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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리뷰

스위스에서 만난 그 남자의 별난 타이포 이야기.

2005-04-19

<시월애> , <파이란> , <생활의 발견> , <오아시스> , <나쁜 남자> ,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 등의 감각적이고 참신한 영화의 로고타입으로 이름을 떨치던 박우혁 디자이너가 홀연히 스위스로 공부를 하러 떠난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의구심을 가졌다.
이제 막 명성을 알리기 시작한 그가 굳이 공부를 하러 떠날 이유가 있는지, 그리고 수많은 나라 중에서 왜 스위스를 선택했는지에 무척 궁금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이 모든 호기심을 씻어 줄 한 권의 책이 발간돼 눈길을 끌고 있다.
박우혁 디자이너가 쓴 <스위스 디자인 여행> 이 바로 그것이다.
스위스 바젤 디자인 대학교에서 그가 2년간 머무르면서 보고, 듣고, 느꼈던 모든 것들을 고스란히 옮겨 담은 책. '스위스 디자인 여행'을 소개한다.

취재 | 권영선 기자 (happy@yoondesign.co.kr)

스위스라는 작은 나라, 게다가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도시 '바젤'에서 공부를 하게 된 이유가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멋쩍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스위스의 '바젤 디자인 학교'는 타이포그라피와 그래픽 디자인에 있어 역사적으로 미친 영향이 대단함에도 불구하고, 여태껏 한국에 알려진 부분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디자인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알았어야 하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생소하다는 듯 질문을 한다는 것이 그에게는 적지 않은 곤욕이었을 것임에 분명했다.

그는 어느 날, 디자인 사무실 책장에 꽂혀있던 헬무트 슈미트(Helmut Schmid)의 ‘타이포그라피 투데이(Typography Today)’를 발견했다. 질이 안 좋은 복사본임에도 불구하고, 질서정연하고 아름다웠던 그 책의 디자인에서 ‘바젤 디자인 학교’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 학교에 들어가고자 부단한 노력을 하기 시작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 영어학원과 독일어 학원을 다니고,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며, 스위스 ‘바젤 디자인학원’에 들어가기 위해 3년을 힘겹게 보냈다.
그 나라에 대한 정보도 없고, 언어 문제도 맘에 걸렸지만 정말, 그 나라, 그 대학에 꼭 들어가 타이포그라피을 배우고 싶었단다.

독일어 권인 그 곳에 연고지 하나 없이 혼자 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주위의 만류도 있었지만, 스스로도 그곳에 다녀와서 어떻게 생활해 나가야 할지 막막한 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우려보다는 현대 디자인의 기초가 되고 있는 스위스 디자인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더 강했다.
현재, 우리가 영자체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헬베티카 (Helvetica)체와 유니버스 (Univers)체가 50~60년대, 스위스에서 만들어진 것임을 보면, 그 대단함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50,60년대 잡지 속에 나오는 '스위스 스타일'은 현재의 디자인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간결하고, 독특한 그만의 색을 가지고 있다.

힘들게 얻었던 기회였던 만큼,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을 한 것이 스위스에서 생활한 모습을 홈페이지에 올리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새로웠기 때문에 더욱 많은 곳을 다니며, 모든 것들을 사진 속에 담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렇게 찍은 사진이 얼마나 되는지 셀 수 없을 정도가 되었고, 여기저기 다니며 모은 브로슈어, 티켓, 팜플렛이 한아름이나 되었다.
그는 한국에 돌아가면 이렇게 모은 자료로 꼭 책을 내보리라고 다짐을 해왔다.
그러던 차에 출판사로부터 출판제의를 받게 되었고, 책 만드는 일에 몰입한지 6개월만에 그 소원을 이룰 수 있었다.

박우혁 디자이너는 어떤 책을 만들어야 할지 몇 날 며칠을 고민했는지 모른다.
남의 일을 해주던 것과는 조금 다른 류의 고민이었으니 말이다.
'디자이너가 만든 책은 조금은 달라야 하지 않을까'하는 은근한 부담감도 있었지만, 막연하지만 오래 간직할 수 있고, 따뜻한 느낌이 나는 조금 두꺼운 책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나무 느낌이 많이 나는 재생지를 이용하여 책을 만드는 것이었다.
코팅을 하고 박을 찍는 것은 처음엔 멋있어 보이긴 해도, 시간이 지나면 왠지 딱딱해 보이고 무거워 보이는 느낌이 나, 정감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시간이 지나도 책이 전혀 변하지 않을 정도로 튼튼한 것 보다는, 손 때가 묻고 모서리가 닳아가며 세월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그런 책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책을 찬찬히 살펴보면, '어느 부분이든지 중요하게 생각하고 디자인 했다'라고 말하던 박우혁 디자이너의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디자인하기 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표지의 안쪽, 목차까지도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강렬한 노란색을 활용하여, 다양한 사진들이 주는 산만함을 없애고, 동그라미를 모티브로 그가 다녀온 스위스를 차근히 따라가고 있었다.
박우혁 디자이너는 그가 다녀온 스위스를 단지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있다. 사진 하나, 글씨 하나까지도 그의 손을 거쳐 다시금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맨 처음 그가 책을 낸다고 했을 때, 모두가 궁금해 했던 것이 바로, '책 속에 그가 어떤 타이포를 담을까' 였다. 2년간 배워온 '스위스 스타일'이 책 속에 고스란히 담아져 있지 않을까 하는 일종의 호기심이었다.
실제로 그는 이 책을 통하여 눈에 피로가 가장 적게 오고, 따뜻한 느낌이 나는 명조체를 본문의 메인 글씨체로 사용하고 있다. 활자의 미적인 측면보다는 글자를 읽기 쉽게 배려한 타이포그라피의 기본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셈이다.

많은 사람들이 박우혁 디자이너를 단순히 로고타입의 디자이너로 혼동을 하고 있지만, 그는 활자를 다루는 '타이포그래퍼'이다.
스위스에서의 공부를 통하여 글자를 만드는 것보다는 활자를 배열하고 사용할 수 있는 것을 연구하는 타이포그라피로써의 발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디자이너로써 명성을 알리기 시작했는데, 유학 결정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대학교 시절부터 스위스의 바젤로 공부를 하러 가고 싶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 목표가 흔들리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는 것이 물론 쉽지는 않았다.
밀려드는 업무를 처리하는 것도 빠듯한게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을 해 나가면서 보다 나은 디자인을 위해, 스위스로 가고자 하는 마음에 가속도가 붙었다.
내가 배우고 싶어하고, 알고 싶어하는 부분,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스위스에 가서 해소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보다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할 수 있는 것 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왔다. 회사를 끝내고 영어회화 학원을 다녔다. 일이 바쁠 때는 학원에 가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그런 어려움이 있었기에 더욱 해내고 싶었던 것 같다.


스위스로 디자인 유학을 떠난 특별한 이유가 궁금하다.
스위스로 공부를 하려고 마음을 먹은 것은 대학교 4학년 때였다. 국제 타이포그래피 양식이라고 하는 무언가 귀에 굉장히 익숙하지만, 잡히지 않는 소위 ‘스위스 디자인’을 배워보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을 한 곳이 바로 스위스의 ‘바젤 디자인 학교’이다.
스위스 스타일은 전세계 디자인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고, 그로 인해 다져진 현대 디자인의 기초는 미국을 비롯하여 수많은 나라들의 디자인을 진보시키는데 커다란 공헌을 했다.


정보도 많지 않고, 더군다나 영어도 아닌, 독일어로 생활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은데…
실제 수업은 모두 영어로 진행이 되고 있다. 그리고 스위스 사람들의 경우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를 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극히 기본적인 어휘를 빼고는 독일어를 사용할 경우가 거의 없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 또한 생활하면서 한국어를 많이 사용하지 않는다.
기본적인 물건을 사고, 계산할 수 있는 정도라면 무리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누구나 그렇게 닥치고 나면, 다 해결이 되는 수가 생기곤 한다. ^^:

낯선 타지에서 혼자 공부를 하며, 가장 힘이 들었던 부분은 무엇인가?
낯선 환경에 적응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것은 그렇게 흥미롭고 즐거운 일만은 아니다. 말도 잘 안 통하는 상태에서 부동산을 돌아다니며 어렵게 살집을 구하고, 은행에 가고, 혼자 밥을 먹고, 많은 외국인들과 대기실에 같이 기다리다 보면 스스로가 처량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 지나고 나니 이 모든 것이 추억이 되어 되돌아 왔다. 낯선 곳에서의 색다른 경험은 나 스스로를 다시금 되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스위스 디자인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2001년, 새 스위스 여권의 디자인이 발표되었을 때, 이 나라의 디자인 수준에 무척이나 놀랐던 기억이 난다. 파격적인 디자인이 한 국가의 여권에 채택되었다는 사실에 경이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스위스는 디자인에 대해 열린 시야를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이 나라에서 만들어진 5,60년대의 디자인을 현재와 비교해도 전혀 뒤쳐지지 않고 있다. 많은 사람들을 그 디자인을 일컬어 ‘스위스 스타일’이라고 부르고 있다.


한국에 들어오자 참 많은 활동을 했다고 들었다.
스위스에서 있었던 일들을 엮은 ‘스위스 디자인여행’을 출간함과 동시에 그 동안에 작업했던 작품들을 가지고 전시회를 열었다.
나에게 있어 스위스에서 2년 동안 공부를 한 것은 개인적으로는 큰 수확이었겠지만, 현직 디자이너로써의 한국에서의 공백기가 2년이나 생겼다는 핸디캡을 가져야만 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그 시기에 걸 맞게 책과 전시회를 열어보는 보는 것이었다.
정말 많은 분들께서 전시회를 찾아 주셨고, 책을 읽어 주셨다. 이 자리를 빌어 작지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앞으로의 목표나 계획이 있다면 무엇인가?
영화의 로고 타입 디자인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이제는 로고 타입 디자이너로써 한정되어 불러지기 보다 타이포그래퍼로써, 많은 활동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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