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튈르리 정원 끝자락에 나란히 콩코드 광장을 바라보고 있는 두 건물이 있다. 그 중 남쪽에 위치한 것은 그 유명한 모네의 수련을 보기 위해 전세계의 관광객들이 성지 순례하듯 다녀가는 오랑주리 미술관이다. 오렌지 나무를 키우던 온실이 미술관으로 바뀔 당시 건물의 디자인에 참여한 모네는 미술관 내부를 그의 푸른 파노라마 화폭에 어울리는 하얀 타원형의 방으로 설계하였다. 둥근 벽면을 둘러싼 사람의 키 높이의 캔버스를 이어 만든 그림은 순간과 순간, 색과 색 사이를 파고들며 형과 색의 본질을 탐구한다. 하늘과 수면의 경계에 가까워질 수록 모든 것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경험은 모네가 말년을 바쳐 몰두한 주제이다.

글, 사진│ 박원 프랑스 통신원

에디터 | 이은정(ejlee@jungle.co.kr)

마치 복사해다 놓은 듯 닮은 북쪽의 건물 역시 갤러리로 사용되고 있다. 주로 사진과 이미지에 대한 전시를 다루는 주드뽐 Jeu de Paume이 그것이다. 최근 이곳에 선보인 네덜란드 출신 작가 얼노트 믹 Aernout Mik의 전시에서는 우연히도 모네의 ‘경계’에 대한 주제가 되풀이 되고 있다. 이미지와 서사의 본질을 탐구하는 이번 전시에서는 문화와 문화의 경계에 존재하는 평등한 공동체, 코뮤니타 Communitas에 관해 이야기 한다.

갤러리 벽을 둘러싼 사람의 키 높이의 스크린을 이어 만든 벽은 각각 하나의 조각품으로 총 8개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스크린에는 무성 다큐멘터리 형식을 빌어 최대한 객관적이고 다양한 앵글로 촬영된 여러 상황극이 재연된다.

권력의 상징인 총리의 얼굴은 종이가면으로 복사되고, 재판관, 청소부, 방청객, 증인은 사이 좋게 자리를 바꾸어가며 역할 놀이를 하듯 재판을 진행한다(Shifting, Sitting, 2011). 마감 후 어지럽혀진 증권거래소에는 비슷한 차림의 증권거래인들이 절망에 빠져있고, 그림자처럼 서로의 행동을 흉내 낸다(Middlemen, 2001). 광신도로 보이는 집단의 사람들은 나무 주위를 둘러싸고 끊임없이 뛰고 있으며(Park, 2002), 긴장감이 흐르는 학교 안뜰에서는 다양한 인종의 학생과 선생이 뒤엉켜 모여 알 수 없는 그들만의 의식을 치른다(Schoolyard, 2009). 세관에서는 지루해하는 검역관들과 지쳐서 쓰러져있는 여행객들의 모습이 보이고(touch, rise and fall, 2008), 멕시코와 미국의 접경 지역인 티후아나 산등성이는 초현실적으로 많은 양의 자동차가 갈 곳을 잃은 채 버려져 있고, 약국에서는 온갖 종류의 상품들이 섞여 거래되며, 아이들은 한가로이 피나타 치기 놀이를 하고 있다(Osmosis and Exces, 2005). 폴란드 바르샤바의 구 소련 공화국 건물에서는 폴란드인과 베트남인이 모여 불안과 긴장 속에 그들만의 정치 활동을 한다(Communitas, 2010). 그리고 다양한 방송 영상을 보유하고 있는 ITN Source의 미공개 전쟁 영상을 바탕으로 만든 작품에서는 익히 보아온 승리와 패배의 모습이 아닌 전쟁 속 평범한 일상을 보여준다(Raw Footage, 2006).

낯익은 현대 사회의 상징적인 사건들에서 그것의 본질을 감추게 하는 익숙한 안전장치들이 모두 제거되었고, 당연한 듯 반복되던 현대의 신화는 결국 전복되었다. 온갖 문화적 경계에서 이루어지는 병치, 혼합, 순환의 과정을 거친 이미지들이 벌이는 거대한 사회극의 전경은 언뜻 히에로니무스 보스 Hieronymus Bosch의 그림을 연상시킨다. 작가는 도시와 인간의 문화를 대상으로 실험을 하듯 이리저리 배치하여 하나의 그림을 완성시켰다. 시는 읽힘으로써 비로소 그 운율적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듯이, 작가가 던져준 순간적 진실의 결정들은 관객 자신의 시간과 경험으로 재구성할 때 비로소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된다. 작품은 인위적인 혼란을 통해 관객의 숨겨진 감각이 발휘될 새로운 놀이를 제안한다. 잘 맞추어진 퍼즐을 헝클고, 그것을 다시 맞추는 일종의 사회적인 의식의 반복이다.

작가의 말

Jeu de Paume, Paris, 2011

Moma, New York,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