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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들인 시간만큼 현실이 담긴다!

2011-05-23


매그넘 작가인 크리스 스틸-퍼킨스(Chris Steele-Perkins, 1947~)는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문화에 접근하는 수단으로 사진을 선택했다. 그는 로큰롤을 신봉하고 독특한 복장을 한 영국 젊은이와 영국 시골의 대저택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아내 미야코를 만난 일본의 구석구석을 사진에 담아왔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과 방글라데시 등 제3세계로도 시선을 돌려 분쟁과 혼란 속에서도 계속되는 일상을 깊이 있게 고찰해왔다. 한국과도 몇 차례 인연을 맺었다. 영국 언론에서 우연히 본 종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촬영하기 위해 2006년 한국을 방문했고, 2008년에는 20명의 매그넘 작가가 한국을 주제별로 기록해 연 전시인 <매그넘 코리아전> 을 위해 한국 군대와 경찰을 촬영하기도 했다.

전혀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기록하려면 시간이 필수다. 그는 ‘사진가가 투자한 시간만큼 살아있는 현실이 담긴다’는 평범하지만 어려운 진리를 믿고 실천한다. 크리스 스틸-퍼킨스가 평생을 촬영하는 사진 주제 중 하나는 바로 영국이다. 그는 사진을 시작한 70년대부터 지금까지 줄곧 영국 내의 특수한 집단과 문화, 일상과 사회구조 등 다방면에 관심을 갖고 사진을 찍어오고 있다. 최근에는 그의 40년 사진기록을 모은 사진책 ‘England, My England’가 발간됐다. 이밖에 중간중간에 촬영하는 사진 프로젝트도 대부분 수 년이 걸려 완성되는 것들이다. 2001년 사진책으로 정리된 아프가니스탄 작업은 4년이 걸렸고, ‘Tokyo Love Hello’, ‘Fuji’ 2권의 사진책으로 만들어진 일본 기록은 각각 3~5년의 시간이 들어갔고, 지금도 계속되는 중이다.


30년 매그넘 생활, 가장 정통적인 다큐작가

오랜 시간 대상 주변을 맴돌며 터득한 확장된 시선으로 명료하게 순간을 잡아내는 크리스 스틸-퍼킨스는 80여명의 매그넘 정회원 사진가 중 가장 정통적인 다큐멘터리 사진가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세계 최고 권위의 포토저널리즘 사진상인 ‘로버트 카파 골드 메달’(1989년)과 영국 최고의 포토저널리즘상인 ‘오스카 베넥상’(1988년), ‘탐 홉킨스상’(1988년) 등을 수상했다. 일찍이 그의 사진을 알아본 요셉 쿠델카(Josef Koudelka, 1923~ )의 추천으로 79년 매그넘의 후보회원이, 1983년에 정회원이 되었다.

1947년 영국인 아버지와 미얀마(버마)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2살 때 미얀마에서 영국으로 옮겨온 크리스 스틸-퍼킨스는 뉴캐슬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면서 대학신문사에서 처음 사진을 접했다. 그리고 1971년부터 런던에서 프리랜서 사진가로 출발해, 그룹 ‘EXIT’를 공동으로 창립했고, 1976년에는 비바 에이전시에 합류하기도 했다. 1973년부터 외국으로 눈을 돌려 방글라데시를 찍은 이후 아프리카와 중앙아메리카, 아시아의 제3세계 나라를 주로 촬영했다.

크리스 스틸-퍼킨스는 지난 8월 중순 한국매그넘에이전트가 주최하고 니콘이미징코리아가 후원하는 4회 매그넘 여름 워크숍을 위해 다시 한국을 찾았다. 5일 동안 계속된 워크숍은 15명 안팎의 워크숍 수강생과 크리스 스틸-퍼킨스가 서로의 사진철학을 나누고 새로운 시선을 만들어가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1회 데이비드 알란 하비, 2회 브뤼노 바르베, 3회 아버스에 이어 한국을 찾아 사진 워크숍을 가진 크리스 스틸-퍼킨스를 만났다.

종군위안부와 한국군대 촬영 경험, 워크숍으로 방문


혼혈아로 성장한 환경이 사진작업에 영향을 미친 듯하다.

영국의 작은 마을에서 약간 다른 외모를 하고 성장하면서 정체성에 관한 고민과 이방인이란 느낌을 가졌다. 이때 형성된 세계관이 제3세계에 대한 관심이나 작업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한다. 나의 일관된 주제인 특수한 계층이나 문화도 이런 영향 탓이 크다. 여기에 중산층 집안에서 자라면서 경험하지 못하고 몰랐던 부분에 대한 관심이 원래부터 많았다.

2006년에 촬영한 한국의 종군 위안부 할머니 작업은 어떻게 시작됐는가?

영국에서 뉴스를 보고 처음 위안부 할머니를 알게 되었다. 가슴 아픈 경험을 증언하는 용기 있는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마침 당시 매그넘에서 ‘현대판 노예’를 주제로 전시와 사진책 발간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었는데, 한국의 지인에게 연락해 이들을 찍을 수 있는지 알아보았다. 할머니들은 노예제를 직접 경험한 생존자 중 가장 마지막 세대에 속했고, 이들을 잘 모르는 세대에게 역사의 연결고리 역할을 할 것으로 믿었다. 한국에 와서 할머니들이 사는 일상과 수요집회 모습을 촬영했고, 중요하게는 초상사진 촬영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자연광 아래서 간단명료하게 얼굴만 찍고, 그들이 겪은 일을 3인칭 시점에서 글로 적어 사진 옆에 붙였다. 전시에선 사진을 1미터 정도 크게 프린트해 관객의 눈높이에 걸어 할머니와 일대일로 눈을 마주하게 했다. 관객들 대다수는 그전까지 할머니들을 몰랐고, 오랜 시간 사진 앞에서 자리를 뜰 줄 몰랐다. 전시는 지금도 영국에서 순회되는 중이다.

당신의 주요 관심사는 무엇인가?

내가 몰랐던 세상을 알아가는 데 사진만큼 유용한 수단은 없는 것 같다. 종군 위안부 할머니도 그러한 사례다. 그것은 가슴 깊은 곳에서 자신을 이끄는 대상이어야 한다. 내 경우는 두 가지인 것 같다. 내가 사는 영국사회와 아내의 나라인 일본에 관한 작업이다. 초기 작업인 테디 보이(50년대 영국에서 로큰롤을 좋아하고, 딱 붙는 바지에 긴 재킷, 뾰족한 신발로 대표되는 자유로운 복장을 선호하던 청년들)부터 최근에는 요양시설의 사람들, 시골의 대저택에 사는 사람들 등이 영국에서 하는 작업들이다. 하위문화라고 치부할 수 있는 특정한 사람들 내에서 형성된 관계와 구조에 관심이 많다. 일본에서도 외국인이 잘 찾지 않는 지방을 기록하는 중이다. 사람에 대한 관심일 수 있지만 세상에는 우리가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사진은 내가 몰랐던 현실 알아가는 수단


주로 비주류나 접근하기 쉽지 않은 대상을 찍는다. 어떤 어려움이 있는가?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사진가가 되었다. 이 말에는 그것에 접근하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제가 된다. 대상이 무엇이든 모두 마찬가지다. 그중 아프가니스탄 작업이 육체적으로 가장 힘들면서 위험했다. 내 작업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알면 알수록 새롭고 몰랐던 것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평생 해도 시간이 모자란다. 그렇지만 나는 다른 사람과 공유하기 위해 사진을 찍기 때문에 무한정 사진만 찍고 있을 수는 없다. 그래서 작업을 시작하고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면 대략의 작업기간을 정해놓는다. 이밖에 군대 등을 찍기 위해 관청을 상대할 때는 실무적인 절차를 따르느라 복잡하고 지루한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도 고역이다.

사진의 형식이나 내용과 관련해 다큐멘터리 사진에도 변화가 한창이다. 이와 관련해 주목하는 매그넘의 젊은 작가는 누구인가? 그리고 스틸과 영상을 같이 하는 편인가?

장기적이고 심층적인 작업을 하는 조나스 벤딕센(Jonas Bendiksen), 자신의 삶을 작품에 투영시키는 안토이 다가타(Antoine D’Agata), 젊지는 않지만 대형 뷰카메라로 작업하는 알렉 소스(Alec Soth) 등이 있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여성 사진가인 알레산드라 상규티(Alessandra Sanguinetti)는 정통적인 기법과 가장 거리가 먼 경우인데, 그녀는 현장을 재배치해 환경과 인간의 관계를 찍는다. 영상 기록은 매그넘 작가 중 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아프가니스탄에서 단편영화를 찍은 적이 있다. 5년전 베를린영화제에서 매그넘 작가의 영상작업이 상영됐었고, BBC에서도 매그넘의 또 다른 영상물이 방영됐다.

세계적으로 다큐멘터리 사진시장이 크게 줄었다. 매그넘의 향후 진로는?

현재 매그넘 내에서 여러 논의가 진행 중이다. 궁극적으로 직면한 변화는 디지털 혁명과 다큐멘터리 사진시장의 축소다. 종이지면 시장은 그동안 매그넘의 주요한 소득원이었지만 많이 줄었다. 다큐멘터리 사진을 다루던 잡지가 줄면서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하는 숙제가 남았다. 한때는 사진작업에서 돈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았다. 어떤 나라를 찍고 싶으면 의뢰하는 매체가 없어도 찍고나면 사진이 팔릴 가능성은 100퍼센트 확실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아직 완전한 해결책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인터넷이 대안이 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 예를 들어 아이패드 등에 어플리케이션 제품으로 사진을 팔거나 구독료를 받는 온라인 매체가 그것이다.



* 본 기사는 <월간사진> 2010년 9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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