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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풍경, 인물의 심층 고찰과 작가적 접근

2012-11-28


지난 8월말, KT&G상상마당의 한국 사진가 지원프로그램인 스코프(SKOPF)의 2차 지원작가 3명이 선정됐다. 전체 70여명의 포트폴리오 접수자 중 1차 심사를 통해 선정된 10명 사진가의 비공개 프리젠테이션을 거쳐 2차 지원작가로 박홍순, 이동근, 한경은 3명이 선정된 것. 이들 3명의 작가는 KT&G상상마당의 지원금과 개인별로 배정된 3명 멘토(이영준, 송수정, 신보슬)의 멘토링을 받아 추가로 작품을 제작하게 되며, 4개월 뒤인 12월에 열리는 공개 포트폴리오 리뷰에서 최종 1명의 지원작가가 가려질 예정이다.

글│이종화 기자
기사 제공│월간사진

올해 5회째를 맞는 스코프의 심사위원들은 올해 접수된 포트폴리오들에 관해 “좀더 현실에 천착된 작업이 많았으며, 동시에 사진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짙었다”고 평가했다. 또 이번에 선정된 세편의 작업이 “모두 사회를 향한 깊은 시선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단지 사회적 문제에 천착한 보고서라기보다 접근의 과정에서 충실한 작업태도와 예술적 접근을 공유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심사에는 정주하 심사위원장을 비롯해 송수정, 신보슬, 이상일, 이영준 5명이 참가했다. 한편 스코프는 지난해부터 응모자의 나이 제한을 없애 보다 다양한 작가층의 참여가 가능해졌고, 올해부터는 부산의 고은사진미술관과 연계해 부산에서도 스코프 지원작가의 전시를 개최하는 등 지원내용과 발표의 장이 더욱 넓어졌다.

5회 스코프의 2차 지원작가들이 다루는 내용은 4대강, 다문화가정의 결혼이주 여성, 여성 암환자 등 우리사회의 민감하거나 가려진 이슈들이다. 또한 오랜기간 곁에서 목격하거나 경험한 이슈를 사진적으로 접근하고 풀어내는 과정에서 치열한 작가정신을 엿볼 수 있다는 공통점도 지닌다. 박홍순은 1997년부터 인간과 자연, 환경을 테마로 우리 국토를 기록하는 대장정을 시작했고, 작업의 여정에서 파괴되는 4대강을 목격하고 공사현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동근은 한글학교 교사로 활동하며 만난 결혼이주 여성을 통해 자연스럽게 사진작업을 시작해 이들의 고향으로까지 작업의 무대를 넓혔다. 한경은은 암으로 투병 중인 어머니를 간호하며 암센터의 수많은 여성 암환자들을 만났고, 오랜 시행착오 기간을 거쳐 철학적, 사진적 고민들이 녹아있는 인물사진을 촬영했다.

4대강에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묻다, 박홍순

박홍순의 작업 ‘강, 스스로 그러하다’는 한강, 낙동강, 영산강, 금강 등 4대강이 인간에 의해 변해가는 모습을 흑백사진으로 보여준다.

박홍순은 최근 한미사진미술관에서 개인전 "대동여지도 중간보고서"전을 가진 바 있다. 1997년부터 30년간 촬영계획을 잡고 시작한 ‘대동여지도-계획’ 프로젝트가 절반인 분기점을 돌면서 그동안 작업한 ‘백두대간’(1999년), ‘한강’(2005년), ‘서해안’(2008년), ‘남해안’(2012년) 사진을 정리해 선보이는 전시였다. 우리 땅을 작가 자신의 눈과 발로 훑으며 인간과 자연의 관계 그리고 환경과 역사에 대한 물음까지 담으려는 장기 사진프로젝트가 ‘대동여지도-계획’이다.

우리땅을 종으로, 횡으로 돌아다니던 박홍순의 발길은 2010년 어느날부터 4대강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 전해부터 4대강 공사가 시작되면서 강의 아우성 소리가 그를 불러들인 것이다. 애초에 ‘대동여지도-계획’을 구상하면서 우리나라 강을 기록할 예정이었으나 4대강 사업이 그 시기를 앞당긴 셈이다. 이렇게 시작된 5번째 ‘대동여지도-계획’ 작업인 ‘강, 스스로 그러하다’는 4대강 공사가 끝난 현재도 진행형이다. 4대강의 훼손 정도를 ‘심각하다’는 한마디로 표현하는 그는 공사 이후의 강의 변화상까지 기록할 예정이다. “새만금, 시화호 등 그전까지는 이미 파괴된 곳을 찾아가 찍었다면 훼손이 진행 중인 4대강은 서둘러야 했고, 지켜만 보는 무력감이 컸다.” 물길이 막히고 바뀌고, 강둑의 생태계는 하루아침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현장은 우리땅을 평생의 작업 대상으로 여기며 보듬고 누벼온 작가에게 강만큼 큰 상처를 남겼다. “강이 인간에 의해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흙에서 태어나 물로서 존재하다 결국 흙으로 돌아가는 인간 본연의 모습은 무엇이며 어떤 존재인가를 생각해보았다. 스스로(自) 그러한(然) 자연은 인간의 힘을 더하지 않았을 때 가장 자연스럽지 않은지 우리 자신에게 자문해보아야 할 것 같다.”

결혼이주 여성의 정체성 파고든 이동근


동남아시아에서 온 대부분의 결혼 이민자들은 빈곤을 탈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결혼을 선택한 경우가 많다. 가족을 위해 또는 자신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장의 초청장에 의지해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이들 중에는 상대를 사랑해서 결혼을 결정하는 경우는 드물다. 짧은 대면으로 아이의 엄마를 결정하고, 평생을 같이 살 남편을 한순간의 선택에 맡기는 결혼의 형태가 우리사회에 새로운 가정의 유형을 만들고 있다.

이동근의 ‘초청장’(An invitation) 시리즈는 결혼이주 여성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작업이다. 그동안 다문화가정을 다루는 사진작업들이 새로운 가족문화의 탄생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동근은 이주여성의 결혼, 가족 그리고 그녀들의 정체성을 다양한 각도에서 파고든다.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결혼은 문화권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남녀간의 사랑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초청장’ 시리즈의 이주여성들은 사랑의 감정이 배제된 채 쌍방 간의 목적과 합의에 의해 가족을 이룬다.

이동근은 부산의 한 외국인 주부 한글교실에서 우리말을 가르치며 대부분 동남아에서 온 결혼이주자들을 만나고, 점차 이들의 결혼, 이주, 가족, 삶의 방식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우리사회의 이질적인 시선, 낯선 장소와 문화, 모호함으로 가득찬 소수자로서 그녀들의 삶은 경계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새로운 가족은 얻었지만 그녀들의 정체성은 희미해져 갔다. 자연히 이동근은 한국보다 정체성의 흔적이 더 강하게 남아있는 그녀들의 고향으로도 시선을 돌렸다. ‘초청장’ 시리즈는 결혼이주 여성의 한국에서의 가족사진, 이들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에서의 가족사진 그리고 스스로를 드러내는 초상사진 세가지 형식으로 구성되어 심층적인 관찰을 시도한다. 한편 이동근은 부산의 도시풍경을 미니어처처럼 촬영한 ‘Joy castle’, 현대인의 몸에 대한 높아진 관심을 다양한 포즈로 보여주는 ‘현대인-동작의 정복’ 등을 사진작업해왔다.

여성 암환자, 절대적인 타자와의 만남, 한경은


한경은의 ‘묵정(墨井)’ 시리즈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서울제일병원 암센터에서 화학치료를 받고 있는 여성 환자들이다. 투병중인 어머니와 함께 병실생활을 시작한 작가는 독한 항암치료를 받으며 하루에도 몇번씩 죽음과 대면하는 환자들을 만난다. 화학치료로 듬성듬성 흉하게 빠진 머리카락을 아예 밀어버리고 계절마다 실내용과 외출용 모자를 수십 개씩 가지고 있는 이들은 자신의 모습에 위축되는 만큼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죽음에 관해서도 대범하고 초연했다가도 금방 두렵고 억울해하는 일상이 반복된다. 한경은은 이러한 환자들의 얼굴에서 초연함 가운데 기이하고 신비스러운 힘을 발견한다.

그러나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환자들을 촬영하는 것은 작가에게 조심스러우면서 많은 고민을 안겨주는 과정이었다. “처음에는 되도록 예쁘게 찍어드리려는 마음과 동시에 고통을 담고 싶다는 상반된 생각이 공존했다”고 고백하는 작가는 그들을 이해하거나 초월할 수 없는, 절대적인 타자로서 받아들이기까지 1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시간은 작가 자신과 어머니가 슬픔과 분노, 연민과 측은함, 짜증과 피곤함이 뒤섞여 힘든 시기를 보내다 병을 받아들이고 평온해진 기간과 거의 일치한다. “타자의 얼굴은 내가 어떤 의도로 초상사진을 찍더라도 결코 그 의도에 귀속되지 않을 것이며 그렇기에 절대로 보편화 될 수 없는 얼굴들이다. 이 얼굴들을 통해 내 지향성이 머무를 수 없는 곳에 있는 절대적인 타자를 만난다. 이들과 소통할 수 없음을 인정할 때 동일성의 폭력에서 해방될 것이며 비로소 그때서야 내가 누구인지도 알게 된다.” 타자의 얼굴, 그것도 고통 받는 타자를 찍는 사진의 폭력성을 작가는 절대적인 타자로서 환자뿐만 아니라 자신까지 받아들이며 얼굴이 가진 정직함을 믿고 따라간다. 그러기까지 작가는 오랜기간 시행착오와 사진적, 철학적 고민의 시간을 거쳤다. 제일병원의 주소인 묵정 1-19번지에서 제목을 따온 ‘묵정(墨井)’은 서울 중구 수표동에 있던 우물의 이름이다. 깊은 우물의 이미지는 작가가 본 타자의 얼굴과 겹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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