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전체보기

분야별
유형별
매체별
매체전체
무신사
월간사진
월간 POPSIGN
bob

아트 | 인터뷰

생활 속에서 발견하는 예술

2011-07-29


어여쁜 꽃 한 송이가 피어있는 고운 찻잔. 바로 ‘자기’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어린 시절, 유리문이 달린 찬장 저 너머에 그 고운 찻잔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어느 나라의 것인지, 무슨 꽃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엄마가 무지 아끼시는 거라는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했다. 만져 볼 수 있었던 기회는 드물었고 몰래 꺼내어 볼 때면 늘 차를 마시는 시늉을 했었다. 그 당시 아름답게 장식된 자기는 늘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다. 그렇게 멀리서만 그리워만 했던 자기를 다시 만났다. 포슬린 페인팅 아티스트 한보영을 통해서였다.

에디터 | 최유진(yjchoi@jungle.co.kr)
자료제공 | 아티스트 한보영


포슬린 페인팅은 자기를 아름답게 꾸미는 작업을 말한다. 하얀 도자기 위에 그림을 그리고 높은 온도에서 구워내 전혀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는 것이 바로 포슬린 페인팅이다. 미술대학 재학 시절 교양과목으로 들었던 도예 수업을 통해 도자기 위에 그림을 그리게 된 한보영 작가는 좀 더 자유로운 표현을 꿈꾸다 포슬린 페인팅을 만나게 됐다. “포슬린 페인팅은 초벌구이를 한 도자기 위에 그림을 그리는 것과는 또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자기가 종이나 캔버스를 대신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색상과 표현방법이 다양하고 무엇보다 다양함과 화려함이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죠.”


그를 처음 보았던 것은 한 전시에서였다. 화려하게 또는 간결하지만 고은 자태를 뽐내는 꽃들이 자기 위에 피어있었다. 찻잔과 주전자, 접시 등으로 구성된 자기는 꽃들과 함께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 생생함은 남녀노소를 불만한 많은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특히 모든 것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진, 손으로 그려진 것이라는 점이 가장 큰 매력으로 작용했다. “포슬린 페인팅은 100% 수작업으로 이루어집니다. 사실적 표현을 위한 섬세한 회화력도 중요하지만 완성을 위해 거치는 모든 과정이 조심스럽게 이루어집니다. 여러 번, 긴 시간의 소성과정을 거쳐야 완성되는 것이기도 하고요.”


아무 것도 그려지지 않았던 깨끗한 자기 위에 화려한 그림이 자리하기까지의 전 과정은 잘못 다루면 깨지는 자기의 성격처럼 조심스럽다. “그림을 그리다보면 여러 가지 뜻하지 않은 상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재료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쉽게 건조되지 않는 오일을 사용할 경우 단 한순간의 실수로 공들여 그린 그림 모두가 지워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평면이 아닌 한정된 공간 안에 그림을 그리는 작업은 많은 집중력을 요하기 마련이죠. 그림을 얼마나 그리느냐, 어떻게 완성할 것이냐에 따라 전체 작업을 위한 시간 소요도 매우 크게 달라집니다. 그림을 그리고 난 후 가마에서 굽는 소성시간은 1회에 12시간입니다. 한번 그림을 그리고 1회의 소성을 통해 작업이 완료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림의 완성도에 따라 여러 차례 나누어 그림을 그리고 그때마다 소성을 추가로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듣기만 해도 매우 정성스러운 과정이다. 소성시간은 말할 것도 없고 그림을 그리기 위한 시간까지 따지면 하루아침에 뚝딱하고 완성되는 것이 불가능한 작업이다. 외국 영화에서 보았던 장면들이 스쳐지나간다. 거실 잘 보이는 곳에 위치한 진열장, 그 사이로 보였던 자기들. 매우 귀한 보물처럼 아끼던 그것이 바로 이 ‘포슬린 아트’였던 것이다.

“포슬린 아트 자체가 유럽 황실의 귀족문화였던 만큼 과거에는 부유한 계층의 일부 사람들만 즐길 수 있는 문화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보편화되었고 지금은 모든 가정에서 포슬린 아트를 볼 수 있을 정도로 그들이 생활 속에서 즐기는 문화가 되었습니다. 돈이 있고 없고를 떠나 모든 사람들이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죠. 자신이 직접 그림을 그려 꾸민 작품을 진열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아트 작품을 진열하기도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포슬린 페인팅이 우리나라에 전해지면서 이제 그것은 더 이상 유럽인들의 차 문화를 위한 것이 아닌, 한국인의 정서에 맞는 것으로 변화하고 있다. 한국인의 생활을 고려한 7첩 반상 셋트 등에 작업이 이루어질 뿐 아니라 우리의 정서를 담고 있는 한국적 포슬린 페인팅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포슬린 페인팅은 그림의 기법이나 화풍, 붓의 종류, 용제 등을 통해 유럽피언스타일, 아메리칸스타일, 오리엔탈스타일, 모던테크닉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구분은 여러 스타일과 기법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고 이러한 것들을 응용해 또 하나의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할 수도 있겠죠. 우리나라에서 포슬린 페인팅이 여전히 낯선 이유는 그들의 작업방식만이 보편화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충분히 동양화적인, 한국적인 느낌을 낼 수가 있습니다. 제 전공이 동양화인 만큼 전 동양적 요소들과 접목시킨 포슬린 페인팅 작업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사고의 전환은 많은 변화를 가져다준다. 포슬린 아트 자체는 캔버스를 종이에서 자기로 바꾼 새로운 사고의 전환을 가져왔고 이제 한보영 작가는 포슬린 페인팅에 대한 ‘낯선 것’이라는 선입견을 깨고 있다. 우리의 것으로 만들고 즐길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것이 있을까.

“포슬린 아트는 유럽에서 건너온 것이고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보편화 되지 못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계시지만 그것이 생활 속의 문화로 자리 잡진 못한 것이죠. 자기의 원조가 동양에 있다는 점은 이러한 자기 문화와 우리가 그리 먼 사이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대중들의 미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아트와 생활이 접목된 것처럼 포슬린 아트도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문제는 어떠한 것을 예술로 볼 것이냐 하는 관점의 차이입니다. 하지만 시각을 조금만 달리하면 생활은 더욱 풍요로워집니다. 생활 속 더 가까이에서 새로운 예술을 즐기게 되는 것이죠.” 우리의 생활 곳곳에서 예술을 발견하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포슬린 페인팅의 매력이다.

hanbo0@hanmail.net
blog.daum.net/j.garden

facebook twitter

최유진 에디터
감성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디자인, 마음을 움직이는 포근한 디자인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당신을 위한 정글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