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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사랑에 대한 그리움의 수채화

2002-11-26



‘레인’의 감독 이규희씨(이하 이 감독)는 이제 여성감독의 대열에 이 작품을 통해 당당히 나선 젊고 개성있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1997년 ‘퓨처아트 애니메이션 제작 워크샵’을 통해 뒤늦게 애니메이션에 입문한 이 감독은 수료작품 ‘Hellow’와 그 기수 모임으로 결성된 ‘동동’의 공동기획작품 ‘신대방의 잠 못드는 밤’중 ‘사하라의 특수씨앗’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주제의식과 풍자적 스타일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또한 ‘전철거인’과 동동 공동작품 ‘특별한 요리’ 중 ‘우주최고의 요리’를 제작하면서 2D 드로잉 기법 뿐 만 아니라 오브제와 컷-아웃(Cut-Out)을 활용, 다양한 기법적 스타일을 실험하며 그녀 스스로 애니메이션의 매체 특성들을 익혀 보다 완숙한 표현력을 획득해 나갔다고 할 수 있다.
이 감독이 소속되어 활동해온 ‘동동’은 여성감독으로만 이루어진 창작그룹으로 주요 멤버는 김경희, 김은경, 김은재, 박현주, 손정현, 신은정, 안미화, 한미정, 현경 등으로 지속적인 창작활동을 통해 독립 애니메이션 진영에서는 보기 드물게 여성 창작자들의 구심적 역할을 해나가고 있다.
단편애니메이션 ‘레인’은 1996년부터 초기 스토리를 구상하였으나, 1999년 프리 프로덕션을 거쳐 캐릭터와 배경설정 등 구체적으로 이미지화 되었고 2000년 상반기 영화진흥위원회 사전제작지원을 받으며 본격적인 작품제작에 돌입한 후 1년여만에 세상에 빛을 보게 된 작품이다.


한국의 단편 애니메이션들이 대부분 1인 감독이 기획부터 제작, 후반제작까지 북치고 장구치는 제작방식을 고수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라면 ‘레인’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후반작업의 사운드부분의 작업을 제외한 전과정을 이 감독은 혼자서 작업을 진행하였으며 그 흔한 어시스트조차 두지 않고 완성한 작품은 투여한 시간만큼이나 고독하며 힘든 자기와의 싸움이었을 것이다.
단 ‘동동’의 동료들과 나눈 조언과 격려가 그녀의 외로운 작업에 그나마 큰 힘이 되었을 것이라고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한국 단편 애니메이션 작업 특성들은 ‘레인’도 마찬가지지만 매우 사적 이야기로 머물거나 사회적 공감대를 획득하는 방식조차 개인적이게 만드는 요인이 되어왔던 것 같다.
다행히 ‘레인’은 이러한 우려를 잘 비켜가며 대중들에게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해내지 않았나 본다.
그것은 바로 일상적으로 느끼는 도시적 삶의 메마른 정서 또는 인간관계의 소외감이라는 경험적 공감대가 쉽게 형성될 수 있었던 것이고 여기에 약간의 상상력과 초현실적 환타지를 첨가하여 보다 흥미를 유발하게 한다.이는 이 감독의 연출의도에서도 이는 잘 나타나고 있다.



’레인’은 외로운 사람들과 그들의 말하지 못하는 사랑에 따뜻한 비가 내리는 이야기이다.
아주 평범한 어느 날 버스를 타고 가는데 창가에 아름답게 빛나는 햇빛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 이 났다. 반복되는 일상에 익숙해져서 이제는 오히려 편안하게 느껴지는 외로움이 있다. 어느 때가 되어 외로움에 지치면 사람들은 사랑을 생각한다. 사랑도 외로움을 어쩌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랑에 기대어 보는 나 또한 그렇다.
‘레인’은 나와 외로운 그들을 위한 소박한 사랑의 기적의 이야기이다.“


작품 ‘레인’은 컴퓨터를 활용한 2D 애니메이션으로 이미 많은 단편 애니메이션 제작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단지 기존의 셀 애니메이션 기법과는 차별성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전통적 제작기법인 페이퍼 애니메이션 기법이 가지는 화면전체의 떨림을 최소화시켜 안정감 있는 화면을 주고 작업량을 줄이기 위해 동화와 배경을 분리해 채색작업 후 합성하는 작업방식을 선택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다소 밋밋할 수 있는 평면적 이미지에 생기와 느낌을 주기 위해 자연스러운 선 드로잉의 질감과 카메라의 움직임을 세밀하게 연출하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평범하다 못해 소박한 캐릭터가 등장하고 배경 또한 우리와 친숙한 번잡한 거리와 버스안 풍경, 혼자 사는 주인공의 작은 방안 등 대도시의 적막한 콘크리트에 기대서 사는 우리들의 일상의 이미지들로 채워진 이 작품은 분명 사랑을 모든 문제의 해결로 제시하지 않으면서도 외로움이라는 근원적 감성이 얼마나 일상의 풍경 속에 숨겨져 있는지 잘 드러내는 것 같다.이는 여자주인공이 어떤 남자와 성관계를 가지며 오히려 무미건조한 표정을 짓고있는 장면에서도 묻어나고, 자기 감정을 내색하지 않으며 애써 담담해하는 두 주인공의 지나침 속에서도 묻어나며, 혼자있는 외로운 밤 황량한 도시의 빈 공간에 초점 없이 던지는 시선에서도 묻어난다.

소통을 통해 완성해가려는 건강한 삶의 모습이 차단된 하루가 지루하게 펼쳐지며 반복되는 일상을 감독은 잠시나마 해방시키고 싶었던 것일까? 마지막 청년의 눈물은 날아올라 하늘이 이를 화답하듯 비가 되어 그녀의 창가를 촉촉이 적신다. 목말라하는 모두에게....

애니메이션을 시작하게 된 동기가 어떤 것이었는지, 또한 비전공자로써 애니메이션 분야의 기술과 정보를 습득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창작활동에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으며, 이를 극복하고자 선택한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95년 봄 아현동에 있는 ‘신촌미술’이라는 화실에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마침 신촌미술은 ‘퓨쳐아트’와 같은 공간을 쓰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배우던 그림과 애니메이션을 연결하여 생각하게 된 것 같다.
비전공자(당시에는 애니메이션과가 막 생기기 시작할 무렵이라 거의 비전공자였고 단지 그림을 전공했느냐 아니냐가 더 영향을 주었던 시기이다)로서 특별한 어려움은 없었다. 주변에 도움을 주는 선배들도 있었고 나 스스로도 그림에 대한 어려움은 없었으나(뭘 몰라서 그랬던 것 같다),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이나 장비가 없어서 기획만 하고 정작 제작은 할 수 없었던 점이 가장 어려웠다.
또한 대학졸업 후에는 직장에 다니면서 경제활동을 해야만 했기 때문에 한동안은 불안한 시기가 있었는데 97년에 ‘퓨쳐아트 애니메이션 워크샵을 하면서 개인작품도 만들고 같은 고민을 하는 동료들을 만나게 된 것이 크게 숨통을 트여 주었다.

‘레인’은 이전 워크샵 작품 ‘Hellow’와 비슷한 정서적 느낌을 전해주고 있는 것 같다.
‘Hellow’의 주인공 소녀는 현실과 괴리되어 떠도는 영혼과 같은 존재로 다른 이들과 소통을 하지 못하는 고립된 외로운 존재로 묘사되었다면 ‘레인’은 두 남녀가 서로를 사랑하지만 일상적 거리를 좁히지 못한 체 그리움에 눈물을 흘리며 외로워하는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다. 즉 소통과 외로움에 대한 일상을 다룬 작품으로 유사성이 있다고 보는데 본인의 생각은?

‘레인’의 스토리를 ‘Hellow’보다 먼저 구상하였었다.
말씀하신 내용이 정확히 맞다.
‘소통’과 ‘외로움’,‘일상’은 가장 흥미로운 주제이고 앞으로 작품의 장르(코미디든..코미디도 정말 좋아한다)가 뭐가 됐든 계속 이야기해 나갈 것이다.


창작자로써 이 감독은 소통에 대한 주제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남녀라는 이성관계의 사랑 문제를 선택하게 된 이유와 본인이 생활 속에서 느끼는 소통에 대한 생각을 간단히 정리해본다면?
처음에 ‘그림’을 그리려고 했던 이유가 ‘언어의 한계-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의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나는 항상 나의 진심과 나의 생각이 상대에게 왜곡되어 받아들여지는 것에 상처 받는다. 그러나 나 또한 그 상대에게 있어 같은 상처를 주는 한 사람일 뿐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레인’을 통해 객관적이며 모든 진실을 알고 있는 입장에 서보고 싶기도 했다. 그리고 나 스스로가 어떤 위안을 받고자 했으며 관객들 또한 그러하기를 희망했다.
이야기를 ‘남녀의 사랑 이야기’로 푼 것은 사랑하는 남녀사이가 가장 친밀하지만 단절감 또한 가장 크게 느끼는 사이이기 때문이다.(짝사랑이라 하더라도)

스토리의 전개에 있어서 이전작품에서 어느 순간 비약과 과장된 전개법을 통해 결론을 반전시키는 작품들이 있었다고 본다. 예를 들어 ‘사하라의 특수씨앗’, ‘전철거인’같은 경우.... 매우 재미있는 표현이고 경쾌함을 주기도 하였다고 본다. ‘레인’의 경우 이와는 다르게 비약적 표현이 절제되고 다듬어진 느낌이었다. 성숙됨의 과정인지 어떤 의도된 스타일인지 알고싶다.
감사하다..
나름대로 눈물방울씬에서는 반전을 주었다고 생각했다.
제작을 하면서는 나도 모르게 담담하게 가려고 신경 쓰지 않았나 싶다. 이전의 작품들의 가벼움과 느낌을 다르게 가고 싶었다.

제작 기법적 측면에서 작품마다 다양한 접목을 시도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레인’의 경우 드로잉기법을 통해 그 정서적 측면을 최대한 살리려고 했던 것 같다. 표현기법과 작품의 스토리에 대한 상관계를 본인의 작품을 통해 설명한다면?
'전철거인'의 경우는 ‘컷아웃’기법을 이용했다.
고백하는데 사실 이 기법을 이용한 것은 제작하기 가장 쉬울 것 같아서 였다. 물론 작업하면서 절실히 깨달은 바가 많다.^^;; ‘전철거인’은 일상적이지만 판타지가 있는 내용이어서 만화적인 캐릭터나 상황의 느낌을 살리는데 적절하지 않았나 싶다. 사실체의 페이퍼기법으로 작업했을 경우 전철거인의 등장이 생뚱맞고 어색했을 것이다.
‘우주 최고의 요리’-‘특별한 요리’중 4번 째 에피소드-는 단순한 내용에 어울리는 캐릭터와 채색을 한 단순 2D컴퓨터 애니메이션이다. 그렇지만 최첨단 요리기구들은 외계의 기구인만큼 이질적인 느낌을 주려고 은박지를 구겨서 그 위에 그림을 그려 합성했다. 나름대로 만족스러웠다. (그림의 느낌이 안나는 소재가 그림과 만나면 상당히 재미있는 느낌을 주며 잘 어울리기도 한다는 것을 알았다)
‘레인’ 기본적으로는 페이퍼 기법이다. 작화지에 그린 동화와 배경들을 스캔 받아 채색했다. 전통적인 페이퍼 애니메이션의 경우 배경도 동화와 함께 그려주어 그림전체가 살짝살짝 흔들리는 느낌이 나는데 개인적으로 그런 느낌을 싫어하기도 하지만 이 이야기의 경우 인물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배경을 한 장을 그려 동화와 합성하였다. 하지만 인물보다 전체 이야기가 더 큰 맥락을 가진 스토리의 경우는 전통적인 기법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독립애니메이션에 대한 본인의 생각 또는 창작활동에 대한 자신만의 독특한 생각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작품을 만드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일방적인 수다와 같은 느낌이다. 실컷 지껄일 때는 좋지만 주워담을 수 없고 일방적으로 들어야하는 관객들을 생각해서 신중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또하나 ‘스텝은 반드시 돈주고 쓴다.’는 것.
이것이 독특한 생각인지는 모르겠다. 본인의 창작활동과 예술활동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위해 친분이나 의리로 스텝들을 고생시키는 독립영화 감독들을 몇 보았다. 어떤 사람들은 그러한 고생들을 당연히 보고 때로는 낭만으로 혹은 독립영화의 한 특징으로 보기도 하는 것 같은데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나는 그런 것이 싫다. 같이 일하는 스텝이 나의 작품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 중요하듯 감독(제작자)은 당연히 노력에 따르는 보수를 주어야 한다.
이런 생각은 사실 나를 괴롭히기도 한다. ‘돈 없으면 작품도 만들지 말란 말이냐?’하며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난 사실 돈이 없으므로 이런 질문을 받으면 괴롭다.

자신의 창작에 대한 실천으로써 작품과 작품을 본 관객들의 반응을 소통으로 본다면 이에 대한 소통의 문제점과 긍정적인 점을 느꼈다면 무엇입니까?
관객들의 반응을 솔직히 잘 모른다. 워낙 상영횟수나 기회도 많지 않았고. 일단 본 사람들의 다수는 그림체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로 거부감을 갖기도 하고(반대의 경우도 있다), 느낌이 어떤지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럴 때는 소통이 안되었구나 하고 느낀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소수의 사람들이 내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감정들을 느껴주고 공감하고, 자신의 이야기와 친구를 만들 때도 있었다.
결국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이야기라 공감을 쉽게 얻으리라 했던 나의 생각이 약간 빗나간 것인데 나의 ‘보편적’이라는 느낌이 다른 사람들과는 좀 다른가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일단 ‘나의 하고싶은 이야기를 했다’는 만족이 있어 괜찮다.

향후 작품활동에 대한 계획은?
내년에 단편영화를 찍고 싶다. 애니메이션이 중간 중간에 들어가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려고 준비중이다. 그리고 ‘서울의 달(가제)’이라는 단편 애니메이션도 구상 중인데 사운드의 비중을 많이 두려고 한다.




이 감독을 이전부터 알고 지냈고 줄곧 작품을 지켜 봐온 나로서는 그녀의 이번 작품이 이전작품보다 세련되고 성숙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행히 자신의 목소리와 스타일을 잃지 않으면서도 정제된 듯하여 여간 기쁘지 않다. 한국 독립 애니메이션의 또 다른 시선으로 보다 훌륭한 작업을 기대하며 작품을 통해서나마 소통의 어울림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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