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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상상력을 사진에 새기다

2011-11-01


구술 | 강영호
정리/사진 | 포토라이터 이상엽


*본 기사는 <월간사진> 2009년 11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순수사진에 대해 : 첫 번째 개인전이 성곡미술관에서 열린다.

사실 나는 불문과를 나온 사진 비전공자다. 어찌하다보니 광고 사진계에서 활동했고, 사람, 돈, 유명세 때문에 열심히 한 듯하다. 내게 사진은 그것들을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그런데 한 10년 하니까 재미가 없다. 나이 들었다고 그것들이 덧없다는 것이 아니다. 성에 차질 않은 것이다. 좀더 파워풀해지고 싶은데 광고판은 한계가 있다. 사실 요즘은 일이 없다. 내게 일을 의뢰하는 이유는 사진 때문이 아니라 인맥이 필요해서다. 빅모델을 다룰 수 있는 그런 관계를 사는 것이다. 일도 없어지고 재미있는 일이 없다. 재능과 끼를 발휘할 방법이 없어서 순수사진을 해보고 싶어졌다. 크리에이티브의 빈곤을 해결하는 그런 것 말이다. 아마도 내가 일하던 판에 대한 응어리나 복수심도 있는 듯하다. 스스로 전시장을 선택하고 그 공간에서 내가 잘 할 수 있는 뭔가를 풀어내는 것이다. 스스로 온갖 욕망을 토해내고, 찍고, 재미를 느끼려고 한다. 아마도 자위나 자뻑(?)쯤 될지도 모르지만, 하다 안 되면 웨딩 찍지 뭐. 그래서 요즘은 결혼하지 않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저 매일 공부하고 글을 쓰고 사진 작업을 한다. 그래서인지 잠을 못 잔다. 수면제와 술의 나날이다. 스스로 집중력을 강화하기 위해 모든 걸 쏟아내고 있나보다. 자신과의 싸움이다. 내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작년에 성곡미술관을 찾아갔다. 윤상진교수의 소개로 가긴 했는데, 큐레이터의 떨떠름한 표정이란. 하지만 기다렸다. 미술관 스케줄에 빈틈이 있었는지 운 좋게 연락이 왔다. 포트폴리오를 급하게 만들었는데, OK! 전시장 공간을 기초로 작품 구상에 들어갔다. 1층 전시장의 복층은 그야말로 내가 하고픈 작품을 꿈꾸게 했다. 이때까지 작품 제작은 1퍼센트! 단 1점을 제작한 단계였지만 공간이 작품을 확 풀리게 했다. 나는 개념사진과 다큐멘터리사진 사이에 빈틈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특유의 퍼포먼스와 거울을 보고 찍는 셀프 포트레이트에서 나만의 장르를 개발하기로 했다. 이미 준비된 형식이었다. 사실 내 사진은 적극적으로 연출을 해서 99퍼센트 진짜 같은 가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완벽한 연출이 선행되야 하고 인물의 감정을 끌어내는, 영혼까지도 연출한다는 자신감으로 대상에게 밀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결국은 완전할 수 없었기에 내 스스로를 찍기로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은 Myth, Legend, History 세 장으로 구성된다. 환상과 욕망으로 제조된 괴물을 건져내는 사진가의 이야기. 이것이 내 전시의 테마이다.


인문학에 대해 : 무슨 공부를 그리 열심히 하는가?

나는 요즘 불문과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데 지도교수의 전공이 ‘상상력 연구’이다. 무의식에 적절한 자리를 찾아주는 것인데, 서구 합리주의에 상상력을 포섭하는 연구분야다. 프로이트, 칼융, 바슐라르, 쥘 베르 뒤낭으로 이어지는 계보 속에서 만들어진 책이 ‘상상계의 인류학적 구조’이다. 그래서 내 스튜디오의 이름도 ‘상상 사진관’이 됐다. 나는 여기에 주역과 노자 등을 읽으며 동양적인 사유체계를 포함하는 사진을 구상했다. 아마도 이런 공부들이 나를 조금 더 풍부하게 한 듯하다. 그때 마침 네이버에서 ‘오늘의 포토’ 심사위원 제의가 오면서 텍스트로 승부를 걸었다. 열심히 공부하면서 글을 썼다. 깊이가 생기면서 겸손을 잘 모르는 내가 변하기 시작했다. 모르면 아는 척을 말자. 카이스트에 가서 양자역학과 물리학을 공부했고, 산해경과 노자, 장자를 읽었다. 그래서 이번에 제작한 사진에 주역으로 점을 쳐서 이름을 지어주었다. 예를 들면 ‘등 뒤에 흐르는 강’이라 이름 붙인 사진 등이다. 캐릭터를 해석하고 텍스트를 동원해 동양적 사유와 서양적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작업이 어떻게 흘러갈지에 대해 염두에 두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모두 만난 듯하다.


계기에 대해 : 어떻게 사진을 하게 되었는가?

독특하기도 하고 뜬금없는 데뷔였다. 29살에 사진가를 시작했는데, 그전에는 사진을 취미로 하지도 않았다. 여자 친구를 찍은 사진과 선물로 줄 엽서용 사진 몇 장을 우연히 청바지 회사 ‘닉스’에서 봤다. 그리고 내게 광고를 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일본으로 갔다. 아마추어사진가도 아닌 내게 일을 맡겼는데 그게 반응이 좋아 계속 일을 하게 됐다. 사진 기술은 없었지만 주제에 대한 천착이 있었다. 불문학을 전공하면서 인문학적인 교양은 쌓았지만 사실 기술적인 교양은 전무한 상태에서 어떻게 하면 사진의 내용을 강화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그것이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다. 그 후에 영화 ‘인터뷰’를 만든 변혁 감독을 만나 영화 포스터를 찍었는데 그게 대박이 나면서 포스터 일을 많이 했다. 그래서 그때부터 사진가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렇게 뜬금없이 사진을 하게 되었다.


여자에 대해 : 늘 연애담으로 화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여자를 좋아하는지, 지금은 모르겠다. 나는 여자를 좋아했다기보다 LOVE하는 것을 좋아한 것 같다. 대상보다는 대상과 교감하는 행위를 좋아했다. 지금은 거울을 보며 나를 좋아한다. 이기적이다. 사실 요사이는 여자 만날 시간도 없다. 그리고 여자들도 내가 갖고 있는 기질을 두려워하는 듯하다. 위태위태해 보이지 않나? 내가 평소에 작업한 것으로 보아 여자들과 관계가 많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나는 작업을 하면서 대상과 한번도 연애감정을 가져본 적이 없다. 사진에서 진짜 같은 가짜를 끌어내기 때문에 일이 끝나고 나면 감정이 없다. 그런 사진들은 내 가오용이지 인간적인 관계를 맺는 도구가 아니다. 어차피 일에서 동등한 관계를 맺기도 힘들기 때문에 일이 끝나고 나면 피곤할 뿐이다. 사진 비즈니스가 아닌 사진가와 피사체의 관계라면 모르겠지만 지금 상태로 보자면 한동안은 혼자일 듯하다.


돈에 대해 : 어떻게 먹고 살 생각인가?

이 작업을 굳이 장르화 한다면 ‘이미지텔링’이라고 부르고 싶다. 나는 그 선구자가 되는 셈이다. 순수사진에도 마케팅 기법을 동원해 조사하고 연구해야 한다. 문화강국들, 예를 들면, 영국은 연극, 미국은 영화, 일본은 만화가 주력 상품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강점이 있다. 이미지와 스토리가 강하다. 그런데 우리는 두 가지 모두가 좋은 것이 별로 없다. 정교함의 부족인 듯하다. 우리가 손재주가 좋다고 하는 것은 자화자찬이다. 그들의 것이 훨씬 더 정교하다. 그렇다면 내 강점은 뭘까? 사진과 스토리텔링이다. 그래서 한 작품만 좋은 것보다는 스토리가 되게 하자, 이것이 이미지텔링이다. 소설가 김탁환 같은 스토리텔러와 함께 작업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 작품들을 강력한 문화상품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이런 시도를 통해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광고시장은 더 이상 아니다. 작은 일도 한번 하고 나면 3개월짜리 어음으로 돌아온다. 아예 인물사진처럼 개인 고객을 위해 일하는 것이 마음도 편하고 크리에이티브를 발휘할 수 있다. 물론 돈은 적지만. 그렇게 살 각오도 되어 있다. 그리고 공부는 계속할 생각이다. 강의할 생각은 없지만 박사까지 가고 싶다. 공부하고, 글쓰고, 그러면 내 사진을 찍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강영호는 내가 가장 최근에 만난 사진가 중 한 사람일 것이다. 처음 네이버에서 함께 사진 심사위원을 하면서 알게 됐지만 나와는 활동 공간이 달랐고, 상업작가를 바라보는 내 편견 때문에 그리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역시! 술 한잔이 사람에 대한 경계를 무너뜨리나 보다. 흔히 ‘춤추는 사진가’, ‘연예가중계에 나오는 스타작가’라는 꺼풀을 벗기면 그냥 고민하는 한 시대의 사진가를 만나게 된다. 그의 수다스런 이야기를 늘 술자리에서 듣게 됐고, 그가 하는 이야기 속에서 인생을 고민하는 한 상업작가를 만나게 됐다. 그가 이제 미술관이라는 공간에서 순수사진이라는 다른 장르의 사진 이야기를 풀어놓게 된다. 그가 또 한번 대박을 낼지, 아니면 “이거 사진 어렵네”하고 꼬리를 내리게 될지는 전적으로 관객들의 몫이다. 11월 그의 전시가 기대된다.



강영호는 1970년 서울 출생으로 1995년 홍익대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지금은 불문학 석사과정을 다니고 있다. 1998년 ㈜NIX 주최 신인 사진작가 입상으로 패션 광고 사진가로 데뷔했으며, 1999년 영화 ‘인터뷰’로 영화포스터 사진가로도 데뷔했다. 네이버 오늘의 포토 심사위원(2008, 2009)을 지냈고, 시집 ‘99% 진짜같은 가짜사랑’(소담, 2004)이 있다. 2009년 국가브랜드위원회 전문가 자문위원이며 스튜디오 상상사진관(www.sangsang.co.kr)의 대표다. 지오다노, 삼성카드, KB카드, LG카드, 코카콜라, 지펠, 참이슬, 애니콜, 17차, 던킨도넛츠, 모토로라, 래미안, 롯데면세점 등 다수의 광고사진과 시월애,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파이란, 집으로, 피도 눈물도 없이, 결혼은 미친 짓이다 등 다수의 영화 포스터를 촬영했다. 전시는 단체전 <한국 패션사진작가 12인전-거울신화> (아트선재센터, 2007)와 개인전 <강영호 99 variations> (2009.11.25~2010.1.24, 성곡미술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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