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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청년, 사진책으로 데뷔하다

2012-05-23


최근에 가장 흥미 있게 본 영화라면 단연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다. 디즈니가 만든 영화 중에서 가장 애들 같지 않고, 진지하고, 역사에 대한 흥미로운 탐구와 독특한 캐릭터가 나오는 영화가 아닐까 한다. 이 영화의 백미는 조니 뎁이 연기하는 잭 스페로우라는 해적 선장이다. 롤링스톤즈의 키스 리처드를 모델로 창조한 캐릭터라고 하는데, 대항해 시대의 해적은 오늘날 록스타와 같았다는 조니 뎁의 구라를 100% 믿을 수는 없지만 그가 연기하는 잭 스페로우는 정말 매력적인 인간이다. 비겁과 용기를 넘나들며, 선악의 구분이 모호하고, 멍청한 듯 비범하며, 만용과 실용을 넘나든다. 이 시리즈의 3편인 ‘세상의 끝에서’는 2시간 45분이라는 런닝타임이 길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박진감 있게 진행되어 ‘드디어 이 시리즈도 막을 내리는구나’ 아쉬워했지만, 웬걸 플로리다로 ‘청춘의 샘’을 찾아가는 엔딩신에서 ‘이런! 내년에도 또 찾아오겠구나’하는 느낌를 ‘팍!’ 주고 만다.

글│이상엽 이미지프레스 대표
기사제공│월간사진

사실 이렇게 주절주절 영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 영화를 본 후 손에 잡았던 한권의 책 때문이다. 세계적인 수메르문자 해독가인 고고학자 제카리아 시친의 <틸문, 그리고 하늘에 이르는 계단> 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인류 고대문명에 대한 독특한 견해를 담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을 몇 장 넘기자마자 영화에서 본 플로리다와 ‘청춘의 샘’에 대해 나오는 것이 아닌가. 오호라! 이 이야기에는 어떤 감춰진 비밀이 있구나.

사실 이렇게 주절주절 영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 영화를 본 후 손에 잡았던 한권의 책 때문이다. 세계적인 수메르문자 해독가인 고고학자 제카리아 시친의 <틸문, 그리고 하늘에 이르는 계단> 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인류 고대문명에 대한 독특한 견해를 담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을 몇 장 넘기자마자 영화에서 본 플로리다와 ‘청춘의 샘’에 대해 나오는 것이 아닌가. 오호라! 이 이야기에는 어떤 감춰진 비밀이 있구나.

오래전부터 바닷길을 따라 중국에서 인도까지 취재한 경험이 있는 필자로서는 대항해 시대를 이끈 강력한 동인을 알고 있다. 첫째는 유럽인의 고기 식탐이 부른 ‘향신료’이고 둘째는 동쪽 멀리 어딘가에 있는 기독교왕국의 지배자 ‘프레스터 요한’이었다. 이들이 대항해를 통해 얻고자 했던 향신료는 교역을 통해 막대한 이윤을 남길 수 있었고, 프레스터 요한은 십자군과 동맹을 맺어 이슬람세력을 견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를 더 보탠다면, 아니 가장 중요한 동인은 바로 구약성서 이후 서구사회에 비밀처럼 떠돌던 영원히 살 수 있는 신비의 샘물인 ‘청춘의 샘’을 찾고자하는 욕망이었다. 콜럼버스의 항해는 표면적으로 인도로 가는 다른 길을 찾는 것이었지만, 사실 그의 스폰서였던 스페인의 여왕 이사벨은 은밀하게 ‘노인을 다시 젊게 만드는 샘’을 찾을 것을 명했다. 콜럼버스는 서인도제도에 도착하자마자 그 샘을 찾기 위해 현지인을 심문하고 심지어 고문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청춘의 샘’을 찾아 나선 탐험가 중 가장 유명한 이가 폰세 데 레온이라는 직업군인이다. 그는 샘을 찾아 지금의 중미지역을 떠돌다 스페인 사람들이 ‘파스카 데 폴로레스’라 부르는 부활절에 기다란 해안선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 해안선이 섬의 일부라 생각했고, 그곳을 플로리다라 명했다. 그곳에서 폰세 데 레온은 현지인들로부터 노인도 젊어지는 ‘청춘의 샘’이 있다는 증언을 확보하고 백방으로 샘을 찾아 헤매다가 원주민의 화살에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그 후에도 플로리다 어딘가에 그 샘이 있을 것이라는 강력한 믿음이 바다를 떠도는 선원들 사이에 전해져 왔다고 한다.

잭 스페로우를 닮은 작가 구본창

참으로 흥미진진한 탐험의 역사이다. 그리고 이런 정보는 책이 아니고는 접할 수 없는 것이기에 새삼스레 책의 진가를 느낀다. 책의 정보는 깊고 풍부하며 감상과 분석이 가능하다. 정보와 정보를 연결할 수 있는 유추도 독서를 통해 가능하다. 키보드에 몇 자만 두드려 찾아내는 정보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사진 역시 전시장의 압축미와 다른, 책으로 만들었을 때 갖는 풍부한 이미지 정보와 사진과 사진 사이의 관계성,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구체성을 느낄 수 있어 책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렇다면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서, 과연 누가 사진판의 잭 스페로우일까? 혹은 그를 연기한 조니 뎁처럼 다재다능한 인물은 누구일까? 한참 생각할 것도 없이 나는 구본창을 떠올렸다.

사실 구본창 만큼 다양하게 평가되는 사진가도 드물다. 그만큼 그는 다재다능한 사진가이며, 실용적이고, 비권위적인 사진가이다. 많은 사람들은 사진가 구본창을 전시장을 통한 예술사진가로 떠올린다. 또는 매우 상업적인 영화포스터나 연예인들의 포트레이트를 찍는 사진가로 생각한다. 하지만 사진가 구본창과 책을 연결해 떠올리는 이는 별로 없다. 필자의 경우 10권이 넘는 자신의 이름이 달린 저서를 가진 사진가로 구본창을 기억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사진가 구본창의 또 다른 면, 즉 책에 미친 작가 구본창을 이야기해볼까 한다.

청년, 데뷔작으로 뜨다!

1985년 5월 동경의 힐튼호텔. 33살의 청년 구본창은 처음으로 이 으리으리한 호텔에서 3일간 묵게 됐다. 게다가 전세계에서 몰려든 최고의 사진가 100명과 함께 말이다. 그는 이들과 같이 앞으로 일본의 ‘하루’를 찍는다. 이 프로젝트의 이름은 으로 사진가 릭 스몰란이 진행하는 세계적인 사진 행사였다. 청년은 이 호텔 로비에서 스티브 맥커리, 구보타 히로시, 압바스, 제임스 낙웨이, 구와바라 시세이와 같은 세계적인 사진가들과 인사를 나눴다. 밤에는 호소에 에이코가 진행하는 세미나가 진행됐다. 영광스럽게도 이 노인은 청년 구본창에게 자신의 사진을 소개하는 강연 자리까지 마련해 줬다. 청년은 마치 꿈을 꾸는 듯 했다.

구본창은 스쿠바 지방을 찍기로 했다. 그해 스쿠바에서는 과학박람회가 열렸고, 그 행사장은 비현실적인 건축물로 가득 차 있었다. 하루 동안 이곳을 찍고 동경의 힐튼으로 돌아가 필름을 전달했다. 그리고 흥겨운 송별파티를 즐겼다. 유학을 막 마치고 돌아와 일거리를 찾아 헤매던 청년의 불안한 미래는 이 날 만큼은 밝고 용기에 가득 차 있었다. 얼마 후
이 미국에서 발간됐다. 구본창의 사진은 4면에 걸쳐 소개됐다. 함께 참여한 대가들에게도 1~2면 만을 할애한 것에 비하면 파격적인 편집이었다. 이렇게 사진가 구본창의 데뷔는 세계적인 사진가들과 함께 ‘책’으로 이루어졌다.

박하선의 <천장> 을 소개한 지난 호에서 잠깐 얘기한 것처럼 필자가 처음 산 사진책이
이었고, 이 책을 통해 처음 구본창이라는 이름을 알았다. 도대체 이 청년은 무슨 재주로 그렇게 엄청난 행사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일까? 이제는 둥근 안경테에 인상 좋은 눈매를 가진 중년의 사진가가 된 구본창은 필자의 궁금증에 대해 빙긋 웃으며 답한다. “다~, 인연입니다.”

인연이 만든 또 다른 인연

“독일 함부르크에서 유학하던 시절 가장 좋아한 사진가는 안드레 겔프케(Andre Gelpke)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뒤셀도르프에 살았었죠. 내년이면 졸업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참 불안한 때였습니다. 학교 선생들은 ‘네 사진 좋다’는데 스스로 확신은 없고 해서 무작정 전화를 걸었습니다. 내 사진 좀 봐달라고 말입니다. 사실 내가 용기가 없어 보이지만 해야 겠다는 마음이 들면 꼭 하고 맙니다.(웃음)”

그래서 그는 4시간 거리의 뒤셀도르프 겔프케의 집을 방문해 사진을 보여줬다. 사진을 본 겔프케는 뜻밖에 “잘 찍었지만, 너의 사진에는 정체성이 없다. 유럽학생이 찍은 것인지 한국학생이 찍은 것인지 알 수 없다”는 아픈 소리를 했다. 하지만 멀리서 온 학생이 가여웠는지 혹은 사진이 맘에 들었는지, 그는 하룻밤을 자신의 집에서 자라고 했다.

“암실에서 잤는데, 참 황홀한 밤이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진가의 작품 박스가 가득했으니까요.”

구본창은 이렇게 겔프케와 인연을 쌓았고 그가 유럽 여러 곳에서 세미나를 할 때 동행하기도 했다. 한번은 그라츠에서 열린 세미나에 그와 함께 갔을 때 그곳에는 베르나르 포콩과 헬무트 뉴튼 같은 대가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과 함께 술을 한잔 할 때 구본창은 날아갈 듯 했다. 하지만 돈 없는 청년 구본창은 황홀한 파티가 끝나고 나면 타고 온 차의 짐칸에 침낭을 깔고 잠을 자야만 했다. 졸업반이던 84년 겔프케는 구본창에게 그와 같은 동네인 함부르크에 사는 밀란 호라첵(Milan Horacek)을 소개했다. 그는 유럽 내에서 꽤 알려진 유명한 사진가였고, 특히 일본 PPS(Pacific Press Service)를 통해 유럽의 사진을 소개하는 막중한 일을 담당하고 있었다. 밀란 호라첵은 85년 한국으로 돌아가는 구본창에게 일본에 들러 PPS의 사장을 한번 만나보라고 했다.

“그냥 그 정도였습니다. 당시는 독일에서 한국으로 가려면 일본항공을 이용해야 해 어차피 동경을 거쳐야 했으니까요. PPS의 사장을 만나 인사하고 사진을 한번 보여줬습니다. 사장은 50년대 한국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고 한국의 사진가들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한국으로 돌아온 후 3개월 쯤 지나 초청장이 온거죠.
프로젝트에 참가할 의향이 있느냐며 말이죠.”

책에 매료되다!

사실 인터뷰를 하기 전 과거 인쇄매체 등에 발표되었던 그의 인터뷰 기사들을 찾아보았다. 역시 사진판의 스타답게 무지하게 많았다. 수십편이 넘는 글을 찾아냈다. 그리고 꼼꼼히 읽어보니 다음과 같은 키워드가 생성됐다. 연세대, 대기업 혐오, 유학, 아버지의 죽음, 시좌전, 한국 현대사진 등등. 대부분의 글들은 이같은 키워드를 가지고 변주된 복제들이었다. 아마도 어딘가 원본이 있을 듯한데, 최근의 인터뷰 글까지 대부분이 대동소이하다. 그런데 어디서도 책과 관련된 글이 없다. 11권이라는, 사진가로서는 정말 많은 책을 발표했는데도 책과 관련된 작가 구본창의 이야기가 없다? 잘 됐다. 비로써 이 연재의 오리지널리티가 발휘될 순간이다.

사실 사진가 구본창은 젊은 시절 작품을 전시한다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독일 유학 시절 그가 가장 관심을 둔 것은 잡지와 신문, 책, 포스터 따위였다. 그리고 그가 가장 좋아한 사진책은 쿠델카나 다이안 아버스의 것들이었다.

“대중들이 내 사진을 많이 보길 원했습니다. 학교에서도 사진의 편집과 디자인 등에 대해 강의를 많이 들었고, 그것이 지금도 몸에 깊이 밴 것 같아요.”

오늘의 사진가 구본창을 떠올린다면 선뜻 감이 오지 않는다. 다큐멘터리 사진가의 사진집을 좋아하고 전시장에 사진을 거는 것보다 인쇄물을 선호한다? 이에 대해 젊은 시절 구본창과 함께 활동했던 박주석교수(명지대, 사진사)의 증언(!)을 들어보자.

“내가 아는 그는 젊은 시절에 책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사진학회 카메라루시다 시절 <밝은 방> 1호를 제작할 때 열화당과 함께 일하며 편집과 디자인을 도맡다시피 했죠. 당시에도 함께 일하던 사진가들 중에 작품을 선보이는 방법을 놓고 전시파와 사진책파로 나뉘었는데, 구본창 선생은 늘 사진책파였습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책을 제작하는 일이 전시보다 비용적인 측면에서 덜 든다는 장점도 있었고, 오랫동안 대중들에게 읽힌다는 측면에서 그는 책을 더 선호했던 것 같습니다.”

<밝은 방> 을 만들던 시절인 1988년, 워커힐미술관에서 최광호와 같은 다른 유학파 작가들과 함께 새로운 시도로 평가되는 사진전인 ‘시좌전(視座展)’을 기획했다는 점을 보면 의외이기도 하지만 이는 독일 유학시절부터 품어왔던 대중적인 사진작업의 실현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90년대 그는 자신과 사회에 대한 연민이 담긴 작품들로 3권의 책을 만든다. 92년 동명의 전시회와 함께 출간된 <생각의 바다> (행림출판사)와 시공사의 Art Vivant 시리즈 두 번째인 <구본창> , 98년 동명의 사진전과 함께 자비 제작한 이 그것들이다. 그리고 한동안 책 제작은 소강상태를 보인다. 아마도 당시는 그가 가장 왕성하게 영화와 패션 등 상업적인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던 때였으리라. 하지만 의외의 행보도 있었다. 다큐멘터리잡지 GEO에 위안부할머니를 다룬 르포를 게재한 것이다. 당시 다큐판에서는 “구본창이 다큐멘터리사진으로 전향한다”더라는 무성한 뒷담화(!)도 있었고, 탈을 주제로 사진을 찍는다고 했을 때는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하지만 사진 결과물이 나오면서 사진가 구본창이 전형적인 다큐멘터리사진을 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지만 그가 얼마나 폭넓게 사진을 고민하는가를 보여준 사례이기도 했다.

새로운 작업은 계속된다!

구본창의 고민은 2003년부터 책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일본 히스테릭글래머에서 출간된 최고급의 한정판 사진집 시리즈의 9번째 책인 에는 그의 신작 탈이 실려 있었다. 이듬해인 2004년에는 열화당에서 <구본창> ,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이 나왔고, 사진전과 더불어 (호미)이 연속 출간됐다. 그리고 지난해인 2006년에는 한길사에서 <숨> , <탈> , <백자> 가 동시에 출간되고, 일본 교토현대미술관이 초대전을 하며 사진집 <구본창> 을 2,000부나 출간했다. 4년 동안 무려 8권의 책을 상재한 것이다. 아마도 이런 기록은 우리 사진계에서 흔치 않을 것이다. 이같은 그의 행보에 대해 정재숙기자(중앙일보 주말 매거진 책임 에디터)는 “그는 매체와 가장 잘 어울리는 사진가죠. 인쇄매체가 요구하는 편집과 디자인 등에 능하다고 봅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많은 대중과 만나는 것을 좋아하며 인쇄매체를 통해 더 많은 대중과 만나고 싶어 하는 듯 합니다”라고 평한다.

그와의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한 뭉치의 프린트를 봤다. 독일에서 돌아온 후 1988년 올림픽 전후까지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면 찍은 컬러사진들이었다. 와! 오늘의 감각으로 본다면 이건 마틴 파가 구사했던 컬러사진 그 이상의 느낌이다. 그리고 충분히 다큐멘터리사진으로 분류될 만한 작업이었다.

“전시와는 무관하게 출판을 준비 중입니다.”

헐! 오래전 GEO에 등장한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태클이 들어왔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대수이랴? 책에 미친 필자는 자발적으로 그의 사진집을 제작할 만한 출판사를 소개했을 뿐만 아니라 필자가 만드는 이미지프레스 무크지에도 이 작품을 어떻게 실어볼까 궁리를 하는 중이다. 어찌 알겠는가? 그의 앞으로 사진행보가 진정한 다큐멘터리사진이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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