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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길 끝에 가면, 그녀와 집이 있다. 로담건축의 김영옥

2004-09-14


아침부터 내리던 비가 개인 후.
싱그러운 풀냄새가 향기로운 좁다란 골목길에 들어섰다.
봉은사 옆 골목 끝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로담 건축.
여기가 강남 한복판인가 싶다.


인터뷰 | 호재희 정글에디터 (lake-jin@hanmail.net)



로담 건축.
소장 김영옥 디자이너의 멘토(mentor)로 인생의 바른 길을 알려주신 분께서 지어주신 이름이란다.
길로(路). 연못담(潭).
이름으로부터 얻어지는 이미지 그대로를 간직하는 회사이고 싶다.
문득,
로담 건축을 찾아 들어온 길이 떠오른다.
신선한 풀내음에 좁은 골목길 대신 산속 오솔길이, 그리고 이슬이 내린 푸른 잎사귀로 드리워진 오솔길 끝에는 새벽에 일어난 토끼가 눈 비비며 물을 마실듯한 동화 속 작은 연못이 있다.

건축 설계사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김영옥은 그녀가 10년이 넘게 인생의 그림을 그린 플러스 건축 입사 2년차에 뜻하지 않게 인테리어 디자인을 하게 되었고, 그것이 그녀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디자이너 김영옥에게 디자인이란 순수한 창작이 아니다.
욕심을 내서도 아니 되며, 느낌만으로 그리는 것도 아니다.
그녀에게 있어 ‘디자인’이란 디자인의 대상이 되는 공간과 그 공간을 의뢰한 의뢰인, 공간을 사용하게 될 사용자, 그리고 시간, 이러한 것들이 모두 조화를 이루는, 철저한 계산 끝에 진행되는 작업이다.
그 끝에 탄생한 공간은 시간과 함께 계속해서 발전해야 하며, 사람들에게 보다 나은 경험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무슨 이야기든 인간과 공간을 얘기한다.
인테리어 디자인이 제품이나 가구에 비해 보다 더 인간을 생각해야만 하는 것은 공간이 다른 대상에 비해 인간과 더 많은 관계를 가지고 있고 더 많은 경험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 공간, 시간을 생각하는 그녀에게 특별한 디자인 패턴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동시대의 트렌드를 쫓는 것도 아니다.
유행이나 트렌드는 영업적 측면에서 쫓아가야 한다면 그럴 수 밖에 없겠지만, 굳이 디자인의 지침이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매순간 순간 프로젝트에 전념하기 때문에 훗날 디자이너 김영옥의 작품들 속에서 사람들이 그녀를 발견해주기를. 특별한 패턴은 없으나 김영옥의 것임을 알아줬으면 한다.

디자이너 김영옥은 해체주의나 키치스타일(kitsch)과 같이 극단적인 자유로움을 보이는 것을 멀리한다.
그녀의 디자인에 기본이 되는 것이 있다면, 뿌리가 있는 디자인. 그 속에서 자유로움을 찾는 것이다.
묵직한 무엇이 느껴지는 발랄함이랄까?
디자이너로써의 삶에 시간이 더해질수록 그녀는 근본이 좋아진다. 알려 하면 할수록 그 끝을 알 수 없는 것이 정말 매력적이다. 그래서인지 잉고 마우어의 작품들은 참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자유로운 생각으로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디자인을 해내는 그를 보면 깊은 뿌리를 느낄 수가 있다.
디자이너 김영옥 역시 자유로운 사고의 소유자처럼 보였다. 넓은 사고의 폭 만큼 관심분야도 다양하다.
대상이 무엇이든 그것을 만드는 사람에 더한 관심을 갖는 그녀는 알모로 바느라나 팀버튼과 같은 감각적인 사람들의 영화를 좋아한다. 그들 역시 영화 속에서 자신들만의 자유로운 세상을 그리되 그 뿌리가 보인다. 스페인 안무가이자 무용가인 나초 두아토 또한 그러하다. 그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고전과 현대의 조화가 환상적이다. 춤 뿐만 아니라 그 무대와 빛의 조화가 감히 예술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이러한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경험이 바로 디자인에 녹아 나오지는 않겠지만, 이와 같은 감각적 자극이 어떤 의미로든 디자이너 김영옥의 공간에 스며있으리라.


과거 로담 건축의 프로젝트는 대부분 상업공간이었다.
디자이너 김영옥에게 상업공간은 늘 새로운 공간이고 꿈을 만드는 공간이다. 생각이 자주 다양하게 바뀌는 그녀에게 상업공간은 그래서 매력적이다.
착한 일을 하라는 하늘의 뜻인가?
작년 러브하우스를 시작으로 어린이집, 노인 요양시설과 같은 복지 시설에 대한 문의가 많아졌다.
상업공간과 복지시설. 참으로 다른 성격의 프로젝트가 아닐 수 없다.
짧은 호흡으로 빨리 빨리 진행시켜야 하는 상업공간과 달리 복지 시설들은 참으로 오랜 호흡을 거쳐 탄생한다. 그래서 더욱 사람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담을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떠한 공간이든지 좋은 의뢰인을 만났을 때 가장 훌륭한 작품이 나온다.
인테리어 디자인의 성공은 의뢰인의 만족도에 따라 좌우되기 때문에 같은 성향을 갖은 의뢰인이나 의뢰인이 디자이너에게 믿음을 보여줄 때 좋은 공간이 나올 수 있다.
바꿔 말하면, 의뢰인과의 의견 조화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로써 꼭 갖춰야 할 자세라는 생각을 한다.

디자이너 김영옥은 디자인에 대한 상상력은 경험으로부터 나온다고 믿는다.
감성과 감각으로 뭉쳐진 것이 디자이너의 자질이라면 자극과 경험이 그 자질을 발전시킨다.
이 나라에서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살아간다는 것이 그리 녹록한 일은 아니다.
음악계 신동, 바둑계 신동…여기저기서 신동들이 출현하지만, 단 한순간도 디자인계의 신동의 출현을 경험해 본적은 없다. 디자인이란 그런 것이다. 끈기를 가지고 꾸준히 해내는 자에게 기회가 돌아가는 것이다.
대학을 졸업할 때 즈음, 어느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디자이너로 살아가는 것은, 리어카를 끌고 언덕길을 오르는 것과 같다.’
그와 같이 디자이너에게 완전한 휴식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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