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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리뷰

원을 사각형으로 만드는 방법

2010-10-19


백두산 호랑이가 금연에 성공한 지 꽤 지났을 즈음, 지구 반대편의 그리스에서는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라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지껄이며 독약을 사발로 들이키고 있었더랬다. 이 철학자들이란 게 원래 자기가 왜 태어났는지나 골몰하면서 지내는, 시쳇말로 맛이 좀 간 사람들이다 보니 별의별 희한한 인간이 다 태어났는데, 그 중 피타고라스라는 철학자가 있었다. 그는 철학자이자 수학자였는데, 당시의 '수학자'라는 호칭은 요즘 말로 치면 '아테네 학당 철학과 5학년'이라는 등급쯤에 해당하는 하나의 계급장이었다. 피타고라스의 진짜 문제는 그가 철학과 상급생이었다는 게 아니라, 정말 수를 연구했다는데 있다.

글 | 남대남 일러스트라이터( statchs@hotmail.com)
에디터 | 이은정(ejlee@jungle.co.kr)

이 싸이코 철학자는 세상 모든 것이 수로 만들어져 있다는 턱도 없는 망상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결국 그의 사후 제자들이 '피타고라스의 정리'라는 것을 증명하는 대형 사고를 쳤고, 스승의 고명하신 그 이론은 삼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 같은 사람들에게 빵 점짜리 수학 성적표를 남발하게 된 것이다. 이들의 논리는 학자적 욕심으로 인하여 세상 모두의 생성/유지/사멸에 대한 원리를 수에 기반하여 설명하려 들었던 것이 핵심이었다. 이들은 자연의 구성은 당시 가늠할 수 있었던 태양계 별들의 거리가 어떠한 특정 비율에 기반한다는 식으로 자신들의 논리와 사물의 원리를 설명하려 들었고, 이 움직일 수 없는 천체의 비례 덕분에 그러한 논리는 탄력을 얻어 발전을 거듭하였다.

이걸 연구한 그리스의 철학자가 바로 에우클레이데스라는 인간이었는데, 기어이 말도 안 되는 괴이쩍은 수열을 가져다 붙임으로써 그러한 수열을 정리해 버리고 기하학에 대한 논문을 써 내었으니 이것이 바로 다섯 개의 공준과 다섯 개의 공리로 이루어진 기하학 원론이다. 에우클레이데스라고 그리스 식으로 호명하니 아마 낯선 모양인데, 영어로 부르면 아마 나처럼 이를 갈아대는 사람 꽤 될 거라 짐작한다. 이 자가 바로 기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유클리드로, 이 작자의 정리를 토대 삼아 나온 것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1,1,2,3,5,8,13, 21...로 이어지는 비율. 즉 1.618... 어쩌고 나오는 황금비율이었다.

이 사람 환장하게 만드는 무리수의 비율을 그리스의 학자들은 천체의 별들이 가지는 거리의 비율이라고 생각했고, 음악가들은 가장 완벽한 음의 비율이라고 여겼으며, 조각가들은 완벽한 인체의 비율이라고 생각했고, 건축가들은 이상적인 건물의 비율이라 여겨댔던 거다. 그리고 인류가 이 멋대가리라고는 반 푼도 없는 황금비율에서 벗어나기까지는 무척이나 오랜 세월이 흘러야 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이 황금비율 기하학이 가장 끈덕지게 늘어붙어 망령처럼 지배했던 부류의 예술이 바로 건축 분야였는데, 이는 전적으로 마르쿠스 비트루비우스 폴리오라는 기원전 1세기 경의 카이사르 군단 건축기술자가 건축십서(De achitectura)라는 논문을 써 재꼈기 때문이다. 도시계획, 건축일반론, 건축재료, 신전, 극장, 목욕탕 등의 공공건물, 개인건물과 벽화, 시계, 측량, 토목법, 천문학, 군사용 토목도구 등 한마디로 고대건축의 모든 것이 담겨있던 이 10권 한 질의 논문집은 그 이후 오랜 동안 사장되어 있다가 1414년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발견되었다. 마침 그때는 르네상스 시대라서 고전기의 미술이 각광을 받던 시대였는데, 이 고대문서는 고전주의의 유행을 아주 정통으로 타면서 순식간에 르네상스의 예술가들 사이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거기에 바로 필이 꽂혀버린 것이 인류 역사상 제일 전공 따지기 애매한 천재, 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다.

무수한 방법을 시험한 끝에 나는 원을 사각형으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코덱스 아틀란티쿠스, 레오나르도 다빈치


딱 들어보면 벌써 맛이 반쯤 간 사내라는 포스가 느껴진다. 도무지 직업을 가늠할 수 없었던 자,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이 비트루비우스 기하학에 필이 팍 꽂혀버렸다. 그래서 한 삽질이 바로 이것, 원을 사각형으로 바꾸는 한심한 짓거리였다. 그래도 다빈치는 나름 세기의 천재라고 소문난 인간이라, 이 정신 나간 짓거리를 그냥 하는 게 아니라 나름대로 이걸 이용하여 뭔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뭔가를 만들려고 했으니 그것의 증거가 바로 다음의 스케치이다.

비트루비우스란 인간은 최근 들어 자주 들리는 녹색건설의 주창자였다. 하지만 현행의 녹색건설과는 뭔가 달라서, 그것은 이 인간의 건축관의 중심, 그 자체였다. 마치 꿀벌이 집을 짓듯 건축 재료부터 건축법에 이르기까지 하나같이 자연으로부터 시작하여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는 자재를 사용한 자연의 모방을 강조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자의 자연에서는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로써 자리를 잡고 있었다.

" 누워서 팔다리를 뻗은 후 배꼽에 컴퍼스 중심을 대고 원을 돌리면 팔다리의 끝이 원의 둘레에 닿는다. 이는 정사각형으로도 이루어진다. "

이 비트루비우스가 건축십서의 신전건축편 행간에 써두었던 이 소리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스케치를 만들어냈다. 물론 공짜는 아니었다.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는데, 비트루비우스의 비율이론에 잔뜩 고무되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실제로 누워서 팔다리를 휘적거려 본 결과, 도무지 그렇게 되지 않았던 것이다! 잔뜩 팔을 올리고 다이빙 자세로 누워있던 다빈치는 결국 꽁수를 구상했다. 하나로 안 되면 두 개를 붙이면 되는 거다. 어려울 게 뭐 있나. 덕분에 이 위대한 스케치는, 몸 하나에 팔 네 개와 다리 네 개가 붙은 희한한 모양으로 마치 애니메이션의 동선 구성과 같은 구조가 되어 버렸다. 어떤가? 당신들이 보기엔 멋져 보이는가? 종이도 누렇고 잉크도 갈색으로 변색되어 있어서 그런건지 아무래도 이 스케치에 뭔가 있어 보이긴 하는데, 안됐지만 사실 이건 전적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무식해서 저지른 짓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발명도 했고, 조각도 했고, 그림도 그렸고,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시인이기도 했지만 단. 개 중에 그나마 시원찮은 분야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토목건축이었다. 제 아무리 토목건축의 마에스트로라고 불리던 다빈치였다지만 것은 순전히 이름값이었을 뿐, 그는 근본적으로 평면적인 사고를 가졌던 화가였던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비트루비우스는 건축가였고, 게다가 문제의 저 구절은 신전건축편에 기록된 문장이었다.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아주 큰 상관이 있다. 건축가는 화가와는 달리 입체적으로 사고한다. 한마디로 발상 자체가 다른 존재들이란 거다.

원과 사각형은 본래 고대의 신전건축에서 가장 이상적인 형식으로 손꼽히는 '톨로스' 형식의 건축 품격이었다. 델포이 신전과 같은 톨로스 양식의 전통에 따르면 원은 신전의 평면도, 사각형에 해당하는 부분은 신전의 입면도가 되어야 정상이다. 위에서 보면 원이지만, 정면에서 보면 사각형이 될 수 밖에 없는 이 톨로스 양식의 신전은 다음과 같다.

불세출의 천재라 불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였지만 무식하면 손발이 고생하는 법. 비트루비우스는 잔인하게도 평면도와 입면도를 나누어 그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건축십서 자체가 초보용 입문서가 아니었음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만, 덕분에 세기의 대천재 하나가 역사에 남을 삽질을 해 버린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이 불세출의 대천재가 저지른 삽질을 애도하며, 문제의 구절을 한번 더 음미하도록 하자.

" 무수한 방법을 시험한 끝에, 나는 원을 사각형으로 만들고야 말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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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정
잡지디자이너 과심은 여러분야에 관심은 많으나 노력은 부족함 디자인계에 정보를 알고싶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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