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5-18
[스칸디나비아 디자인 이야기 13]
이케아(IKEA)는 아마도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북유럽 스웨덴을 대표하는 브랜드일 것이다. 복지국가, 행복지수, 라곰(Lagom), 라테파파(Latte papa) 이야기를 품은 머나먼 스웨덴의 브랜드가 이제는 어느새 우리 가까이에 들어와 있다. 그만큼 이제는 우리에게도 친숙하며 전 세계적으로 250여 개의 매장이 있을 정도로 인지도가 높은 브랜드이기도 하다. 최근 한국에서도 여러 매장을 오픈한다는 성공적인 데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이번 연재에서는 스웨덴 남서부 도시 엘름훌트(Almhult)에 위치한 이케아 뮤지엄(IKEA museum, www.ikeamuseum.com)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얼마 전 타계한 이케아의 창업자 잉그바르 캄프라드(Ingvar Kamprad)가 태어난 곳이자, 최초의 이케아 매장이 있었으며, 현재는 이케아의 본사가 자리 잡고 있는 곳이다. 이 작은 도시는 ‘이케아의 심장(Heart of IKEA)’이라 불린다.
스웨덴 엘름훌트에 위치한 이케아 뮤지엄의 외관
뮤지엄에 도착하면 먼저 미니멀한 건축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건축 디자인은 영국의 윌킨슨 에어 아키텍츠(Wilkinson Eyre Architects)와 스웨덴의 울라스 아키텍터(Uulas Arkitekter)가 공동으로 진행했다. 과거 건축가 크래스 넛슨(Claes Knutson)이 진행한 이케아 첫 매장의 외형을 일부만 리모델링함으로써 그 역사적 의미를 유지하려 했으며, 그 결과 미니멀하고 정제된 외관으로 재탄생하게 되었다고 한다.
뮤지엄에 들어서면 이케아의 창업자 잉그바르 캄프라드(Ingvar Kamprad)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고, 기업문화와 역사를 볼 수 있는 섹션들이 기획되어 있다. 흥미로운 것은 그의 사진을 자세히, 가까이 들여다보면 전 세계에서 일하는 이케아 임직원들의 얼굴 사진이 모자이크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현재 이케아의 성공은 전 임직원이 함께 이루어낸 성과라는 표현이리라 생각해본다.
얼마 전 타계한 이케아의 창업자 잉바로 캄프라드. 그의 사진을 임직원의 얼굴이 모자이크 방식으로 채우고 있다.
뮤지엄의 공간 구성은 상설전시와 기획전시 부문으로 운영되고 있다. 총 3가지의 섹션으로 구분되어 있는 상설 전시관은 이케아 설립에 관한 이야기와 브랜드 철학 및 가치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첫 번째 섹션, 최초 창업 시기부터 지금까지 출시된 제품들을 전시함으로써 이케아의 역사를 한눈에 둘러볼 수 있도록 구성된 두 번째 섹션이 이어진다. 실제 스웨덴 가정의 인테리어를 재현해 관람객의 이해를 돕도록 설계해 놓은 점이 돋보인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관심 있었던 빈티지 이케아 제품들을 직접 볼 수 있는 섹션이기도 했다. 마치 현재 이케아 매장에 구성된 쇼룸과도 같은 형태이다.
이케아에서 출시되고 있는 제품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상설전시 부스
이케아 제품을 실생활에서 구매하여 사용하는 소비자들의 사례를 보여주는 세 번째 섹션은 현실감 있는 전시 구성으로 많은 공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특히 스웨덴을 포함한 북유럽 국가의 각 시대별 라이프 스타일을 볼 수 있는 전시장의 구성이 인상적이었다.
과거 북유럽 가정의 라이프 스타일을 전시해놓은 히스토리 섹션
‘빌리 책장(Billy Bookcase)과 ‘클리판 소파(Kpippan Sofa)’ 등 이케아의 역대 베스트셀러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이곳 뮤지엄에서만 판매하는 리미티드 에디션(IKEA limited edition) 제품들도 만나 볼 수 있다.
매해 9월이면 어김없이 발행되는 이케아 카탈로그도 바로 이곳 엘름훌트 본사에서 제작되며, 그 발행 부수가 매년 약 2억 부 이상 된다고 하니 상상을 초월한다. 이 카탈로그는 각 나라와 지역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게 편집되고 디자인되어 발행되고 있다. 뮤지엄 2층에는 방문객들이 실제로 카탈로그 촬영 세트장을 체험할 수 있는 포토 존도 마련되어 있어 흥미로웠다.
특히 이곳 엘름훌트에는 이케아 뮤지엄을 비롯해 전 세계 하나뿐인 이케아 핀드(IKEA FYND) 매장과 이케아 호텔(IKEA Hotel)이 함께 자리 잡고 있다. ‘핀드(Fynd)’는 스웨덴어로 ‘정상가 보다 싸게 판다’는 의미로 주로 재고품, 샘플, 작은 흠집이 있는 반품 제품 등을 세일 가격으로 판매하는 매장이다. 일반 이케아 매장 한편에도 이 핀드 코너가 마련되어 있지만 단독 매장으로는 이곳이 전 세계에서 유일하다고 한다.
이케아 뮤지엄과 가깝게 마주하고 있는 이케아 호텔(IKEA Hotel)은 총 150개의 객실이 각각 독특한 콘셉트로 구성되어 있다.
예전에는 이케아 매장 수가 많지 않았기에, 엘름훌트 매장까지 먼 거리를 쇼핑하러 온 고객들의 편의를 위해 지어진 호텔이라 한다. 이 호텔에서는 이케아의 특별한 역사가 담겨있는 1993년 이케아가 베르너 판톤(Verner Panton)과 협업한 MDF 보드 의자 ‘빌베르트(Vilbert)’도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이케아의 역사에 대해 조금만 관심을 갖고 둘러본다면 흥미로운 제품들을 호텔 곳곳에서 만나 볼 수 있어 즐거운 경험이 될 듯하다.
시대별로 출시된 이케아 가구의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필자가 바라본 최근 이케아의 행보는 더 이상 조립 가구만을 판매하는 기업의 모습이 아니었다. 거대한 회사의 몸집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변화를 빠르게 읽어내며, 속도감 있는 전략과 함께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었다.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증강현실 앱을 실현한 이케아 플레이스(IKEA place)를 출시하고, 무선 충전이 가능한 가구를 선보이며, 스마트 홈을 위한 조명 시스템까지 출시하고 있다. 디자인 컨설팅 회사 IDEO와 미래의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한 콘셉트 키친 2025(The concept kitchen 2025)도 많은 주목을 받았으며, 캐나다 마케팅 회사 리오 버넷(Leo Burnett)과의 협업으로 제안한 ‘쿡 디스 페이지(Cook this page)’ 역시 요리에 대한 흥미로운 프로젝트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소비자의 접근이 수월한 다운타운 중심가에는 이케아 스토리룸(Hej Home !)을 오픈해 좀 더 고객에게 가깝게 다가가 그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한다. 디자인, 기능, 형태, 지속 가능성에 낮은 가격을 내세운 이들의 민주적 디자인(Democrtic design) 철학은 다양한 채널을 통해 많은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성공적인 모델로 자리 잡고 있다.
외부 디자이너와의 활발한 컬래버레이션 작업을 통한 다양한 시도 역시 흥미롭다. 덴마크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인 헤이(HAY)와의 협업, 올해 초 진행한 영국의 세계적인 디자이너 톰딕슨(Tom Dixon)과의 프로젝트, 그리고 이케아와 크리스 스탬피디(Chris Stampd)의 스팬스트(Spasnst)컬렉션도 인상적인 프로젝트로 평가받고 있다.
이처럼 가구회사는 이제 가구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의 것들을 연결 지으려 하고 있다. IT 기업들은 그 안에서 전혀 다른 파생 비즈니스 모델을 선보이며, 자동차 회사는 운송수단을 넘어선 통합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하고 있다. 이들은 복잡하지만 연결되어 있고, 어렵지만 단순하게 사용자들에게 접근한다. 그 연결고리 안에서 또 다른 유기적 비니지스 모델을 만들어 낸다.
이케아 로고의 변천사
과거 스웨덴의 가정의 라이프 스타일을 재현해 놓은 뮤지엄 내의 쇼케이스. 마치 현재 이케아 매장의 쇼룸과도 같다.
이케아 제품에 사용되고 있는 소재 컬렉션(Material collection) 테이블
변화가 주는 다양성, 그리고 그 가능성에 대하여
시장의 변화는 놀랍도록 빠르게 변화하며 동시에 흥미롭다. 소비자가 단순히 좀 더 나은 제품을 구매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 그들은 의미 있는 경험 자체를 원한다. 기업들은 단순 제품 판매 전략을 뒤로하고 통합적 라이프 스타일(life style)을 제안하는 선택을 하고 있다.
과거 제품만을 진열해 놓던 삭막한(?) 매장에 카페와 서점을 들이며 문화 공간으로의 접목을 시도하고 있다. 고객이 그 공간에 좀 더 오래 머물게 만들며, 그들이 원하는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 필자가 얼마 전 디자인 토크 세션에서 이야기한 쇼핑몰의 사운드 디자인(sound design)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의 시도일 것이며, ‘라이프 스타일을 파는 서점’으로 잘 알려진 일본 츠타야 서점(TSUTAYA BOOKS)의 문화 마케팅도 그 흐름을 같이 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서점에 들러 옷과 가방을 쇼핑하기도 하고, 인테리어 숍에서 딸기잼을 사들고 나온다.
비즈니스 영역 간의 경계가 점차 흐릿해지고 있다. 이처럼 소비자의 통합적이며 융합적인 경험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기업들의 행보는 이제 하나의 사회적 흐름이다. 고객 입장에서는 다양한 선택과 함께 경험의 폭이 넓어지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엘름훌트에서 만난 이케아 뮤지엄은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마치 연결고리와도 같은 공간이었다. 북유럽 라이프 스타일의 역사를 고스란히 전달함과 동시에 그를 통해 앞으로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었다. 거실, 부엌, 화장실 등 우리가 거주하는 물리적 공간의 구성은 과거와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다만 그 공간을 어떻게 구성하고 채우는지에 대한 많은 생각과 시도들이 수많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 이야기의 한 페이지를 써 내려가고 있는 이케아 역시 앞서 언급한 사례처럼 다양한 채널과 기획을 통해 끊임없는 유기적 변화를 꾀하고 있었다. 변화가 주는 다양성과 그 가능성의 가치는 언제나 명확하게 예측할 수 없지만, 이러한 현명한 변화 없이는 현재에 계속 머무르는 일상의 반복이 계속될지 모른다.
과거를 통해 배우고, 현재에 집중하여 미래를 준비하는 것. 간결한 이 문장에 어쩌면 우리가 바라는 변화의 해답이 담겨 있을지도.
글_ 조상우 스웨덴 Sigma Connectivity 사 디자인랩 수석 디자이너(sangwoo.cho.0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