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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 | 리뷰

지극히 개인적이고 약간 대중적인 ‘책 공동체’

2010-04-15


언제인가부터 홍대 거리는 익숙한 카페와 생소한 카페와 어쩐지 어색한 카페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볕 좋은 날 한가롭게 산책하는 일은 사치라 느껴질 정도가 되어 버렸는데, 상권이 커지고 그 안에 깃든 이들이 넉넉한 주머니를 갖는다면 그래도 괜찮으련만. 꼭 그런 것도 아니어서 번잡스러워지는 골목길들이 마냥 보기 좋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직 청정구역은 남아 있고, 한적한 골목 어디쯤에 보라색 간판을 내건 책방이 하나 있다. 이 곳에서라면 한가로운 산책도 기꺼울 듯 해 쌈지 깊숙이 감춰두고 싶지만, 이 공간에서 꾸는 꿈은 결코 감춰두어서는 안 되는 것이기에 두 눈 질끈 감고 꺼내 본다.

에디터 | 정윤희(yhjung@jungle.co.kr)

보라색 간판에 흰색 삼각형 하나로 설명을 대신하는 이곳은 미디어버스가 마련한 서점 ‘북소사이어티(www.mediabus.org/tbs/)’다. 미디어버스가 출판계에 뛰어들기 시작한 2007년 2월부터 싹을 틔우기 시작한 공간이라 해도 좋을 북소사이어티는 진(zine)을 포함해 독립출판물을 만날 수 있는 서점이다. 북소사이어티의 시작은 미디어버스라는 이름으로 진을 만들었던 그 해 여름, 류한길 작가와 함께 열었던 ‘스몰 파켓 진 페어(Small Packet: Zine Fair Vol. 1)’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디어버스와 류한길 작가가 제작한 책과 진들을 전시한 뒤 따라 붙게 된 고민들을 해결하기 위해 세미나와 워크숍들을 진행하게 되고, 이런 크고 작은 움직임들이 쌓여 북소사이어티라는 공간이 만들어졌다는 것이 구정연 씨의 설명이다.

하지만 북소사이어티가 태어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생산된 책이 대중과 만날 수 있는 공간, 즉 애써 만든 책이 돌고 돌 수 있는 유통 공간의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디어버스는 2009년 10월 진행했던 행사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와 지난 3월 북소사이어티의 문을 열었다. 지난해 진행됐던 행사 ‘더 북소사이어티’는 출판에 대한 여러 가지 이슈를 다루는 강연 형식의 ‘퍼블리싱 이슈(Publishing Issues)’, 국내외 예술 기관 및 출판사와 작가 등이 참여하여 자신의 책을 판매하고 소개하는 ‘페어(Fair)’, 하루 동안 스스로 책을 기획하고 제작까지 하는 ‘워크숍’을 비롯해 ‘퍼블리셔 토크(Publisher’s Talk)’와 공연, 스크리닝까지 다양한 행사들을 진행했었다. 이 세 가지 행사들은 서점으로서의 ‘북소사이어티’ 안에서도 계속 되풀이 되고 있다. 이 중에서도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는 프로그램은 ‘퍼블리싱 이슈’와 ‘토크’다. ‘토크’의 경우 새롭게 출간된 것 가운데 주목할만한 출판물이 있을 경우 결리는 ‘북 런치 토크(Book Launch Talk)’와 ‘디자이너 토크(Designer Talk)’로 나뉘고, 4월만 해도 13일에는 카스코(Casco)의 최빛나 디렉터와 함께하는 ‘퍼블리싱 이슈’가, 14일에는 비디오‧ 그래픽 디자이너 Min Oh(오경민)의 ‘북 런치 토크(Book Launch Talk)’가 기다리고 있다. 퍼블리싱 이슈에서는 기관(institution) 출판의 가능성과 디자이너와의 협업 방식 등 카스코 출판에 대한 이야기가 다뤄질 예정이며, 북 런치 토크에서는 ‘A Dialog’라는 작가의 개인전과 맞물려 출간된 작품집 ‘Snow Banana Bird Ballon Girl’를 중심에 두고 작가와의 대화가 이어질 예정이다. 이렇듯 쉽게 접할 수는 없어도 속이 꽉찬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이유에 대해 구정연 씨는 “기본적으로 저희도 알고 싶은 욕구가 있어요. 재미있는 건 책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모임이기 때문에 장르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이 소통할 수 있다는 거죠.”라고 설명한다.

북소사이어티에 가면 독립출판물을 만날 수 있고, 또 마음이 맞으면 한 두 권 쯤 구입할 수도 있지만 이곳을 소규모출판물 취급점 정도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 미디어버스 혹은 북소사이어티의 이름을 건 출판물도 만들어내는 것은 물론, 일반 상업출판물 역시 취급하고 있을뿐더러 북소사이어티는 독립출판물을 D.I.Y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개념을 대입하여 ‘스스로, 내 마음대로 만들어 본 책’이 ‘독립’적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편견을 대입해 바라보던 ‘조금 유별난 구석이 있는 사람들이 뭔가 예술적으로 만든(혹은 이해할 수 없는)’ 독립출판물에 비하면 흡수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질 수 있음은 분명하다. 장르 구분 없이 ‘너도 만들고 나도 만드는 책’이라는 공통점 하나면 그 누구라도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북소사이어티의 웅숭깊은 생각은 어쩌면 ‘나도 만들 수 있는 책’으로 진화하며 독립출판에 진짜 독립을 가져다 줄 수 있지 않을까. “우리만의 콘텐츠로 매체를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2년 전부터 D.I.Y라는 흐름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다가 진(zine)이라는 형식을 발견하게 됐어요. 당시에는 독립출판이라고 하지 않고 그냥 진이라고 불렀는데, 최근에 들어서야 북소사이어티의 활동을 아우르는 총체적인 단어가 독립출판으로 묶이게 된 것 같아요. 독립출판은 비판적으로 바라보기보다 작은 목소리를 내는, 좀 더 개인적이고 대안적인 출판이라고 생각해요.” 구정연 씨의 조용한 음성이 덧붙여지니 주체할 수 없는 끼를 터뜨리는 것도 좋지만 꾸준한 목소리 내기야 말로 독립출판이라는 흐름에 힘이 되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만들 때는 커뮤니티 하나 만들기가 힘들었는데, 서점을 열고나니 이곳이 그 역할을 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서점이 중요한 공간이라는 생각도 하게 됐죠. 저희가 디자이너 토크나 퍼블리싱 이슈 같은 사건을 계속 만들려고 하기 때문에 서로 통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말하며 구정연 씨가 활짝 웃었다. 자, 또 하나의 소통 공간이 생겼다. 상수동 한적한 골목길에 자리한 이 아담한 서점이 어떤 모습으로 자리잡게 될지, 선택의 기회는 당신에게도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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