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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한국 청소년에서 중국 청소년으로, 아줌마에서 군인 초상으로

2011-09-22


베이징에서 차로 1시간을 달리면 국립영화촬영소가 나온다. 스타를 꿈꾸며 상경한 중국 청소년과 연기자 지망생들이 꽃단장을 하고 매일 이곳 정문을 서성거린다. 영화감독 눈에 띄어 단역이라도 얻는 꿈과 기대를 저마다 품고 있다. 이곳에 한 명의 한국 사진가가 있다. 계원디자인예술대학에서 사진을 가르치다 올해 안식년을 맞아 베이징 중앙미술학원에 방문교수로 가있는 오형근(49)이다.

기사제공 | <월간사진> 2011년 4월호



“한국 청소년은 오랜 연예문화의 영향으로 화장이나 치장이 거의 코디네이터나 전문가 수준이지만 중국 청소년은 아무래도 어설퍼 보이고 더 극단적이에요.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을 극단적으로 따라 하거나 화장을 한 청소년과 안한 청소년으로 분명히 갈려 중간이 없어요.”

베이징의 젊은이 거리인 왕푸징과 산리툰에서도 이러한 청소년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오형근은 연기자 지망생과 짙게 화장을 한 한국 청소년을 대상으로 했던 ‘소녀연기’와 ‘화장소녀’ 등 초상사진의 작업 무대를 중국으로 넓히고 있다.

“2008년 ‘화장소녀’ 즈음부터 아시아로 넓혀도 재밌겠다고 생각했어요. 제 스타일이 오래 지켜본 뒤 캐스팅하고 스튜디오 촬영까지 시간이 걸려 실제 촬영까지는 더 걸리겠지만 여유롭게 생각하면서 다른 작업도 구상 중이에요. 지금껏 사회적인 메시지가 담긴 초상사진이었다면 중국의 기예를 가르치는 학교에서 조형적인 초상사진도 찍어볼 생각이에요.”


스타 꿈꾸는 중국 청소년과 기예학교 학생들

오형근은 계원예대에서 교편을 잡은 지 10년째다. 흔히 ‘작가들의 무덤’이라는 학교에서 그는 10년 동안 사진작업을 쉬어본 적이 없고, 지금도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중이다. 안식년을 맞아 처음에는 유럽을 생각했지만 결국은 말도 환경도 낯선 중국을 택했다. 스스로를 낯선 곳에 둠으로써 몸에 밴 매너리즘과 관성을 걷어내기 위해서다. 중국을 대표하는 중앙미술학원에서 세계적인 작가로 알려진 미아오샤오춘과 야오루 교수의 배려로 당분간은 특강 위주로 학교 강의를 하고, 대부분의 시간은 작업에만 몰두하고 있다. 그러던 차에 한국에서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올해 10년째를 맞는 동강사진상 수상자로 그가 선정된 것이다. 오형근은 “낯선 외국에서 듣는 수상소식이라 더 반갑고 힘이 되는 것 같다”며 “중국에 온 첫 마음을 잃지 않고 좋은 작업으로 보답하겠다”며 수상소감을 전했다. 또 이번 수상으로 오는 7월22일부터 강원도 영월에서 열릴 10회 동강국제사진제의 동강사진상 수상자 전시에서 그의 전 작업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특히 올해는 동강사진박물관 옆에 새로 별관이 지어져 새 전시공간의 첫 전시로 그의 작품이 걸릴 예정이다. 이밖에 3월에 베이징 798예술특구의 파리베이징갤러리의 단체전에 참여하고, 5월4일부터는 서울 트렁크갤러리의 개인전이 예정돼 있다. 내년에도 굵직한 개인전 2개를 앞두고 있다. 하나는 지금 촬영 중인 ‘군인의 초상’을 내년 5월경 아트선재센터에서 전시하고, 하반기에는 한국이 주빈국인 2012년 파리포토의 개최기간에 맞춰 파리의 미술관 전시가 기다리고 있다.


어디에나 존재하는 중간인, 감정이 개입된 초상사진

최근 오형근의 작업은 유럽에서 세미나와 전시 제의가 잇따르고, 한국 갤러리와 미술관이 새로 주목하고 있다. 스스로 말하길 ‘내 사진의 사회적인 제안이 한번도 깊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괴로운 시절’이 있었던 그의 초상사진은 ‘사진’보다는 ‘대상’에 더 초점이 맞춰졌다. ‘아줌마 사진’, ‘소녀 사진’에서 ‘사진’은 빠지고 ‘아줌마’, ‘소녀’라는 대상만 주목받았던 것. 그래서 여성 비하나 변태라는 소리까지 들렸고, 신문지면을 도발적으로 채우거나 주부프로그램에서 섭외까지 해올 정도였다. “인기 없는 인물사진이 그만큼 반응을 얻었으면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야 할까요? 모델이 되어준 분들에게 상당히 미안했어요.”

솜털과 모공까지 보이게 크게 확대한 그의 사진이 불편한 이유는 대상이 모두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두 불안하고 낯선 모습들이다.

“제 관심은 ‘중간인’들이에요. 이쪽도 저쪽도 속하지 못하는. 가정인도 사회인도 아닌 아줌마, 여인도 아이도 아닌 소녀, 정통 연예인도 일반인도 아닌 이태원의 연예인 등. 이들에게서 보이는 불안함은 이런 정체성에서 오는 것 같아요. 저는 여기에 낯설게 보이도록 크게 확대하거나 플래시로 고립된 느낌을 줍니다. 보는 각도에 따라 이들을 부정적으로 볼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저는 제시하는 사람일뿐이에요. 우리사회가 인지는 못하지만 양 극단이 아닌 중간에서 갈등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사진으로 제시합니다.” 아줌마 작업의 부제는 ‘한국에서 아줌마로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였고, 어른을 흉내낸 화장소녀의 부제는 ‘화장불안’이었다. 진주목걸이와 눈썹 문신 등 아줌마의 전형적인 모습은 남편이나 가정에 의해 정체성이 규정된 우리시대 아줌마의 슬픈 자화상이며, 청소년의 짙은 화장은 이들의 불안을 대변한다. 지난 1999년 아줌마 작업이 선보인 뒤 12년이 흘렀다. 그사이 우리사회는 개별적인 호기심이나 소외의 대상이 아닌 특정 유형으로 이들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줄곧 특정한 인물 유형을 작업해온 오형근의 작업이 공감대를 넓히는 지점이다. 또한 그의 인물사진은 특별한 위치를 점한다. 특정 인물군의 유형을 찍은 인물사진이지만 그렇다고 그의 사진이 유형학적인 사진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도감 식으로 차갑게 나열된 사진이 아니라 감성이 섞이고 어떤 경우에는 카메라 앞에서 대상에게 연기도 부탁한다. 감성이 개입된 오형근의 인물사진은 사진으로 인물의 내면을 전하는 전통적인 초상 작업에서 벗어나 인물의 외양을 통해 시대의 욕망과 불안을 제시하는 새로운 개념의 사진이다.


10년만의 남성 촬영, 집단 속 군인의 초상 촬영

오형근은 지난해부터 ‘군인의 초상’을 작업 중이다. 십년 만에 남성을 촬영하는 것이라고 한다. “사진을 찍을 때는 사진가와 대상 사이에 항상 성적인 긴장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면에서 군인은 아니죠.(웃음) 그렇다고 남성이란 게 의식되지는 않아요. 군인 역시 중간인이에요. 요즘 군인은 사회와 완전히 격리되지 않은 사회와 군대의 중간에 있어요. / 섭외요? 당연히 쉽지 않았죠. 인상 심리학적 사진이라며 다소 학문적으로 접근하고 있어요. / 힘든 점이요? 재밌을 때가 더 많아요. 군대는 복무할 때는 괴롭지만 놀러가니 좋은 곳이더군요.(웃음) 공기 좋지, 조용하지, 깨끗하지, 요즘은 배식도 아주 잘 나와요.(웃음)”

군인의 초상은 오형근이 인물의 유형에서 ‘우리’라는 우리사회의 집단성으로 시선을 옮겨 처음 시도하는 작업이다. 원래는 집단성이 가장 농후한 운동선수와 군인 중에서 먼저 운동선수를 섭외하기 위해 태릉선수촌을 찾았지만 아시안게임을 앞둔 때라 촬영이 힘들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 다음 군대 문을 두드렸지만 예상대로 거절이었다. 그러던 차에 마침 지난해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아 국방부와 대림미술관이 기획한 <경계에서> 전에 참가하게 되면서 군인의 초상을 찍을 수 있었다. 전시가 끝난 뒤에도 제안서를 제출해 계속 촬영을 허락받았다. 이 작업은 틈틈이 한국을 오가며 계속 진행되어 내년 5월 아트선재센터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오형근 하면 이태원을 많이 떠올린다. 그곳서 태어났고 자라 유학에서 돌아와 했던 첫 작업도 이태원 시리즈였다. 그리고 그의 작업실도 그곳에 있다. 어려서 이태원 키드였고 이태원의 모든 것을 보고 자란 그에게 한국도 외국도 아닌 이태원의 중간적인 성격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자연스레 그의 사진의 출발도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경계의 인물에 대한 관심이었고, 중요한 것은 이들의 초상을 똑바로 정면에서 응시하도록 한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모델을 미화하거나 초상의 전통을 의식하지 않는 오형근의 솔직하고 정면 돌파하려는 의지가 담겼다.


오형근(1963~)은 1989년 거리의 사회적인 풍경을 담아내는 다큐멘터리 작가로 시작해 97년부터 12년 동안 아줌마와 여고생 혹은 소녀들처럼 한국사회의 특정 인물군의 유형을 다루는 초상사진 형태의 연출작업을 해오고 있다. 1999년 <아줌마> (선재아트센터)전은 한국에서 아줌마 신드롬을 일으킨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이후 <소녀연기 少女演技> (일민미술관)와 (국제갤러리) 등을 통해 연예문화의 영향으로 흔들리는 한국 소녀들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작업을 계속해오고 있다.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의 예술대학원에서 영화 연출과 순수 예술사진을 동시 전공했으며, 2005년 52회 베니스비엔날레의 한국관 전시작가로 참여하기도 했다. 개인작업 외에도 ‘친절한 금자씨’, ‘스캔들’, ‘장화홍련’등 40여편의 영화포스터를 촬영했고, ‘아줌마’(1999), ‘少女演技’(2004), ‘Cosmetic Girls’(2009), ‘Unfinished Portrait’(2009) 등 4권의 사진집을 출판했다. 계원조형예술대학의 사진 전공 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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