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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인터뷰

다시 만나요 우리

2017-06-01

 


 

살다 보니 살아가는 데에 꼭 필요한 것만 하게 되더라. 해야 할 일 말고 하고 싶은 일이 있었지만 그에 대한 그리움 따윈 적당히 잊힐 줄 알았다. 하고 싶은 걸 하며 살라고들 하지만 여유가 부재하니 그냥 모르는 척 외면하는 것도 답이 될 줄 알았다. 

 

어느새 나이의 앞자리가 여러 차례 바뀌었고 곧 또 바뀌겠구나 싶다. 나이 먹는 것이 무슨 벼슬도 아니면서 묵직해질수록 마음도 흔들리지 않길 내심 바랐다. 하지만 웬걸, 아직 내 가슴에도 따뜻한 무엇이 남아있다는 걸 느낀다. 아니, 더 활개친다. 

 

다시서점 입구. 낮엔 책을 파는 서점으로 밤엔 술을 파는 바로 변신한다.

다시서점 입구. 낮엔 책과 차를 파는 서점으로, 밤엔 술을 파는 바로 변신한다.


 

다시서점에 다녀오니 마치 작가라도 된 듯 제대로 형용하지 못하는 감정들을 마구 끄적이게 된다. 몸의 구석구석 세포가 꿈틀꿈틀 대는 느낌이 들고 팔에 소름이 돋는 것을 보니 감동이라는 걸 받은 게 분명하다. 그렇게 내 안의 감수성과 다시 만났다. 

 

다시서점은 한남동과 방화동에 자리한 소규모 서점으로 주인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 모든 걸 쏟아부어서라기보다 김경현 대표 그 자체가 다시서점이라는 말이다. “외삼촌이 오랫동안 동네에서 서점을 운영하셨어요. 놀거리가 많지 않아서 어렸을 때 외삼촌 서점에서 책을 보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 자연스럽게 책과 가까워졌어요. 저한텐 서점이 좀 특별한 공간이에요.”

 

시와 에세이 위주로 큐레이션된 다시서점 한남점

시와 에세이 위주로 큐레이션 된 다시서점 한남점


 

김경현 대표는 독립출판으로 시집을 6권이나 낸 시인이다. 음향, 사운드 믹싱을 전공했지만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늘 마음에 책을 품고 살았고 친구들과 직접 웹진과 독립잡지를 만들기도 했다. “독립출판을 하면서 직접 소개하고 판매할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처음엔 독립출판과 시집을 다루는 서점이 하고 싶어서 다시서점을 하게 됐죠. 지금은 책의 종류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어요.” 

 

시집, 에세이 위주의 한남점

다시서점 한남점은 낮엔 카페이자 서점으로, 밤엔 바로 바뀌는 ‘초능력’을 발휘한다. 공간 자체로도 블로거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덕에 책과는 거리가 멀게 사진만 찍으러 오는 ‘구경꾼’도 더러 있지만 김 대표의 마음처럼 순수하게 정말 책을 만나기 위해 오는 손님들이 많다. 

 

다시서점 한남점. 낮엔 서점으로 밤엔 바로 변신하는 공간이다.

다시서점 한남점. 문을 열자마자 손님들이 찾아왔다. 책을 정리하는 김경현 대표의 뒷모습도 보인다. 


 

다시서점은 3년간 운영돼 왔고 4년 차 들어섰다. 그리고 지금은 방향을 조금 바꾸었다. “3년 동안 손님들을 지켜봤어요. 이곳에 오시는 대부분의 손님들은 20대 초중반, 학생들, 커플인데 시가 어렵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하세요. 시험 보는 것 같아서 싫다고요. 대부분 그렇게 시를 배웠기 때문에 그래요. 그걸 좀 바꿔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죠. 오가면서 가볍게 들를 수 있는 공간이니까 다시서점의 포지션도 그렇게 바꾸고, 그래서 진지한 생각들을 많이 내려놓았어요.”

 

다시서점 한남점에서는 시와 에세이 위주의 책을 판매한다.

다시서점 한남점에서는 시와 에세이 위주의 책을 판매한다.


다시서점은 시인들의 얼굴이 그려진 에코백, 굿즈 등을 디자인, 판매하는 등 시를 알리기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다시서점은 시인들의 얼굴이 그려진 에코백, 굿즈를 디자인, 판매하는 등 시를 알리기 위한 프로젝트들도 진행하고 있다.


 

그래서 다시만난시인프로젝트와 같은 새로운 프로젝트도 시도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실험들을 해 보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일정 기간 동안 한 시인의 것을 위주로 팔아보는 거예요. 지난달까진 윤동주 시인을, 또 그전엔 백석 시인의 것을 팔아보았어요. 놀라웠던 것은 책을 사는 친구들이 윤동주 시인의 시집을, 백석 시인의 시집을 처음 사본다는 점이었어요. 방송을 한번 탄 시집은 그렇게 유행해지는데 말이죠. 접점을 맞추는 게 어렵다는 걸 느끼면서 더 많은 고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다시서점은 시인들의 얼굴이 그려진 에코백이나 굿즈 등을 디자인, 제작해서 판매하기도 한다. 

 

독립출판물 위주의 신방화점

유명한 것으로 치면 한남점이 더 많이 알려져 있지만 책은 신방화점에 더 많다. 김 대표는 더 많은 독립출판서적들을 다루고 온라인 판매에 집중하고자 지난해 말 신방화점을 열었다. 태어나서 자란 곳이기도 하고 인프라가 있기 때문에 방화동에 서점을 냈지만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동네에 서점이 없어요. 그나마 중고서점이 하나 있었는데 얼마 전에 보니까 가게를 내놓으셨더라고요. 그곳마저 사라지면 저희 다시서점 신방화점만 밖에는 서점이 남지 않게 돼요.” 

 

다시시점 신방화점

다시시점 신방화점 (출처: www.instagram.com/dasibookshop)


 

그런 이유로 그에게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동네 학생들이 문제집을 살 수 있는 곳이 없다는 점이다. “새벽에도 문의 전화가 와요. 문제집 구할 수 없냐고요. 그 동네 유일하게 남은 서점이 저희 하나인데 학생들이 문제집 살 곳은 없고,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에요.” 독립출판을 다루는 서점이라는 정체성, 동네 아이들을 위한 서점이라는 역할과 책임감 사이에서 고민 중이다.   

 

다시서점 한남점. 낮엔 서점으로 밤엔 바로 변신하는 공간이다.

이곳을 찾아 책을 보는 학생들에게 김경현 대표는 차를 그냥 내주기도 한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그냥 좀 편하게’ 시를 읽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여기 오셔서 추천해달라고 하면 두세 권 추천해드리고 앉아서 읽어보고 마음에 드는 걸로 고르시라고 해요. 읽어봐야 자신에게 맞는지 아닌지 알 수 있잖아요. 연예인 누가 추천해서 읽는 그런 거 말고요.” 

 

그는 책을 보기 위해 일부러 다시서점을 찾는 학생들에겐 무료로 차를 내주기도 한다. 소문이 나면 너도나도 그런 대접을 받고 싶어 하지 않을까 싶은데, 그렇게 해서 책에 대한 좋은 기억을 만들어주는 것이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인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김 대표는 이곳을 찾는 손님들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편안하게 앉아 책을 읽은 후 구입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김 대표는 이곳을 찾는 손님들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편안하게 앉아 책을 읽은 후 구입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다시서점’이라는 이름은 김 대표가 좋아하는 윤선애 씨의 노래 〈다시 만날 날이 있겠죠〉의 ‘다시’를 따서 지었다. “당시엔 서점들이 많이 없어져서 다시서점을 해보자는 의미로 지었는데 요즘은 너무 많이 생겼네요(웃음). 여러 이유들이 있는데 직관적인 시가 많다는 뜻이기도 해요.”   

 

그의 말대로 꼭 시가 어려운 것은, 어려워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읽히는 대로 읽고, 느껴지는 대로 느끼면 되는 거다. 시뿐 만이 아니라 자신에게 잘 맞는 글을 찾아 읽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글을 통해 피곤한 것으로만 여겨졌던 현실 속에서 살아있음을 깨닫고 행복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글 앞머리의 시시콜콜했던 나열은 개인적인 감성을 어필하기 위함이 아니라 이런 감정을 확인시켜준 그곳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다. 감수성을 일깨워준 것은 다시서점이라는 물리적인 공간이 뿜어내는 분위기가 아니라 그곳의 책들이었다. 그 안에서 잠시 잊었던 읽는 재미를 다시 찾았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저 내가 좋아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더 많이 고맙다. 

 

www.dasibookshop.com

에디터_ 최유진(yjchoi@jungl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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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에디터
감성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디자인, 마음을 움직이는 포근한 디자인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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