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전체보기

분야별
유형별
매체별
매체전체
무신사
월간사진
월간 POPSIGN
bob

컬쳐 | 월드리포트

도시를 품은 거리의 화가들

유수민│뉴욕 | 2014-06-25



‘뉴욕’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이미지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타임스퀘어, 자유의 여신상, 센트럴 파크, 월 스트릿,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옐로우 캡, 브로드웨이 뮤지컬 등 이곳을 대표하는 이미지는 실로 방대하다. 높이 솟은 빌딩, 늘 혼잡한 거리, 대도시답게 늘 사람들로 북적이는 모습은 다른 유명 대도시와 비슷하겠지만, 개인적으로 뉴욕만의 특별한 이미지를 꼽자면 거리예술, 그 중 그래피티 아트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JFK공항에서 맨하탄으로 진입하던 길에 보았던 건물을 빼곡히 뒤덮은 그래피티 아트는 아직도 내 기억 속에 강렬한 첫 인상으로 남아 있다. 한국에서는 그래피티를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게 아니었기에 더 눈에 띄었는지도 모르겠다.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부랑자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지던 그래피티 아트는, 어느덧 틀을 벗어난 자유분방함으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예술의 한 형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건물 외벽은 물론 다리 밑, 벽, 지하철 터널에 이르기까지 위험천만해 보이는 위치에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자신의 생각과 예술혼을 거침없이 쏟아내며, 현재의 그래피티라는 장르를 예술로 이끌었던 1970-80년대 뉴욕의 거리 예술을 전시를 통해 만나볼 기회가 뉴욕시립박물관에서 9월 1일까지 열린다.

글│유수민 뉴욕 통신원
자료제공│뉴욕시립박물관

그래피티는 1960~70년대 주로 뉴욕 브롱스와 브룩클린을 중심으로 빈민가 흑인과 남미의 비행청소년들이 도시를 배회하면서 스프레이를 이용해 그들의 반항심과 넘치는 에너지를 낙서처럼 표현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번 'City as Canvas'전은 낙서로만 여겨지던 초창기 그래피티 아트의 가능성을 일찍이 눈여겨보았던 마틴 웡(Martin Wong)의 컬렉션을 한 자리에서 선보였다. 그래피티의 예술적 특성상 그 형태나 기록의 보전이 다소 힘든 점을 감안하면, 마틴 웡의 컬렉션의 가치는 실로 높다. 그 역시 그래피티 아티스트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당시 예술가들과 조우하며 현장의 열기도 함께 수집한 느낌이 전시를 보는 내내 느껴질 정도로 컬렉션의 질과 양이 매우 뛰어났다. 



'City as Canvas'라는 타이틀에 맞게 전시장 입구의 큰 벽을 가득 채운 스프레이 캔은 그래피티의 강렬한 이미지를 대변하며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수많은 캔의 향연이 도시의 벽을 수놓으면서 새로운 예술의 장을 열었던 초창기 그래피티 아티스트의 도전과 실험정신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뉴욕에서 그래피티가 본격적으로 선보이게 된 것은 1970년대 초 주로 10대 청소년들의 "그래피티 라이팅(Graffiti Writing)"이라는 새로운 형식으로 그들이 말하고픈 메시지와 신선한 창의력을 시각적 예술로 표현하면서였다. 그들은 “tags”, 즉 자신이 사는 곳이나 이웃동네의 공공장소나 사적인 장소를 나타내는 거리의 숫자(예를 들어 11번가, 76가 같이 위치를 나타내는 숫자 이름)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만들어 서명하는 방식으로 도시의 곳곳에 표식을 남겼다. 당시에는 생소했지만 지금으로 본다면 일종의 공공예술이었던 셈이다. 



벽에서 시작된 그래피티 아트는 점차 지하철역, 버스, 그리고 지하철 전동차의 내부와 외부까지 그 영역을 확대해 나가며 도시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만큼 폭이 넓어졌다. 1970-8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을 보면 심심치 않게 그래피티가 그려진 지하철이나 도시풍경을 흔하게 볼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당시의 그래피티 아트는 인종차별이나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 사회 반항적이고 신랄한 비판의 메세지가 주 화두였기때문에 예술이라기보다는 반사회적인 공공질서를 어지럽히는 존재로 여겨졌다. 그러다가 1980년대 중반에 힙합 문화가 출현하면서 이와 함께 그래피티도 국제적인 아트의 한 분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도시 전체를 캔버스 삼아 자유롭게 활동한 까닭에 그래피티 아트는 작품을 보전하거나 소유하기가 다소 까다롭다. 게다가 뉴욕시가 도시 정비를 이유로 많은 그래피티 작품들을 지우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피티 자체만으로 특별전이 열릴 수 있었던 계기는 마틴 웡(Martin Wong)의 순수한 노력 덕분이었다. 중국계 미국인 그래피티 아티스트였던 그는 초창기 그래피티 아트의 잠재력을 일찌감치 꿰뚫어 본 인물이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도자공예를 배우던 유년시절을 보내고 이후 페인팅에 관심을 전향하여 1978년 30대 초반에 뉴욕으로 건너왔다. 메트로폴리탄 뮤지엄과 이스트빌리지 갤러리 등지에서 개인전과 그룹전을 개최하면서 그는 페인터로 자신의 경력을 쌓으며, 여러 아티스트들과 교류하였고 차근차근 그들의 작업과정 스케치나 사진 등을 모으기 위해 애썼다. 1994년 그가 에이즈 판정을 받고 가족들이 있는 캘리포니아로 돌아가게 되면서 그동안 수집한 작품들을 뉴욕시 박물관에 기증했으며, 1999년 5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가 사망한 이후에도 스케치 작품들은 전설로 남아 많은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그가 수집한 70년대 그래피티 아트 작품 외에도 “블랙북Black Book”이라 불리는 스케치 컬렉션도 전시되었다. CEY(Cey Adams), DAZE(Chris Ellis), DONDI(Donald White), FUTURA 2000(Leonard McGurr), Keith Haring, LADY PINK(Sandra Fabara), LEE(Lee Quinones), SHARP(Aaron Goodstone)등 초창기 그래피티의 선구자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아티스트들의 스케치를 모은 블랙북과 더불어 1980년대 뉴욕 다운타운에서 활동하던 컬렉터들과 후원자들의 작업들도 함께 선보여서 더욱더 풍요로웠고, 오로지 그래피티 아트 만의 축제가 되어 훨씬 뜻깊은 전시가 되었다.

도시 전체를 캔버스 삼아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발산하는 것이 특징인 그래피티는 초창기의 반사회적인 루저들의 낙서라는 오명을 벗어던지고 이제는 당당히 예술의 한 장르로 그 명성을 얻고 상업적으로도 활발히 이용되고 있다. 비주류에서 트랜드 문화로 자리잡기까지 그래피티 아트가 걸어온 짧지만 강렬한 그들만의 리그전은 앞으로 또 얼마나 더 발전해 나갈지 기대해 본다.






facebook twitter

당신을 위한 정글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