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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가려진 얼굴 사이로

월간 사진 | 2017-10-16

 

 

장인아의 사진 속 모델들의 얼굴은 형체가 없다. 이는 부드럽고 편한 느낌을 주는 파스텔 톤의 배경과는 달리 묘한 궁금증을 자아낸다. 그 해답을 찾기 위해선 사소한 것들을 단초 삼아 상상의 서사를 펼쳐내야만 한다.


Watermelon, 〈Utopia〉, 2016

Watermelon, 〈Utopia〉, 2016



안티 포트레이트

요즘 들어 ‘블라인드(Blind)’라는 말을 부쩍 자주 듣는다. 블라인드 면접과 블라인드 채용, 아무래도 얼마 전 발표된 정부 정책과 취업 시즌이 맞물려서 그런 듯하다. 블라인드의 사전적 의미에는 ‘맹목적인’, ‘이성적인 통제가 안 되는’ 등 약간은 부정적인 뉘앙스가 담겨있다. 그런데 블라인드가 어떤 단어와 만나면 그 의미가 꽤나 신선해진다. 그 핵심은 보이는 것만으로 평가하지 않고, 그 이면에 숨어있는 능력과 매력, 본질 등을 찾아내어 판단하겠다는 것. ‘공정한’ 평가에 방해가 되는 선입견과 차별적 요소를 배제하겠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가족관계, 신체조건, 학력, 증명사진 등이 포함된다.

장인아의 작업은 ‘블라인드’라는 단어와 잘 어울린다. 작업에서 모델의 얼굴을 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혹여 보인다 하더라도 얼굴 전체가 온전히 나타나진 않는다. 의도적으로 가렸다는 느낌이 강하다. 사진계는 그녀를 ‘패션 & 포트레이트 사진가’로 분류하지만, 정작 장인아는 스스로를 ‘안티 포트레이트 사진가’라고 표현한다. 이런 류의 사진에선 무조건 얼굴이 보여야 한다는 신화 같은 믿음에 과감히 메스를 대겠다는 의지의 말처럼 들린다. 덕분에 보는 이들의 편견 없는 사진 감상과 해석이 가능하다. 흡사 수수께끼의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 같기도 하다. 그래서 그녀 작업에는 늘 다양한 해석이 뒤따른다.

Lemonade, 〈Utopia〉, 2016

Lemonade, 〈Utopia〉, 2016


이러한 사진적 장치는 작업 초기 셀프 포트레이트를 촬영할 때 자신의 얼굴이 보이는 게 싫어 얼굴을 가렸던 습관에서 기인한다. 패션사진의 성패가 인물 표정에 따라 결정되는 풍토도 한몫했다. 본질이 아닌 껍데기에만 초점이 맞춰지는 현실에 반기를 들었던 것 같다. 패션 디자이너 마틴 마르지엘라(Martin Margiela)의 존재도 그녀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는 패션에 ‘해체주의’를 도입, ‘현대 패션 시스템의 압력에 동요하지 않고 트렌드에 의해 규정되는 옷 입기 방식에 저항했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관객이 ‘의복’ 자체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런웨이 위의 모델 얼굴과 신체를 가린 것이 특히 인상적이다. 장인아 역시 얼굴보다는, 강조돼야 하는 부분을 조금 더 디테일하게 묘사한다. 심지어는 얼굴 주변에 종이를 콜라주하기도 한다. 마치 권력 생성의 메커니즘을 분해해 오직 한 가지 사실만이 진리가 아님을 역설하는 것처럼 보이는 행위다.

Bubblegum, 〈Utopia〉, 2016

Bubblegum, 〈Utopia〉, 2016



소비되는 여성 이미지

현재 스위스 ‘Musée des Beaux - Arts Le Locle’에선 장인아의 개인전 〈Utopia〉(~10.15)가 진행 중이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업 역시 기존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다. 패션사진을 떠올리게 하는 화면 구성은 유지하고 있지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작업에 사회상을 덧입혔다는 것. 모티프가 된 건 작년 5월 벌어진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이다. 한국에 거주하지 않기에 구체적인 상황은 알 수가 없었지만, 대신 미디어를 통해서 접하게 되는 여성상과 남성상, 기회의 불균등함이 불러오는 사회 전체의 스트레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그러던 와중에 불현듯 일본의 편의점 한 구석이 떠올랐다. 기억 속 그곳엔 과한 노출을 한 채 하나같이 야릇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남성잡지 속 여성들이 있었다. 길거리와 지하철, 미디어에서 그렇게 소비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마침 미국에서 음담패설이 주를 이뤘던 트럼프의 ‘라커룸 토크(Locker Room Talk)’가 공개됐다. 장인아가 본격적으로 ‘소비되는 여성’을 작업으로 끌고 오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사건이었다.

Tangerine, 〈Utopia〉, 2017

Tangerine, 〈Utopia〉, 2017


작업은 얼굴도 몸도 가린 은유적인 표현 방식을 택했다. 하지만 조금만 시간이 주어지면 무엇을 참고했는지를 머릿속에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다. 바로 ‘그라비아’다. 그라비아는 남성의 성욕이 여성에게 투영된 결과물이라고 비판받고 있는, 여성의 비키니 차림이나 세미누드를 찍은 영상물을 통칭한다. 그녀는 그런 그라비아 속 여성의 포즈를 작업에 차용했다. 작업 분위기를 조성하는 파스텔 톤도 눈에 띈다. 관습적으로 ‘여성스럽다’라고 불리는 색이다. 그래서인지 겉으로 드러나는 모델의 포즈와 색만 놓고 본다면, 그녀 작업은 예쁜 소품 하나를 보는 것 같다. ‘만약 유토피아에 누드가 있다면 이 사진일 것’이라는 착각도 든다.

작업을 디테일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포즈는 남성의 욕망을 대리만족시키기 위한 것이요, 사용된 색들은 사회적으로 ‘여성스럽다’고 불리는 것들이다. 여성을 남성의 종속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특정 색을 성별과 연결하는 것이 과연 자연스러운 걸까. 그러나 그동안 우리는 그것을 진리라고 믿어왔다. 이 지점에 장인아의 〈Utopia〉가 있다. 작업은 그것이 옳은지에 대해, 그리고 그것을 거리낌 없이 받아들여도 되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작가는 정답을 말하지 않는다. 이러한 주제에 대해 고민해보는 계기를 마련해 줄 뿐이다. 이를 통해 견고한 카르텔에 균열을 낼 수 있는 무언가를 던질 수만 있다면, 이는 어제보다 나은 진리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원동력과 다름없을 것이다. 이처럼 껍데기를 부수고 본질로 향할 수 있는 세상, 그곳이 장인아가 말하고자 하는 유토피아가 아닐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에디터_ 박이현
디자인_ 김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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