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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월드리포트

사람을 위한 건축의 아버지 ‘르 코르뷔지에’

유수민│뉴욕 | 2013-10-10



최근에 읽었던 책에서 이런 문장을 봤다.
‘하우스(House)가 아닌 홈(Home)에서 살고 싶다.’
하우스나 홈 모두 한국어로 번역하면 둘 다 ‘집’인데, 이 문장이 예리하게 심장을 파고드는 이유는 아마도 ‘홈’을 떠나 ‘하우스’에 사는 이방인이라는 생각을 늘 하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이라는 타국에서 집은 말 그대로 ‘홈’이 아닌 ‘하우스’로 느껴진다. 집이 있어도 어쩐지 나만의 공간이 아니라는 아이러니한 생각은 왜 드는 걸까.

집이라는 개념은 외부환경으로부터의 보호라는 의미에서 시작했지만, 현재에는 이러한 외부적 요인뿐 아니라 정서적 의미도 함께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건축의 의미를 바꿨다고도 할 수 있는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현대 건축사에 절대 빠질 수 없는 큰 획을 그은 위대한 건축가의 행적을 따라가는 전시가 지난 9월 23일까지 모마(MoMA)에서 미국 최초로 열렸다.
 
글│유수민 뉴욕 통신원(smyoo1017@gmail.com)
자료제공│MoMA


르 코르뷔지에의 본명은 샤를 에두아르 잔느레(Charles Edouard Jeanneret)로 1887년 10월 6일 프랑스어를 쓰는 스위스의 라 쇼드퐁(La Chaux-de-Fonds)에서 태어났다. 그가 나고 자란 곳은 시계 산업의 중심지였으며, 때문에 그의 부모 역시 아들이 시계 공예가가 되길 바랬다. 그러나 그는 유년시절부터 드로잉을 배우고 쥐라 산맥(Jura mountain)의 풍경을 그리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 다양한 곳에서 자신의 재능을 뽐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그는 본격적으로 시계 장식 공예를 배우기 위해 라 쇼드퐁 장식 미술학교(The Ecole d’art, La Chaux-de-Fonds)에 입학했다. 그러나 이곳에서 스승 샤를 레플라토니에(Charles L’Eplattenier)를 만나면서 건축이라는 분야에 한 걸음 다가서게 된다. 샤를 레플라토니에는 존 러스킨과 그의 추종자들의 미술공예운동(Art and Craft movement)에 심취해있던 화가로, 그림을 그리되 직접 현장에 나가 영감을 얻는 것을 강조하곤 했다. 1905년 르 코르뷔지에는 디자인을 포함한 아트 트레이닝 상급코스를 수강하며, 철과 인테리어 데코레이션과 건축에 집중하게 된다. 스위스 작은 산골 마을에서 세계 무대로 나아가기 위한 예술적 가능성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회화 분야에서도 일찍이 소질을 보였던 르 코르뷔지에는 레플라토니에의 소개로 건축가 샤팔라(R. Chapallaz)에게 건축을 배우게 되고, 스무 살이 되던 해 첫 건축물이 된 빌라 팔레(Villa Fallet)를 지었다. 빌라 팔레의 사진과 함께 전시된 설계도면을 통해서 그가 건물을 짓기 전부터 이미 머릿속에서 얼마나 꼼꼼히 계산하고 이미지를 완벽히 형상화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빌라 팔레의 주 패턴은 집 주변의 전나무를 모티브로 한 것이었다. 일찌감치 르 코르뷔지에의 재능을 알아봤던 레플라토니에는 제자에게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라 제안하게 되고, 그리하여 그의 인생의 큰 걸음을 유럽으로 내딛게 되었다.


그는 5년 동안 그리스, 발칸반도, 이탈리아, 이스탄불 등 여러 곳을 여행하며 보고 느낀 것들을 꼼꼼히 기록했고, 이러한 것들이 그의 건축방식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이스탄불의 건축에서 동선을 배웠고, 이탈리아 건축에서는 개인 공간과 공동 구역의 조화를, 발칸 반도에서는 환경(자연)과 건축의 조화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이때의 여행을 계기로 인간 중심형 건축이라는 그만의 건축 철학을 점점 확립하게 되었다.

유럽여행을 통해 건축에 대한 견문을 넓힌 르 코르뷔지에는 파리로 가서 오귀스트 페레(Auguste Perret)의 건축 사무실에서 일을 시작했다. 오귀스트 페레는 철근(강화)콘크리트를 사용한 선구자적인 인물로 기존의 돌을 쌓아 만드는 건축 양식을 떠나 르 코르뷔지에에게 새로운 건축양식을 경험하게 해줬다. 새로운 재료는 건축양식의 변화를 불러왔다. 크고 웅장함과 화려함만을 강조하던 건축에서 단순 명료하고 규칙적이며 기하학적인 형태의 건축으로의 개혁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건물의 구조와 틀이 간단할수록 쉽게 지을 수 있고 비용도 절감이 되는 장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르 코르뷔지에 역시 이 흐름에 동의했고, 자신만의 건축이론을 연구하기에 이른다.  



그가 제시한 현대건축 5원칙에 따르면 1층은 주차장처럼 비워두고, 2층부터 집을 짓게 했다. 벽 대신 기둥이 건물을 지지하도록 하고, 이에 따라 공간을 자유롭게 사용하며 수평으로 창을 내어 자연광과 자연을 더 쉽게 감상할 수 있게 만들었다. 옥상에 정원을 만드는 마지막 원칙은 당시로서는 매우 획기적이고 기발한 발상이었다. 빌라 사보아(Villa Savoye)는 그의 5원칙이 적용된 대표적인 건물이다. 빌라 사보아 모델링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가 건축 자체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삶을 배려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밖에도 프랑스 도시계획안을 비롯해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의뢰받은 프랑스 도시 재건 프로젝트 ‘유니테 다비타시옹(Unites d’habitation)’, 롱샹 교회, 인도 찬디가르(Chandigarh) 도시계획안 등 그의 정교하고 꼼꼼한 설계도면과 스케치, 그리고 작게 복원한 건축 모델링과 인테리어 복원으로 만날 수 있었다. 회화부터 설계도면까지 그의 손을 거친 작업물을 살펴보면, 건축이야말로 모든 예술의 총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환경과 사람, 시각적 아름다움까지 이 모든 것을 다 생각하고 설계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노력을 요구하는 일이란 말인가.

이제까지는 건축의 외면만을 살피는 것이 건축을 보는 시각의 전부인 줄만 알았다. 어떤 것이 좋은 건축인가를 생각해 볼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 전시를 통해 건축을 보는 시각이 조금은 달라진 듯하다. 아무리 예쁘고 비싼 옷이라도 입었을 때 불편하면 그것은 애물단지 같은 존재가 되듯, 사람이 사는 집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겉이 아무리 화려하고 보기에 좋더라도 그 속에 사는 사람이 편하지 않으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홈은 아니다. 르 코르뷔지에는 ‘하우스’만을 바라보던 사람들의 시선을 홈이라는 더 큰 산을 볼 수 있도록 알려준 마음 따뜻한 건축가로 기억에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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