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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디자인이 함께하는 북유럽의 크리스마스

조상우 | 2017-12-19

 


 

처음 스웨덴에서 맞이한 북유럽의 크리스마스는 필자에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바로 한국에서 머나먼 이곳 스웨덴까지, 취업을 위한 인터뷰를 보기 위해 방문한 시기가 바로 크리스마스 즈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떨리고 긴장되는 마음을 이곳의 따뜻한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달래주었던 기억이 있다. 공항을 빠져나오자마자 마주했던 하얀 눈이 덮인 동화 같은 도시의 풍경들과 고풍스러운 건물들의 조명이 따뜻한 연말 분위기를 한껏 만들어내고 있었다. 

 

우연히도 스웨덴으로 인터뷰를 오기 바로 몇 주전에는 미국 시카고(Chicago) 근교에서도 온사이트 인터뷰(Onsite interview)가 있었기에 두 나라의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비교하며 느껴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먼저 이곳 스웨덴은 종교와 전통이 배경이 되어 가족이 함께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상업적이고 떠들썩한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다. 물론 크리스마스가 되기 전, 12월 23일경까지는 거리가 사람들로 북적이고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며, 상점들은 캐럴을 틀어 놓고 축제 분위기로 들뜬다. 

 

하지만 막상 크리스마스 이브와 당일엔 거리가 조용하고 한산하다. 모두들 가족과 함께 집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부모님 댁을 방문해 온 가족이 함께 크리스마스를 축하하기 때문이다. 마치 우리나라의 추석이나 설날과 같은 명절의 느낌으로 표현한다면 정확할 것 같다. 상점들도24일과 25일에는 아예 모두 문을 닫는다. 가게 주인과 점원들도 당연히 그들의 크리스마스를 즐겨야 하므로. 예전 독일 베를린을 방문했을 때에도 상점의 문들이 모두 닫혀 있어 당황했던 경험이 있으니, 이곳 북유럽뿐만 아니라 타유럽 도시들도 상황은 유사하리라 생각된다. 

 

이곳의 크리스마스 역사는 서양과는 다르게 종교와 전통에서 시작되어 보다 가족 중심적이기에 우리의 문화와는 분명히 다른 점이 있다. 북유럽 스웨덴만의 크리스마스를 기리는 의미 있는 행사와 흥미로운 문화들을 설명해 보고자 한다.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면 다운타운 중심가에 설치되는 조명. 순식간에 도시를 동화 속 나라로 만들어버리는 마법과도 같은 데코레이션이다(Malmo. Sweden).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면 다운타운 중심가에 설치되는 조명. 순식간에 도시를 동화 속 나라로 만들어버리는 마법과도 같은 데코레이션이다(Malmo. Sweden).

 

 

세인트 루시아 데이(Saint Lucia’s day)  

12월 13일. 예수의 재림을 축하하고 성녀 루시아를 기리는 날이다. 이 날은 일 년 중 해가 가장 짧은 동지 하루 전날이기에 ‘빛을 기리는 축제의 날’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 행사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크리시마스 시즌을 알리는 것이다. 행사에 참여한 이들은 촛불 장식의 왕관을 쓴 루시아를 따라 모두 손에 촛불을 들고 노래하며 행진하게 되는 북유럽만의 독특한 전통문화이다. 학교나 유치원, 회사에서도 이 행사를 기획하여 진행하기도 하며, 규모가 큰 행사는 TV에서 중계되기도 한다. 

 

어드벤트(Advent)  

스웨덴에는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행사로 ‘어드벤트(Advent)’라는 독특한 문화가 있다. 다가올 크리스마스를 고대하며 4주 동안 축하하는 것을 말한다. 이 기간 동안에는 집안의 창가나 회사 사무실에도 네 개의 초로 만들어진 촛대장식물을 볼 수 있다. 이 네 개의 초는 크리스마스 4주전 매 일요일마다 하나씩 켜지게 된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직전 일요일에 모두 밝혀지게 된다. 

 

이 시기에 나오는 어드벤트 캘린더(Advent calendar)는 특히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다. 12월 24일까지 표시된 달력으로 각 날짜마다 만들어진 조그만 창문을 열면 초콜릿이 들어있다. 매일매일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하나씩 초콜릿을 꺼내어 먹는 것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풍경은 이 시기에 빛을 발하는 별 모양의 조명들로 필자가 개인적으로도 아주 좋아하는 풍경이기도 하다. 다운타운이나 주택가를 지나면 쇼윈도와 창문마다 달린 커다란 별 조명(star lighting)이 더 아늑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준다. 더불어 스웨덴의 집들은 대부분 커튼이나 블라인드가 없기 때문에 어두운 밤이면 집안의 인테리어를 모두 들여다볼 수 있는 재미(?)가 있다. 집집마다 크리스마스를 자축하는 트리와 별 조명, 촛대 등으로 아늑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이렇듯 소비자와 문화의 니즈(Needs)가 있기에 이곳 북유럽의 조명 디자인 분야가 발전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 할 수도 있겠다. 

 

 


크리스마스 시즌 거리 골목마다 장식되는 다양한 조명 디자인(Star lighting)

크리스마스 시즌 거리 골목마다 장식되는 다양한 조명 디자인(Star lighting)

 


쥴보드(Julbord)  

크리스마스 만찬 요리 문화(Julbord)가 있다. 스웨덴의 만찬, 스뫼르고스보(Smörgåsbord) 만찬이라고도 불리는 이 특별한 시간은 모든 이들이 공들여 준비하는 저녁이다.  천 년 전 바이킹 시대의 전통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 이 식사에는, 소금에 절인 청어, 훈제 연어, 미트볼, 감자요리, 칠면조, 페파르코칼(Pepparkakor, 전통 과자인 진저브래드) 등 다양한 음식들이 이 특별한 저녁식사에 선보이게 된다. 이를 위해 다운타운의 유명한 레스토랑은 물론이고 이케아(IKEA) 같은 대형 매장의 푸드코트에서도 이 특별한 뷔페 inu6메뉴를 준비하기도 한다. 미드써머(Midsummer), 부활절 등 한 해의 모든 기념일을 특별하게 준비하고 정성스럽게 기리는 이들의 성향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따뜻한 와인(Mulled wine)

따뜻하게 데워먹는 와인을 가리키며, 스웨덴에서는 글뢰그(Glögg) 라고 불린다. 길고 추운 북유럽의 겨울, 아늑한 집에서 가족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이 와인을 즐기게 된다.  휘게(Hygge)*, 슬로라이프(slow life) 등과 함께 최근 트렌드로 떠오르는 스웨덴어 ‘라곰(Lagom)*’ 문화에 잘 어울리는 필수 아이템인 셈이다. 

*휘게(Hygge):  일상의 소소하고 소박하고 여유로운 시간. 일상 속의 소소한 즐거움이나 안락한 환경에서 오는 행복을 뜻하는 덴마크어.  

*라곰(Lagom): ‘너무 많지도, 너무 적지도 않은, 딱 적당한’ 의 의미로 통용되는 스웨덴어.  

 

 

크리스마스 데코레이션이 인상적인 덴마크 티볼리 공원(Tivoli park)

크리스마스 데코레이션이 인상적인 덴마크 티볼리 공원(Tivoli park)

 


크리스마스 마켓(Christmas market)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며 열리는 이 아기자기하고 예쁘기까지 한 마켓 풍경은 이곳 스웨덴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도 흔하게 접할 수 있으며, 겨울철 관광상품으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필자가 작년 이맘때쯤 방문한 독일 북부지역, 뤼벡(Lübeck)의 전통 크리스마켓 풍경도 이곳 스웨덴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족과 연인들끼리 아기자기한 상점들을 구경하고 멋거리를 즐기며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만끽하고, 이어지는 연말 빅세일 기간과 겹치면서 도시는 한층 더 흥겨워진다. 대부분의 회사와 학교는 연말에 맞춰 긴 휴가와 방학에 들어가기 때문에 사람들은 가족들과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독일 뤼벡(Lübeck, Germany)과 덴마크 코펜하겐(Copenhagen, Denmark)의 크리스마스 마켓 풍경들. 아기자기한 골목의 풍경들과 아늑하게 장식해 놓은 조명이 아름답다.

독일 뤼벡(Lübeck, Germany)과 덴마크 코펜하겐(Copenhagen, Denmark)의 크리스마스 마켓 풍경들. 아기자기한 골목의 풍경들과 아늑하게 장식해 놓은 조명이 아름답다.

 


변치 않는 가치를 지켜나간다는 것 

앞서 이야기한 북유럽의 크리스마스 전통문화에는 ‘유산(Heritage)’이라는 키워드가 항상 함께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유산의 흔적에는 ‘디자인(Design)’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현대적이고 세련된 디자인이 돋보이는 분야부터 오래도록 그 가치를 잃지 않고 유지되어 온 전통적인 디자인이 함께 공존한다. 이 ‘공존’에서는 ‘잊혀가는 전통을 살리자’, ‘역사를 잊지 말자’는 광고나 이야기를 내세우지 않는다. 

 

이러한 가치 있는 전통은 나이 지긋하신 어른들만의 것이 아니라 젊은 세대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해 그 후대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어찌 보면 조금 촌스러워 보이는 것들마저도 꾸준히 전해내려오며 젊은 세대들도 적극 참여하는 것을 보면 대견하기까지 하다. 가치 있는 유산(Heritage)을 흔들림 없이 지켜나간다는 묘한 자부심 같은 것도 섞여있으리라 짐작해본다. 

 

비슷한 사례로 이곳 북유럽 국가들(스웨덴을 비롯한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에는 서양의 문화가 아직도 많이 들어오지 않은 편이라 할 수 있다. 이미 들어와 있는 다양한 서양의 프랜차이즈 브랜드들도 타국가에 비해 그리 성공적이지 못해 보인다. 초대형 커피 브랜드인 스타벅스가 전 세계 커피 소비량 선두를 달리는 북유럽에서 그리 인기를 얻지 못하고 오히려 동네의 힙(hip)한 카페들이 손님들로 북적인다. 100년도 넘은 역사적 건물에 들어선 고풍스러운 카페에 젊은이들이 빼곡하고, 삐거덕 거리는 낡은 의자에 앉아 이야기에 집중하는 그들의 모습은 왠지 모를 깊이 있는 가치를 발산하는 것만 같다. 현지인들은 이러한 부분에 은근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물론 단편적인 사례만으로 이를 일반화시키기는 어렵겠지만 이들에게는 분명 오래도록 전해내려오는 것들을 가치있게 생각하고 그것을 지켜나가는 흔들림 없는 묵직한 에너지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는 현대적으로, 그리고 세련되게 재탄생되어 고리타분함과 지루함을 넘어선다. 앞서 말한 것처럼 크리스마스의 전통행사인 어드벤트나 쥴보드 문화가 비단 나이 지긋한 세대만의 문화가 아니라 젊은 세대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행사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이를 말해준다. 학교와 회사에서도 이러한 행사를 자체적으로 주관하며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낸다. 과연 우리에게도 이렇게 모든 세대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즐기는 전통의 문화가 있을까 스스로에게 질문해 본다.   

 

이러한 문화는 늘 새것, 좋은 것, 더 빠른 것만을 추구하기 쉬운 현시대에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지나간 역사를 되돌아보며 그들의 선조들이 이루어 놓은 것들이 엄청난 투쟁과 노력의 결과임을 잘 알기에 젊은 세대 역시 이를 잘 보존하고 후대로 이어주려는 노력이 지속되는 것이다. 실제로 이들의 오랜 전통은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고 영리하게 재탄생하는 것을 본다.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여기에 ‘디자인’이라는 매력적인 요소가 첨부되면서 보다 세련되고 현대 시대에 잘 어울리는 방식의 결과물로 보이고 있으며, 바로 이 부분이 젊은 세대의 억지스럽지 않은 능동적 참여에 큰 역할을 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바로 디자인과의 시너지 효과(Synergy effect)가 진정으로 빛을 발하는 영역이라 할 수 있고, 이들이 문화를 지속, 계승하는 방식이 상당히 ‘성숙(Mature)’ 되어 있는다는 것을 말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이 흔들리지 않는 묵직함 뒤에는 차마 건드릴 수 없는 단단한 심지와도 같은 이들만의 역사와 전통이 자리 잡고 있다. 바로  ‘스칸디나비아의 유산(Scandinavian heritage)‘이다.  

 

글·사진_ 조상우 스웨덴 Sigma Connectivity사. 디자인랩 수석 디자이너(sangwoo.cho.0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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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우 디자이너
현재 북유럽 스웨덴에서 산업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삼성전자 모바일 디자인 그룹 책임 디자이너, 소니 모바일(Sony mobile) 노르딕 디자인 센터를 거쳐, 현재 스웨덴 컨설팅 그룹 시그마 커넥티비티(Sigma connectivity), IoT 부문 수석 디자이너로 근무하고 있다.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근원지에서 살아가며 느끼는 경험들을 바탕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한다.www.sangwooch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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