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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리뷰

다른 생각, 다른 청첩장, 다른 편집디자인

2002-05-14

이번 회에서는 청첩장 디자인을 통해 종이가 아닌 다른 방법의 인쇄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자신의 결혼을 가까운 지인들에게 알리기위해 우리는 청첩장을 보낸다. 청첩장을 받아보는 사람들은 시간을 내어 결혼을 축하해주기 위해 예식장을 찾는다. 예식장은 친구들의 모임자리이기도 하다. 북적대는 와중에 결혼식은 끝나가고 이내 식당은 붐비기 시작한다.

한 켠에서는 사진을 찍고 한 켠에서는 음식을 먹기위해 줄을 서있다. 폐백이 끝나고 친지들과 인사가 끝나면 친구들은 피로연을 한다. 신혼부부들은 비행기를 타고 신혼여행지로 떠나거나 호텔에서 하루밤을 묶는다.
결혼식장을 찾은 친구들은 각자의 집으로 뿔뿔히 흩어진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간다. 그나마 신혼부부들은 며칠지나 결혼식 사진을 보면서 이 친구 저 친구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정작 그 친구들은 결혼식 이후 그들의 결혼식을 까맣게 잊어 버렸을 것이다.

왜냐고? 기억에 남는 게 없으니까.

요즘 그런 섭섭함을 없애보고자 청첩장에도 새바람이 부는듯하다. 자신들을 피알하기위한 수단으로서, 그리고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청첩장의 비운을 줄이기 위해서 가끔씩 독특한 청첩장을 접한다.

한가지 실 예를 들어 이야기 하겠다.


신부는 세가지를 요구했다.
첫째, 독특할 것.
둘째, 청첩장을 받아보고 안오면 안되게 만들 것.
셋째, 못 버리게 만들 것.

참으로 어려운 요구사항이었다.

이 청첩장은 일반적인 스타일(종이에 인쇄된)이 아니다.
종이에 인쇄하는 방법으로도 할 수는 있겠지만 그건 더 어려운 방법이었다. 결국 ‘어떻게 하면 세 가지 욕구를 충족시킬까?’에 대한 아이디어 작업이 시작되었다.
고민 고민 끝에 한가지 문구가 스쳐 지나갔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다.”
칼로 물을 베어봤자 다시 붙는다. 떨어졌다가 다시 붙는다. 큰 방향은 결정이 났다. 물을 이용 하는 것이다. 비닐로 된 링거주머니처럼 속에다 물을 넣은 후 그 안에 신랑·신부 아이콘을 제작하여 그 속에서 둥둥 떠다니게 만들 계획이었다.

스케치를 들고 그들에게 설명을 했다. 결과물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스케치만 보고는 감이 잘 안왔던 모양이다. 괜챦을 거 같지만 어떤 느낌인지를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실은 작업자인 나도 정확한 상태를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사진1 스케치만 가지고는 실제의 느낌을 알려주기가 무척 난감했지만 샘플도 없는 터라 클라이언트들에게는 이 스케치가 최선이었다.



우선 방산시장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방산시장. 이곳은 디자이너라면 꼭 알아 두어야 할 곳이다. 온갖 재료들이 즐비한 곳이다. 각종 특수 비닐원단에서 봉투, 고무줄, 장판, 용도를 알 수 없는 기계들….
구석 구석 돌아다니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곳이다. 당장 무엇이 필요해서라기 보다는 그냥 돌아다니면서 각종 재료들을 보면 “이건 요렇게 써 먹을 수 있겠네”라는 생각이 용솟움 치는 곳이다.

이곳에서 샘플을 모으기 시작했다.
닳고 닳은 장사꾼들이라 샘플주기를 꺼려한다. 안면몰수하고 다량(?)주문이 어쩌고 저쩌고 해서 일단 얻고본다. 가지런히 정리해놓으면 언제든지 펼쳐놓고 그자리에서 고르기만 하면 된다.

사진2 방산시장에서 모아온 비닐샘플들을 이름, 가격, 연락처를 적어서 모아 놓았다.



그렇게 가자는 허락을 맡은 후, 이제는 몸이 바쁘기 시작했다.
특수 비닐재료를 셀렉팅 한 후에는 안에 들어갈 아이콘 작업을 하였다.
그리고 결혼식에 대한 정보를 어딘가에 처리를 해야되는 문제가 남아 있었다. 처음엔 비닐 자체에다가 고주파인쇄(불에 달궈 논 인두라고 생각하면 된다. 다른 점은 열을 순간적으로 발산해서 찍는 다는 것)를 하려했지만, 글씨가 너무 작아서 그 방법은 포기하고 말았다.

결국 안쪽에다가 스티커 작업으로 붙이는 작업으로 선회를 하였다.

컴퓨터에서 작업할 것들은 별로 없었다. 그저 안쪽에 들어갈 스티커와 아이콘작업이 고작이었다. 약 1,000원 어치의 쑥스러운 필름 출력을 맡긴 후 충무로 인쇄 기획실을 찾아가 현재 상황을 이야기해주며 일을 맡겼다.



사진3 1,000원어치 필름 출력물


인쇄소 분은 뭐하러 이렇게 힘들게 만드냐며 투덜댔다.

대부분의 공정이 수작업이었기 때문에 안면이 없는 곳에선 해주지도 않는 작업물이었다. 공정을 살펴보자면 우선 배면(스티커의 접착면쪽에 인쇄를 하는 것) 스티커 작업과 아이콘을 넘긴다.
스티커 용지도 기성품으로 약 30여가지 재질이 있다.
그 중 물이 묻어도 문제 안생기는 유포지를 골랐다.
인쇄물을 우선 작업해 놓고 특수비닐을 원하는 사이즈로 재단을 한다.
그런 후 안쪽에다가 스티커를 붙인다.
그리고 3면을 고주파로 마치 파스 포장비닐처럼 막는다.
다음 지금까지 안에 들어가는 것이 물인 줄 알았지만 물을 넣으면 나중에 변질되는 문제가 생기므로 글리세린을 넣었다.
글리세린과 아이콘을 넣은 후 글리세린이 쏟아지지 않게 세운 후 마지막 면을 고주파로 매꿨다.
막상 완성이 되고보니 재미있는 현상이 발생됐다. 비닐에 있는 결 때문에 속에 들어있는 아이콘이 3중 4중으로 겹쳐 보이는 효과가 났다. 비닐을 밀착하면 선명하게 보이고 다시 놓으면 어른어른 보이는 현상이었다.

청첩장(?)을 만지면 아이콘들은 각자 둥둥 떠다니다가 서로 겹쳐졌다가를 반복했다.
부부싸움이 칼로 물베기 인것처럼….

마무리로 청첩장 봉투는 이제는 흔하게 쓰이는 정전기 방지용 비닐을 사용하여 내용물이 어느정도 보이게 끔했다. 그 위에 라벨지로 보내는사람 주소와 받을사람 주소를 붙이면 작업끝이다.

비닐의 칼라는 핑크색, 연두색, 노랑색 이 3가지 칼라를 사용했다.

완성된 후 예비부부에게 택배로 발송한 후 2시간여 지난후 전화가 왔다.
너무 맘에 들고 그 스케치가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다고 기뻐했다.



사진4 바로 그 청첩장들이다.컬러별로 촬영해 보았다.


물론 아쉬운점이 몇가지가 있었지만 기뻐해주는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며칠전 신문에 재미난 기사를 읽었었다. 칠판에 분필 긁히는소리를 들으면 보통 소름이 돋는데 우리는 그 이유를 분필 긁히는 소리가 인간이 듣는 주파수 영역을 넘어가는 소리이기 때문에 그렇다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과학자들이 가청음 이외의 주파수대를 없애고 그 소리들 들려줘도 마찬가지로 소름이 돋는 결과를 얻었다. 결국 소름이 돋는 이유는 다른데 있다는 것이였다. 과학자들의 추측이 재미있었다.
분필 긁히는 소리와 원숭이 비명소리가 비슷한데 오래전 유인 원시절 원숭이와 유인원은 서로 적대적 관계였다고 한다. 그래서 유인원들은 원숭이의 비명소리를 들으면 경계를 하던 습성이 현재 인간들에게 아직 남아있어서 그런게 아닌가는 학설을 발표했다.

디자이너들은 공동작업을 통해 결과물을 얻어내는 훈련을 해야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가 해보려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기획도, 클라이언트와의 커뮤니케이션도, 디자인도, 인쇄도 모두 자기 혼자 처리하고 싶은 욕망. 가끔은 셀프 프로모션으로도 그 숨겨져있는 습성을 깨워주는 것이 필요한 시대이다.

며칠후 결혼식날. 식전 분위기는 주로 청첩장에 대한 이야기였다. 특이했고 안 올 수가 없었고 버릴 수도 없었다는….

사진5 둥실 둥실 떠다닐 때는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어른거린다. 멍멍이는 신랑이다.

사진6 비닐을 밀착시키면 아이콘이 분명하게 보인다. 야옹이는 신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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