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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리뷰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에 진출한 국내 최초 만화 스토리 작가

2005-09-15


우리나라에 만화 스토리작가라는 직업이 만화가와 구분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여 년 전. 그 이전에는 만화가 혼자서 글을 쓰고 만화를 그리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만화 스토리작가란 만화대본을 전문으로 창작하는 만화 콘티작가를 말한다.
만화문화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 일본의 경우 만화가와 만화 스토리작가가 이미 오래 전부터 구분되어, 각자의 독자적인 영역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 만화 스토리작가로 손꼽히는 윤인완이 얼마 전 ‘서울 국제만화애니메이션 페스티벌(SICAF)’ 에서 만화 ‘데자부’를 통해 우수기획상을 수상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그는 만화 스토리 작가로서 1999년 최초로 ‘The Fools’라는 판타지 만화로 일본에 진출했으며, 현재 일본 최고의 만화 출판사인 소학관에서 발행하는’GX(월간지)’에 2001년 4월부터 연재를 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만화 스토리 작가 윤인완을 어렵게 만나보았다.

취재| 권영선 기자 (happy@yoondesign.co.kr)

맨 처음 그는 만화가를 꿈꾸는 많은 학생들이 그렇듯 고교 3년 때부터 이태행 화실과 양경일 화실에서 문하생으로 1년을 지냈다.
고되고 힘들지만, 언젠가 자신이 만든 스토리로 만화를 그려보겠다는 생각에 지칠줄을 몰랐고, 그러던 중 선배 만화가인 양경일에게 자신의 원고가 어떠냐며 보여주게 되었다.
그가 쓴 스토리를 바탕으로 만화가 양경일이 그림을 그렸고, 이것을 시작으로 윤인완과 양경일은 멋진 콤비가 될 수 있었다.
윤인완의 첫 데뷔작인 '데자부-봄'을 시작으로 '아일랜드', 그리고 현재의 '신암행어사'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품을 양경일과 함께 하였다.
이렇게 우연치 않은 기회에 시작한 만화 스토리작가는 그의 인생을 180도 바꾸어 놓았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시작한 만화가 어느덧 벌써 8년이 지나갔다.

그가 한국에서 성공한 만화 스토리작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보는 독자층이 늘어날수록 스토리에 대한 심한 압박감에 시달렸고, 새로운 스토리를 끊임없이 연구해야만 했다. 단지 스토리를 구성하고 글을 잘 쓰는 것만으로는, 경력과 나이를 불문하고 오로지 재미있는 스토리와 실력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치열한 만화업계에서 다른 작가들과 차별화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 만화계가 침체기에 빠져있고, 많은 작가들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와 만화가 양경일이 해외로 눈을 돌려 일본 시장을 상대로 만화를 그리겠다고 결심한 것은 한국 만화계에서는 대단한 이슈가 아닐 수 없었다.
실제로 일본의 메이저 출판사인 소학관에서 ‘신암행어사’를 연재하면서 큰 인기를 끌고 있고, 국내 만화 스토리작가로는 처음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으로 작품이 제작된 이례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일본 만화가 우리나라 출판만화 시장의 80%를 차지하며 위세를 떨치고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정말 대단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최근 일본에서는 우리의 젊은 만화가들의 작품이 인기를 끌면서 수출이 활기를 띠고 있다고 한다. 국내 만화가들 또한 이들의 성공을 필두로 해외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윤인완이라는 그의 이름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그를 직접 만나기 전 왠지 고집스러울 것 같고 독특한 사람일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그는 지독히도 평범한 사람처럼 보였다. 물론, 만화를 누구보다 사랑한다는 것만 뺀다면 말이다.
그는 하루의 대부분을 만화를 위한 소재거리를 찾아 고민을 하고, 그 시간 이외에는 우리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많은 독자들이 만화를 읽어줄수록 원작자로서 더 큰 책임을 느끼고 작품에 임하게 된다고 말하는 그의 표정에는 비장함마저 서려 있었다.
언제나 노력하는 만화 스토리작가로 남고 싶다는 윤인완의 하루는 고작 24시간으로는 한참 모자라다.
그의 책장 가득히 만화책이 꽂혀 있고, 책상에는 작업중인 만화 콘티들이 널려있었다.

Jungle : 이번 SICAF 2005 Award 에서 '데자부'를 통해 우수기획상을 수상하였다.
데뷔작이기도 한 이 작품은 원래 단편으로 만들어진 작품이었다. '봄', '여름','가을','겨울'의 구성으로 기획을 했다. 하지만, 아일랜드 작업을 하면서 마무리를 하게 되었고, 그 후에 데자부를 완결된 이야기로 만들고 싶은 욕심과 미련이 남았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연결되는 서사적인 부분을 릴레이식으로 극의 색깔이 맞는 개성 있는 만화가들과 함께 해보면 어떨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국내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대표적인 만화가인 양경일, 윤승기, 김태형, 박성우씨에게 제안을 했고, 모두 함께 이야기를 꾸미게 되었다.
1996년 양경일 선배가 그 첫 편인 '봄'편을 그린 이후, 2004년 박성우의 '겨울'편까지 총 8년이라는 제작기간이 걸렸다. 진행하고 발간하기까지 꽤 힘든 과정을 거친 작업으로 개인적으로 많은 애착이 간다.

Jungle : 원래는 만화가가 꿈이었다고 들었는데, 만화가로의 아쉬움은 없는지 궁금하다.
맨 처음에는 많았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사라졌다. 결국 같이 한 작품도 공동 작품이자, 내 작품이 되는 것이니 말이다. 그 생활에 익숙해지다 보니 그리는 것보다 재미있는 스토리를 만드는 것이 더 재미있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전에 만화가가 되고 싶었던 것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내가 만든 스토리를 가지고 무엇인가를 만들어내고 싶었던 것 같다

Jungle : 어떤 만화가가 이 만화를 그려줬으면 좋겠는지, 선택하는데 많은 고민을 할 것 같은데...
나는 매번 스토리에 잘 어울리는 만화가를 떠올리는데, 그 분이 그려주겠다고 하시면 그 분에 맞춰서 스토리를 바꾼다. 데자부같은 경우에는 그렇게 많이 바꾼 케이스 중의 하나이다.
'여름'편은 윤동주님의 이야기인데, 암울한 시대이긴 하지만 부드러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그 이야기에 잘 어울리는 윤승기 선배님께 제안을 했다. 그 분의 그림을 보고 연출을 잘한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살려, 스토리를 바꾸었다. 그랬더니 그런 것들이 시너지 작용을 일으켜서 좋은 작품이 나왔던 것 같다.

그리고 '가을'편의 경우에는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미국에 흥미가 많으신 김태형 작가님에게 제안을 하였다. 만약 그분이 하면 내가 원하는 세세한 부분까지 살려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역시나 전체적인 그림 스타일이 미국만화 같으면서도, 한국적인 특징을 살려 색다른 분위기를 낼 수 있었다.
물론 '겨울'편을 진행하신 박성우 작가님 또한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작품을 만들어 주셨다.
분위기에 맞추어 이 작가님에게 어울리겠다 싶으면 제안을 해 보긴 하지만, 개인적인 시간에 쫓기시거나 의향이 없으시면 빨리 다른 분을 섭외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아직 그런 적은 없어서 무척 다행이라고 생각을 한다.

Jungle : 한국적인 느낌이 나는 판타지 작품을 많이 만들었는데...
가장 자신 있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몸에 베어있던 문화들이 바로 그것이었다. '신암행어사'를 만들기 전에는 순수한 서양 판타지 구상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그것을 만들기 위해서 굳이 스토리 공부를 따로 하는 것이 싫었다. 결국 판타지라는 것도 아무것도 없는 백지 상태에서 나온 것이다.
나도 그런 식으로 한 번 접근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그때까지 알고 있던 전통문화 소설 같은 것을 현대적으로 각색해 보았다. 그런 부분이 일본을 비롯한 해외에서 신선하게 받아들여진 것 같다.

Jungle : 가장 보람을 느꼈을 때와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인가?
가장 보람을 크게 느꼈을 때는 내가 이 작품을 하고 있다는 것이 피부에 와 닿았을 때이다.
얼마 전 일본에서 들어올 때 출입국 심사를 하는데 나의 여권을 보고 알아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직업이 작가로 되어 있는 것을 보고, 혹시 '신암행어사'를 쓰고 있냐고 물어보면서 재미있게 보고 있다고 친절하게 말을 건네 주었다. 예상치 않은 곳에서 나의 만화가 읽혀지고 있다고 느낄 때 무척이나 기쁘다.

힘든 때도 물론 많은데, 너무 많아서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악재가 계속 겹쳐 있을 때가 가장 힘이 든 것 같다. 집안일도 꼬이고, 원고도 안 써지고, 사회 활동도 힘이 들 때가 그랬던 것 같다.

사실 스토리를 쓰다 보면, 그쪽밖에 신경을 쓰지 못한다. 마감에 들어가면 일반적인 생활은 나사 풀린 사람처럼 생활을 한다.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실생활 속에서의 갈등과 문제가 있을 때 더러 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익숙해졌고, 주위 사람들도 대부분 이해를 해주는 편이다.

Jungle : 스토리 작가라는 직업이 낯설게 느껴진다.
만화 또한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에 못지않은 탄탄한 구성력과 깔끔한 대사처리, 번뜩이는 재치와 상상력이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일본에 비해 그 비중과 역할이 적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른바 신세대 작가들이 등장을 하면서 우리나라도 스토리 작가에 대한 인식이 많이 높아진 편이다. 이현세씨와 함께 작업을 하는 야설록씨를 비롯하여 열혈강호의 스토리를 쓴 정극진씨 등과 같은 작가들이 현재 활발히 활동중이다.

Jungle : 스토리작가가 되고 싶은 분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나는 만화가 스토리작가가 되고 싶다'라고 국한되어 생각하지 말았으면 한다. 만화 스토리를 잘 쓰면, 영화 스토리도 잘 쓸 것이고, 애니메이션 드라마 스토리도 잘 쓸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작품에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어느 직업으로든 전환을 해도 가능한 직업이기 때문이다. 이 직업에 대한 장래성이나 미래성이 불안하다고 고민하지 말고, 과감하게 시작해 보라고 조언하고 싶다.

하지만, 일단은 다리품을 많이 팔아야 할 것이다.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면서 그림을 그려주실 분이 있는지, 그리고 어디에 자신의 만화가 실릴 수 있는지를 찾아봐야 한다. 가만히 앉아서 생각만 하지 말고, 일단 움직이고 스스로 부딪혀 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일 것이다.

Jungle :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무엇인가?
스토리 작가는 경험이 많을수록 다양한 캐릭터들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 경험을 해보며, 다양한 입장이 되어 보려고 노력할 것이다. 예전에는 그게 힘들었지만, 나이 먹고는 넉살이 좀 생기는 것 같다.
지금은 대학에도 다시 다니고 있다. 스무 살 학생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대학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어떤지 알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암행어사’를 잘 끝내고, 새로운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아직은 공개할 수 없지만, 보다 엄청난 이야기가 전개 될 예정이라는 것만 밝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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