들이 어떤 고충이 있는지조차 제대로 파악이 안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런 의견들을 묶고, 한 목소리를 내어 본적이 없기 때문이죠. 개별 회사들의 대표를 만나 이야기해보면 다들 한 두 가지 문제들을 가지고 있지만, 이것들이 체계적으로 정리가 되어있지 않기에 정작 무엇이 문제인지 제대로 알 수가 없습니다. 현재 디자인 기업들이 겪고 있는 불공정 거래나 고충 등을 파악하고, 현황에 대해 정확히 분석하는 것이 디자인피해사례신고센터가 할 일이죠. 그리고 나서 디자이너의 권익 보호와 인식 전환 방안을 모색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Jungle: 디자인피해사례신고센터가 분쟁을 중재하거나 해결하는 실질적 방안이나 프로세스가 마련되어있나요?

김의영: 지금 당장 어떻게 해결하겠다라는 말씀을 드리기는 어렵습니다. 우선 센터를 통해 수집된 분쟁이나 피해사례들을 분석한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되면 구체적인 방안이 그려질 것입니다. 진찰을 받아야 처방이 나오는 법이니까요. 저희가 계획하고 있는 이번 사업의 1차년도는 바로 데이터베이스화입니다. 그리고 차기년도에는 실질적 해결방안을 마련할 예정입니다. 필요하다면 정부지원요청이나 법률지원센터를 설립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Jungle: 분쟁 관계에 있어서 디자인 업계 스스로 고쳐나가야 할 점도 있지 않을까요?

김의영: 물론입니다. 사실 ‘을’의 입장에서 어쩔 수 없이 당하는 사례도 많지만, 대응방법을 잘 몰라서, 그리고 귀찮아서 그냥 넘어가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특히 국내 디자이너들의 업무환경이나 특성상 경영이나 행정적인 측면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죠. 그렇다보니 법의 도움을 받으면 해결 할 수 있는 문제들도 그 접근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발을 빼고 맙니다. 이 부분은 디자인 기업 스스로도 자성해야 할 부분입니다. 모른다고 계속 넘어가버리면 그게 관행이 되어 버리니까요. 최소한 디자인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이해하고 있어야 할 문제들을 놓치고 있는 셈이죠. 디자인피해사례신고센터에서는 이런 부분에 대한 문의도 받고 있으니 이를 잘 활용했으면 합니다.

Jungle: 지금까지의 말씀을 들어보니, 디자인피해사례신고센터가 디자이너들의 권익보호를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이런 활동에 국내 디자인 업계가 소극적인 움직임을 보여 왔던 것도 사실인데요. 이번 사업도 활성화가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정종원: 그 부분은 저희도 크게 신경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홍보에 힘을 쓸 예정입니다. 디자인정글을 통해 디자인 업계에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그 무엇이든 좋으니 저희에게 이야기를 해달라는 것입니다. 지금 받고 있는 피해가 아닌 예전에 경험했던 고충이나 작은 분쟁 사례도 좋습니다. 가볍게 툭 던지듯 말씀해주셔도 됩니다. 이야기거리가 만들어져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테니까요.

김의영: 주인의식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움직였으면 합니다. 우리 스스로 디자인에 대한 바른 인식을 가꾸는 것이 선행되어야 사회적인 인식도 바꿀 수 있습니다.

Jungle: 마지막으로 디자인피해사례신고센터의 향후 계획을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정종원: 어느 정도 사례가 모이고 분석이 끝나면 그것을 모두가 공감할 수 있도록 사례집 등으로 묶어 공유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겨우 꺼내놓은 이야기가 다시 수면 아래로 내려가지 않도록 세미나, 토론회 등의 활동으로 지속해서 관심을 환기시켜 나갈 것입니다. 좀 더 나아가서는 디자인 업계를 벗어나 사회적으로 공론화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시나 정부에서 어떠한 정책을 결정할 때, 최소한 디자이너들의 눈치라도 한번 보게끔 말이죠.

김의영: 한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이번 디자인피해사례신고센터 사업을 바탕으로 분쟁 대응 매뉴얼을 제작하고, 홈페이지를 통해 공유할 계획도 가지고 있습니다. 최소한 몰라서 당하는 일은 없도록, 그리고 분쟁에 휘말렸을 때, 쉽고 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디자인피해사례신고센터를 디자이너들 권익 보호를 위한 작은 쉼터라 생각하시고 마음껏 활용해 주시길 바랍니다.



디자인피해사례신고센터
홈페이지www.designsos.co.kr(10월 중 오픈예정)
연락처 1577-4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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